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011년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상탄초등학교 교장으로 이 학교의 송병일(당시 54살) 교사가 뽑혔다. 교장 자격증이 없는 평교사가 교장이 된 건 ‘내부형 교장공모제’ 덕분이다. 당시 일부 학부모는 ‘교장 자격증 없는 교장을 반대한다’며 송 교장의 출근을 막기도 했다.

송 교장이 주도한 변화에 그를 반대하던 학부모까지 마음을 열었다. 송 교장은 매일 아침 학교 정문에 나와 웃는 얼굴로 학생을 맞았다. 중간·기말시험 대신 ‘성장 참조형 평가’를 실시했다. 각각의 학생에 대한 세심한 관찰 결과를 담아 매년 네차례 부모와 학생한테 ‘행복통지표’를 보냈다. 그는 ‘수업하는 교장’이었다. 5, 6학년을 대상으로 1년에 석달씩 직접 사회·역사 수업을 진행했다. 상탄초 3학년 자녀를 둔 아버지회 회장 이진권(43)씨는 “아이가 이 학교로 전학온 뒤 ‘학교 다니는 게 정말 재미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송 교장의 임기는 내년 2월까지다. 그는 연임을 요청하는 학부모들의 간절한 바람을 뒤로하고 “‘제2의 상탄초’를 만들겠다”며 학교를 옮기기로 했다.

내부형 교장공모제의 장점을 체험한 이 학교는 8일부터 교사와 학부모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학부모의 93.7%가 ‘다음 교장도 공모로 뽑자’고, 83%는 ‘교장 자격이 없어도 응모할 수 있게 하자’고 답했다. 이를 토대로 상탄초는 15일 경기도교육청에 내부형 교장공모제 학교 지정을 신청했고, 17일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다.

내부형 교장공모제는 평교사도 응모할 수 있게 해 승진 점수를 쌓아 임명되는 기존의 교장 임용 방식을 다양화하자는 취지로 2007년 도입했다. 그러나 2011년 이명박 정부가 시행령인 ‘교육공무원 임용령’을 고쳐 내부형 교장공모제를 신청한 자율학교의 15%만 교장 자격 미소지자한테 공모 기회를 주도록 제한했다. 홍인기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상탄초 교사)은 “내부형 교장공모제를 하는 자율학교는 전체 학교 중 15%가량이고, 다시 이 가운데 15%만 교장 자격증 없는 교사의 교장 지원이 가능하다. 교장 100명을 뽑는다면 2명가량만 교장 자격증 없는 교사가 될 수 있는 셈이다. 내년엔 경기도에선 3개교, 서울에선 1개교 정도가 이에 해당하리라 본다”고 말했다. 실제 교장 자격증 없이 교장이 된 교사는 전국에 12명뿐이다.

이런 사정 탓에 상탄초 아버지회 소속 학부모들은 9일 국민신문고(교육부 민원 게시판)에 “좋은 교장 선생님을 모시고자 하는 학부모들의 열망을 가로막는 시행령을 개선해달라”는 내용의 호소문을 접수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4월 “교장 자격증 미소지자 대상 교장 공모 학교의 비율을 대통령령으로 제한하는 것은 ‘교장 임용 다양화’와 ‘교장직 문호 개방’이라는 입법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내부형 교장공모제 학교의 50%까지 교장 자격증 미소지자 응모 가능 학교로 지정할 수 있게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