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활동 등을 활성화하고 있는 서울 삼정중 학생들은 학교를 “전교 일등도 행복하지만 전교 꼴등도 행복한 학교”로 부른다. 서울 삼정중 제공
‘시민적 인성교육’ 실천사례
서울 강서구 방화동 끝자락에 위치한 서울 삼정중학교(교장 장광섭)에는 경기도 고양시로 이사 간 뒤에도 전학을 가지 않고 이 학교에 계속 다니는 학생이 있다. 아버지 직장이 의정부지만 이사하지 않고 아버지가 가족들과 떨어져 직장 근처에 자취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학생들은 정말 부득이한 사정이 아니면 전학을 안 가려 한다. 학생들은 “우리 학교는 전교 1등도 행복하지만 꼴찌도 행복하다”고 입을 모은다. “학교 오는 게 즐겁고요. 하나의 공동체로서 모두 정말 친하게 지냅니다. 학교에 민주적인 문화가 형성돼 있기 때문에 학교를 쉽게 떠나질 못하죠.” 학생회 부회장 3학년 정시영군의 설명이다. 이는 학생들만의 생각은 아니다. 오흥란 생활자치부장은 주변 고교 선생님들의 평을 예로 들었다. “‘삼정중 졸업생들은 공동체 안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되든, 안 되든 적극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할 뿐 아니라 남을 배려하고 서로 소통하려는 태도를 보인다’는 얘기가 많이 들립니다. 저와 복도에서 마주칠 때도 유치원 아이들처럼 큰 소리로 기분 좋게 인사를 해줍니다. 다른 중학교 선생님들은 이른바 ‘중이병’을 앓는 아이들 때문에 속앓이를 많이 한다는데 우리 학교 교사들은 ‘우리가 이렇게 지낼 수 있으니 오히려 아이들에게 월급을 반납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합니다.(웃음)”
불과 5년 전만 해도 학교 분위기는 침체된 편이었다. 형편이 좋지 못한 학생들이 많아 생활지도 하기도 어려웠다. 엎드려 자는 학생도 많았고, 학교폭력도 빈번했다. 그러다 혁신학교로 지정되면서 학교가 천천히 배려, 소통, 민주, 협력 등 ‘인성’의 덕목을 갖춘 곳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민주적인 공동체 문화가 단단히 자리를 잡게 된 데는 크게 세 가지 조건이 있었다. 학교를 움직이게 한 동력 가운데 하나는 ‘배움의 공동체’(일본 도쿄대학 사토 마나부 교수가 창시. 모둠별 협력수업을 하고 교사들이 서로 수업을 공개해 교수법 연구)였다. 학생들은 수업 때 네 명이 한 모둠을 이뤄 디귿자로 마주보고 앉은 상태에서 수업을 듣는다. 정확히 말하면 수업에 ‘참여’한다. 수업은 교사가 일방적으로 학생들에게 해주는 게 아니라 특정 주제를 놓고 모둠원끼리 함께 고민해서 문제를 푸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덕분에 수업에서 소외되거나 엎드려 자는 등 수업 참여율을 떨어뜨렸던 학생이 많이 줄었다. 공부를 잘하는 편에 속하는 친구들은 그렇지 않은 모둠원들을 챙겨 함께 발맞춰 나가려고 애쓰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전교생 중 170명이 자치활동에 참여한다는 점도 변화를 끌어낸 동력이다.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상위권 학생들 위주로 학생회 등 자치 활동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이 학교에는 그런 ‘문턱’이 없다. 자치 활동을 이끌어나가는 주체 또한 학교나 교사가 아닌 학생들이다. 학생회 임원들은 자신들의 공약을 관철하기 위해 학교장과 교사들에게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기도 하고, 각종 생활규정 문제들을 학급회의, 설문조사 등을 통해 풀어가기도 한다. 이런 활동에 필요한 모든 기획, 예산짜기, 실행 등이 학생의 몫이다. 지난해까지 이 학교에서 학생회 활동을 지도했던 김승규 교사(마곡중)는 “학생자치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학생들에게 주인의식이 생기고 학교폭력도 사라졌다. 학생 중심의 교육과정과 학교 활동 운영 등 학생이 존중을 받는 문화를 자연스럽게 만들어주니 아이들 자존감이 높아지고, 인성도 저절로 함양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자치회 활동을 하는 데 ‘공부’가 기준이 되지 않기 때문에 평소 성적은 조금 떨어져도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거나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이 있는 친구들이 체육대회, 축제 등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학교가 ‘작은 규모’라는 점도 특장점이었다. 이 학교는 전교생 수 약 400명. 덕분에 1, 2, 3학년 학생들은 서로의 얼굴을 다 알고 지낸다. 선배들이 후배들을 끌어주고 소통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삼정중 사례 등은 12일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빌딩 23층 컨벤션홀에서 열리는 ‘인성상실의 시대, 교육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모색하다’라는 주제의 심포지엄(교보교육재단 주최)에서 안승문 서울특별시 교육자문관의 ‘인성교육을 넘어서 자율과 자치의 민주주의 학교로’ 주제 발표에서도 소개될 예정이다. 심포지엄에는 밝맑도서관 홍순명 이사장이 기조강연을, 심성보 부산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정창우 서울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등이 주제 발표 및 토론을 할 예정이다.
김청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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