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등교를 하고 있는 서울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 한겨레 자료 사진
서울의 한 사립고등학교의 고아무개(61) 교사는 정년이 1년 남았지만 명예퇴직(명퇴)을 신청해서 이달 말 교단을 떠날 예정이다. “요즘 공무원 연금 탓에 동료 교사들의 명퇴가 늘었다는데 그건 내겐 부차적인 이유다. 나는 정부가 추진하는 방식대로 연금제도가 바뀌어도 연금액이 깎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갈수록 학생 지도가 어려워져서다. 자는 학생을 깨우면 ‘왜 방해하냐’며 오히려 화를 낸다. 그냥 편히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 교사가 밝힌 명퇴의 변이다.
명퇴를 신청하는 교사가 지난해부터 급증하고 있다. 장기 근속 교사들의 대거 유출은 상대적으로 젊은 교사들이 교단에 새로 들어설 여지를 넓히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선 그 빈자리를 기간제 교사로 채워 오히려 문제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0일 교육부가 밝힌 올해 명퇴 신청자는 1만2591명이다. 2013년까지 미미한 증가세를 보이던 명퇴 신청 교사는 지난해(1만3413명)엔 전년에 견줘 두배 가까이 급증했다. 그러나 제한된 예산 탓에 교육청은 신청자의 절반가량만 수용하고 있다. 공사립 교사 모두 경력이 20년을 넘기면 명퇴를 신청할 수 있다.
교사들의 명퇴 신청이 증가한 근본적인 이유는 갈수록 교사의 권위가 떨어지고 학생 지도가 어려워지는 데 있다는 분석이 많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게 지난해 공론화된 공무원연금 축소 추진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12월 말 낸 보고서에서 “2014년에 교원 명예퇴직 신청 인원이 급증한 것은 공무원연금제도 개편 추진 등 정부 정책과 큰 관련이 있으나, 2009년부터 지속적으로 신청 인원이 증가한 데에는 교권 하락과 학생 생활지도의 어려움 등 학교 내의 문제들과 연계돼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짚었다. 김성기 협성대 교육대학원 교수가 2012년 벌인 조사에서도 응답 교사(371명)의 73%가 ‘학생 생활지도의 어려움 증가’(복수 응답)를 꼽았다. ‘연금개혁에 대한 불안감’(25.6%)은 4순위였다. 실제 연금 개편이 이뤄지더라도 장기근속자는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연금 개편 추진을 주요한 명퇴 사유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교사들의 퇴직 증가는 일선 학교에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드리우고 있다. 우선 신규 교사를 채용할 여력이 늘고 있다. 지난해 2월엔 교원 임용 시험을 통과하고도 발령을 받지 못한 초등학교 교사가 1087명에 이르렀으나, 올해엔 이런 적체 현상이 줄었다. 김진우 좋은교사운동 대표는 “명퇴 교사 증가는 교사의 고령화가 심각한 서울 강남 지역 등에 열정있는 젊은 교사들이 진입할 수 있어 세대교체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하지만 공립 중·고교에선 교원 임용 시험을 통해 뽑는 신규 정교사가 정년·명예퇴직 교사보다 적어, 결원을 기간제 교사로 메우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2월 정년·명예퇴직자가 661명이지만 중등교사는 386명만을 뽑아 부족한 275명을 기간제 교사로 채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김동석 교총 대변인은 “청년실업 해소 차원에서도 고용이 불안정한 기간제 교사보다는 정규 교사를 많이 뽑아야 한다. 정규 교사가 많아지면 그만큼 연금 기반도 튼튼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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