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다옥 교사의 사춘기 성장통 보듬기
사춘기 아이들의 미친 눈빛 뒤에는 불안이 있다. 태어나서 두 번째로 폭발적인 성장이 이뤄지고 있는 이 시기의 아이들은 자신들의 신체적·심리적 변화가 때로는 감당이 안 된다. 급격한 기분 변화, 이유 없는 짜증, 벌컥 내는 화, 성의없고 삐딱한 태도 등은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의 또 다른 모습일 수 있다. 아이들이 보내고 있는 이 신호를 해석할 방법을 몰라 서로 오해하고 갈등하게 되는 것 같다.
1학년 학급에서 주 1회 인성과 관련된 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수업시간 끝 무렵 활동소감을 작성해서 내도록 했는데, 한 학생이 쓰지 않고 내서 다시 써보게 했다. 그랬더니 다시 써 와서는 활동지를 한 손으로 교탁에 휙 던지듯이 올려놓으며 “이제 됐죠?”라고 말하고는 가버렸다. 순간 너무 당혹스러워 아무 말도 못했다. 수업 시작 때부터 협조적이지 않은 태도가 눈에 띄어서 그렇지 않아도 마음을 쓰고 있던 아이였다. 상담실에 돌아와서도 당황스럽고 불쾌한 느낌이 한참을 이어졌던 것 같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이 애가 왜 이렇게 버릇없이 굴지?’, ‘내 행동에서 무슨 문제가 있었나?’, ‘따로 불러서 아이의 태도에 대해 얘기를 나눠봐야 하나?’, ‘그냥 모른 척하고 넘어가는 게 나을까?’ 등등 여러 생각들로 마음이 불편했다.
욱해서 폭발하는 아이들과 상담을 꽤 해왔지만 한 번도 격하게 부딪쳐 본 적이 없었던 터라 남의 얘기로만 여겼던 사건이었다. ‘난 괜찮은 어른이고 말이 꽤 통하는 선생인데’ 하는 그 틀이 손상된 느낌을 받은 것 같다. 그리고 그 순간에는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버릇없음을 지적하고 가르치는 행동을 통해 내 상처와 화를 쏟아내고 싶은 마음이 좀 더 앞섰던 것 같다. 그렇게 찝찝한 기분으로 한참을 있었다. 조금씩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하는데 문득 떠오른 것이 그 아이의 눈빛이었다. 참 반항적이고 화가 가득 차 있는 눈빛이었는데, 거기에 한 가지 감정이 더 들어 있었다. 불안으로 흔들리는 눈빛이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이제 됐죠?” 하던 그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이 됐다. 그 순간 그 아이 마음이 얼마나 불안하고 불편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 아이에 대한 화와 내 미숙한 자존심에 났던 상처가 눈 녹듯이 사라졌던 게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 다음주에 그 아이가 있는 반에 들어갔을 때 편안한 얼굴로 아이를 대할 수 있었고, 그 이후 시간에도 그 아이의 활동 내용에 대해 티나지 않게 조금씩 더 관심을 기울였다. 그 시간들이 쌓여 드디어 아이가 보내는 부드러운 눈빛을 받을 수 있었고, 우리가 꽤 가까워지게 되면서 아이의 적대적인 태도와 관련된 다른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많은 아이들이 욱해서 불손한 태도와 말을 내뱉은 뒤 나중에 진정한 다음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어요”라고 말한다. 아이 자신도 당황스러워하고 불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자신감이 없고 약하다고 느껴질 때, 그래서 불안하고 두려울 때, 그런 나를 들키고 싶지 않아 자신도 모르게 공격적인 모습을 나타내게 된다고 보면 된다. 어른인 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봐도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만약에 이렇게 드러나는 적대적인 태도와 행동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그 아이가 진짜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듣지 못하게 될 것이다. 아이의 내면세계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으려면 그 아이의 행동 이면에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감정이 격해 있고 혼란스러울 때는 잠시 시간을 두고 안정을 찾을 수 있게 기다려주는 게 낫다. 우리는 논리보다는 감정으로 먼저 반응하기 쉽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는 아무리 옳은 얘기라도 먹히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내 흥분이 진정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막강한 어른의 힘으로 아이에게 보복하기 쉽기 때문이다. 의도했던 것보다 더 심하게 아이를 윽박지르거나 화를 쏟아낸 뒤 미안함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내 경우에도 우리집 아이들이나 학교 아이들에게 감정적 보복을 휘두른 적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가 없다. 내 상한 감정이 아직 회복되지 않아서 그사이 잊어버리고 붙는 아이에게 차갑고 퉁명스럽게 말을 잘라버리기도 했고, 상대를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못 본 척 관여하지 않았던 적도 있다. 부끄럽고 아픈 부분이다.
아이의 공격성에 보복하지 말기! 보복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없이 자신의 공격성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이 시기의 짜증과 화, 삐딱함, 반항이 너른 품에서 받아들여질 때 아이의 내면이 더 건강해짐을 잊지 않으려 또 한 번 다짐한다.
윤다옥 한성여중 상담교사·사교육걱정없는세상 노워리 상담넷 소장
윤다옥 한성여중 상담교사·사교육걱정없는세상 노워리 상담넷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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