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단체협의회 회원들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교육청 앞에서 ‘고교 강제추행, 성희롱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처벌, 학교 성폭력 근절 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열어, 유현경 평등교육실현 서울학부모회 남부대표가 최근 교육계에서 잇달아 벌어지고 있는 성폭력 사태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권희정(상명대부속여고 교사, 숭실대 철학과 겸임교수)
[한겨레 사설] 성폭력 근절 대책이 실효를 거두려면
최근 드러난 한 서울 공립고의 성추행 파문을 계기로 교육청과 정부 차원의 강력한 대책이 마련되고 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7일 성범죄로 수사받는 교원은 직위해제하고 군인·교원·공무원이 성범죄로 벌금형만 선고받아도 임용을 제한하는 등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또 학교 내 성폭력을 은폐한 경우에도 최고 파면으로 징계하겠다고 했다. 전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도 성범죄 사실이 확인된 교원은 바로 퇴출시키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늦었지만 환영할 일이다.
중요한 건 이런 대책이 엄포에 그쳐선 안 된다는 점이다. 그동안 공직사회에서 성 관련 추문이 불거질 때마다 엇비슷한 대책이 반복해 제시됐지만, 여전히 온정주의가 작동해 제재의 실효성이 담보되지 않았다. 성범죄로 징계받은 교사의 절반이 애초 근무하던 학교에 여전히 다니고 있을 정도다. 학교 못지않게 성범죄가 빈발하는 군대에서도 형사처벌되는 비율이 극히 낮고 고급 장교일수록 쉽게 제재를 비켜간다. 정부가 약속한 대로 관련 법률을 반드시 정비해 이런 부조리한 상황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앞으로 사법기관도 이런 사건에 대해 더욱 엄정한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공적 권력을 이용한 성범죄가 뿌리뽑히지 않는 원인은 제도적 결함에만 있는 게 아니다. 힘 있는 자들은 아무리 추한 일을 저질러도 결국 유야무야되고 만다는 경험칙에 기반한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탓도 크다. 아무리 추상같은 제도가 마련된다 한들 권력에 힘입어 법망을 빠져나가는 사례가 온존한다면 제도의 억지력은 흔들리게 된다. 정치·경제·사회적 권력이 막강한 이들의 성추문에 훨씬 단호하게 철퇴를 내려야 하는 이유다. 이런 점에서 최근 불거진 심학봉 의원(전 새누리당 소속)의 성폭행 의혹은 정부의 성폭력 근절 의지를 시험하는 사례다. 새누리당 지도부도 자신의 미온적인 태도가 정부의 성폭력 근절 대책을 헛구호로 전락시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학교를 비롯한 공공 영역에서 성추문이 끊이지 않는 구조적 원인과 해법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문제가 된 서울 공립고의 경우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인 학교 운영이 교사들의 성폭력을 조장하고 이에 대해 쉬쉬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무리 고충처리 담당자를 두고 신고절차를 마련해도 강압적이고 경직된 위계문화에서는 제구실을 하기 힘들다. 학교, 군대, 공무원 조직 등이 더 민주적인 소통구조를 지닐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
[중앙일보 사설] 청와대 들먹거리는 성추행 교사부터 처벌해야
정부가 권력형 성범죄에 대해 강도 높은 대책을 내놓았다. 교사들의 잇따른 성추행과 성희롱 사건에 대한 학부모들의 불만과 불안이 사회문제로 번질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어제 “성폭력 문제를 포함한 4대 악 근절에 대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확고한 원칙을 갖고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황 총리는 교내 성폭력 사건을 은폐하는 학교 책임자에 대해 최고 파면까지 징계가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성폭력 교원은 즉시 직위해제해 피해자와 격리하고 징계 절차가 신속히 진행될 수 있도록 징계의결 기한을 60일에서 30일로 단축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라고 한다. 군인과 공무원의 성폭력 범죄에 대해서도 강력한 처벌 방침 등을 내놓았다.
성폭력 사건은 한번 발생하면 피해 당사자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 때문에 황 총리의 다짐이 헛구호가 돼서는 안 된다. 정부 대책이 지속성을 갖고 효과를 거두기 위해선 관계기관의 협조와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교육 현장에 있는 당사자들이 그릇된 관행과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최근 물의를 빚고 있는 서울시내 한 고등학교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해당 교사와 교장 등은 사건 은폐에만 급급할 뿐 정작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선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성추행 의혹을 사고 있는 남자 교사들은 오히려 “청와대에 아는 사람이 있다” “방학 뒤에 다시 돌아온다” 등의 큰소리를 쳤다고 한다. 사건 제보자로 추정되는 여교사 책상 위에 커터 칼도 놓였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러니 “날마다 애정촌에 출근하는 것으로 착각했던 것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사고 있는 것이다. 교육 현장 최일선에서 학생을 위해 밤낮없이 노력하는 대다수 교사가 성추문으로 자존감을 잃어서야 되겠나.
교육 당국은 하루빨리 관련자들을 상대로 진상조사를 벌이고 경찰도 더욱 적극적으로 수사에 임해야 한다. 두루뭉술한 대책만으로 성폭력이 없어지지 않는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교사부터 조사해 혐의 사실이 드러나면 강력히 처벌할 것을 촉구한다.
[추천 도서]
[키워드로 보는 사설] 성희롱과 성폭력 성폭력은 학계와 법조계, 그리고 대중이 사용하는 개념에서 약간씩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는 “강제나 위계, 불평등한 권력에 의한 폭력 또는 원하지 않는 언어적, 신체적, 성적 행위”를 뜻한다. 성폭력은 상황 맥락이나 행위의 정도에 따라 성희롱이나 성추행이라는 개념으로 대체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성희롱과 성추행도 성폭력의 범주에 속한다. 성희롱의 발생을 설명하는 관점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사회문화적 관점이다. 여성 차별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인식하여 남성의 우대와 공격성을 정당화하는 문화에서 성희롱의 원인을 찾는다. 이것은 문화적으로 합법화된 권력을 가진 남성들이 불공평하게 피해를 입은 여성의 상처를 못본 체 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둘째는 조직 내에서 권력과 지위의 불평등으로 인해 성희롱이 발생한다는 관점이다. 조직 내 상급자가 성적 만족이나 부하 관리를 위해 권력을 이용해서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원인을 찾은 것일 뿐 거시적 관점에서 서로 통한다. 성희롱은 성차별 문화를 토양으로 삼고, 권력이라는 비료를 먹으며 자라기 때문이다. 한편, 세 번째 관점으로 개인차에 주목하여 성희롱을 설명하는 입장도 있다. 모든 남성이나 권력자가 성희롱을 하는 것은 아니며, 모든 여성이 당하는 것도 아니다. 성적 공격을 행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과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의 심리적 특징을 살펴 개인적 변인들을 살펴보자는 관점이다. 의사는 병의 원인에 따라 다른 처방전을 쓴다. 우리 사회의 병폐인 성희롱을 근절하려면 문화적 권력, 제도적 권력, 개인적 차원 등 다차원적 발생 원인을 살펴 그에 맞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연재사설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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