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다옥 교사의 사춘기 성장통 보듬기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라면 자신도 모르게 아이의 눈치를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평소처럼 말을 건넸다가 아이의 짜증과 차단에 당황했거나 무표정으로 입을 닫고 있는 아이가 걱정되어 더 조심스럽게 살피기도 했을 것이다. 온종일 재잘거리며 사랑스런 눈빛을 반짝거리던 내 아이가 어느새 말 없는 사춘기 아이가 되어 버렸음을 실감하게 된 날을 모두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상담실에 오는 아이들 중에서도 말이 없는 아이는 대하기가 참 힘들다. 어떤 날은 ‘실패’도 한다. 아이의 마음을 여는 열쇠를 전혀 찾지 못해 그냥 보낼 수밖에 없었던 적도 있었는가 하면, 또 어떤 경우에는 열쇠를 찾아도 시간이 적절하지 않아 다음 기회를 기다려야만 하기도 했다.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나눌 준비가 안 되어 있거나, 상대인 내가 안전한 대상인지 믿을 만한 사람인지 확인이 더 필요하기도 했던 것이다.
한번은 중1 학생이었는데, 친구와 함께 며칠 가출을 하고 돌아온 직후 담임선생님이 상담을 의뢰했다. 아이의 속내를 듣고 적절한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상담실에서 1시간 동안 함께 있는 내내 아이는 별말 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중학교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 시점에서 가출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 상황이 무엇이었는지, 불만족스럽고 회피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것을 원하는지,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가출했다 돌아와 학교 상담실에서 처음 보는 선생님과 마주하면서 들었을 만한 아이의 심정 등을 헤아려보기도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억지로 말하도록 하는 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한 편안하게 있게 해주고 싶었다. 아이에겐 편안한 침묵의 시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설픈 강요 대신 함께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혹시 자신을 내버려둔다는 느낌을 받거나 또 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까 싶어 중간중간 “네 마음에 편치 않은 게 있을 것 같은데 나는 그 마음 가볍게 하는 거 도와주고 싶다” “학교생활을 좀더 편안하게 느끼도록 도와주고 싶다” “샘이 도와줄게” “샘이 도와주고 싶어” 등등의 말을 했었다. 어쨌건 그날 1시간 동안의 상담은 별 소득 없이 끝나고, “의논하고 싶거나 얘기하고 싶을 때 언제든 찾아오라”고 하고 보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고 복도에서 그 아이와 마주치게 되었는데, 그때 그 아이는 옆에 있던 친구한테 “야, 너도 저 샘한테 상담 받아봐. 저 샘은 계속 도와주고 싶다는 말만 해~”라며 웃음을 지었다.
부모들은 “사춘기 아이들과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 “사춘기 때 아이와의 관계 형성이 중요하다” 등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는 데 있다. 배웠던 예시 상황과 조금씩 다른 경우가 많고, 비슷한 상황에서 배운 대로 해봐도 기대와는 다른 결과가 나올 때도 많다. 아이가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거나 평소와 같은 무반응으로 자기 방에 들어가 버리기도 하고, 대화 중에 감정이 격해져서 화를 내고 상처 주는 말을 하고 더 감정이 상해버리기도 한다. 이럴 때 분명 ‘대화의 기술’이 무척 중요하다. 특히 표현하는 요령을 익힐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먼저 나와 아이가 어떤 종류의 상호작용 패턴을 가지고 있는지, 어디에서 소통의 걸림돌이 있는지를 알아야 그것을 피해가며 대화를 효과적으로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상처받은 경험이 많은 아이일수록 말수가 적기 쉬우며 입을 열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동안 부모 등 주변 어른들에게서 속은 경험이 많았다면 좀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아이에게 그 부모는 양치기 소년이었을 테니까.
학교상담을 하면서 좋은 점은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과 변화하는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도움을 요청하는 그 순간에 바로 옆에서 힘이 되어 줄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아이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관심’이라는 거름을 꾸준히 주어야 한다. 상담효과가 다 비슷하게 긍정적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거기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아이가 도움을 요청할 줄 아는지 여부도 중요하다. 도움을 요청할 줄 아는 아이는, 타인에게 마음을 열 줄 아는 기본적인 관계형성 능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인생 초기부터 자신이 주변에 뭔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누군가 관심을 갖고 들여다봐줬던 경험이 중요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바빠서, 피곤해서 또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얘기 같아서 아이가 내민 손을 무심코 거절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아이가 도움 요청하기를 포기하지 않도록 오늘 다시 한 번 아이의 무언의 속삭임에 귀기울여 보자.
윤다옥 한성여중 상담교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노워리 상담넷 소장
윤다옥 한성여중 상담교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노워리 상담넷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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