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고 또래상담동아리 스텝의 부장 김하은양(왼쪽)과 부부장 권민주양이 교내 현관에 있는 우체통 앞에 섰다.
우정·감사 전하는 ‘소통우체통’으로 서로 보듬기
“길모퉁이만 돌아서면 네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행복이 기다리고 있어. 그러니 여기서 멈출 수는 없잖아. 더 힘을 내!”
서울 관악고 전교생 1000여명은 지난 6월 중순께 이런 문구가 적힌 엽서를 선물 받았다. 그냥 혼자 간직해도 좋지만 평소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이가 있으면 엽서에 그 마음을 적어 교내 중앙 현관 1층에 있는 빨간색 ‘소통우체통’에 넣을 수도 있다. 집배원은 이 학교 또래상담동아리 ‘스텝’(STEP, Start Together Every Peer) 학생들이 맡는다. 교내뿐 아니라 여의도여고, 여의도고, 영등포여고, 선유고, 영신고 등 인근 학교에도 보낼 수 있다. 엽서에 적힌 희망의 문구 등은 학교 화장실에도 붙어 있다. 2학기가 시작하면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등의 문구가 적힌 새로운 엽서도 나눠주고,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가 보세요. 우리 그렇게 다르지 않아요’라고 적힌 포스터도 각 교실에 게시할 예정이다. 엽서와 포스터 등에 적은 문구, 캘리그래피, 일러스트, 편집디자인 등은 모두 스텝 학생들이 직접 한 것이다.
서울 관악고 또래상담동아리 ‘스텝’
마음 따뜻해지는 엽서 제작
전교생 나눠주고 집배원 구실 해
‘악플 없는 앱은 없을까’ 생각하다
‘공감버튼만’ 있는 앱 제안한 서울여상
일기처럼 좋은 일·슬픈 일 등 기록 가능
어른들 시선 아닌 청소년 눈높이로
생명존중·자살예방 아이디어 나와 이 학교에서는 매월 스텝이 진행하는 이런 방식의 이벤트가 활발하다. 지난 5월에는 ‘내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라고 적힌 대형 전지가 학교 중앙 현관 등에 붙었다. 하루 동안 전교생의 약 40%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이 전지에 자신의 생각을 적었다. 스텝의 부장 김하은양은 “미국인 캔디 창에 의해 시작한 ‘비포 아이 다이’(Before I Die) 프로젝트에서 착안한 캠페인”이라고 설명했다. “어머니를 병으로 떠나보낸 그녀가 충격을 받고 ‘남은 일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동네 버려진 벽에 ‘Before I Die, I want to~’라는 글씨를 썼어요. 그 벽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려 했던 거죠. 학생들이 ‘내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건 뭘까’를 생각하면서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며 앞으로의 인생에 도전할 기회와 열정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추진했습니다.” 스텝 학생들은 ‘학교폭력 사행시 공모전’ 등 다양한 활동들을 해온 노력을 인정받아 얼마 전, ‘제1회 청소년 생명존중·자살예방 공모전’(나봄문화·서울시초중등교육정책연구회 주최. 이하 공모전)에서 동아리 활동 부문 고등부 최우수상을 받았다. 청소년 자살 문제가 화두에 오르자 정부는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실효성은 없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지난 3월13일,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자 사회부총리가 “학생들 사이 에스엔에스(SNS)로 자살 관련 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이 포착될 시 부모에게 알리는 서비스를 실시하겠다”고 밝힌 것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인권 침해 소지도 있을뿐더러 ‘겉핥기 대책’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실제 청소년들이 생각하는 ‘자살 예방법’은 뭘까. 사회복지법인 한국생명의전화 자문위원들로 구성된 ㈔나봄문화(이사장 박민용)는 요즘 청소년들이 자살 전,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관련 자살방지앱 ‘비개인’(Begain: begin+again) 개발을 준비했다. 그러던 중 실제 청소년이 좋아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서 청소년의 생각을 들어보는 공모전을 열었다. 앱 개발 제안 부문에서 대상을 받은 서울여상 이주현(2년)양, 장민지(1년)양은 우리말로 ‘서로 사랑하는 우리 사이’를 뜻하는 ‘예그리나’라는 이름의 앱 개발을 제안했다. 온라인 문화 발달로 청소년이 고민을 상담할 수 있는 창구는 많아졌지만 악성댓글 등으로 상처받는 일도 많다. 예그리나는 고민 상담이 가능한 공간이지만 댓글 권한은 제한되어 있다. 위클래스 전문 상담교사나 또래상담동아리 학생들 등만 게시물에 접근해 댓글을 달 수 있다. 댓글 권한이 없더라도 고민을 올린 누군가의 글에 공감·위로한다는 뜻으로 공감 버튼 등은 누를 수 있다. 프로필에도 글쓴이의 실명 등이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공감 나무 육성 프로필 게임’이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해 매일 자신의 좋았던 일, 힘들었던 일 등을 일기처럼 기록할 수 있게 했다. 이주현양은 “이 내용들은 ‘나이테’라는 장소에서 다 읽어볼 수 있는데 스스로 써왔던 것을 나중에 다시 보면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신감, 자아존중감 등을 회복할 수 있다. 누군가 ‘공감’ 등을 눌러줄 때마다 공감지수, 애정도 등이 올라가는데 그 지수가 다 차면 나무가 성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상담은 음성녹음으로 가능하다. 장민지양은 “기존 온라인 상담이 글을 쓰는 방식으로만 진행되는데 이 방식으로는 학생들이 자기 심정을 충분히 털어놓기 힘들다. 그래서 감정을 좀더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음성녹음 방식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동아리 활동 부문 우수상을 받은 신월중 ‘어동만’(어느날 우리가 동아리를 만들었습니다)팀은 학교에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샌드백 등을 설치하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이윤서(1년)양은 “총 5차시로 이루어진 프로그램인데 1차시 교회 영아부 등을 만나면서 삶의 소중함 체험하기, 2차시 책 읽고 독후감상문 쓰기, 3차시 학교에 샌드백 설치해 스트레스 날려보기, 4차시 유언장 쓰기 및 관 체험 하기, 5차시 그동안 해온 내용들을 놓고 자살예방 등 홍보하기 등으로 활동이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또래 유저 및 전문가 등과 채팅하며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앱 ‘가온누리’(서울여상) 등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왔다. 나봄문화 최혜정 사무총장은 “그동안의 자살 방지 대책들은 모두 어른들 눈높이에서 나온 것들인데 청소년들에게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내놓을 기회를 주자 정말 반짝이는 생각들이 쏟아져 나와 놀랐다”고 했다. 공모전을 주최한 나봄문화 관련 한국생명의전화에서 9월18일 저녁 6시30분에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계절광장에서 ‘해질녘서 동틀 때까지 생명사랑 밤길걷기’ 행사도 연다. 최 사무총장은 “청소년들은 물론이고 학부모, 일반인 등이 여러모로 힘든 상황에 있는 청소년들을 위해 손잡고 걷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 등에도 많이 동참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마음 따뜻해지는 엽서 제작
전교생 나눠주고 집배원 구실 해
‘악플 없는 앱은 없을까’ 생각하다
‘공감버튼만’ 있는 앱 제안한 서울여상
일기처럼 좋은 일·슬픈 일 등 기록 가능
어른들 시선 아닌 청소년 눈높이로
생명존중·자살예방 아이디어 나와 이 학교에서는 매월 스텝이 진행하는 이런 방식의 이벤트가 활발하다. 지난 5월에는 ‘내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라고 적힌 대형 전지가 학교 중앙 현관 등에 붙었다. 하루 동안 전교생의 약 40%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이 전지에 자신의 생각을 적었다. 스텝의 부장 김하은양은 “미국인 캔디 창에 의해 시작한 ‘비포 아이 다이’(Before I Die) 프로젝트에서 착안한 캠페인”이라고 설명했다. “어머니를 병으로 떠나보낸 그녀가 충격을 받고 ‘남은 일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동네 버려진 벽에 ‘Before I Die, I want to~’라는 글씨를 썼어요. 그 벽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려 했던 거죠. 학생들이 ‘내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건 뭘까’를 생각하면서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며 앞으로의 인생에 도전할 기회와 열정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추진했습니다.” 스텝 학생들은 ‘학교폭력 사행시 공모전’ 등 다양한 활동들을 해온 노력을 인정받아 얼마 전, ‘제1회 청소년 생명존중·자살예방 공모전’(나봄문화·서울시초중등교육정책연구회 주최. 이하 공모전)에서 동아리 활동 부문 고등부 최우수상을 받았다. 청소년 자살 문제가 화두에 오르자 정부는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실효성은 없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지난 3월13일,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자 사회부총리가 “학생들 사이 에스엔에스(SNS)로 자살 관련 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이 포착될 시 부모에게 알리는 서비스를 실시하겠다”고 밝힌 것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인권 침해 소지도 있을뿐더러 ‘겉핥기 대책’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실제 청소년들이 생각하는 ‘자살 예방법’은 뭘까. 사회복지법인 한국생명의전화 자문위원들로 구성된 ㈔나봄문화(이사장 박민용)는 요즘 청소년들이 자살 전,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관련 자살방지앱 ‘비개인’(Begain: begin+again) 개발을 준비했다. 그러던 중 실제 청소년이 좋아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서 청소년의 생각을 들어보는 공모전을 열었다. 앱 개발 제안 부문에서 대상을 받은 서울여상 이주현(2년)양, 장민지(1년)양은 우리말로 ‘서로 사랑하는 우리 사이’를 뜻하는 ‘예그리나’라는 이름의 앱 개발을 제안했다. 온라인 문화 발달로 청소년이 고민을 상담할 수 있는 창구는 많아졌지만 악성댓글 등으로 상처받는 일도 많다. 예그리나는 고민 상담이 가능한 공간이지만 댓글 권한은 제한되어 있다. 위클래스 전문 상담교사나 또래상담동아리 학생들 등만 게시물에 접근해 댓글을 달 수 있다. 댓글 권한이 없더라도 고민을 올린 누군가의 글에 공감·위로한다는 뜻으로 공감 버튼 등은 누를 수 있다. 프로필에도 글쓴이의 실명 등이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공감 나무 육성 프로필 게임’이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해 매일 자신의 좋았던 일, 힘들었던 일 등을 일기처럼 기록할 수 있게 했다. 이주현양은 “이 내용들은 ‘나이테’라는 장소에서 다 읽어볼 수 있는데 스스로 써왔던 것을 나중에 다시 보면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신감, 자아존중감 등을 회복할 수 있다. 누군가 ‘공감’ 등을 눌러줄 때마다 공감지수, 애정도 등이 올라가는데 그 지수가 다 차면 나무가 성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상담은 음성녹음으로 가능하다. 장민지양은 “기존 온라인 상담이 글을 쓰는 방식으로만 진행되는데 이 방식으로는 학생들이 자기 심정을 충분히 털어놓기 힘들다. 그래서 감정을 좀더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음성녹음 방식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동아리 활동 부문 우수상을 받은 신월중 ‘어동만’(어느날 우리가 동아리를 만들었습니다)팀은 학교에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샌드백 등을 설치하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이윤서(1년)양은 “총 5차시로 이루어진 프로그램인데 1차시 교회 영아부 등을 만나면서 삶의 소중함 체험하기, 2차시 책 읽고 독후감상문 쓰기, 3차시 학교에 샌드백 설치해 스트레스 날려보기, 4차시 유언장 쓰기 및 관 체험 하기, 5차시 그동안 해온 내용들을 놓고 자살예방 등 홍보하기 등으로 활동이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또래 유저 및 전문가 등과 채팅하며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앱 ‘가온누리’(서울여상) 등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왔다. 나봄문화 최혜정 사무총장은 “그동안의 자살 방지 대책들은 모두 어른들 눈높이에서 나온 것들인데 청소년들에게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내놓을 기회를 주자 정말 반짝이는 생각들이 쏟아져 나와 놀랐다”고 했다. 공모전을 주최한 나봄문화 관련 한국생명의전화에서 9월18일 저녁 6시30분에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계절광장에서 ‘해질녘서 동틀 때까지 생명사랑 밤길걷기’ 행사도 연다. 최 사무총장은 “청소년들은 물론이고 학부모, 일반인 등이 여러모로 힘든 상황에 있는 청소년들을 위해 손잡고 걷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 등에도 많이 동참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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