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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스트레스 풀려고 시작한 ‘낙서질’로 전교생 웃었다

등록 2014-12-29 19:36수정 2014-12-30 08:35

지난 19일 대구 도원고등학교 학생들이 낙서장 <낙장불입>을 펴들고 웃고 있다. 뒷줄 맨 오른쪽은 낙서대회를 열고 낙서장을 편집한 문웅열 교사.
지난 19일 대구 도원고등학교 학생들이 낙서장 <낙장불입>을 펴들고 웃고 있다. 뒷줄 맨 오른쪽은 낙서대회를 열고 낙서장을 편집한 문웅열 교사.
대구 도원고 낙서장 ‘낙장불입’
수업시간 낙서하는 학생들 보며
교사가 “창의력 재발견” 대회 제안
작품 140점 가운데 50점 뽑아 책으로
공부·진로 등 다양한 고민 담아내

‘이 낙서장에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함’

대구시 달서구의 도원고등학교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50쪽짜리 낙서장 <낙장불입> 표지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낙장불입’이 ‘한번 낸 패는 다시 물리지 못한다’는 뜻이잖아요. ‘한번 펴면 놓을 수 없다’는 의미를 담아 낙서장 이름을 지어 봤어요.” 글귀를 쓰고 낙서장의 이름을 지은 도원고 2학년 추민영양의 말이다.

추양의 말처럼 <낙장불입>을 펴면 쉽게 덮기 힘들다. ‘내가 선생님이라면 칠판에 무엇을 판서할까?’(13쪽, 1학년 최지영), ‘오엠알(OMR) 답안지가 새로운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하다’(29쪽, 2학년 전지윤), ‘원하는 음료, 과자가 원하는 가격에 판매되는 자판기’(40쪽, 2학년 윤지민) 등 낙서를 하는 사람이 자유롭게 페이지를 채울 수 있는 기발한 낙서들이 많기 때문이다.

<낙장불입>은 교내 낙서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의 작품 중 일부를 간추려 묶은 우수 작품집이다. 올해로 두 번째 개최한 교내 낙서대회는 1, 2학년을 대상으로 지난 10월17일부터 27일까지 열렸다. 이 대회는 참가 희망자들이 낙서대회 양식을 받아 자유롭게 낙서한 뒤 교무실로 제출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대회를 개최한 인성인문사회부의 교사들은 학생 127명이 제출한 약 140점의 작품들 중 창의성, 독창성이 돋보이는 20점의 낙서를 선정해 학교 복도에 붙였다. 그리고 1, 2학년 학생들 가운데 100명을 무작위로 뽑아 학생 심사단을 꾸리고 직접 마음에 드는 낙서 작품 두 개에 스티커를 붙여 심사하게 했다.

출품된 작품들에는 대부분 시험이나 수업, 진로 등 학생들의 평소 고민들이 녹아 있다. 1학년 노예진양은 종이에 카카오톡 대화창을 차용한 낙서(수업시간에 몰래 원하는 상대와 ‘까톡’하기)와 학교 시험지와 오엠알 카드 디자인을 차용한 낙서(시험지에 내 맘대로 시험문제를 출제해보자)로 대상을 받았다. 노양은 “시험에서 100점을 받아본 적이 별로 없다. ‘내가 출제한 문제라면 쉽게 100점 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낙서를 했다. ‘까톡’ 낙서장은 고등학교 올라오면서 핸드폰을 2G로 바꿔 카톡을 쓸 수 없게 돼 종이 위에서라도 ‘카톡질’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그린 것”이라 말했다.

대회를 열고 <낙장불입>을 제작해보자는 아이디어는 인성인문사회부장인 문웅열 국어교사가 냈다.

“수업 중 낙서를 하는 아이들을 보니, 낙서를 하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자신의 생각도 드러내는 것 같아 교내 대회로 열어봤다. 학생들 반응도 긍정적이고 교사 입장에서도 좋다. 평소 학생들이 하는 생각을 이해하고, 아이들의 창의력도 재발견할 수 있다. 어떤 선생님은 낙서장을 펴낸 뒤 마음에 드는 낙서의 원작자 학생에게 사인을 받았다.”

문 교사는 수상작을 비롯해 참신한 낙서 50점을 골라 낙서를 그린 학생들에게 밑그림을 부탁했다. 학생들이 다시 그린 낙서의 밑그림을 엮어 도원고 학생들 모두가 즐겁게 할 수 있는 낙서장 1500부를 펴냈다. <낙장불입>의 속지 첫 장에 있는 ‘낙서다짐’ 문구는 문 교사가 직접 써넣은 것이다.

‘지금부터 나는 공부할 때나 심심할 때, 틈틈이 정신줄을 놓고 마음을 비우고 멍 때리다가, 스마트폰은 멀리 집어던지고 이 낙서장에 볼펜이 뽀사지도록 열나게 낙서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도원고 학생들이 낙서장 <낙장불입>에 낙서한 모습들.
도원고 학생들이 낙서장 <낙장불입>에 낙서한 모습들.
12월 초 낙서장을 받은 도원고 학생들의 가장 큰 변화는 혼자 스마트폰을 가지고 노는 시간이 줄고, 친구들과 함께 낙서하며 대화하는 시간이 늘었다는 것이다. 2학년 전지윤양은 “스마트폰을 갖고 놀 때는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는 기분이었는데, 낙서를 하면 여가시간을 두세 배로 활용하는 느낌이다. 손글씨 낙서로 한 페이지를 채웠다는 성취감도 있다”고 말했다. 2학년 이하경양은 “낙서장과 펜만 있으면 친구들과 함께 웃으며 빙고놀이를 하거나, 서로의 낙서를 비평하는 등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낙서장에 낙서를 하다 보면 기분도 조금 풀리는 것 같다”며 웃었다.

학생들은 또래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로 만든 낙서장을 새롭게 활용하기도 한다. 2학년 김효정양은 친한 친구와 교환 낙서장을 쓰기로 했다. 선생님의 얼굴을 그려보자는 페이지에 친구가 좋아하는 선생님의 얼굴을 그리고, 먹고 싶은 것들을 그려보라는 페이지에는 친구가 좋아하는 음식을 그려 넣는다. 지난 19일 김양은 “크리스마스 때까지 낙서를 다 채워 서로에게 선물하기로 했다”며 웃었다. 2학년 윤지민양은 “낙서장이 재미있어 좋은데 오히려 틀에 맞춰져 있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럴 땐 그냥 낙서장을 새로 꾸민다. ‘화려한 스타킹을 그려보자’는 페이지에는 빈 다리 그림밖에 없는데, 그 그림에 이어 몸통을 그려보는 식이다”라고 말했다.

김금분 도원고 교장은 “학생들이 낙서장에 낙서를 하면서 자신의 고민을 건강하게 해소했기 때문인지 전보다 밝은 모습으로 학교 생활을 하는 것 같아 보기 좋다”고 말했다.

<낙장불입>의 뒤표지에는 ‘이 낙서장에 대한 저작권은 도원고 학생들에게 있으며, 무단복제 및 사용을 열나게 환영합니다’라는 글귀가 있다. <낙장불입>을 보고싶은 사람은 도원고 인성인문사회부(053-231-5940)로 연락하면 된다.

글·사진 정유미 기자 ymi.j@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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