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보화진흥원에서 뽑은 우수 ‘스마트폰 중독 예방 실천노트’ 작품들. 박소윤(화명중1)양은 여러 재료들이 어우러져야 맛이 나는 김치찌개처럼 스마트폰이 빈 자리를 주변 소중한 사람들이 채워줬으면 하는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사람과 디지털] ‘스마트폰 실천노트’ 써보니
#1. 스마트폰은 일단 말하려던 사람을 직접 만나지 않아도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고, 게임을 함으로써 지난날들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고, 여가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그러나 나쁜 점도 있다. 시력이 나빠지고, 소중한 시간을 흥청망청 써버릴 수도 있으며, 문자나 에스엔에스(SNS, 카카오톡 등)를 통해 언어폭력을 사용하는 행위도 일어나고 있다. 욕이나 나쁜 말을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는 친구가 메신저에서 욕을 사용할 때 마음이 안타깝다.(김예원·언남초4)
#2. 인간은 점차 멍청해집니다. 요즘에는 10~1까지의 십진수를 알지만 곧 0, 1밖에 모르는 이진수의 세상이 올 것이거든요.(한민우·청주 서원중1)
한국정보화진흥원은 지난달 26일 ‘스마트폰 중독 예방을 위한 실천노트’(실천노트·작은사진)의 우수작품 선정작들을 발표했다. 실천노트는 초·중학생들의 자기 주도적인 미디어 사용을 돕고자 관련 도움말이 곁들여진 일기 형식의 노트다. 아이들이 방학 한 달여 동안 이 노트를 활용해 일상이나 자신의 미디어 사용 습관에 대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과제가 아니기 때문에 활용 여부는 학생과 교사에게 맡겨졌다. 첫 배포 대상은 초등학교 4학년과 중학교 1학년으로 모두 100만권이 제작돼 보급됐다.
진흥원은 이후 누리집을 통해 우수 활용사례 모집 공고를 내고 관심있는 교사와 학생들에게 자발적으로 활용사례를 내달라고 알렸다. 이에 전국에서 113명의 선생님이 학생 642명의 노트를 모아 진흥원에 보내왔다. 진흥원은 이 가운데 100개 작품을 뽑아 우수작으로 선정했다. <한겨레>사람과디지털연구소는 심사위원단의 도움을 받아 이 가운데 주목받은 작품 7개를 소개한다. 아이들의 스마트폰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소개된 작품들은 모두 학생과 학부모의 공개 동의를 받았다.
‘기기 중독’ 어른들 걱정과 달리
실천노트 기록한 아이들은
스마트폰의 장점과 단점 함께 ‘고민중’ 노트 제작하고 심사한 지도교사들
“미디어 사용에 대한 자발적 성찰 중요” #3. 나는 오늘 스마트폰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아무리 친한 친구를 만나도 스마트폰만 바라보면 서로 입이 아닌 정수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김시은·문수중1) #4. 나의 쌍둥이 동생은 요즘 카카오스토리에 푹 빠져 있다. 그래서 부모님께 혼이 많이 난다. … 나는 솔직히 좀 걱정이 된다. 왜냐하면, 그러다가 중독이 될 것 같기도 하고, 나중에 후회할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배성민·개일초4) 이번 실천노트의 제작과 우수노트 심사를 맡은 김형태 교사(시흥 서촌초)는 “자발적으로 이뤄졌다”는 게 가장 고무적인 점이라고 말했다. 김 교사는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미디어 사용에 대해 고민해 볼 기회가 생긴 셈이다. 스스로 점검하고 피드백(교사가 적절한 반응을 보이는 일)을 받고 공유하는 문화가 시작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함께 제작·심사를 맡은 광명 소하중학교의 백선아 교사는 “아이들이 숙제라 생각하고 부담스러워하겠구나, 또 겨울방학이라 (학년이 바뀌기 때문에) 실제 평가엔 안 들어가니 성실히 안 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보내온 작품들을 보니 굉장히 성실하게 한 아이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내용을 보면 어른들의 일반적인 걱정에 비해 아이들은 스마트폰 사용에 대해 장점과 단점을 복합적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한 대화가 장점도 있지만 “평소 사용하지 않는 나쁜 말”(김예원)을 쓰게 하고, “서로 입이 아닌 정수리를 맞대고 이야기하게”(김시은) 한다는 점을 깨닫고 있다. 또 실천노트는 시작 때 과도한 사용을 막기 위한 습관을 스스로 정하고 매일 점검할 수 있는 요소들이 들어가 있는데, 강제사항이 아님에도 매일 성실히 점검한 내용이 여럿 눈에 띄었다.
또한 디지털 기술이 아이들에게 관심있는 정보에 주도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길을 열어주고, 또 서로 자신의 의견을 공유하고 발전시키는 긍정적 작용을 하는 점도 노트를 통해 엿볼 수 있다. 박찬경(화명중1)양의 지난 1월10일 일지는 이렇다. “오늘은 학생의 교육과 미래에 대한 글을 많이 봤다. 그림을 보려고 들른 블로그에서 본문 스크랩되어 있는 글의 출처를 따라 들른 또다른 블로그에 그런 흥미로운 주제의 글이 많이 올려져 있던 것이다. 모두한테서 잊혀진 한 학생의 죽음에 대한 글에서부터 ‘무언가에 의해 학생이 폭력적이게 되는가’에 대해 한 학생이 쓴 ‘옳은’ 답(실질적인 이유) 등…게다가 방금 전에 본 <미생물>의 ‘끝물’ 편에서의 말들 중에서도 이 글 중 하나와 관련된 말이 나왔었는데, 마음에 큰 울림이 난다는 말이 제격일 정도로 인상 깊은 기분이 들었다.” 노트를 계기로 가족이 함께 스마트폰 사용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되는 점도 효과다. “우리 가족은 스마트폰 바구니(사용을 자제하기 위해 함께 넣어두는 바구니) 운동을 실천하여 가족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나누며 ‘가족사랑 실천운동’에 동참하겠습니다.”(전수경·누원초)
진흥원 쪽은 이번 노트의 아쉬운 점으로 예산상 전국의 교육지원청까지만 배포할 수 있었는데, 일선 학교까지 전달되지 않는 경우도 있던 점을 꼽았다. 백 교사는 “우리 학교에도 오지 않아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는 “스마트폰 사용 습관은 누구의 강제가 아니라 ‘셀프리더십’ 관점에서 이뤄지는 게 중요하다는 점에서 일기 형식에 의미가 있다. 앞으로 여러 학년으로 확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스마트폰 중독 예방을 위한 실천노트.
실천노트 기록한 아이들은
스마트폰의 장점과 단점 함께 ‘고민중’ 노트 제작하고 심사한 지도교사들
“미디어 사용에 대한 자발적 성찰 중요” #3. 나는 오늘 스마트폰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아무리 친한 친구를 만나도 스마트폰만 바라보면 서로 입이 아닌 정수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김시은·문수중1) #4. 나의 쌍둥이 동생은 요즘 카카오스토리에 푹 빠져 있다. 그래서 부모님께 혼이 많이 난다. … 나는 솔직히 좀 걱정이 된다. 왜냐하면, 그러다가 중독이 될 것 같기도 하고, 나중에 후회할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배성민·개일초4) 이번 실천노트의 제작과 우수노트 심사를 맡은 김형태 교사(시흥 서촌초)는 “자발적으로 이뤄졌다”는 게 가장 고무적인 점이라고 말했다. 김 교사는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미디어 사용에 대해 고민해 볼 기회가 생긴 셈이다. 스스로 점검하고 피드백(교사가 적절한 반응을 보이는 일)을 받고 공유하는 문화가 시작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함께 제작·심사를 맡은 광명 소하중학교의 백선아 교사는 “아이들이 숙제라 생각하고 부담스러워하겠구나, 또 겨울방학이라 (학년이 바뀌기 때문에) 실제 평가엔 안 들어가니 성실히 안 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보내온 작품들을 보니 굉장히 성실하게 한 아이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내용을 보면 어른들의 일반적인 걱정에 비해 아이들은 스마트폰 사용에 대해 장점과 단점을 복합적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한 대화가 장점도 있지만 “평소 사용하지 않는 나쁜 말”(김예원)을 쓰게 하고, “서로 입이 아닌 정수리를 맞대고 이야기하게”(김시은) 한다는 점을 깨닫고 있다. 또 실천노트는 시작 때 과도한 사용을 막기 위한 습관을 스스로 정하고 매일 점검할 수 있는 요소들이 들어가 있는데, 강제사항이 아님에도 매일 성실히 점검한 내용이 여럿 눈에 띄었다.
한민우(청주 서원중1)군은 다양한 삽화로 스마트폰 사용에 대한 고찰을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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