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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선생님이 아프면 교실 전체가 병이 납니다

등록 2015-02-02 19:51수정 2015-02-03 14:02

2013년 5월14일 강원학생교육원에서 열린 교직원 힐링캠프에 참가한 선생님들이 지친 마음을 치유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3년 5월14일 강원학생교육원에서 열린 교직원 힐링캠프에 참가한 선생님들이 지친 마음을 치유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함께하는 교육] 교사들의 ‘마음 상처 치유법’
서울의 한 고교에 근무하는 이아무개 교사는 지난 겨울방학식날 황당한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우리 아이는 97점을 받았고, 옆에 아이는 97.5점을 받았는데 왜 두 아이 등급이 다르냐”는 학부모 항의 전화였다. “둘 다 열심히 공부했다는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교육부에서 정한 규정대로 등급이 매겨지는 거라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교사는 이렇게 설명했지만 부모는 떼를 쓰기 시작했다. 결국 “교육부에 민원을 넣어보라”는 말로 정리가 됐지만 마음은 불편했다. 부모는 이 교사를 ‘아이를 돌보고 가르치는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행정과 민원을 빠르게 처리해줘야 하는 사람’으로 대했다.

이 교사는 “나만 이런 어려움을 겪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방학 때 서울시교육청 산하 교권보호지원센터에서 실시한 ‘교사가 행복한 소통·공감·힐링캠프’(이하 힐링캠프)에 참여하며 “‘내 경우는 아무것도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겨울방학 ‘힐링연수’ 참여하며
속내 드러내고 눈물 쏟는 교사들
돌봄 역할 기대하는 부모 늘고
우울 성향 보이는 학생들도 많아져
‘행정 업무자’로 취급받는 상황 속
‘내가 왜 교사를 할까?’ 자괴감도
행복한 교실 위해 학교 민주화 절실

‘선생님도 힘드시군요’ 상처 공감하는 교사들

1박2일 동안 진행한
2013년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실시한 아트힐링스쿨 운영사업 3차 교사워크숍에서 교사들이 둘러앉아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제공
2013년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실시한 아트힐링스쿨 운영사업 3차 교사워크숍에서 교사들이 둘러앉아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제공
캠프는 교사들이 직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학생·학부모와 잘 소통할 수 있게 돕자는 취지로 마련한 프로그램이었다. 서울 시흥초 민정애 교사는 “교사들끼리 둘러앉아 각자 겪은 스트레스 상황을 털어놓았던 시간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전 교직 35년째인데 요즘 아이들은 확실히 예전 아이들과는 달라요. 뭘 함께하려고 하면 ‘왜요? 왜 해야 하죠?’ 이렇게 따집니다. 앞에선 티를 안 내지만 돌아서서 눈물이 핑 도는 순간이 많아요. 선생님을 막 대하는 부모님들도 많아졌고요. 자기 경험을 이야기하다 감정이 격해져 펑펑 우는 후배 교사들도 많았습니다. 이렇게 마음 털어놓을 기회가 많지 않거든요.”

방학 때 교사들은 교육 목적의 연수를 받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에는 교사들을 치유하자는 뜻으로 마련한 연수가 부쩍 늘었다. 그만큼 상처받은 교사들도 많아졌고, 이 상처에 대한 관심도 많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다.

힐링캠프를 진행했던 정신건강심리상담기업 다인시엔엠(C&M)의 홍영민 상담전문가는 이번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깜짝 놀랐다. 캠프 때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스트레스가 별로 높지 않은 걸로 나왔는데 막상 현장에서 스트레스 지수 검사를 해보니 일반 기업체에 다니는 이들보다 높게 나왔기 때문이다. 홍씨는 “선생님이라는 이름 때문에 ‘난 괜찮다’고 속으로 삭이면서 받은 스트레스가 누적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2013년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실시한 아트힐링스쿨 운영사업 3차 교사워크숍에서 교사들이 둘러앉아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제공
2013년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실시한 아트힐링스쿨 운영사업 3차 교사워크숍에서 교사들이 둘러앉아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제공
‘난 교사니까 문제 드러내면 안 된다’는 강박

‘나는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쳐야 하는 선생님이니까 나약해져선 안 돼.’ 교사들은 스스로 이렇게 말하며 ‘가면’을 쓰고 사는 경우가 많다. <교사 상처>를 쓴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늘 똑바로 잘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식의, 교사라는 직업이 주는 원천적인 스트레스가 있다”며 “그런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소명의식을 품고 교단에 섰지만 교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어렵게 느껴지는 순간이 오고, 그 과정에서 자기도 모르게 받는 상처들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과거에도 교사들은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그 정도는 더 심해지고 있다. 아이들과 부모들이 종잡을 수 없이 변했다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지난 1월17일, 티처빌 원격교육연수원이 마련한 ‘쫌 놀아본 선생님이 말하는 노는 애들의 진짜 속내’라는 주제의 세미나에는 100명도 넘는 많은 교사가 참여했다. 강사로 나섰던 인천 능내초 김택수 교사는 “옛날에는 아이들이 무리지어 잘 놀았다. 하지만 핵가족화가 된 요즘에는 친구를 사귀거나 주변 사람과 소통하기를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많아졌다”며 “이런 상황에서 생활지도의 어려움도 커졌다”고 했다.

부모·친구와 소통이 어려워진 아이들은 우울증을 겪으며 과거와는 다른 문제행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과거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떠들거나 엎드려 자는 수준에서 교사를 힘들게 했다면 요즘 아이들은 ‘수업이 잘 진행되는 모습을 못 보겠다’며 갖가지 방해 행동을 하고 교사를 지치게 한다.

세미나에서 또 한 사람의 강사로 나선 광주 불로초 서준호 교사는 “변화된 부모들의 모습도 교사에게 상처를 주는 요소”라고 손꼽았다. “부모들은 과거의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들입니다. 학교에 대한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내가 누리지 못했던 걸 지금의 학교는 내 아이에게 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일종의 ‘학교 판타지’가 있습니다. 교사가 아이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는 있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아이 감정의 토양에 좋은 먹이를 줄 사람은 부모인데 그 역할까지 교사에게 요구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때론 아이가 가정에서 부모로 인해 얻은 분노를 교사에게 표출하는 일도 일어나고요.”

서울 천호중 송형호 교사는 요즘 교사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으로 세 가지를 손꼽았다. 아이의 성장 기반인 가정이 흔들리고, 교사를 향한 사회적 요구가 늘었다는 것, 문제가 터지면 임시방편식으로 나오는 교육정책 때문에 행정업무가 폭주한다는 것, 우울정서가 심해진 아이들이 문제 행동을 지속적으로 일으킨다는 것 등이다.

교사들은 특히 자신을 ‘아이를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행정업무 처리자’로 대접할 때 많이 힘들어한다. 전남교육연수원, 전남교육청, 광주교육청,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등에서 교사 대상 춤명상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강혜림 지도사는 “교사들은 자신이 단지 지식만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들의 삶의 여러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런 지위와 역할은 무너지고 ‘지식전달자’나 ‘행정처리자’로 여겨질 때 크게 상처받는 것 같다”고 했다. 강 지도사가 교사들과의 워크숍 때 ‘치유받는 사람’이면서 ‘치유해주는 사람’으로서 역할을 동시에 강조하는 이유다.

이런 ‘교사 상처’는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서준호 교사는 “교사가 행복하지 못하면 반 아이들의 상황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다”며 “교사 자신이 어렸을 때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도 중요하고, 교직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왔는지에 따라 교실 모습도 달라진다”고 했다. “과거에 교사가 분노상황을 어떻게 해결했느냐에 따라 지금 현재 자신이 맡고 있는 교실에서 문제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도 달라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도 모르게 쌓인 상처를 어떻게든 치유해야 합니다. 관리자와의 갈등 여부도 매우 중요합니다. 교장이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교사를 도구로만 여긴다면 교사는 무력해지고, 마음에 상처가 자리할 수밖에 없거든요.”

해외선 교사 스트레스 예방 관심도 늘어나

외국의 경우, 교사가 받는 직무 스트레스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예방 사례도 나오고 있다. 일본은 2011년 도쿄도교육위에서 공립학교의 교직원 6만명을 대상으로 스트레스 검사를 실시해 교사 마음의 병을 조기에 발견하는 작업을 했다. 일본에선 전국적으로 일에 쫓기거나 학부모 응대 등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 휴직하는 교원이 늘어나는 가운데 도쿄는 특히 교원 휴직 증가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은 2010년 라인란트팔츠주 교육부가 교사의 노동보호와 건강지원을 개선하고, 학교의 질을 향상시키자는 뜻으로 교사 및 교육관계자의 건강을 위한 연구소를 마인츠 대학병원에 설립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교권침해 상황 등이 발생했을 때 교육청에 있는 교권 관련 상담센터 등의 창구를 이용할 수 있지만 교사의 ‘번아웃증후군’(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던 사람이 신체적·정신적인 극도의 피로감으로 인해 무기력증, 자기혐오, 직무 거부 등에 빠지는 증상)을 사전에 살피고 예방하는 차원의 창구는 없는 현실이다. 서준호 교사는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치유센터도 필요하고, 학교 안에 관리자가 개입할 수 없는 독립적인 교사 대상의 상담 창구도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 문화의 근본적인 개선 없이 교사가 받는 스트레스가 사라지긴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송형호 교사는 ‘교사 치유’와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는 “교육과정 외 업무금지법 추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느 날은 사교육비를 줄여야 한다며 방과후 업무가, 어느 날은 인성교육이 중요하다며 인성교육 관련 업무가 ‘폭탄’처럼 떨어진다”고 했다. “행정 업무가 기존 교육과정 속으로 차분하게 들어오지 않으면 교사들은 정작 수업에 집중을 못해 그야말로 ‘멘붕’이 옵니다. 그러면 ‘내가 왜 교사가 됐을까?’라는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교사와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를 위해서는 ‘학교의 민주화’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김현수 교수는 “아직까지 남아 있는 우리나라 학교의 권위적인 교장문화와 교무회의 등 교사들을 지치게 하는 제도들이 개선돼야 한다”며 “학교와 교사 사회가 민주화가 되면서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소통을 하면 교사들이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변화 아래 교사들 스스로 동료들과 연대하며 건강한 소통을 하려는 문화를 만들려고 애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마음 챙기며 아이들과 새교실 꾸려보세요”

새학기 앞두고 ‘교사의 마음 힐링’ 돕는 책

‘제발 올해는 아이들, 학부모와 함께 웃으며 잘 보내고 싶다!’ 교사들도 학생이나 학부모처럼 ‘새 학기 증후군’을 겪는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어떻게 하면 더 단단한 마음으로 무장한 교사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웃는 교실을 만들 수 있을까? 새 학기를 맞는 교사들 마음을 보듬어주고, 다 함께 웃는 교실을 만들도록 돕는 책들을 소개한다.

교사 상처
김현수 지음
에듀니티 펴냄

교사에게 협력자로서의 가정이나 가정교육이 사라졌고, 학교에서 ‘배움’을 찾으려는 학생들도 줄어들고 있다. 교육정책은 일관성 없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런 환경에서 교사의 내면은 무너진다. 김현수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쓴 <교사 상처>는 오랫동안 현장의 교사들과 소통하며 지내온 김 교수가 전쟁터 같은 교육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교사들이 자신의 내면을 성찰해볼 수 있도록 돕는다. ‘상처입은 치유자’인 교사가 어떻게 하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지를 고민한 책이다.

서준호 선생님의 마음 흔들기
서준호 지음
지식프레임 펴냄

초등학교에 재직 중인 서준호 교사는 대학원에서 무용연극치료를 전공하고 학생들과 교사, 학부모를 대상으로 ‘교실 힐링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이 책은 서 교사가 그동안 학생들과 함께 꾸려온 치유의 교실, 연극 놀이, 교실 놀이 결과물들을 소개한다. 서 교사의 실패담을 바탕으로 “교사가 행복하지 않으면 행복한 교실은 완성될 수 없다”는 메시지도 전해준다. 서 교사는 블로그(blog.daum.net/teacher-junho)를 통해서도 치유의 교실을 위한 정보도 나누고 있다.

교사, 수업에서 나를 만나다
김태현 지음
좋은교사 펴냄

“수업이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나오지만 그 대안으로 나오는 것들은 대부분이 교사를 경쟁과 평가의 장으로 밀어넣는다. 좋은교사수업코칭연구소 부소장을 맡고 있는 김태현 교사는 이 책을 통해 진정으로 위로와 성찰이 필요한 대상은 ‘교사’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교사의 내면을 일으켜 세우는 방법으로 ‘수업 성찰’을 이야기한다. 수업 성찰이란, 교사가 자신의 수업을 반성하고 동료 교사들과 그에 대해 함께 논의하며 스스로 어떻게 성장할 것인지를 가늠해보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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