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아침에 일어나면 매우 피곤합니다. 전날 밤 잠을 깊이 못 자서 그런 것 같은데, 아내는 제가 잘 잤다고 합니다. 아내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고, 잤는데 못 잤다고 느낄 수도 있나요?
A: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환자가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수면제를 써도 통 잠을 못 잔다고 하니 입원해서 불면증을 치료하기로 했습니다. 입원해서 코까지 골며 잘 잔 환자는 다음날 아침이 되자 간밤에 한숨도 못 잤다며 힘들어했습니다. 잘 자더라고 해도 환자는 믿지 않았습니다. 밤에 못 자는 것을 증명한다며 간호사실 앞 의자에 앉아 밤을 지새우겠다고 했을 정도입니다. 의자에 앉아 있던 환자는 밤이 되자 잠에 빠져서 그만 바닥으로 굴러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다친 곳은 없었지만 환자는 여전히 한숨도 못 잤다고 말했습니다.
잠은 주관적입니다. 코를 골고 잤지만 안 잤다고 우깁니다. 그러나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뇌파로 측정한 객관적 수면 상태와 주관적으로 느끼는 수면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뇌는 분명히 잠들었는데 못 잤다고 느끼는 경우가 흔합니다. 반대로 뇌는 깊이 못 잤는데 잘 잤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아무런 효과가 없는 물약이라고 해도 이것이 몸에 좋고 병을 낫게 할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은 실제 약효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위약 효과입니다. 잠에도 위약 효과가 있습니다. 미국 콜로라도대학의 크리스티 어들 교수와 대학원생 크리스티나 드래거니치는 수면의 플라세보 효과에 대한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학생들이 자는 동안 뇌파를 측정했습니다. 한 집단에는 ‘뇌파를 보니 당신이 깊이 잘 자더군요’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다른 집단에는 그와 반대로 간밤에 잠을 잘 못 잤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실제 두 집단 간에 수면의 차이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잠을 잘 잤다고 설명을 들은 사람들은 정말 그렇게 믿었고 인지기능 테스트에서 20%나 좋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잠이 줄어듭니다. 잠을 못 자면 젊은이들과의 경쟁이 더 어려워질 것 같아 걱정이 됩니다. 주말이면 늦잠 자는 아이들이 부럽기만 합니다. 그러나 나이 들어 잠이 줄어도 크게 걱정할 것은 아닙니다. 하버드 의대 수면의학부 진 더피 교수는 20대와 60대를 26시간 동안 깨어 있는 상태에서 집중, 각성 정도, 졸음 정도 등을 확인했습니다. 16시간까지는 젊은이와 노인 사이에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젊은이가 더 집중을 못하고 반응속도가 느려졌습니다. 연구 결과들은 나이 들수록 잠이 줄지만 젊을 때보다 적은 시간을 자도 인지기능은 잘 유지된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러니 나이 들어 잠을 못 잔다고 억지로 더 잠을 청할 필요는 없습니다.
디지털 세상에서 사람들은 더 긴 하루를 살고 수명도 길어졌습니다. 뇌의 인지기능을 오래도록 잘 유지하려면 잠은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그러나 객관적 사실보다 무엇을 믿는가에 따라 뇌는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잘 잤다’고 생각해 보세요. 하루를 더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동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