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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혁신학교 5년만에 816곳…내실 있는 곳은 어디?

등록 2015-07-06 20:52수정 2015-09-01 00:00

지난해 10월16일 오후 서울 강서구 방화동 혁신학교인 삼정중학교에서 아이들이 모둠별 토론 수업을 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지난해 10월16일 오후 서울 강서구 방화동 혁신학교인 삼정중학교에서 아이들이 모둠별 토론 수업을 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함께하는 교육] 혁신학교 운영, 잘되고 있나
“‘도대체 혁신학교는 뭐 하자는 곳이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물어봅니다. 혁신학교는 한마디로 ‘학교의 본질’을 회복하는 곳입니다.”

김승환 전북교육감의 말이다.

그는 “학교의 본질은 교사는 가르치는 일에 보람을, 아이들은 배우는 즐거움을, 학부모는 아이의 성장을 보며 행복함을 느끼는 공간을 만드는 데 있다”고 했다. 그게 실현되기 위해 어떤 조건이 필요하며, 현재 혁신학교는 이런 조건 아래 운영되고 있을까.

지난달 30일 직선교육감 2기가 1주년을 맞이했다. 이를 계기로 최근 그동안의 진보교육 실천의 성과를 평가하는 행사가 열렸다. 13개 시·도교육청 산하 교육정책연구소가 모여 꾸린 ‘교육정책연구소네트워크’의 공동학술대회 ‘한국 교육의 길을 열다’와 도종환, 정진후 국회의원과 교육운동단체들이 주최한 ‘진보교육감 취임 1주년 평가 토론회’다. 이 자리에서는 혁신학교, 입시제도 등 진보교육감시대 교육현장의 변화와 교육계 이슈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이 가운데 혁신학교를 중심으로 현재 논의되는 성과와 한계를 짚어보고 현장에서 이뤄지는 노력과 요구사항을 알아봤다.

2기 직선교육감 1주년 맞아
‘혁신학교’ 성과·한계 살펴
현재 숫자 800여곳으로 늘며
외적성장 했지만 ‘흉내학교’ 듣는 곳도
활동 위주 수업과 민주적 소통문화 등
내실 있게 운영한 학교 사례
일반 학교에 역할모델 해야

숫자만 늘리다간 질적 성장 가로막아

혁신학교는 2009년 1대 민선교육감선거에서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의 핵심공약으로 등장했다. 초기 혁신학교는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이 아닌 학생들의 다양한 역량을 키워주고, 협력적 학교 운영으로 ‘모두를 위한 질 높은 학교교육’을 하자는 뜻에서 등장했다. 이후 교육현장에서 이슈가 되면서 지방자치선거 때 혁신학교 신설 및 확대를 공약으로 내세운 후보들이 교육감에 대거 당선됐다. 올해 3월 기준으로 현재 전국에 816개의 혁신학교가 운영 중이다. 명칭은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서울·경기·전북은 ‘혁신학교’, 전남은 ‘무지개학교’, 광주는 ‘빛고을 혁신학교’, 강원은 ‘행복더하기 학교’ 등이다.

1기 진보교육감이 혁신학교를 추진했던 서울·경기의 경우 혁신학교 수가 경기도는 현재 350곳이고, 서울의 경우 추가 지정을 통해 올해 9월1일 기준으로 97곳까지 늘어날 계획이다. 혁신학교를 확대하면서 일부에서는 학교 간 질적 편차가 커지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혁신학교가 얼마나 제대로 운영되는가에 따라 ‘A급 혁신학교’ ‘흉내학교’ ‘기만학교’로 등급이 나뉘어 이야기될 정도다.

혁신학교에 근무하는 한 교사는 “예전보다 덜하지만 학교 관리자가 여전히 수직적 권위를 내세워 교사들과 갈등을 빚거나 전체 교원들이 혁신학교의 교육적 철학에 동의하지 않아 ‘삐걱’거리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지원받은 예산으로 시설이나 일회성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쓰고 교내 민주적 문화를 만들거나 수업을 바꾸려는 노력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곳도 일부 있는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혁신학교를 ‘신선한 바람’에서 ‘거품’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한 지역교육청 관계자는 “지역마다 다르지만 우리 지역의 경우 굳이 나누자면 A급 혁신학교는 20% 정도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의 교사도 “혁신학교의 철학과 취지대로 운영되는 곳은 절반 정도”라고 했다. 그만큼 무조건 수를 늘리다 보니 ‘질 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지역이나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학술대회나 토론회에서 나온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이제 막 혁신학교를 도입하는 지역의 경우 일단 어느 정도 학교를 늘려서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하지만 혁신학교 내실화를 꾀하지 않은 채 양적 확대만 한다면, 결국 일반 학교와 다를 바가 없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성열관 경희대 교육학과 교수는 “지금까지는 혁신학교가 소수였기 때문에 이런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제는 혁신학교 자체를 확대하는 것보다 혁신학교의 실천양식이나 성과를 확대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혁신학교는 전체 학교 비율의 5% 정도만 있는 게 바람직하다. 그 학교가 역할모델을 하고 다른 학교는 그 방식을 닮으면 된다. 지금까지 혁신학교 모델을 만드는 데 총력을 다했다면 지금은 다른 학교에 상상력과 변화를 자극해주도록 혁신학교의 구실을 재정의하는 게 필요하다.”

사실 혁신학교가 늘어난 데는 교육감들의 공약 남발도 한몫을 했다. 물론 학부모들의 요구에 따른 측면도 있지만 무조건 수를 늘리다 보니 질적 성장에는 소홀히 한 면도 없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혁신학교 관계자들은 “혁신학교를 일시적인 바람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철학이나 교육운동으로 정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손민아 교사(경기도 의정부여중 소속)는 “결국 혁신학교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려면 교사의 내적 동기와 그걸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민주적 학교 시스템이 같이 가야 한다”고 말했다. “교사의 헌신만 강조하거나 구조나 조직문화는 그대로인 채 지원받은 예산으로 프로그램만 운영해서는 일회성 사업에 그치고 만다. 학교 안에서 수평적 의사결정 과정과 자율성을 존중하며 수업 혁신을 만들어가는 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사람이 계속 바뀌어도 흔들림 없이 지속가능한 혁신학교 운영을 할 수 있다.”

지난달 26일 서울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교육정책연구소네트워크 학술대회 ‘한국 교육의 길을 열다’가 열렸다. 이날 참가자들은 혁신학교와 입시제도 등 진보교육의 성과와 과제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최화진 기자
지난달 26일 서울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교육정책연구소네트워크 학술대회 ‘한국 교육의 길을 열다’가 열렸다. 이날 참가자들은 혁신학교와 입시제도 등 진보교육의 성과와 과제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최화진 기자

혁신학교 성과, 어떻게 드러나고 있나

혁신학교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은 보통 ‘수업’과 ‘조직’으로 나뉜다. 즉 ‘교사학습공동체와 일상적 연구활동을 통한 수업혁신’과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의 공동체 문화’가 제대로 이뤄졌느냐를 뜻한다.

손 교사는 혁신학교에서 5년째 근무 중이다. 교직경력 12년차인 손 교사는 혁신학교에 와서 이전의 일반학교와 많은 차이를 느꼈다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학교의 변화를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교사들은 있다. 이전에는 몇몇 교사 중심으로 이뤄지던 것이 혁신학교에서는 학교 단위로 함께 움직인다.”

이 학교의 경우, 모든 구성원의 논의를 거쳐 ‘수업혁신’을 1차 과제로 삼았다. 이에 따라 행정 위주로 돌아가던 조직 자체를 수업과 교육과정 위주로 바꿨다. 교무계나 학생계처럼 보직업무 부서별로 배치하던 기존의 교무실 자리를 학년 중심으로 앉게 했다. 행정업무도 담임교사는 되도록 분장하지 않고 업무전담팀이 주로 맡아 처리했다.

학년부장과 동학년 교사들이 모이면서 자연스레 학습공동체를 통한 수업 개선 논의가 이뤄졌다. 수업공개는 한달 한번꼴로 하고 수업연구와 교육과정 재구성도 수시로 했다. 손 교사는 “동료들과 끊임없이 수업 내용과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혼자 외롭지 않고 배우는 것도 많다”며 “배움 중심의 수업(교사-학생, 학생-학생 간 소통을 바탕으로 과제를 함께 해결하는 토론, 모둠활동 위주 수업)을 실천하며 아이들의 생각이나 그들 간 협력을 이끌어내는 활동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체험학습이나 교내 행사 등 각 학년협의회에서 결정한 내용은 다른 학년과 상의한 뒤 일정에 지장이 없으면 바로 시행한다. 일반학교에서는 작은 교내 행사를 하려 해도 무시되거나 절차가 까다롭지만 혁신학교는 대부분 교사들이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협의로 의사를 결정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산하 참교육연구소는 지난달 30일 2기 직선교육감 취임 1년을 맞이해 ‘학교현장과 교육정책의 변화에 대한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3300여명의 전국 초·중·고 교원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혁신학교 지정 및 운영에 대한 부분을 보면 62.5%가 “잘됐다”고 평가했다. 특히 광주·세종·경남 지역에서 80%가 넘는 이들이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혁신학교 확대 및 내실화가 진보교육감의 공약이었던 만큼 진보 지역(69.7%)에서 진보외 지역(21.4%)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

혁신학교에 근무 중인 교사들도 “교사 스스로 바뀌니 수업이 바뀌고 자연스레 아이들도 변했다”며 “활동이나 토론 위주로 진행하니 수업에 좀더 흥미를 갖고 참여한다.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학교 문화에 익숙해져서 교사와의 관계는 물론 또래 간 관계 맺기도 더 활발하고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혁신학교의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비판의 목소리도 여전하다. 특히 혁신학교에 부정적인 이들은 상위 학교 입학성적이나 입시 등 결과 수치에만 초점을 맞춰 성과가 미미하다고 지적한다. 실제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초등학교나 중학교는 혁신학교를 보내다 고등학교는 특목·자사고를 보내는 경우가 있다. 입시가 중요한 상황인데 상대적으로 활동 중심으로 이루어진 혁신학교에 가면 학업에 소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유경훈 광주교육정책연구소 연구원은 “성취도에만 한정시켜 혁신학교의 교육적 성과를 비판하는 것은 문제”라며 “혁신학교 취지 자체가 지식 중심의 학업성취도 향상이 아니라 학생들의 주체성과 다양한 핵심역량을 기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 연구원이 공동연구자로 참여한 ‘혁신학교와 일반학교 중학생의 미래핵심역량 비교분석 연구’를 보면 ‘문제해결력’, ‘자기주도적 학습력’, ‘소통-협력 능력’ 등 청소년들이 갖추어야 할 미래핵심역량으로 꼽는 항목 대부분에서 혁신학교 학생들이 일반학교 학생보다 유의미하게 높은 수치를 보였다.

그는 “지역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광주지역의 경우 수업혁신에 대한 교사의 반발은 크지 않다. 오히려 아이들이 달라지려면 수업을 바꿔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부분의 교사가 공감한다”며 “교사 주도의 자율적 수업혁신이 중요하다 생각하고 교육청은 이를 방법적으로 지원하는 걸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수업나눔운동·전보유예 등 개선점 찾아가

한발 더 나아간 혁신학교 정책

현재 각 시·도별로 혁신학교의 성과를 함께 나누고 운영의 한계점을 보완하기 위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교사가 주체가 되어 자발적으로 수업 개선에 힘쓰고 시스템적으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내용의 정책이다.

광주광역시교육청은 올해부터 ‘300교원수업나눔운동’을 시행 중이다. 기존의 형식적 장학과 의무적인 계획서나 결과물 제출을 없애고 교사들이 자율적으로 모임을 꾸려 운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10~20명 단위의 75개 동아리가 운영 중이다. 이런 성격의 동아리에는 혁신학교 교사들이 많이 참여하지만 이 동아리에는 일반학교 교사들도 많이 참여하고 있다.

광주광역시 남구 진제초에 근무하는 최선희 교사는 인근 학교 교사 14명과 동아리를 꾸렸다. 인터넷에 카페를 만들어서 매주 자기성장일기와 수업관찰일지를 올리고 정기적으로 수업공개를 한다. “기존 교원연구회나 동아리는 계획서를 쓰고 돈을 받기 때문에 보고서를 내야 하고 실적물 전시회까지 열었다. 처음 목표했던 수업연구보다 보여주기식으로 결과물을 만드느라 부담이 됐는데 지금은 수업 안에 활동 자체가 흡수가 되니 이중 일이 안 되어 좋다.”

혁신학교가 안착하는 데 걸림돌로 꼽히는 것 중 하나가 순환근무제다. 교사들은 4~5년 단위로 학교를 옮기다 보니 결과물을 만들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즈음 다른 학교로 가게 된다. 물론 “학교 문화를 처음부터 탄탄히 다져놓으면 교사 몇몇이 빠진다고 타격을 입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지만 학교 시스템 안정화 뒤 교육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교사 근무 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북의 경우 이런 구조적 한계를 뛰어넘고 혁신학교 운영 성과를 끌어올리기 위해 인사정책을 바꾸는 노력을 하고 있다. 현재 전북 지역 순환근무 기간이 초등은 5년, 중등 6년 단위다. 이 기간을 학교 필요에 따라 2년간 유예할 수 있게 했다. 그뿐만 아니라 올해부터 ‘혁신더하기학교’를 지정해 최장 10년까지 운영할 수 있도록 했으며 소속 교원도 10년까지 근무할 수 있도록 추진 중이다. 정태식 전북교육정책연구소 연구사는 “교장·교감을 발령 낼 때도 순서가 됐다고 기계적으로 내는 게 아니라 혁신학교의 취지에 공감하고 개혁 의지가 있는 분을 사전에 검토한 뒤 보내려 한다”고 말했다.

최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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