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어린이집.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음.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민간 어린이집에 만 3살 아이를 보내고 있는 오아무개(35)씨는 최근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갔다 황당한 일을 겪었다. 어린이집 원장이 서울시가 올해 실시하려는 특별활동비(이하 특활비) 개선안에 대해 반대 서명을 해달라고 요청을 했기 때문이다. 오씨는 “어린이집에서 꼭 필요하다며 서명해달라고 하는데 안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혹시라도 아이에게 불이익이 있을까봐 울며 겨자먹기로 서명을 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매달 보육비 외에도 특활비 10만원을 내고 있는 오씨는 특활을 하지 않을 경우 아이가 방치될 수 있어 어쩔 수 없이 특활을 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그는 “서울시가 과도한 특활에 대해 칼을 빼든 것에 대해 찬성한다”며 “어린이집에서 부모들에게 은근히 서명을 강요하고 그것이 마치 부모들의 요구인 것처럼 말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송파 지역 부모들이 드나드는 온라인 까페에서도 9일 한 어린이집에서 보내온 공문과 반대 서명 요구에 분노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한 누리꾼이 공개한 이 어린이집의 공문을 보면 “서울시의 정책은 학부모의 비용 부담에 초점을 둔 행정이기에 어린이집은 2월부터 특별활동 및 현장학습, 차량운행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며 학부모들에게 서울시에 항의 전화를 하고 반대 서명을 할 것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한 학부모는 “현장학습과 셔틀 중단이라는 강수를 두고 부모에게 서명을 받겠다는 의도”라며 “서명을 해야한다고 협박 받는 느낌이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많은 부모들은 “특별활동을 하면 교육의 질이 높아지는지 의문이다” “특활과 상관없는 차량을 뺀다는 것은 시의 정책에 반대하라는 무언의 압력이다” “아이들을 인질로 협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댓글을 달며 분노했다.
그동안 어린이집의 과도한 특활비에 대한 문제제기가 꾸준히 있어왔다. 교육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취합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시 월평균 특활비는 8만7천원에 이른다. 특활비를 결정하는 기준인 수납한도액은 구마다 다른데, 강남구 민간·가정 어린이집에 다니는 유아는 성동구·강동구 국공립 어린이집에 다니는 유아에 비해 최대 3.8배나 더 많은 특활비를 지출해야 하는 등 지역적 불균형 문제도 심각했다. 따라서 학부모 단체나 교육단체에서는 과도한 특활비를 낮추고 지역적 불균형을 해소할 것을 요구해왔다. 장미순 참보육을 위한 부모연대 운영위원장은 “민간 어린이집 원장들은 특활 실시하는 이유에 대해 부모들이 요구한다고 주장하지만, 다수 학부모들은 과도한 특활을 부담스러워 한다”며 “보육 정책이 이해관계자들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학부모들도 자신있고 분명하게 의사를 표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이들이 볼모가 되어 부모들이 어린이집의 불합리함에 자신들의 의견을 표명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편, 김창현 서울시 보육기획팀장은 “그동안 각 자치구별로 자율적으로 정하던 특별활동비 수납한도액을 지역적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고 공보육을 살리기 위해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을 보육정책위에서 예비결정을 한 상태이며, 의견 수렴을 거쳐 최종적으로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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