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서울 성심여고 권기하 교사가 학생들과 함께 본인이 만든 <교육방송>(EBS) 수능 영어 교재 분석·요약집을 보며 공부하고 있다.
‘EBS 영어 교재 요약집’ 만든 권기하 교사
‘쉬운 수능’ 덕에 ‘영포자’ 줄었지만
수능 교재 분량 많아 부담 여전
EBS 강사 등으로 활동하던 현직교사
수능 영어 교재 4권 지문 분석·정리해
주제문 뽑고 어려운 구문·어휘 제시
복습 및 마무리용으로 활용 가능
“인터넷서 자료 공유, 의견 나누고파”
‘쉬운 수능’ 덕에 ‘영포자’ 줄었지만
수능 교재 분량 많아 부담 여전
EBS 강사 등으로 활동하던 현직교사
수능 영어 교재 4권 지문 분석·정리해
주제문 뽑고 어려운 구문·어휘 제시
복습 및 마무리용으로 활용 가능
“인터넷서 자료 공유, 의견 나누고파”
‘분석’, ‘절대’, ‘적중’, ‘컨닝페이퍼’, ‘역전’, ‘훈련’.
이 단어들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바로 <교육방송>(EBS) 수능 영어 관련 참고서 이름 중 일부다. 지난 6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광화문 교보문고. ‘중·고 학습서’ 코너에 가보니 이비에스 수능교재와 관련 참고서가 눈에 띈다. 진열대를 제외하고 이비에스 수능교재와 연계교재는 책장 하나, 학생들이 보조교재로 쓰는 문제집은 책장 네 개에 가득 꽂혀 있었다.
‘쉬운 수능’으로 바뀌면서 ‘수포자’ ‘영포자’(수학이나 영어 과목을 포기한 사람을 뜻하는 말)는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만점이 아니면 무조건 1등급이 안 된다는 ‘과장된 공포’가 학생들을 여전히 사교육시장과 선행학습으로 몰아넣는다. 영어의 경우 이비에스 교재 지문의 해석판을 통째로 외워서 시험 본다는 말도 나돌지만 1000여개나 되는 지문을 모두 기억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현직 영어교사가 수험생들을 위한 교재를 내놨다. ‘인터넷 수능’ ‘수능I·II’, ‘수능 완성’ 등 이비에스 수능 영어 교재 네 권에 나온 모든 지문을 나름대로 정리한 것이다. 한마디로 ‘수능교재 분석·요약집’(이하 요약집)이라 할 수 있다.
서울 성심여고에 근무하는 권기하 교사는 이비에스 수능 강사 5년 경력에 지금까지 출간한 책만 해도 13권이다. 특히 6, 7년 전부터 만들어온 요약집은 학생들이 복습이나 마무리용으로 선호하는 자료였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출판사에서 정식 출간하지 않고 자료의 원본파일을 ‘무료로’ 공개하기로 했다. 권 교사는 “반 학생들은 ‘공개하지 마세요!’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혜택이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선뜻 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수능교재만 해도 분량이 많아서 아이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다 보기가 어렵다. 전체 지문의 핵심만 간추려서 반복학습이 편한 형태로 만들었다. 본인이 만든 자료를 절대 공유하지 않는 일부 배타적인 교사들도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내가 먼저 ‘오픈소스’로 내놓은 뒤 피드백을 주고받으면 서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요약집은 이비에스 수능교재 지문 순서대로 돼 있다. 권 교사는 지문에 나온 주제문을 그대로 가져오거나 핵심 내용이 될 만한 문장을 뽑아내 새롭게 정리했다. 학생들이 전체 지문의 목적이나 요지를 바로 파악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문장을 끊어 읽는 것을 기준으로 지문에서 어려운 부분을 구문이나 몇 개의 단어들로 이루어진 덩어리로 제시해 해석도 덧붙였다. 그 옆에는 지문에 나온 핵심 어휘를 정리했다.
권 교사는 이비에스 교재가 나오면 바로 작업을 시작해 편집, 교정·교열까지 혼자 다 했다. 특히 요약집에 나온 주제문 중에는 수능 교재에 나온 문장을 그냥 긁어온 게 아니라 두세 문장을 놓고 직접 영작한 것도 있다. 한 페이지를 작업하는 데 대략 한 시간 정도 들었다. 또 이미 나온 교재를 사용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서 내용을 반영했다.
매번 교재를 직접 만드는 강사 입장에서 봐도 권 교사의 작업은 결코 쉽지 않다. 노량진의 유명 재수학원 영어 강사 이아무개씨는 “한 시간짜리 강의 교재를 만드는 데 다섯 시간 이상 걸린다”고 말했다. 이 강사는 제본하는 서점에 들렀다 권 교사의 교재를 접했다. 성심여고 학생들이 사용하기 위해 맡겨둔 요약집 제본을 우연히 본 것이다.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는데 흔쾌히 파일을 무료로 제공해줘서 많은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수업에 활용하고 있다.” 이 강사는 “이비에스 교재는 매년 바뀌고 분량 때문에 품이 너무 많이 들어서 보조교재를 만들기 힘들다”며 “이렇게 방대한 양을 지문 하나 안 빼먹고 정리한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권 교사가 요약집을 무료 공개하기로 한 것은 사실 무분별한 학원 수업과 출판사의 ‘오염된 교재시장’도 한몫을 했다. “특히 1, 2학년의 경우 학교나 학원에서 여전히 문법을 필수강의로 여기고 있다. 출판사 관계자들을 만나면 학원 측에서 문법책을 시리즈로 만들고, 워크북에 문법 문제도 많이 실어달라고 요청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책을 두껍게 만들어서 그만큼 학생들의 등록 기간을 늘리려는 ‘꼼수’다. 책에 어려운 문법까지 다 집어넣어서 학생들을 학원에 의지하게 하는 것이다.”
권 교사는 “문법이 중요하긴 하지만 사실 독해에 필요한 문법은 지금 학생들이 공부하는 양의 10% 정도”라며 “문장을 끊어 읽는 훈련을 하며 읽기와 쓰기 위주로, 이론보다는 실용적인 문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1, 2학년 때 기본 어휘와 문장구조를 충분히 익혀 기본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본기가 안 된 채 수능교재만 달달 외우고 늘어지면 ‘나쁜 결과’가 나오는 게 뻔하다는 것.
성심여고 3학년 남정우양은 “요약집으로 중요 문장을 익히면서 수능 교재 지문의 전체 내용을 대충 파악할 수 있다”며 “평소 예·복습할 때 쓰고 수능 교재를 응용한 학교 정기고사나 모의고사 때 이것만 간단히 훑어본다”고 말했다. 사실 이비에스 수능 영어 교재에 나오는 지문은 1000여개 정도로 방대하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하루에 몇 개의 지문을 소화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교재 전체를 한번 다 보기도 힘들 정도다.
인천 청라고 김아름 교사는 “단어를 하나하나 따로 외우면 문장에서 어떤 맥락으로 쓰이는지 알기 힘들다”며 “요약집은 연어(긴밀한 결합 관계를 가지는 단어들 사이의 관계 혹은 그 구성)로 정리해줘서 한 단어가 어떤 상황이나 의미에서 다른 단어랑 어떻게 같이 쓰이는지 알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요약집 원본파일은 권 교사가 만든 인터넷 카페(cafe.naver.com/kwonkiha)에 가입하면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다. 권 교사는 모의고사 관련 자료나 예전에 출간했다 지금은 절판된 출판물 등 자료를 꾸준히 올릴 생각이다. 그는 “카페를 교사나 학생 누구나 와서 자료를 보고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자료 공유의 장’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학원이나 학교, 집에서 본인의 용도와 시기에 맞게 편집해 사용해도 된다. 대신 자료를 사용한 뒤 피드백을 주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이야기해줬으면 한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자료를 만들어 다 함께 유용하게 사용하면 좋지 않겠나.(웃음)”
글·사진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권 교사가 만든 이비에스 수능 영어 교재 분석·요약집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받은 설문조사 결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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