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경기도 수원 유신고에서 정경수 교사가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교과서로 ‘차이’와 ‘차별’을 구분하는 게임 형식의 토론수업을 하고 있다.
[함께하는 교육] 교육현장에 부는 ‘대안교재’ 바람
가동중인 핵발전소에서 너트 하나가 조금 풀어졌다. 누군가 이 너트를 다시 조여야만 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0명의 노동자가 일렬로 서서 한 사람씩 원자로로 달려가 몇 초 간 너트를 조금 조인 뒤 곧장 돌아오는 릴레이를 벌였다. ‘방사능 노출’ 때문이다. 이 간단한 일에 4000만원의 인건비가 들었으며, 결국 이 작업을 한 노동자들이 대량 피폭됐다.
지난 6일 전북 군산에 위치한 군산영광여고. 김영진 국어교사가 <탈핵으로 그려보는 에너지의 미래>(이하 탈핵교재)의 ‘핵발전은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단원 수업을 <쓰기> 과목의 ‘편지쓰기’와 연계해 진행했다. 김 교사는 핵발전소를 둘러싼 문제점과 운영 실태를 설명한 뒤 학생들과 탈핵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위에 나온 실제 사례를 통해 핵발전의 위험이 크다는 것을 알리고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시위중인 할머니들한테 편지를 쓰는 내용이었다.
학교 현장에 ‘대안교과서’가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기존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거나 부족한 주제를 따로 뽑아내 재구성한 형태다. 탈핵·철학·민주시민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 교과서는 기존 교과서의 보조 교재로 쓰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나 교육청 차원에서 새로운 학습 교재를 만든다는 것은 그만큼 기존 교과서가 최근 이슈나 학생들이 알아야 할 실질적 지식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대안교과서를 활용한 수업 현장에 가봤다.
‘철학’·‘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등
교육청 차원서 학습 보조 교재 발간
실제 수업에 활용하는 사례 늘어
학생들 다양한 사회적 이슈 접하며
사고의 폭 넓히고 문제의식 높여
기존 교과서에서 다루지 못하는
내용상 한계점 보완하는 효과도 교재 집필하며 교사도 절로 공부하게 돼 전북교육청은 지난 2월초 탈핵교재를 발간했다. 교육계·종교계·환경단체들이 모여 꾸린 전북탈핵연대가 교육청에 교재 발간을 의뢰해 이뤄진 것이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의 국어, 과학 교사 7명과 윤종호 탈핵신문 편집위원장,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가 공동 집필했다. 교육청은 교재를 수업에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교사 연수를 진행했으며 현재 전북지역 초·중·고에 2부씩 배포한 상태다. “일본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보며 우리 모두 핵발전소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아이들에게 이 사실을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오히려 기존 교과서에서는 핵발전이 안전하고 경제적이며 친환경적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탈핵교재 공동 집필자이자 2005년 군산 핵폐기장 건립 반대 운동에 앞장섰던 김영진 교사의 말이다. 그는 당시 핵발전이라는 것이 민주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교에서는 민주시민 양성을 교육목표로 앞세운다. 하지만 정작 사회적 흐름이나 쟁점은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핵발전을 둘러싼 정보 독점과 핵마피아들의 비리와 담합 등 정의롭지 못한 시스템에 의해 사람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알고 난 뒤 교육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교재 집필은 학생에게 탈핵의 의미를 제대로 가르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교사들 스스로 사회적 문제를 인식하고 공부하게 하는 계기를 줬다. 탈핵교재 집필에 참여한 교사들은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핵발전에 대해 깊이있게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이를 위해 1년 동안 한 달에 두세 차례 일요일 아침부터 밤까지 스터디를 하면서 교재를 만들었다. “현실에 공감하는 능력, 내 머리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교육이다. 하지만 현재 학교는 이런 교육의 본질이 흐려진 면이 많다. 이 교재를 통해 학생들에게 탈핵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고 학생들과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고민하며 교사들 스스로도 공부를 많이 하게 됐다.” 김 교사의 말이다. 탈핵교재 수업을 들은 최하영양은 “사회 과목 에너지 단원을 공부하거나 텔레비전 광고를 보며 원자력발전이 좋은 거라 생각했다”며 “이 수업을 듣고 ‘원자력발전’이 아니라 ‘핵발전’이 정확한 단어이며 핵발전으로 인해 위험한 상황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고 말했다. 김선진양도 “세상에서 실제 일어나는 일을 접하며 이전에 몰랐던 지식도 쌓았다”며 “원자력 대신 풍력이나 태양광 같은 신재생에너지를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주변 문제 고민하며 삶의 태도 바뀌기도 대안교재는 기존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았던 심화된 내용을 접해 사고의 폭을 넓히고 다양한 이슈를 알게 하는 교육적 효과도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지난해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이라는 인정교과서를 발간했다. 민주시민은 ‘만들어 길러지는 것’이라는 취지로 양심적 병역거부, 난민, 노동시장 유연화 등 논쟁적 현안에 대한 찬반 입장을 다루고 있다. 현재 1300여개 초·중·고에 배포했으며 올해 서울·광주·충남·전북교육청도 이 교과서를 도입하기로 했다. ‘시각장애인 이씨는 공무원시험에 응시했지만 시험지를 읽을 수 없어서 문제를 못 풀었다.’ 이 사례는 ‘차이’일까 ‘차별’일까. “공무원은 국가의 공무를 수행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국민에게 원활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비장애인이 공무원을 하는 게 낫다. 그래서 이 사안은 ‘차이’다.” “장애인올림픽에 참가하는 운동선수처럼 신체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꿈을 이룬 사람들이 있다. 공무원은 육체적 노동을 크게 요구하지 않는데 장애인을 뽑지 않는 건 ‘차별’이다.” “장애인올림픽을 여는 건 비장애인과 함께 겨루는 게 불리하기 때문에 그들만의 리그를 만든 거다. 신체적 능력이 떨어진다고 무조건 안 된다는 게 아니라 국가적 손해를 줄이기 위한 측면에서 ‘차이’로 봐야 한다.” “개인 회사라면 사장이 마음대로 기준을 정할 수도 있지만 공무원시험은 국가에서 주관하는 것이다. 시각장애인의 시험 점수가 합격점에 모자라 떨어뜨리면 모를까 시험 볼 기회조차 박탈하는 건 옳지 못하다. 명백한 ‘차별’이다.” 지난 7일 경기도 수원 유신고에서는 정경수 교사가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이하 민주시민) 교재로 논술수업을 진행했다. 각 분야의 다양성에 관련된 사안을 두고 ‘차별’과 ‘차이’를 구분하는 게임이었다. 게임은 모둠별 토론으로 의견을 정해 발표한 뒤 해당 사안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리는 배심원 모둠을 설득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정 교사는 기존 교과서가 지식 위주로 구성돼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현재 <정치> 교과에서는 국가권력이 입법·사법·행정부로 이뤄져 있으며 각각 무슨 구실을 하는지 가르친다. 학생회나 학급회도 정부와 비슷한 형태를 띠지만 학생들은 그 조직이 구실을 제대로 하는지, 자기들에게 실제 결정권이 주어지는지 의문을 품지 않는다. 교과서의 상당 부분이 ‘살아있는 공부’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부분이다. 정 교사는 “교과서에 나온 내용을 여전히 금과옥조로 생각하지만 절대적인 답이 될 수 없다”며 “앞으로의 사회에서는 지식 그 자체보다 새로운 지식을 찾아내고 그 지식이 유용한지 판단해내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교과서가 지적 권위를 내려놓고 지금 시대에 맞는 사안의 양쪽 입장을 고루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수업을 들은 오민형군은 “장애인 통합교육이나 다문화정책 등은 중학교 때 수행평가 때문에 잠깐 들었던 기억이 있다”며 “내용을 깊이 고민하기보다 그 주제를 둘러싼 갈등을 풀기 위한 정책을 알아오는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동군근은 “오늘 다룬 토론 주제 중 동성결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내가 기독교인이라 평소 동성결혼에 부정적이었는데 친구들의 생각을 들으면서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게 됐다”고 말했다. 오군은 “수능에 나오는 과목을 배우고 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수업이 생각을 풍부하게 해줘서 자기소개서를 쓸 때도 도움이 될 거 같다”고 말했다. “수업을 통해 민주시민이 누구인지 고민해봤다. 민주시민은 각자의 이익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며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이 교과서를 통해 나중에 사회에 나갔을 때 다양한 계층의 사람을 이해하며 살아야 한다는 걸 알았다.” 김 교사는 “국정이나 검인정 교과서의 경우 국가 단위에서 일정한 규칙과 심사기준을 정한다”며 “이에 반해 지자체나 교육청에서 만드는 학습 보조 교재(대안교과서)는 상대적으로 내용 구성의 자율성이 있다. 이런 보조 교재가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지역별 특색을 반영한 문화·역사적 사실이나 의미있는 현실 문제를 다룬 교과서가 끊임없이 나와야 한다. 교재를 실질적으로 얼마나 활용하느냐는 그 이후의 문제다. 교육의 다양성을 위해서 여러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이후 교사나 학교에서 취사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글·사진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계기교육…교과연계 수행평가 등 두루 쓰여
대안교재 활용 어떻게? 지방자치단체나 시·도교육청 차원에서 발간하는 학습 교재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의 경우 현재 창의지성 교과용 도서로 <음악>(중·고등학교), <수학>(고등학교), <더불어 나누는 철학>(중·고등학교),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초·중·고) 등 4개 교과의 인정도서를 발간했다. 전북교육청은 <탈핵교재> 외에도 <동학농민혁명>과 <일제강점기 전라북도>를 펴냈다. 김영진 군산영광여고 국어교사는 “<동학농민혁명>과 <일제강점기 전라북도>는 향토사업자와 현직 교사들이 힘을 모아 만든 근대문화 역사책이다. 우리 지역의 역사적 사실을 올바로 가르치자는 취지도 있지만 한 권의 교과서를 뛰어넘어 의미있는 사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재들은 계기교육은 물론 각 교과과정에 맞게 교사들이 두루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경기도 수원 유신고 정경수 교사는 지난해 이 교과서를 교재로 삼아 과학 교과와 연계한 수행평가를 진행했다. 1학년 과학시간에 유전자조작식품을 어떻게 만드는지 배운 뒤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교재의 ‘자연과 환경’ 내용과 연계해 유전자조작식품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한지, 유전자조작식품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논술을 써보게 하는 식이었다.
<탈핵교재>를 쓴 김 교사는 세월호 1주기를 맞아 국가의 의미를 고민해보는 수업도 할 예정이다. 그는 “대안 교재를 기존 교과와 무조건 연계시켜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되면 교사가 오히려 제대로 된 교육을 하기 힘들다”며 “교과 진도를 떠나 아이들과 자투리 시간이 있을 때 우리 주변의 첨예한 문제를 함께 논의해보는 계기로 삼으면 된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에 따라 서울시도 얼마 전 초·중등 대상 <사회적 경제> 교과서 모델 개발 사업을 시작했다. 시장경제에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균형 잡힌 경제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게 목적이다. 서울시 쪽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적 경제에 대한 기본 교육을 통해 지속가능한 사회적 경제 인재 양성에도 기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들 교재를 교육 자료로 활용하고 싶은 경우, 탈핵교재는 전북교육청 누리집에서 자료 송부 신청서를 내려받아 보내면 교재 피디에프 파일을 받을 수 있고, 경기도교육청에서 발간한 교과서들은 해당 출판사로 연락해 구입할 수 있다.
최화진 기자
교육청 차원서 학습 보조 교재 발간
실제 수업에 활용하는 사례 늘어
학생들 다양한 사회적 이슈 접하며
사고의 폭 넓히고 문제의식 높여
기존 교과서에서 다루지 못하는
내용상 한계점 보완하는 효과도 교재 집필하며 교사도 절로 공부하게 돼 전북교육청은 지난 2월초 탈핵교재를 발간했다. 교육계·종교계·환경단체들이 모여 꾸린 전북탈핵연대가 교육청에 교재 발간을 의뢰해 이뤄진 것이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의 국어, 과학 교사 7명과 윤종호 탈핵신문 편집위원장,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가 공동 집필했다. 교육청은 교재를 수업에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교사 연수를 진행했으며 현재 전북지역 초·중·고에 2부씩 배포한 상태다. “일본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보며 우리 모두 핵발전소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아이들에게 이 사실을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오히려 기존 교과서에서는 핵발전이 안전하고 경제적이며 친환경적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탈핵교재 공동 집필자이자 2005년 군산 핵폐기장 건립 반대 운동에 앞장섰던 김영진 교사의 말이다. 그는 당시 핵발전이라는 것이 민주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교에서는 민주시민 양성을 교육목표로 앞세운다. 하지만 정작 사회적 흐름이나 쟁점은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핵발전을 둘러싼 정보 독점과 핵마피아들의 비리와 담합 등 정의롭지 못한 시스템에 의해 사람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알고 난 뒤 교육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교재 집필은 학생에게 탈핵의 의미를 제대로 가르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교사들 스스로 사회적 문제를 인식하고 공부하게 하는 계기를 줬다. 탈핵교재 집필에 참여한 교사들은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핵발전에 대해 깊이있게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이를 위해 1년 동안 한 달에 두세 차례 일요일 아침부터 밤까지 스터디를 하면서 교재를 만들었다. “현실에 공감하는 능력, 내 머리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교육이다. 하지만 현재 학교는 이런 교육의 본질이 흐려진 면이 많다. 이 교재를 통해 학생들에게 탈핵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고 학생들과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고민하며 교사들 스스로도 공부를 많이 하게 됐다.” 김 교사의 말이다. 탈핵교재 수업을 들은 최하영양은 “사회 과목 에너지 단원을 공부하거나 텔레비전 광고를 보며 원자력발전이 좋은 거라 생각했다”며 “이 수업을 듣고 ‘원자력발전’이 아니라 ‘핵발전’이 정확한 단어이며 핵발전으로 인해 위험한 상황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고 말했다. 김선진양도 “세상에서 실제 일어나는 일을 접하며 이전에 몰랐던 지식도 쌓았다”며 “원자력 대신 풍력이나 태양광 같은 신재생에너지를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주변 문제 고민하며 삶의 태도 바뀌기도 대안교재는 기존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았던 심화된 내용을 접해 사고의 폭을 넓히고 다양한 이슈를 알게 하는 교육적 효과도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지난해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이라는 인정교과서를 발간했다. 민주시민은 ‘만들어 길러지는 것’이라는 취지로 양심적 병역거부, 난민, 노동시장 유연화 등 논쟁적 현안에 대한 찬반 입장을 다루고 있다. 현재 1300여개 초·중·고에 배포했으며 올해 서울·광주·충남·전북교육청도 이 교과서를 도입하기로 했다. ‘시각장애인 이씨는 공무원시험에 응시했지만 시험지를 읽을 수 없어서 문제를 못 풀었다.’ 이 사례는 ‘차이’일까 ‘차별’일까. “공무원은 국가의 공무를 수행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국민에게 원활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비장애인이 공무원을 하는 게 낫다. 그래서 이 사안은 ‘차이’다.” “장애인올림픽에 참가하는 운동선수처럼 신체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꿈을 이룬 사람들이 있다. 공무원은 육체적 노동을 크게 요구하지 않는데 장애인을 뽑지 않는 건 ‘차별’이다.” “장애인올림픽을 여는 건 비장애인과 함께 겨루는 게 불리하기 때문에 그들만의 리그를 만든 거다. 신체적 능력이 떨어진다고 무조건 안 된다는 게 아니라 국가적 손해를 줄이기 위한 측면에서 ‘차이’로 봐야 한다.” “개인 회사라면 사장이 마음대로 기준을 정할 수도 있지만 공무원시험은 국가에서 주관하는 것이다. 시각장애인의 시험 점수가 합격점에 모자라 떨어뜨리면 모를까 시험 볼 기회조차 박탈하는 건 옳지 못하다. 명백한 ‘차별’이다.” 지난 7일 경기도 수원 유신고에서는 정경수 교사가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이하 민주시민) 교재로 논술수업을 진행했다. 각 분야의 다양성에 관련된 사안을 두고 ‘차별’과 ‘차이’를 구분하는 게임이었다. 게임은 모둠별 토론으로 의견을 정해 발표한 뒤 해당 사안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리는 배심원 모둠을 설득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정 교사는 기존 교과서가 지식 위주로 구성돼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현재 <정치> 교과에서는 국가권력이 입법·사법·행정부로 이뤄져 있으며 각각 무슨 구실을 하는지 가르친다. 학생회나 학급회도 정부와 비슷한 형태를 띠지만 학생들은 그 조직이 구실을 제대로 하는지, 자기들에게 실제 결정권이 주어지는지 의문을 품지 않는다. 교과서의 상당 부분이 ‘살아있는 공부’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부분이다. 정 교사는 “교과서에 나온 내용을 여전히 금과옥조로 생각하지만 절대적인 답이 될 수 없다”며 “앞으로의 사회에서는 지식 그 자체보다 새로운 지식을 찾아내고 그 지식이 유용한지 판단해내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교과서가 지적 권위를 내려놓고 지금 시대에 맞는 사안의 양쪽 입장을 고루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수업을 들은 오민형군은 “장애인 통합교육이나 다문화정책 등은 중학교 때 수행평가 때문에 잠깐 들었던 기억이 있다”며 “내용을 깊이 고민하기보다 그 주제를 둘러싼 갈등을 풀기 위한 정책을 알아오는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동군근은 “오늘 다룬 토론 주제 중 동성결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내가 기독교인이라 평소 동성결혼에 부정적이었는데 친구들의 생각을 들으면서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게 됐다”고 말했다. 오군은 “수능에 나오는 과목을 배우고 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수업이 생각을 풍부하게 해줘서 자기소개서를 쓸 때도 도움이 될 거 같다”고 말했다. “수업을 통해 민주시민이 누구인지 고민해봤다. 민주시민은 각자의 이익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며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이 교과서를 통해 나중에 사회에 나갔을 때 다양한 계층의 사람을 이해하며 살아야 한다는 걸 알았다.” 김 교사는 “국정이나 검인정 교과서의 경우 국가 단위에서 일정한 규칙과 심사기준을 정한다”며 “이에 반해 지자체나 교육청에서 만드는 학습 보조 교재(대안교과서)는 상대적으로 내용 구성의 자율성이 있다. 이런 보조 교재가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지역별 특색을 반영한 문화·역사적 사실이나 의미있는 현실 문제를 다룬 교과서가 끊임없이 나와야 한다. 교재를 실질적으로 얼마나 활용하느냐는 그 이후의 문제다. 교육의 다양성을 위해서 여러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이후 교사나 학교에서 취사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글·사진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계기교육…교과연계 수행평가 등 두루 쓰여
대안교재 활용 어떻게? 지방자치단체나 시·도교육청 차원에서 발간하는 학습 교재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의 경우 현재 창의지성 교과용 도서로 <음악>(중·고등학교), <수학>(고등학교), <더불어 나누는 철학>(중·고등학교),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초·중·고) 등 4개 교과의 인정도서를 발간했다. 전북교육청은 <탈핵교재> 외에도 <동학농민혁명>과 <일제강점기 전라북도>를 펴냈다. 김영진 군산영광여고 국어교사는 “<동학농민혁명>과 <일제강점기 전라북도>는 향토사업자와 현직 교사들이 힘을 모아 만든 근대문화 역사책이다. 우리 지역의 역사적 사실을 올바로 가르치자는 취지도 있지만 한 권의 교과서를 뛰어넘어 의미있는 사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교육청과 전북교육청에서 펴낸 대안 교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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