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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친구들 앞에 내 도전 스토리 펼쳐놓자 꿈이 더 단단해졌어요”

등록 2014-12-08 20:20수정 2014-12-08 22:25

지난 3일 서울 마포구 신수중 3학년 교실에서 김기현씨(청운대 1)가 ‘스텝x 프로젝트’의 연사로 나서 본인의 도전스토리를 들려주고 있다.
지난 3일 서울 마포구 신수중 3학년 교실에서 김기현씨(청운대 1)가 ‘스텝x 프로젝트’의 연사로 나서 본인의 도전스토리를 들려주고 있다.
[함께하는 교육] 또래 대상 연사로 나선 청소년들
“꿈이 뭐죠? 혹시 진로를 결정했나요?”

“하고 싶은 일이 없어요. 한마디로 ‘노답’(영어 ‘NO’와 국어의 ‘답’이 더해져 나온 말로 ‘해결 방법이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죠.”

“진로는 정했는데 부모님이 반대해 ‘대치 중’이에요.”

진로와 관련된 취재를 하며 만난 학생들의 반응이다. 특히 청소년들은 진로 결정의 ‘걸림돌’로 입시경쟁에 대한 압박과 주변의 시선을 꼽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청소년에게 ‘꿈찾기’는 중요하다. 내가 왜 공부를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해보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책이나 강연을 통해 롤모델을 찾고 영감을 얻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 특히 테드(TED)나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등 특정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인물들이 연사로 나서 자신만의 아이디어나 특별한 활동 등을 소개하는 강연 콘텐츠가 인기다. 교육관련 기업 ‘스텝’의 이정훈 대표는 여기에 착안해 테드의 주니어 버전 형식인 ‘스텝x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스텝은 청소년에게 기업가정신교육을 하는 기업으로 지난해 동그라미재단의 지원을 받아 ‘스텝x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기존 강연은 대부분의 연사가 어른들이지만 이 프로젝트에서는 청소년이 나와 또래들에게 직접 자신의 도전 스토리를 들려준다. 청소년 연사들은 자신이 했던 활동들을 되돌아보며 이를 정리해 구조화하고, 연사로 나서 발표를 하면서 꿈을 더 공고하게 다진다. 청중이 된 학생들은 또래 멘토의 이야기를 통해 진로찾기에 대한 동기 부여를 한다.

‘테드’ ‘세바시’ 등 인기 속
청소년이 직접 강연자로 등장
도전·실패 사연담 풀어놓는
‘스텝x 프로젝트’도 있어
발표 준비하며 꿈 여물고
청중에겐 새로운 도전 기회로

#1. 내 ‘실패 스토리’ 들어볼래?

지난 3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신수중. 3학년 2반 교실에서는 ‘스텝x 프로젝트’의 1기 연사 김기현(청운대1)씨가 나와 자신의 실패담을 들려줬다.

“저는 생활계획표를 쓰면서도 게임시간이랑 자유시간만 지키는 학생이었어요. 예고 입시에도 떨어졌고요. 치킨을 너무 좋아해서 다이어트에도 매번 실패했죠. 한마디로 인생이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는 고3 때 우연히 <빨간 클립 한 개>라는 책을 접했다. 캐나다에 사는 25살 백수 청년이 클립 한 개를 들고 ‘언젠가 이걸로 집 한 채와 바꾸겠다’는 목표를 세운 뒤 1년 만에 집을 장만하게 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청년은 블로그를 통해 클립을 더 크고 좋은 물건으로 교환하겠다는 물물교환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클립은 물고기 펜, 빨간 발전기 등의 물건을 거쳐 최종 집 한 채와 교환됐다. 이 이야기를 접한 김씨는 ‘재밌겠다. 나도 한번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책에 나온 방식을 본떠 ‘행복전달 프로젝트’(이하 행달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페이스북에 페이지(facebook.com/passonhappy)도 만들었다. 책 속 청년이 자신을 위한 물물교환을 했다면 김씨는 ‘남에게 도움이 되는 기부’를 목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물건을 구입하면 아프리카에 자동 기부가 되는 ‘비커넥트 팔찌’를 시작으로 텀블러, 캐리커처 재능기부, 더치커피 등으로 물물교환이 이뤄졌다. 중간에 물건을 교환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 애를 먹기도 했다. 그의 활동을 알게 된 한 교사는 “어차피 안 돼. 프로젝트 성공은 힘드니 공부나 해라”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최종 물물교환을 통해 얻은 100권의 참고서를 지역아동센터에 기부했다.

김씨가 한 일들을 보면 마냥 대단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스텝의 이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행달 프로젝트를 알고 바로 김씨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꾸준히 도전하는 김씨의 스토리가 청소년들에게 영감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 뒤 이 대표의 도움으로 스텝에서 실시하는 워크숍을 거쳐 자신의 꿈 이야기를 다듬고 정리하며 강연 자료를 준비했다.

“아기가 걸음마를 뗄 때까지 평균 5000~7000번 넘어진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실패라는 걸 막연히 두려워하지만 여러분은 이미 걸음마를 떼기 위해 그만큼 실패를 한 겁니다. 실패를 ‘다 끝났다’가 아니라 ‘다시 해봐’라는 의미로 받아들여 보세요.”

#2. 좋아서 했던 활동으로 나를 ‘만나다’

올해 수능시험을 치른 이희민(대일외고)양도 김씨처럼 또래들 앞에서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청소년 연사다. 이양은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빠는 한국인, 엄마는 일본인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한·일 간 독도분쟁이 일어났다. 친구들은 “독도는 우리 땅”이라며 엄마가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양을 따돌렸다.

“이후 필리핀으로 혼자 ‘도피 유학’을 떠났다. 공부를 잘하면 무시당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1년 동안 독하게 영어 공부를 했다. 한국에 돌아와 외고에 입학했지만 내 생각과 달리 학교는 대입을 준비해주는 ‘학원’처럼 느껴졌다. 친구들도 공부하느라 바빴다.”

이양은 학업에만 매달리기보다 학교 안팎에서 할 만한 다양한 활동을 찾아나섰다. 노래도 직접 만들고 학교 홍보 영상도 찍었다. 영어연극대회도 나가고 해외봉사활동도 열심히 했다.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이런 활동을 통해 ‘나만의 색깔’을 찾고 싶었다.

지난 1일 서울 종로의 한 스터디카페에서 ‘스텝’의 이정훈 대표와 이희민(대일외고3)양이 워크숍을 하며 강연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1일 서울 종로의 한 스터디카페에서 ‘스텝’의 이정훈 대표와 이희민(대일외고3)양이 워크숍을 하며 강연준비를 하고 있다.

#3. ‘스텝x’를 통해 나를 ‘알다’

이양은 수능이 끝난 뒤 친구를 통해 ‘스텝’의 이 대표를 만나게 됐다. 이 대표는 페이스북 페이지(facebook.com/STEPxKorea)나 주변 지인 등을 통해 청소년 연사를 찾다 희민양을 소개받았다.

지난 1일 오후 종로의 한 스터디 카페. 이 대표와 이양의 워크숍이 한창이었다. 얼마 전 있었던 사전인터뷰 뒤 희민양은 그동안 자신이 했던 활동들을 정리해 가져왔다.

이 대표는 “또래들 앞에 연사로 나설 때 네가 한 활동을 자랑하거나 멋지게 꾸며낼 필요 없다. 담담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라”며 “청소년 연사들이 하는 강연은 연사 입장에서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해주고, 청중 입장에서는 연사의 스토리에 영감을 얻어 자신만의 방법론을 찾아 꿈에 도전하게 해준다”고 했다. 또 “진로탐색은 단순히 직업을 찾는 게 아니라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이런 활동들 속에 ‘기업가 정신’이 녹아 있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기업가 정신이라고 하면 ‘도전, 혁신, 미래가치’ 등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 과정이 너무 길고 복잡하며 사람마다 성향과 처한 상황도 다르다. 이 때문에 여러 특징 가운데 하나에만 집중할 수도 있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기업가 정신은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이날, 이 대표는 이양과 강연에서 청중에게 전달할 내용을 ‘스토리텔링’으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이양은 초등학교 시절 왕따를 당할 때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마음을 억누르며 살았다. 이후 이양이 했던 활동은 ‘자기 이야기를 남에게 들려주는 것’과 맞닿아 있었다. 실제 음악이나 영화·연극·봉사 모두 남과 소통하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다.

워크숍이 끝나고 이양은 “강연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방향은 잡았다. 하지만 내가 벌인 일이 너무 많아 중구난방이다.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될지 자신감이 없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이 대표는 스티브 잡스 얘기를 들려주며 “지금 하는 ‘삽질’이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스티브 잡스가 했던 말 가운데 ‘커넥팅 더 닷’(Connecting the Dots)이란 말이 있다. 현재 눈앞에 여러 개 점이 있다고 칠 때 이 각기 다른 점들이 미래에 어떻게 연결이 될지 현재로선 가늠이 안 되지만 나중에 지나고 보면 다 연결이 된다는 뜻이다. 스티브 잡스가 대학을 자퇴하고 캘리그래피를 배우고 인도 여행을 했던 게 다 쓸데없어 보였지만 돌아보니 매킨토시 컴퓨터를 기획하고 일을 할 때 영향을 끼친 것처럼 말이다.”

#4. 청소년 연사로 나서 나를 ‘소개하다’

이틀 뒤, 이양은 중3 학생들 앞에 연사로 섰다. 그는 학생들에게 과거 상처받았던 경험과 그동안 했던 일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이 일을 겪으며 나와 남을 연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양의 꿈은 영국에서 마당극 무대를 선보이는 것이다. 외국 사람에게 한국이라는 나라도 소개하고, 혼혈아인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다. 또 세계여행을 하며 봉사활동도 할 계획이다. 고등학교 때 했던 국제봉사동아리 ‘호펜’ 활동이 계기가 됐다. 안 쓰는 학용품을 모아 저개발국 아이들에게 전달했는데 당시 큰 규모의 봉사단체나 기관을 통해서만 활동이 이뤄져 아쉬웠다. 그 기억을 떠올려 본인이 직접 발품을 팔아 세계를 돌아다니며 학용품을 나눠주고 사람들을 만날 생각이다.

“인생은 ‘끝없는 자기소개’라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한 소개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에게 ‘너 이런 거 할 수 있을 거야’라며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주고 알려주는 ‘소개’를 말합니다. 아직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다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해보고 싶은 일에 도전하면서 자신의 키워드를 발견했으면 좋겠어요.”

글·사진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기업가정신’이란?

‘기업가정신’이란 말은 흔히 경제 분야에서 많이 쓰이는 단어다. 요즘은 청소년 진로교육 분야에서도 자주 언급되고 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기업가정신교육 사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는 동그라미재단은 “꿈을 이루기 위해 학생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을 뜻하는 말”이라며 “청소년에게 필요한 ‘일과 직업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과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재단에서는 이런 뜻을 살려 2013년부터 ‘ㄱ찾기프로젝트’를 통해 청소년의 진로탐색을 돕는 기업가정신교육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1기에 이어 올해 2기 사업을 통해 총 11개 팀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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