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전라남도 순천 남산중, 강원도 인제 원통고에는 특별한 동아리들이 있다. 이 동아리 소속 학생들은 각각 공동체라디오, 인터넷 라디오 팟캐스트를 제작하며 독서와 진로 관련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방송을 수동적으로 듣기만 하던 청소년들이 이제 방송 콘텐츠를 직접 기획, 제작하며 기존 틀을 벗어난 공부와 체험을 하고 있다. 이들이 제작하는 방송은 일종의 전통이 되어 올해도 계속될 예정이다.

공동체라디오·팟캐스트 등
학생들 참여한 방송 사례 나와
독서부터 진로까지 다양한 주제로
자기주도적 기획하고 대본 쓰며
기존 틀 벗은 다양한 체험 하기도

순천 남산중 도서부 ‘책 읽는 라디오’ 진행

“시가 정말 정말 재밌어요. 머리에 핵폭탄을 하나씩 가지고 사는 우리들의 마음을 너무 잘 꿰뚫어 보신 건 아닌가 싶어요.”

한 여학생이 차분한 어조로 <난 빨강>이라는 청소년 시집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 이어 시집의 저자인 박성우 시인이 등장하자 명랑한 목소리의 또다른 여학생이 시인을 반기며 말했다. “제 꿈이 작가라고 했지요? 그래서 관심이 조금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옆에 시인이 와 있다는 사실에 조금 떨려요.” 곧 학생들과 시인의 한바탕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들은 약 2시간에 걸쳐 책 이야기를 비롯해 작가가 된다는 것의 의미 등 다양한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았다.

지난해 5월24일, 오후 1시. 전남 순천 순천만정원에 울려 퍼졌던 ‘소리 나는 책, 책 읽는 라디오’(이하 책 읽는 라디오) 방송의 일부다. 진행자로 나선 두 학생은 순천 남산중 3학년 최현, 서유진양이었다. 남산중 도서부 그린나래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순천시영상미디어센터두드림(이하 두드림)의 도움으로 공동체라디오(지역 공동체가 만드는 비영리 성격의 라디오)인 순천만에프엠(FM)에서 방송을 진행했다. 남산중 황왕용 사서교사도 공동진행자로 참여했다.

지난해 그린나래 3학년 학생들은 이 방송을 포함해 모두 세 번에 걸쳐 라디오 방송을 진행했다. <똑같이 다르다>의 김성희 작가, <특별한 너라서 고마워>의 김혜원 작가 등이 각각 약 2시간에 걸쳐 학생들과 책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학생들은 책 선정에서부터 기획, 작가 섭외, 원고 작성, 진행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 참여했다.

이런 계기를 마련한 건 황 교사와 ‘두드림’이었다. 2013년에 ‘두드림’에서 무료로 진행하는 미디어교육을 통해 공동체라디오 수업을 접했던 황 교사는 도서부 학생들과 공동체라디오를 이용해 재미있는 책읽기 활동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이현주 시인의 ‘책이란 모름지기’라는 시가 있습니다. ‘나는 가끔 요리책을 본다. 그러나 나의 요리책이 감자탕이나 북엇국으로 꽃을 피우는 일은 거의 없다. 아내도 가끔 요리책을 본다. 아내의 요리책은 곧장 밥상으로 올라가 콩나물밥이나 동태찜으로 태어난다. 책이란 모름지기 나처럼 읽지 말고 아내처럼 읽을 일이다. 눈으로만 읽지 말고 손발로 읽을 일이다.’ 이 시가 말하는 것처럼 ‘된장국을 스스로 끓여볼 수 있게 하는’ 실질적인 독서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헐~’ 지난해 학기 초, 황 교사가 책 읽는 라디오 방송에 참여하자고 제안했을 때 학생들은 이런 반응을 보였다. 김진리양과 임은아양은 “호기심이 생기면서도 우리가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고 했다.

예상한 대로 방송은 쉽지 않았다. 학생들은 교사의 도움을 받아 작가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섭외를 했다. 이메일을 수없이 주고받으며 수정에 수정을 거쳐 A4 30장이 넘는 대본도 완성했다. 원고 내용에 맞게 삽입할 적절한 음악도 골랐다. 방송에 직접 출연하지 않은 학생들은 ‘패러디’라는 글쓰기 활동으로 간접적으로 참여했다. 류지혜양이 박성우 시인의 시 <보름달>을 패러디해 쓴 작품(시)은 방송에 직접 소개되기도 했다.

두 시간짜리 방송을 준비하는 데 약 한 달의 준비 시간이 필요했지만 학생들은 “들인 공이 아깝지 않을 만큼 귀중한 경험을 했다”고 입을 모았다. 서유진양은 “평소 책을 읽으면 많아봤자 두 번 정도 읽고 마는데, 방송을 준비하면서부터는 책을 여러 번 천천히 곱씹어 읽게 됐다”고 했다. 평소 말수가 적고 조용히 책만 보던 조혜숙양은 방송에 참여하며 작가들과 활발하게 대화를 나누고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여줘 모두를 놀라게 했다.

최현양도 이 경험으로 용기를 많이 얻었다. 최양은 “방송 대본을 계속 고쳐 쓰면서 ‘나도 글 쓰는 일을 해볼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실제 글쓰기 실력이 많이 는 것 같다”고 했다.

이수은양은 “예전에는 도서부원이면서도 빌린 책을 반도 안 읽고 반납하는 일이 많았는데 이 활동 이후로는 책 한 권도 천천히 깊게 읽고, 친구나 부모님과 책 이야기도 많이 나눈다”고 했다. 학생들은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읽은 뒤 지역 홀몸노인을 찾아가 봉사활동도 했다.

황 교사는 “학교도서관에서 마련하는 저자 초청 강의를 보면 학생들이 수동적으로 강의를 듣기만 하는 경우가 많다”며 “라디오 독서방송 체험처럼 앞으로도 아이들이 주체가 되어 책 읽는 즐거움을 알게 하는 활동을 많이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린나래 학생들이 진행한 방송은 두드림 누리집(www.scmedia.or.kr)에서 다시 들을 수 있다.

인제 원통고 ‘직업인’ 인터뷰 팟캐스트 제작

“빵은 보통 오전 9시 전에 나와야 합니다. 발효를 하려면 시간이 꽤 드는데 그래서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장시간 서서 일한다는 점에서 어려움도 있어요. 하지정맥, 비염 등 직업병이 생기기도 합니다.”

팟캐스트 포털 방송 팟빵(www.podbbang.com)에 올라온 ‘그분 목소리’(진로탐사 팟캐스트)라는 라디오 팟캐스트 52회 방송의 일부다. 이 방송은 강원도 인제 원통고등학교의 경찰 분야 관련 진로탐색 동아리 ‘참수리’와 영상 동아리 ‘라이트로우’(Lightlow) 소속 학생들이 함께 만든 것이다. ‘제빵사’를 인터뷰한 이 방송에서는 강원도 원통에서 에이스베이커리를 운영하는 김수용 제빵사가 나와 제빵사가 하는 일, 어려운 점 등을 알려줬다.

학교 현장에서 진로교육이 강조되고 있지만 대도시가 아닌 지역에 사는 청소년들은 진로·직업에 대한 정보를 구하는 게 어렵다. 두 동아리 학생들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정보를 어디서,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우리가 직접 ‘그분’(직업인)을 만나 인터뷰하고 이를 팟캐스트로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인터뷰 녹음은 스마트폰으로 비교적 쉽게 할 수 있었다.

초기에는 어떤 직업인을 섭외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학생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니 직업인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지난해 방송 제작에 참여했던 1기 팀장 김경미(한림대 언론정보학부 1년)씨는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지역에 있는 소방서, 파출소 등을 무작정 찾아가 사람들에게 동아리의 활동 목적과 인터뷰 취지 등을 설명한 뒤 섭외를 시도했다”고 했다. 거절당한 경우도 많았지만 점차 그 뜻을 이해하고, ‘학생들이 어쩜 이렇게 기특한 활동을 하냐’며 반기는 어른들도 늘어났다. 교사 등 학교 안에서 일하는 직업인들을 비롯해 지역사회의 직업인들을 인터뷰하다가 섭외 반경을 넓혀보기로 했다. 2014년에는 ‘창의인성한마당’에 참여해 전국 각지의 동아리 친구들을 만나면서부터 이들에 대한 이야기도 방송에 담기 시작했다. 이렇게 제작한 방송은 2014년부터 지금까지 149편(2015년 2월 기준). 사회복지사를 비롯해 아이티(IT) 개발자, 영양사, 큐레이터 등 다양한 분야의 직업인들이 출연해 자신의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팟캐스트 제작 활동을 통해 배운 것도 많았다. 김경미씨는 “평소에 많이 접하던 직업군들 가운데서도 정확히 뭘 하는지 모르는 직업들이 많았다. 영양사 선생님 인터뷰를 통해 여러 학생의 입맛이나 영양섭취 등을 고려한 급식을 준비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았다. 평소 급식을 먹으며 반찬투정을 했던 게 죄송했다”고 털어놨다.

이들의 방송은 올해도 계속될 예정이다. 2기 팀장 3학년 박은지양은 “다른 학생들처럼 나도 진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데 이 방송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는다”며 “‘가수가 꿈인데 가수를 섭외해주세요’라고 댓글을 달 수도 있다. 우리 방송이 청소년들이 희망하는 직업뿐 아니라 평소 잘 몰랐던 직업에 대해 알려주면 좋겠다”고 했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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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대상 무료 팟캐스트 수업 등 열려

꿈다락토요미디어문화학교

전주 완산고 2학년 박승인군은 지난해 5월, ‘전주시민미디어센터 영시미’(이하 영시미)에서 진행하는 ‘청소년미디어공감’(이하 공감)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라디오 제작 전반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중학교 2학년 때 학교 토요 동아리에서 영화 만드는 활동을 하면서 영시미를 알게 됐고, 그곳에서 하는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게 됐다. 거기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드는지, 라디오방송국에선 어떤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지 등에 대한 기본적인 강의와 함께 원고 작성, 엔지니어링 등의 실습 기회도 가졌다. 박군은 “프로그램 중간중간 넣을 ‘브리지’(Bridge, 서로 다른 코너나 내용을 연결시키기 위해 중간에 사용하는 짧은 영상이나 음성 등)를 제작하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목소리 연기나 노래를 했던 활동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이런 교육을 통해 박군은 지난해 5월3일에는 호남지역의 또래 친구들을 초대해 ‘청소년과 지역’을 주제로, 5월5일에는 ‘가족 그리고 어릴 적 추억’을 주제로 한 공동체라디오 방송에도 참여했다. 박군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접한 라디오 프로그램은 모두 방송국에서 어른들이 만든 것들뿐이었는데 라디오를 통해 나, 주변 친구들 등 ‘우리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공감은 영시미에서 진행하는 전주 꿈다락토요미디어문화학교 프로그램의 다른 이름이다.

전국 30여곳 지역 미디어센터에서는 이렇게 ‘꿈다락토요미디어문화학교’(이하 문화학교)라는 이름으로 청소년 대상의 미디어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창의적이고 자기주도적으로 문화·여가 활동을 할 수 있게 돕자는 뜻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와 전국에 있는 지역 미디어센터가 주관하는 이 프로그램은 청소년들에게 인쇄, 라디오, 영상, 스마트미디어 등 다양한 유형의 미디어를 활용하는 법을 알려준다. 청소년들은 매체 제작에 대한 교육을 받고 방송 참여, 상영회 등을 통해 학교나 지역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다. 각 센터들이 지역에 밀착해 있기 때문에 특정 지역 문화유산, 주민들의 삶이나 역사가 깃든 공간에 대한 이야기 또는 지역 축제를 비롯해 문화예술 활동에 대한 내용을 담은 프로그램을 청소년 스스로 개발할 수 있다.

문화학교 프로그램은 모두 무료로 진행하며 중·고교에 재학 중인 청소년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또한 기초생활수급자 가정 자녀나 법정 차상위 계층 자녀에게는 우선권이 주어진다. 참가신청과 일정 등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3월 중에 각 지역 미디어센터 누리집을 참고하면 된다.

2015년에는 22개 센터가 문화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표 참고)이다. 이 가운데 익산공공영상미디어센터, 엠비시(MBC)경남시청자미디어센터, 제천영상미디어센터, 전주시민미디어센터, 아리랑시네미디어센터, 원주영상미디어센터, 서울 미디액트, 수원시영상미디어센터, 서천군미디어문화센터 등은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서 주목받는 라디오, 팟캐스트 교육 프로그램도 개설할 예정이다. 자세한 내용은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센터 누리집을 참고하면 된다.

김청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