지난 14일 필리핀 바탕가스에서 열린 월드비전 아동총회에 참석한 한국과 필리핀 학생들이 캠페인 메시지를 담은 포스터를 만들고 있다. 최화진 기자
[함께하는 교육 정보] 월드비전 필리핀 아동총회 현장
“학교 근처 돼지농장 주인은 오물을 강에 함부로 버렸다. 우기 때 그 강물이 학교 주변으로 흘러들어와 악취가 심했다. 교내 수도꼭지는 고장 나고 식수시설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학생들은 손을 씻거나 깨끗한 물을 마시는 것이 힘들었다.”
유엔 지정 ‘국제청소년의 날’ 맞아
한국-필리핀 학생들 권리 찾기 나서
두 나라 아동권리침해 사례 공유 뒤
빈곤·안전·교육 문제 등 주제 정해
해결 담은 정책제안문 만들고
필리핀 학교 방문 공동캠페인 진행 하이디와 에드를 비롯한 학생들은 문제가 드러난 곳을 일일이 사진 찍었다. 군청 로비에 그 사진을 전시하고 담당자를 만나 개선안을 요구했다. 얼마 뒤. 교내 수도시설이 고쳐져 학생들은 깨끗한 물을 쓸 수 있게 됐고 기관 담당자와 학생들이 돼지농장 주인을 만나 폐기물 처리를 제대로 하겠다는 약속도 받았다. 필리핀 바탕가스에 위치한 세인트 이시도레 국립고등학교 이야기다. 학생 스스로 쾌적한 환경에서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있는 권리를 찾기 위한 노력을 펼친 결과였다. 매년 8월12일은 유엔이 정한 ‘국제청소년의 날’이다. 이날은 국가 및 지역 관계자나 청소년 단체가 만나 청소년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정부와 일반인에게 의견을 표현하기도 한다. 지난 12일. 필리핀 바탕가스에서 한국 학생 21명과 필리핀 학생 25명이 만났다. 각자 나라의 아동권리 침해 사례를 나누고 이를 해결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기 위해서다. 월드비전이 옹호사업의 일환으로 처음 진행한 아동총회 프로그램이었다. 하이디는 이날 자신이 했던 활동 내용을 발표했다.
바탕가스는 수도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1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필리핀 내에서도 빈곤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이다. 월드비전 바탕가스 사업장 총괄매니저 프레시는 “집안형편이 어려운 가정도 많고 부모가 자녀를 교육시켜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부족하다”며 “이 때문에 아이들이 망고 열매가 잘 자라도록 종이로 일일이 싸는 일이나 숯을 만드는 작업에 동원되는 일도 잦았다”고 말했다. 사업장에서는 부모와 아이들 모두에게 교육의 필요성을 알리는 동시에 아동권리위원회를 꾸려 학생들이 직접 본인들과 관련된 지역 내 문제를 앞장서 해결하도록 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과 필리핀 학생들의 첫 만남은 데면데면했지만 이내 마음이 통한다면 눈빛과 바디 랭귀지로도 소통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다. 학생들은 짧은 영어 단어를 이어 대화하거나 지도교사의 도움을 받아 사전으로 내용을 검색한 뒤 종이에 적어가며 캠페인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 논의했다. 모둠별로 슬로건과 포스터도 만들고 필리핀 고유어인 따갈로그어로 이루어진 노랫말을 주제에 맞춰 바꿔 부르거나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주제의 내용을 녹인 짧은 연극을 준비했다.
두 나라 학생들은 각각 ‘빈곤의 종말’, ‘안전한 도시와 마을 만들기’, ‘교육의 질’을 공동캠페인 주제로 삼았다. 이 주제는 ‘새천년개발목표’(MDGs)에 이어 올해 유엔 총회에서 새로운 목표로 채택될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17개 중 학생들이 뽑은 것이다. 학생들은 사전에 자신이 고른 주제에 관한 각자 나라 상황을 조사해 서로 사례를 공유하고 투표를 통해 최종 주제를 결정했다.
캠페인 준비가 한창이던 둘째 날. 몇몇 학생들이 종이로 만든 다리와 문이 달린 허름한 집 모양의 소품으로 무대배경을 만들었다. 남편 역할을 맡은 학생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내와 돈 문제로 말다툼을 했다. 아들은 이들 사이에 끼어 울면서 한탄했다. ‘안전한 도시와 마을 만들기’를 주제로 학생들이 직접 만든 연극의 일부분이다.
이들은 필리핀 빈민촌의 열악한 생활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우기가 되면 물이 차올라 다리 밑에 천막으로 만든 집이 없어진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황이 이어지며 가정불화가 생기고 아이들은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문제점을 드러낸 뒤 주인공 가족이 지역 시민단체와 함께 정부에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지원책을 요구해 문제를 해결하는 내용이었다. 학생들은 옷이나 가방 등 소품도 직접 만들고 영어 대사를 짜 맞추며 서로 연기지도도 해줬다.
한국과 필리핀 학생들은 총회 마지막날 근처 세인트 이시도레 국립고에 가서 캠페인을 벌였다. 필리핀 학생과 교사들은 흥미롭게 이들의 공연을 지켜봤다. ‘교육의 질’이란 주제를 맡은 에드는 “이번 기회에 한국도 필리핀처럼 학교폭력 문제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아동권리와 관련해 서로의 상황도 파악하고 많은 걸 배웠다”며 “교육은 빈곤을 해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식은 다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기 때문에 아동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 지역사회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석민군(대구 능인중 3)은 “연극할 때 영어가 서툴러 대사를 까먹었는데 객석에 있는 필리핀 친구들과 교사들이 박수치며 호응해줘서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며 “필리핀 친구들 이야기를 들으며 경제적 수준이나 환경이 교육의 질 문제와 직결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필리핀의 절대적 빈곤율은 26.4%나 된다고 들었다. 초등과정까지 의무교육임에도 불구하고 생계 때문에 아이들이 일을 해야만 한다는 게 가슴 아팠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경쟁위주의 입시교육으로 잠도 제대로 못자고 놀 권리를 침해당한다. 반면, 필리핀 아이들은 절대적 빈곤이나 교육 등 자신의 기본적인 삶 자체에 대한 권리를 침해받고 있었다. 국가차원의 지원도 많이 부족해보였다.”
이들은 캠페인이 끝난 뒤 주변 마을 이장들에게 직접 쓴 정책제안서를 건넸다. ‘교육의 질’을 주제로 한 모둠은 학교폭력(한국-필리핀), 교과서 부족(필리핀), 교사의 일방적인 강의식 수업(한국) 등 한국과 필리핀의 교육 문제를 모두 담았다. 학생들은 개선안으로 학교폭력예방교육과 캠페인을 진행하고 정부 예산을 늘려 교과서를 사고 교사 역량을 높이는 연수를 진행해달라는 내용을 건의했다.
프레시는 “이런 활동이 아이들은 물론 마을 전체를 변하게 한다. 아이들 스스로 권리를 찾아 나가면서 본인은 물론 어른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 이곳에서 사업을 시작할 때 아이들은 스스로를 100점 만점에 20점 정도로 평가했다. 그만큼 자존감이 낮고 의사를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아이들이 마을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고 해결하게 됐다. 그런 모습을 보고 어른들도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하며 마을의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중이다.”
한편, 월드비전은 전 세계 100여개 국가에서 ‘구호-개발-옹호’ 세 분야를 주축으로 연계해 사업을 진행하는 국제구호개발엔지오(NGO)다. 옹호사업팀 양승혜씨는 “옹호사업은 현지인들의 인식 개선에 앞장서고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일을 한다”며 “단순히 학교를 짓고 물자 지원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들이 주도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끌어갈 수 있게 기반을 다지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총회는 청소년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해 국내외 아동권리 현안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서로 소통하며 지역의 변화를 요구하는 자리였다.
바탕가스(필리핀)/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한국-필리핀 학생들 권리 찾기 나서
두 나라 아동권리침해 사례 공유 뒤
빈곤·안전·교육 문제 등 주제 정해
해결 담은 정책제안문 만들고
필리핀 학교 방문 공동캠페인 진행 하이디와 에드를 비롯한 학생들은 문제가 드러난 곳을 일일이 사진 찍었다. 군청 로비에 그 사진을 전시하고 담당자를 만나 개선안을 요구했다. 얼마 뒤. 교내 수도시설이 고쳐져 학생들은 깨끗한 물을 쓸 수 있게 됐고 기관 담당자와 학생들이 돼지농장 주인을 만나 폐기물 처리를 제대로 하겠다는 약속도 받았다. 필리핀 바탕가스에 위치한 세인트 이시도레 국립고등학교 이야기다. 학생 스스로 쾌적한 환경에서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있는 권리를 찾기 위한 노력을 펼친 결과였다. 매년 8월12일은 유엔이 정한 ‘국제청소년의 날’이다. 이날은 국가 및 지역 관계자나 청소년 단체가 만나 청소년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정부와 일반인에게 의견을 표현하기도 한다. 지난 12일. 필리핀 바탕가스에서 한국 학생 21명과 필리핀 학생 25명이 만났다. 각자 나라의 아동권리 침해 사례를 나누고 이를 해결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기 위해서다. 월드비전이 옹호사업의 일환으로 처음 진행한 아동총회 프로그램이었다. 하이디는 이날 자신이 했던 활동 내용을 발표했다.
같은날 학생들이 모여 캠페인 내용을 담은 연극 연습을 하고 있다. 월드비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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