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 백석초 학생들이 계절학교 때 열린 ‘선거교실’에 참여하고 있다.
오는 5월1일부터 6일까지 많은 학교들이 휴업한다. 노동절인 1일과 공휴일인 2일·3일·5일 사이에 낀 4일을 학교 재량 휴업일로 지정해서 약 일주일 동안 쉬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런 방식으로 학기별로 방학을 두 차례씩, 일년에 총 네 번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데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럴 경우, 초등은 ‘돌봄’이, 중·고등은 ‘학습 공백’ 등이 걱정거리다. 경기도교육청은 2014년 한 학기를 두 개 분기로 나눠 분기별로 방학을 분산해 실시하는 것을 ‘사계절방학’이라 하고, 올해 4월에는 네 번에 걸쳐 ‘2015 사계절방학 시범운영교 권역별 협의회’를 열었다. 협의회에서는 실제 사계절방학을 운영하며 학교 상황에 맞춰 학사 과정을 다양화한 학교들 사례도 나왔다.
봄·가을 상시적으로 여유 주면서
색다른 학사일정 만든 학교들
교육철학 따라 알찬 일년 만들어
대학처럼 ‘계절학교’ 열어놓으면
학부모가 재능기부 강사로 나서고
고교선 학생 기획 소규모 체험여행도
급식 문제, 교사 연수 일정 차질 등
풀어야 할 과제도 남아 있어
방학 때 ‘명예 교사’로 변신하는 엄마
경기 양주 백석초에 두 자녀를 보내고 있는 학부모 최은식씨는 요즘 5월 첫 주 봄방학(5월2~6일)에 벌일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어린이날. 학교 인근 아파트에 사는 최씨는 백석초에 자녀를 보내는 다른 가정의 학부모들과 함께 작은 축제를 열기로 했다. ‘긴 연휴. 멀리 나가 비슷비슷한 체험을 하기보다는 놀이터를 활용해 잘 놀게 해주면 어떨까?’ 지난해 같은 아파트에 사는 세 가정이 이런 아이디어로 놀이터에서 운동회를 열었는데 반응이 좋아 올해는 일곱 가정이 참여한다. 실제로 운동회에 오는 건 이 가정의 아이들만이 아니다. 할머니·할아버지와 사는 아이들,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 등 쓸쓸하게 방학 또는 휴일을 보내야 하는 친구들도 참여한다.
백석초 학생들이 방학 때 학부모 재능기부로 이루어진 독후활동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방학이 많을 경우, 초등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들은 부담스럽다. 백석초는 사계절방학을 하지만 상대적으로 그런 걱정이 없는 편이다. 돌봄·특기적성 프로그램과 더불어 ‘학부모 참여 재능기부’ 등 교육공동체 참여 방학 프로그램이 활발하다. 최씨도 방학 때 재능기부 강사로 활동한다. 학부모 독서동아리인 책사랑회 소속 학부모를 비롯해 많은 학부모들은 방학 때 일종의 명예 교사가 된다. 책사랑회의 경우, 사전에 수요 조사를 해서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 좋은 책을 선정하고, 거기에 맞는 체험활동 등을 준비한다. 학부모 금소미씨는 “예를 들어, ‘떡에 관한 책을 읽고 다 함께 떡 만들어보기’ 등 활동이 더해져서 아이들한테는 놀고 쉬는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학교에서 재능기부를 하는 학부모들은 학교가 마련한 독서 교육 등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역량을 기르고, 이를 다시 자녀와 자녀의 친구들과 나눈다. 배움의 선순환 구조인 셈이다.
이 학교의 학사 일정은 다른 학교들의 일정과 많이 다르다. 3월2일 입학식을 하고, 5월2~6일에 봄방학을, 10월29일~11월1일에 가을방학을 한다는 점에서는 다른 학교와 비슷하다. 하지만 여름방학인 7월23일~8월18일, 겨울방학인 1월8일~2월29일 사이에 다른 학교에는 없는 ‘계절학교’가 각각 약 20일에서 40일 정도 열린다. 대다수 학교들과 비교할 때 겨울방학도 늦게 하는 편이다.
사계절방학·계절학교 등은 이 학교의 상황에 맞는 교육과정을 짜고, 그에 맞춰서 교육활동을 하려다 보니 자연스레 나온 것이다. 김한호 교장은 “2013년 학교에 부임하면서 아이들이 지금으로부터 20년 뒤 성인이 됐을 때 어떤 능력이 필요할지 고민하다가 교사들과 함께 ‘역량기반 교육과정’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했다. 초등 단계에서 쌓아야 할 역량으로 ‘대인관계’, ‘진로탐색’, ‘문화소양’ 등을 뽑고, 학교 모든 교육과정을 이 역량들과 연관지어 재구성했다. 또 학생자치활동을 비롯해 전문 동아리 등도 활성화했다. 관련해 여러 협의를 하다가 2월 첫 주에 개학을 하는 기존의 학사 일정으로는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은 2월에 학교에 나와봤자 공부나 기타 활동에 집중하지 못했고, 교사들은 학년 마무리 업무로 바빴다. 2월을 이렇게 어수선하고 비효율적으로 보낼 바엔 겨울방학을 조금 늦게 시작해 2월 말까지 운영하기로 했다. 하지만 학부모와 토론회 등을 하는 과정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맞벌이 가정이 전체의 약 6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문화시설이 전혀 없는 학교 주변 여건상 방학 동안 돌봄지도 및 학습지도 문제가 과제로 떠올랐다. 그러면서 나온 대안이 바로 ‘계절학교’였다.
계절학교는 교장·교감, 돌봄 담당교사, 교육 공무직원 가운데 희망자 그리고 학부모들이 함께 꾸려간다. 특히 학부모들이 학교 공동체의 중요한 일원으로 활동한다. 학교와 학부모가 유기적으로 소통하고 관계를 유지해 나가면서 학교의 방학은 다음 학기를 대비한 선행학습 등 학기의 연장이 아닌, 학기중에 못했던 다양한 체험을 하는 시간이 되고 있다. 방학 때는 교장 선생님도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한다. 김 교장은 학생들이 자치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지난해 ‘선거교실’이라는 프로그램을 직접 열었다.
이런 방식의 학사 운영은 학습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진단평가 시기를 3월에서 12월로 옮기고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겨울방학 계절학교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하자 학생들의 기본 학력도 상승했다. 교사들도 여유있게 새학기 준비를 할 수 있게 됐다. 김복선 교감은 “장기적으로는 학부모가 계절학교 명예 운영교장이 되어 더 주도적으로 프로그램을 꾸려갈 수 있게 할 예정”이라며 “그래야 지금 교사나 관리자가 떠나더라도 학부모와 학교가 소통하는 문화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보완할 점도 남아 있다. 김 교감은 “방학 중 통학버스 운영비, 급식·간식비 부족 등 예산과 관련한 고민도 있다”고 덧붙였다.
안산 광덕고 학생들이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에 열리는 ‘아무나 문화콘서트’에서 자기 재능을 뽐내고 있다.
교과·직업·진학 등 학년별 맞춤 체험도
대부분의 학교들이 여름방학을 기점으로 1학기, 2학기를 구분해 학사 운영을 하지만 경기 안산 광덕고는 2010년부터 4계학사제를 운영하고 있다. 학기마다 실시하는 중간·기말고사인 교과 성취도평가를 기준으로 1학기를 봄과 여름 학사로, 2학기를 가을과 겨울 학사로 나눠 운영하는 제도다. 각 학사 사이 방학 개념인 봄·여름·가을·겨울 휴가제를 뒀다. 광덕고 역시 학교생활과 학습의 연속성 등을 고려해 1월 중에 한 학년을 마무리하고, 1월12일에서 3월1일까지를 겨울휴가로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은 오는 5월9일부터 17일까지 봄방학에 들어간다. 이 기간 동안 학생들은 친구, 선생님을 만난다. ‘따라체험’이라는 프로그램에 따라 10명 안쪽의 학생과 교사 한 명이 팀을 이루어 2박3일 동안의 체험여행을 떠난다. 학생들 8~10명이 반 구분 없이 자유롭게 모여 자기주도적으로 체험여행을 기획하고, 함께 가고 싶은 교사를 섭외하는 방식이다. 이때 교사는 보호자 구실을 한다. 1학년 때는 교과와 관련된 지역을 여행하는 ‘길따라’, 2학년 때는 직업체험을 하는 ‘꿈따라’, 3학년 때는 가고 싶은 학과와 대학 탐방을 하는 ‘끼따라’ 등의 프로그램으로 나뉜다. 대규모 인원이 이동하는 별도의 수련회나 수학여행, 소풍 등은 가지 않는다.
학교 측은 지식 전달 위주의 교육이 아니라 삶을 위한 교육을 해보자는 뜻에서 이런 방학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김성진 교감은 “학생들이 풍부한 경험을 하면서 자기 꿈을 찾고, 장차 건강하게 사회 진출을 할 수 있게 하자는 뜻에서 준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광덕고 학생들이 친구·교사와 함께 소규모 기획체험 여행인 ‘따라체험’을 나선 모습이다.
권용만 교사는 “소규모로 학생들이 기획한 활동에 참여하면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 유대감 등이 생기고 개별적인 관계 형성도 잘된다”고 했다.
학교에는 축제와 체육대회도 없다. 대신 ‘뜨라네 광장’이라는 학교 야외 공간에서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에 ‘아무나 문화콘서트’를 연다. 또 여름과 겨울 학사마다 클럽활동 발표회를, 학사마다 편성된 두레활동 시간에 학년별로 문화체육활동도 한다. 따로 작정하고 시간을 마련해 쉬거나 활동을 발표할 기회를 주는 게 아니라 일상적으로 놀며 끼를 펼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방학 때는 방과후수업, 자율학습교실, 튜터제 등을 운영해 학생들의 학습 공백에 대한 걱정도 덜고 있다. 튜터제의 경우, 학생 다섯 명 정도가 모여 공부하고 싶은 과목과 배우고 싶은 교사를 정해 개인교습 방식으로 수업을 받는 시스템이다.
3학년 조지연양은 학기 중 봄·가을에 정기적으로 있는 방학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봄·가을방학은 중간고사 끝나고 맞는 일주일에서 10일 정도의 짧은 방학이다. 방학이 없으면 아마 많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단체로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낼 거다. 방학을 해서 평소 여건이 안 되어 못했던 활동이나 진로탐색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일 년 내내 공부만 하는 학생은 없다. 잠깐씩 휴식을 취해가며 공부해야 집중도 잘된다. 사계절방학을 하더라도 학교가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개설해주면 사교육으로 빠지지 않고, 방학 시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광덕고도 발전 과제는 남아 있다. 교사들이 일반적인 방학 일정에 이루어지는 연수에 참여하기 어렵다는 점, 고3의 경우, 대입 일정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가 어렵다는 점 등이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사진 각 학교 제공
정부·지자체서 방학 때 저소득층 급식비 등 지원외국의 방학 프로그램
아이들이 쉬는 날이 많아지면 맞벌이 가정의 한숨도 늘어난다. 아이의 돌봄과 학습 등에 대한 고민을 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외국에서는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가 방학 프로그램을 적극 지원하는 사례가 많은 편이다.
미국의 여름방학 때 학생들은 공교육 테두리 안에서 학업 및 취미활동을 이어간다. 특히, 저소득층 가정의 학생들은 여름방학 동안 발생할 수 있는 학습 손실이 가장 큰 문제인데, 아이들은 자신이 속한 교육구 안에서 무료 또는 감면된 비용으로 온·오프라인을 통해 다양한 학업 관련 수업을 받는다. 흥미로운 것은 방학 중에도 급식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여름방학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기관에 재정 지원을 하면서 학생이 어떤 기관의 어떤 프로그램을 수강하건 간에 저소득층 자녀일 경우 무료 급식지원을 해준다.
영국에서는 지역교육청이 일선학교와 밀접하게 연계해 방학 프로그램 정보를 제공한다. 프로그램의 범위는 각종 야외 활동, 교과 및 비교과 활동 등 다양하게 나뉜다. 한 예로 중부 런던의 캠든지역청이 제공하는 교육프로그램은 무려 50여개에 이른다. 2013년 영국의 입스위치 지역청이 제공했던 여름 교외 프로그램은 양궁, 육상, 공놀이, 드라마, 축구, 가라테, 롤러스케이트, 스포츠, 수영, 탁구 등이었다. 연령 제한 및 가입비용은 활동 종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최소 2.5파운드에서 9파운드를 넘지 않는 수준이었다.
프랑스 교육부는 1991년부터 ‘열린 학교’라는 이름의 방학 프로그램을 운영해오고 있다. 열린 학교는 1991년도부터 시작된 제도로, 방학 동안 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매년 개설한다. 지역의 중학교, 고등학교를 개방해 학생들을 위한 문화, 예술, 스포츠, 여가 활동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식이다. 열린 학교는 일선 학교의 학교장과 교사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스포츠 연합회, 프랑스 체스 연합회 등 협력 단체들의 도움으로 꾸려지며 소외 계층이 많이 밀집된 지역이나 초등학생들을 우선으로 한다.
김청연 기자
참고 자료: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정책네트워크 정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