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송내고 보건동아리 나이팅게일즈 학생들이 심폐소생술 실습을 하고 있다. 송내고 제공
“메르스도 일종의 바이러스죠. 감기·폐렴으로 죽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메르스도 마찬가지예요. 면역력이 높아질 수 있도록 잘 먹고, 감염을 예방하는 손씻기와 소독을 열심히 하면 성장기 청소년들이라도 큰 걱정 없을 겁니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에 대한 의료진의 말이 아니다. 경기 부천 송내고 3학년 고민아양의 말이다. 고양은 송내고의 학교건강지킴이를 자처하는 보건동아리 ‘나이팅게일즈’에서 3년째 활동하는 ‘왕언니’로 통한다. 임훈영 보건교사가 이끄는 나이팅게일즈는 체육대회 때 운동장 한쪽에 의료부스를 차려 임 교사의 입회 아래 다친 친구들의 상처를 치료하고, 흡연과 음주예방, 헌혈 캠페인을 진행한다. 축제 때 ‘미니 송내검진’ 간판을 달고 학교 구성원들의 피부·척추 건강을 살피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메르스로 사회 전반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요즘은 직접 친구들의 손에 손소독제를 뿌려준다.
“체육대회 때 학교 친구들이 저희에게 치료해줘서 고맙다고 하거나, 아픈 데가 많이 나아졌다고 할 때 정말 보람차죠. 벌써 간호사가 된 것 같은 기분도 들고, 뿌듯해서 학교 오는 것도 좋아요.” 2학년 장주영양의 말이다.
나이팅게일즈의 활동은 학교에서도 유명하다. 송일영 교장은 “체육대회 때 참가해야 하는 경기가 끝나자마자 부스로 뛰어가 가운을 입고 친구들 상처를 소독해주는 아이들을 보니 기특하고 고마웠죠”라며 “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을 저한테도 적극 표현합니다” 하고 웃었다.
동아리 학생들은 대한적십자사를 방문해 응급처치교육을 받기도 하고, 가까운 순천향대병원을 방문해 심폐소생술 교육이수증도 딴다. 덕분에 교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심폐소생술 교육에 조교로 참가하기도 한다. 심폐소생술을 할 때 꼭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학생들은 앞다투어 답했다.
“심폐소생술을 할 때는 진짜 갈비뼈가 부러질 걱정 말고 힘차게 해야 해요. 그래야 심장에 자극을 줄 수 있거든요. 뼈가 부러질까 두려워 살살 하면 의미가 없어요. 그러다가 갈비뼈에 손상을 주더라도 그건 처벌받지 않아요. 규정에 있거든요.”
메르스로 건강 중요성 커진 때
교내 ‘건강전도사’ 자처한 학생들
체육대회 등 학교 행사 때
의료진으로 변신해 응급처치도
이런 활동 뒤엔 보건교사들 노력 있어
실생활 맞춘 건강정보 제공하고
다양한 의료쟁점 살펴보는 식의
특별한 수업 등 펼쳐져
가운을 입은 나이팅게일즈 학생들. 송내고 제공
17명이 활동하고 있는 나이팅게일즈는 의료인을 꿈꾸는 학생들이 1순위로 꼽는 희망동아리다. 학생들 눈높이에서 계속 진로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아리원 가운데 유일한 남학생인 1학년 류건후군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남자간호사를 꿈꿨어요. 입학했을 때부터 나이팅게일즈는 보건 관련 동아리로 학교에서 유명했어요. 당연히 들어가야 하는 동아리인 것처럼 느껴져서 지원했죠”라며 웃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단순히 의료인 구실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의료계 관련 보험제도, 의료 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쟁점 등을 접하며 의료 관련 직업이 갖는 사회적 의미를 배운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송내고의 방과후 보건수업은 나이팅게일즈 학생들의 요청으로 개설됐다. 나이팅게일즈 활동 일선에서 물러난 3학년 학생들은 물론, 보건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도 신청할 수 있다.
이렇게 학생들의 보건 활동이 활발한 데는 보건교사들의 공력이 크다. 인근 중흥고의 김지학 보건교사가 진행하는 방과후 수업에서 학생들은 의료보험이나 제도를 둘러싼 쟁점을 놓고 토론하며 관련 공부를 한다. 수업을 수강하는 고양은 “대마보다 담배가 더 나쁜데, 왜 마약류로 지정되지 않는지에 대한 토론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세수 관련 문제도 있고, 다양한 정책들이 얽혀 있다는 걸 배울 기회였죠”라고 말했다.
나이팅게일즈 학생들이 붕대를 감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송내고 제공
김 교사는 “의료인을 꿈꾸는 아이들이 한국의 의료보험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나, 의료쟁점에도 다양한 사회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는 것을 알면 자신의 직업이 갖는 의미를 또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요”라며, “제자들 가운데에는 보건 관련 토론 수업 덕에 간호대 면접 때 도움을 받았고, 합격했다는 친구들도 많아요”라고 덧붙였다.
보건실에만 있던 보건교사들이 수업을 시작한 것이 2009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보건위생에 대한 수업이 실시된 지 몇 년 되지 않았지만 보건교사들의 수업은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은 편이다. 학생들은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아도 일상적으로 보건수업을 들을 수 있다. 수업에 할당된 시간은 적지만, 학생들은 성폭력 예방과 대처·흡연과 음주·응급처치 등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받고, 성장주기에 맞춘 상담을 받는다.
서울 창천중 박종훈 보건교사는 다양한 활동으로 이루어진 보건수업을 해서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학생들이 직접 자신의 아이디어를 반영해 하는 ‘흡연율 낮추기 위한 담배갑 디자인’ 활동이나 ‘마인드맵으로 하는 성교육’ 등 학생들이 직접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활동 덕에 보건수업을 듣는 창천중 2학년 학생들은 일주일에 한번 있는 보건수업을 기다린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가정시간에 배웠던 성교육이나 보건 관련 수업은 이론중심이라 잘 와닿지 않았는데, 보건수업에서는 우리의 몸 변화나 성폭력 대처법, 응급처치법처럼 직접 활용할 수 있는 정보를 배워서 좋아요. 사춘기 청소년들의 특징에 대해 잘 아셔서 그런지 선생님께서 저희를 더 잘 이해해주신다는 느낌도 많이 받아요.” 창천중 2학년 김다은양의 말이다.
정유미 기자
ymi.j@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