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 수송초등학교 4학년 9반 아이들이 배성호 교사와 함께 직접 만든 안전지도를 들고 있다. 정유미 기자
수송초 4-9 ‘어린이 안전지도’
우리에게 위험한 장소 어딜까
초등생들이 학교 주변 찾아가며
어린이 위험·안전지역 지도 만들어
구청장에게 도움 제안 편지쓰기 등
지역문제 해결에 직접 나서
우리에게 위험한 장소 어딜까
초등생들이 학교 주변 찾아가며
어린이 위험·안전지역 지도 만들어
구청장에게 도움 제안 편지쓰기 등
지역문제 해결에 직접 나서
“이곳엔 길을 잃었거나 이상한 사람이 따라올 때 들어갈 수 있는 ‘아동안전지킴이집’ 표시가 되어 있고요. 이 길을 따라가면 있는 여기가 학교예요. 학교 뒤에 택시 회사가 있거든요. 차들이 나오는 길에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거울이 있는데, 저희는 나오는 차가 안 보여서 피할 수가 없어요. 주의 표시도 없고요. 친구들이 차에 치일 위험이 있어서 ‘위험한 곳’이라는 뜻으로 포스트잇을 붙여뒀어요.”
서울 강북 수송초 4학년 9반 이원형군이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들은 지난 11월 약 2주 동안 학교 주변을 돌며 어린이에게 위험한 지역을 조사해 지도에 표시하는 ‘안전지도 만들기’ 활동을 했다. 지난해 이 활동을 처음 시작한 4학년 선배들의 지도를 활용했다. 우드록 위에 붙인 학교 주변 위성지도에 위험하거나 안전한 장소에 대한 사진이나 설명을 포스트잇에 써 붙였다. 지난 1년 동안 동네가 얼마나 안전해졌는지, 새로운 위험지역이 발생하진 않았는지 등을 확인해 2014년 판 ‘수송초 주변 안전지도’를 완성했다.
학생들은 요구르트 아주머니,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우체부 아저씨 등 동네 주변 구석구석을 잘 아는 어른들을 인터뷰했다. 경찰서 문을 열고 들어가 ‘동네에서 어린이 사고가 많이 나는 지역이 어디냐’고 묻기도 했다. 모둠별로 진행한 안전지도 만들기 활동에는 배성호 담임교사와 학부모들이 인솔자로 함께했다.
학교 안전지도는 여성가족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하는 ‘지역과 학교 연계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다. 초등 4학년 2학기 사회 교과서의 ‘지역의 문제 해결’ 편에 수록된 내용이기도 하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배 교사는 현재 2년째 4학년을 맡고 있다. 지난해 여성가족부와 강북구청의 지원을 받아 담임반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둔 안전지도를 올해 ‘업그레이드’했다. 배 교사는 “아이들이 교과서의 내용을 형식적으로 배우기보다, 자기가 사는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기회를 통해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마련한 활동”이라고 설명했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평범한 장소이지만 아이들 시선으로 보면 위험한 장소일 수 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위험한 공간에 많이 노출되어 있었다. 쓰레기 분리수거장만 해도 분리수거가 제대로 안 되어 깨진 유리가 종량제 봉투 밖으로 나와 있을 경우, 아이들에겐 위험할 수 있다. 4학년 9반 아이들 24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14명이 ‘길에서 낯선 사람이 부르거나, 말을 걸어서 두려웠던 경험이 있다’고도 답했다. 어른들은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장소를 아이들은 불편하다고 느끼는 경우도 많았다.
“음악학원이랑 햄버거집 사이 골목길은 가로등이 없어 어둡고, 무단주차 된 차가 많아서 길이 좁다.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지기도 쉽고, 걸어가다가 차에 부딪힐 때도 많다.”
4학년 9반 24명의 아이들은 강북구청장에게 ‘택시회사 출입구가 위험하니 과속방지턱과 반사경을 설치해달라’는 내용으로 총 24통의 편지도 보냈다. 학급 아이들 모두 한 통씩 보낸 편지에 대해 강북구청 교육지원과에서는 ‘택시회사로 하여금 차고지에서 나오는 길에 과속방지턱을 설치하고, 운전자에게 안전교육을 실시하도록 하겠다’는 내용의 답신을 보냈다. 장현서양은 “구청장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답신이 아니라 아쉬웠지만 우리가 한 제안을 살펴보고 반영해 준다는 말에 뿌듯했다”고 말했다. 이 답신이 온 뒤 17일에는 박겸수 강북구청장으로부터 ‘안전하고 행복한 강북구를 위해 노력해준 어린이들이 고맙다. 겨울방학이 끝난 후 학교를 방문할 테니 함께 안전지도를 따라 학교 주변을 돌며 등굣길을 안전하게 만들어보자’는 내용의 답장을 받았다.
학생들은 안전지도를 만들면서 지역 곳곳의 ‘위험한 장소’가 어떻게 ‘안전한 장소’로 바뀌고 있는지도 계속 관찰한다. 배 교사는 “얼마 전 주말 저녁 아이들과 함께 지역을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선생님, 가로등이 더 밝아졌어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놀랐다. 관찰력도 놀라웠지만, 말을 하는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얼굴에 자신들이 스스로 지역의 변화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는 뿌듯함이 가득했다”고 했다.
아이들의 활동에 대한 교육현장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의 정석 교수는 ‘아이들과 함께 학교 주변의 안전지도를 만드는 일을 서울시의 마을공동체 지원사업과 연계해도 좋을 것 같다’는 조언도 해줬다.
안전지도 만들기는 끝났지만 학생들의 관련 활동은 계속되고 있다. 학생들은 안전지도를 만드는 과정을 신문으로 만들었다. 모둠별로 만든 ‘수송신문’에는 활동한 내용을 제3자의 관점으로 다시 곱씹어보거나, 이 활동을 할 때 주변 시민들이 어떤 반응을 했는지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4학년 9반 학생들은 활동 내용을 바탕으로 책을 만들고, 한 학년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정유미 기자 ymi.j@hanedui.com
안전지도 만들기 활동을 바탕으로 아이들이 직접 제작한 신문. 배성호 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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