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이 ‘알리바바’(알바권리, 바로 지금, 바로 여기) 캠페인을 벌이며 최저임금을 올려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제공
열악한 청소년 노동 현실
청소년들 방학중 알바 급증속
배달대행·택배상하차·호텔연회장 등
노동강도 세고, 간접고용 늘어
사용자 불분명, 부당행위 일쑤
잘릴까 두려워 항의조차 못해
청소년들 방학중 알바 급증속
배달대행·택배상하차·호텔연회장 등
노동강도 세고, 간접고용 늘어
사용자 불분명, 부당행위 일쑤
잘릴까 두려워 항의조차 못해
“(청년들의 알바 환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젊어 고생하는 것도 사회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얼마 전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이 이른바 ‘알바 발언’으로 젊은이들의 큰 공분을 샀다. 요즘 청년은 물론 청소년들도 알바를 많이 한다. 2012년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1년 청소년 아르바이트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청소년의 노동 경험률은 29%로 나타났다. 학교 밖 청소년의 경우 62%로 그 비율이 더 높았다.
겨울방학 등을 이용해 일하는 청소년은 더 늘고 있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하다. “학생이 공부는 안 하고 일은 무슨”이라거나 “벌써부터 돈맛을 알아서 용돈 벌이나 한다” 등이다. 하지만 청소년 노동자들은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는 ‘고생’보다는 어른들에게 이용당하며 그야말로 ‘개고생’만 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출간된 <십대 밑바닥 노동>을 보면 청소년들의 노동현장 실태가 고스란히 나온다.
“알바 구할 때 청소년이라고 하면 노는 애다, 막 다뤄도 되겠다 이런 식으로 보는 시각이 있어요. 청소년 알바한테는 돈을 줘도 선심 쓰듯이, 용돈 주듯이 주고요.”
“사장이 ‘너 하루에 12시간 일하면 안 되는 거 알고 있지? 근로감독관이 오는 날은 나오지 말거나 창고에 들어가서 자재 정리하고 있으라’고 하더라고요.”
“한 달 전에 주말에 미리 쉬겠다고 이야기했는데 전날 전화해서 무조건 나오라고 해서 안 갔어요. 월요일에 출근했는데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욕을 해서 눈물이 날 정도로 억울했어요.”
이 책의 공동저자 중 한 명인 이수정 공인노무사는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에서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과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이씨는 “단체에서 2005년부터 현장실습 실태조사를 해오고 있다. 저임금 지급이나 건강권 침해는 여전한 가운데 몇 년 사이 변화들이 있다”며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 알바 고용 실태는 많이 알려졌지만 배달 대행이나 택배 상하차, 호텔 연회장 알바 등은 새로운 형태의 문제점을 낳고 있다”고 말했다.
청소년이 많이 하던 편의점, 주유소, 패스트푸드점 알바 자리를 청장년층이 차지하면서 청소년들은 고용도 불안정하고 더 험한 환경에 있는 ‘밑바닥 노동’으로 떠밀렸다. 가장 큰 문제는 고용 형태 자체가 간접 고용 형태로 바뀐 것이다. 배달 대행도 개인사업자로 분류되고 호텔 연회장도 중간에 용역알선업체가 끼어 사용자가 불분명하다.
이 노무사는 “일을 시킨 사람을 사용자로 보는 게 맞지만 법에서는 중간 알선 전문 업체나 직접 일을 지시한 이들의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예전에는 임금을 못 받으면 사장을 찾아가 내놓으라고 따졌다면, 지금은 본인을 고용한 사용자(사장)가 누구인지부터 따져야 하는 지경”이라고 설명했다.
배달 대행업체 노동자도 개인사업자로 취급하다 보니 부당노동행위를 겪어도 민사소송을 할 수밖에 없다. 실제 인천의 한 배달 대행업체에 근무했던 청소년 노동자들이 “업체 대표자가 근로기준법을 위반했다”며 노동청에 진정을 넣었다. 하지만 노동청은 “해당 업주와 오토바이 배달 청소년들이 고용주와 고용인의 종속 관계가 아니다”라며 사건을 종결시켰다. 청소년 노동자가 배달 대행업체에 오토바이 대여료를 내고, 배달 콜을 소개받아 업체 음식을 직접 사서 배달한 뒤 수수료를 챙기기 때문에 자영업자라는 것이다.
상황이 이럼에도 현재 청소년 노동과 관련한 노동정책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정부가 하는 것은 단편적인 실태조사, 형식적인 근로 감독과 홍보 활동, 일회적인 노동인권 교육 정도가 전부다. 현행 법률에는 만 18살 미만인 청소년 노동자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부모나 후견인 등의 보호자 동의서가 필요하다고 나와 있다. 연소자 법정근로시간도 정해져 있지만 현장에서는 무의미하다. 게다가 택배 상하차나 배달 대행 알바 등은 대부분 야간·주말 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장시간 일한다.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아서 근로시간이나 최저임금 등 기본적인 노동법을 지키지 않는 사업자도 허다하다.
또한 청소년 노동에서는 ‘꺾기’나 ‘수도꼭지 고용’ 등의 편법도 자주 이뤄진다. ‘꺾기’는 채용 당시 이야기했던 근무시간과 달리 손님이 없을 때 매장 밖으로 내보내 쉬게 하거나 조기 퇴근을 시키는 걸 말한다. 이럴 경우 임금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짧은 시간에 동일한 일을 해야 해서 노동 강도가 세질 수밖에 없다.
‘수도꼭지 고용’은 필요할 때만 노동력을 가져다 쓰고 일이 뜸해지면 내쫓아버리는 고용 방식이다. 수도꼭지처럼 필요할 땐 틀고 불필요할 땐 잠그는 고용 방식을 비꼰 말이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노동법에서 인정하는 월차나 퇴직금도 받을 수 없고 언제 잘릴지 몰라 불안하다. 청소년 노동자들은 관련 법을 자세히 모르고 있거나 법을 알더라도 고용주에게 따지다가 잘릴까봐 제대로 말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고용노동부는 2011년 ‘안심알바신고센터’를 만들어 청소년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장에서 노동관계법을 위반하거나 근로조건 등 부당한 처우를 받았을 때 신고할 수 있도록 했다. 특성화고나 대학교, 청소년상담복지센터는 물론 청소년 민간단체를 거점별 알바신고센터로 지정해 운영 중이다. 2014년 9월 기준으로 전국에 251개소가 설치돼 있으며 당시 신고건수는 76건, 상담받은 청소년은 594명이었다.
고용부 관계자는 “대부분 소액사건이 많아서 전화상으로 조사하고 당사자 진술이 필요한 경우는 출석하게 된다”며 “수업시간 외 학생이 편한 시간대에 조사받을 수 있게 미리 조정한다”고 설명했다. 신고는 지역에 위치한 안심알바센터에 전화하거나 고용노동부 누리집(www.moel.go.kr) 민원마당에서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안심알바신고센터 운영이 잘 안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 노무사는 “센터로 신고를 해도 기존 방식대로 진정 절차를 거치거나 담당자 역량에 따라 일처리가 들쭉날쭉하다. 홍보도 미흡해 모르는 학생도 많다”고 지적하며 “예산을 투입해 적극 알리고 실질적인 성과를 내도록 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무엇보다 청소년을 노동자로 인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형편이 어렵든 어렵지 않든 무조건 ‘왜 일하냐’고 묻고 폭언과 무시를 일삼는 것 자체가 그들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그동안 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만 강조해 왔는데 진로교사나 사업주를 대상으로 한 제대로 된 노동법, 노동인권 교육이 절실하다.”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