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잔디광장에서 봄 축제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이 모든 ‘갑질’에 저항한다는 뜻에서 서로 몸을 부대끼고 있다. 서울대 총학생회
“비정규직으로 서러웠던 나날들,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지난 14일 오후 4시 서울대학교 잔디광장에 수백명의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서울대 봄 축제판 ‘도전! 골든벨’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이름하여 ‘도전! 정규직’. 비정규직 일자리에 신물난 청년 구직자들의 쓰린 속을 달래려 반어적인 이름을 붙인 퀴즈게임이었다.
그 사이 한켠에선 ‘갑질’에 멍든 사회를 풍자하는 게임들이 이어진다. “한 대 강하게 치고 싶은 갑질 처단을 위한” 몸싸움을 버블슈트와 함께 놀이로 승화시킨 ‘갑을과 버블 사이’, 재벌 2·3세를 풍자한 물총 게임 ‘금수저 은수저’ 등이다. 축제를 기획한 김나영(23)씨는 “축제 때마다 학생들의 공감을 살 수 있는 화두를 던지기 위해 고심한다. 2015년의 대학생에게 가장 피부에 와닿는 문제가 갑질, 청년 착취의 문제라고 생각해 축제의 표어를 ‘일해라 절해라’(이래라 저래라의 중의)로 잡고 이에 어울리는 행사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14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 새천년관 앞에서 영화과 축제 주점에 방문한 학생들이 학과 통폐합 반대투쟁을 기록한 영상물을 보고 있다. 건국대 영화과 비상대책위원회 제공
5월 축제철을 맞은 대학 캠퍼스에 청년 비정규직 문제나 학과 구조조정 등 세대의 고민을 담은 다양한 행사들이 등장해 눈길을 끈다. 대학가는 최근 몇 년새 수천만원대 아이돌그룹 공연이나 선정적인 주점 운영과 같은 상업화된 축제 행사로 비판을 받아왔다. 15일 한 대학에선 축제 때 인기 아이돌그룹이 온다는 소식에 1만1천원이었던 입장권 암표가 온라인에서 스무 배가 넘는 값에 거래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몇몇 학교를 중심으로 번지는 ‘반작용’은 ‘구경꾼이 된 학생들에게 축제를 돌려주자’는 움직임을 반영한다.
서강대 총학생회는 시민단체를 초대해 네팔 지진 피해 알리기에 나섰다. 재학생인 한아무개(21)씨는 “연예인들이 등장하는 공연이 가장 큰 관심을 모았지만 국제적인 이슈나 학내 문제들을 알리는 작은 부스에도 많은 학생들이 들러 의견을 나눴다”고 말했다.
학내 문제는 학생들을 ‘참여’로 이끄는 중요한 고리가 된다. 영화과와 영상학과를 통합하는 학과 구조조정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건국대에서는 영화과 학생들이 지난 13~14일 이를 풍자하는 주점 행사를 열었다. ‘일방적으로 학사 개편을 통보받은 영화과 학우들의 심정을 체험’하기 위한 ‘통보세트’, ‘학과 통합이 학과 내실화를 위한 것이라는 학교의 주장과 달리 학생들의 피해가 크다’는 점을 알리기 위한 ‘내실화 세트’ 등 재치 있으면서도 의미심장한 차림판이 눈길을 끌었다. 건국대 영화과 비대위원장 김승주(25)씨는 “축제를 기회 삼아 학교 안팎에 학과 구조개혁 문제를 더 알려야 한다고 봤다. 너무 무겁지 않은 방식으로 알리려 노력했고 기대 이상의 응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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