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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수능 끝! 마지막 학창시절 사용설명서

등록 2014-11-17 20:05수정 2014-11-18 10:00

2015 대학수학능력시험 이튿날인 지난 14일 오전 서울 안국동 풍문여고에서 권선영(맨 앞)양이 수능 답안지 가채점을 하기 위해 등교했다가 친구들이 선물해준 19번째 생일 케이크를 들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정아 기자 <A href="mailto:leej@hani.co.kr">leej@hani.co.kr</A>
2015 대학수학능력시험 이튿날인 지난 14일 오전 서울 안국동 풍문여고에서 권선영(맨 앞)양이 수능 답안지 가채점을 하기 위해 등교했다가 친구들이 선물해준 19번째 생일 케이크를 들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함께하는 교육] ‘마법거울’ 꺼내 꾹꾹 눌렀던 꿈 들여다봐요
지난 13일 2015학년도 수능시험이 치러졌다. 정시 원서 접수, 예체능계열 실기시험 등 학생 각자 남은 입시 전형 준비로 바쁘지만 수능 전보다는 마음이 여유롭다. 하지만 모두가 마음 편한 건 아니다. 시험을 잘 친 학생들도 옆의 친구들을 의식해야 하고, 시험을 못 본 학생들은 좌절감을 느끼며 주변 사람들 눈치를 본다. 지난해 수능을 치른 대학생들, 학습법 전문가, 한의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수능 치른 수험생과 가족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조언을 들어봤다.

50시간 잠자기·오지 탐험 등
하고 싶었던 일 맘껏 쓰기만 해도
수험생활에 지쳤던 마음 ‘힐링’
‘잉여짓’ 할 수 있어 좋은 시간이기도
부모님과 서로 감사·격려 표현하고
마음에 담아둔 이야기 꺼낼 때

■ 내 욕망에 집중해 쓰는 ‘치유의 버킷리스트’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1학년 이후연(20)씨의 스마트폰에는 두 번째 수능을 끝낸 뒤 작성했던 ‘버킷리스트’가 저장되어 있다. 이씨는 합격자 발표가 나기 전 주어진 시간을 활용해 뭘 할까 고민하다가 일단 하고 싶은 것을 다 적어보기로 했다. 평소 수험생활 때문에 미뤄뒀던 것, 언젠가 꼭 하고 싶은 것들을 적다 보니 여유로운 시간을 잘 보내는 방법도 알고, 자연스레 스스로에 대해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됐다. 이씨는 “버킷리스트를 다 써놓고 보니 스스로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고 싶은 것을 하나씩 떠올릴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며 웃었다. 이씨의 버킷리스트에는 ‘한국사·한국어 자격증 취득하기’, ‘해비타트 참여하기’ 등 다양한 목표가 수십개 적혀 있었다.

‘자신이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를 적어두는 목록’을 말하는 ‘버킷리스트’는 흔히 자기계발서에서 ‘성공을 위한 지름길’로 소개된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고민할 여유가 없었던 수험생들에게 이 버킷리스트는 ‘힐링’의 기회가 된다.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면서 수험생활에 가려 보이지 않던 자신의 욕망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을 뒤로 미루고 수험생활에 집중했던 학생들이 억눌렸던 욕망을 마음껏 기록해보는 것이 ‘치유의 버킷리스트’가 지닌 핵심 의의다. 이 버킷리스트를 계속 자신의 목표 목록으로 삼느냐 아니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또 작성한 목표의 실현 가능성도 중요하지 않다. 경희대 경영학과 1학년 김지은(20)씨는 버킷리스트를 ‘나를 제대로 보게 하는 마법 거울’이라고 말했다. 김씨의 버킷리스트에서는 ‘우주복 입고 달 위에서 탭댄스’, ‘50시간 이상 잠만 자기’ 등 엉뚱한 목표들이 눈에 띄었다.

“고등학교 때는 내가 굉장히 겁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리스트에 ‘오지탐험 3년’을 쓰는 나 자신을 보고 놀랐다. 겁이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성격을 극복하고 싶었던 것 같다. 새로운 자신을 발견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수험생활을 할 때는 몰랐던 깨달음을 얻었다.”

■ 비생산적인 일은 없다, ‘잉여짓’도 괜찮아

예상보다 낮은 점수를 받은 수험생 두 명이 수능 뒤 한 달 동안 똑같이 컴퓨터게임만 한다고 가정하자. 어떤 태도로 게임을 하느냐에 따라 한 달이라는 시간의 의미는 달라진다. ‘아무도 만나기 싫고, 누구와도 말하고 싶지 않아서’ 게임을 하는 것과, ‘시험공부 하느라 참았던 컴퓨터게임, 이번 한 달은 실컷 해야지!’라고 마음먹고 게임을 하는 것은 천지 차이다. 전자에게는 게임이 현실과 멀어지는 시간일 뿐이지만, 후자에게는 실패를 인정하고 휴식을 취하며 스스로를 재정비하는 시간이 된다.

경희대 2학년 이아무개씨는 2011년 11월 첫 수능을 망쳤다. 예상보다 너무 낮게 나온 성적에 친구들도 만나지 않았고, 학교도 나가지 않았다. 모든 대인관계를 끊고 피시방에서 밤새도록 게임만 하고 담배도 많이 피웠다. ‘인생을 좌우하는 수능을 망쳤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놀기만 했는데 스트레스는 계속 쌓였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낸 이씨의 머리에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는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재수를 결심했다. ‘지금부터 딱 한 달을 원 없이 ‘잉여짓’을 하고 재수학원에 들어가겠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매일 피시방을 갔지만 이전과는 달랐다. 마음만 달리 먹었을 뿐인데 ‘휴식의 질’이 달라졌다.

“그때 깨달았던 것이, 어떤 마음으로 노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전에는 피시방에서 게임만 해도 계속 힘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논다’는 것이 ‘휴식’이 되는 느낌이었다. 스트레스도 풀리고, 재수생활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조금씩 생겼다.”

까리따스심리상담센터 대표 허덕행 한의사도 쉴 때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라서 아무 생각도 안 하는 건 좋은 태도가 아니다. ‘일주일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와 같이 본인이 주체적으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다.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느냐보다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시간을 보냈느냐가 더 중요하다.”

■ 수험생들에게 ‘약’이 되는 부모의 한마디는?

시험이 끝난 수험생을 대하는 부모의 태도는 이전보다 더 중요하다. 특히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수험생들에게는 부모가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위로와 격려가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어떻게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 좋은지 잘 모르는 부모들이 많다.

위로와 격려도 잘못하면 독이 된다. 수능시험 이전에는 부모로부터 성적에 대한 부담을 많이 받다가 수능이 끝난 뒤 부모로부터 ‘실패를 겪어보는 것도 중요한 공부’, ‘대학에 잘 가는 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등의 말을 들은 자녀는 오히려 배신감을 느낀다. 수능 실패 뒤 좌절한 자녀가 걱정돼 건넨 위로의 말이 역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

이 시기에는 결과보다 자녀의 노력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능을 위해 꾸준히 노력한 네가 자랑스럽다’는 말은 자녀에게 큰 힘이 된다. 시험을 잘 봤다면 부모가 자신을 깊이 존중한다는 신뢰가 생길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부모의 말을 계기로 조금이나마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다.

부모가 먼저 고생한 자녀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상대방의 노력을 존중하는 태도를 모범적으로 보여주면 자녀도 자신의 노력을 돌아보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던 부모의 입장을 헤아린다. 두 살 터울의 딸과 아들이 모두 재수를 하면서 4년 내내 ‘고3 엄마’ 명찰을 떼지 못했던 학부모 이양효(49)씨는 아들의 두 번째 수능이 끝나고 처음 아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이씨의 말을 들은 아들은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렸다. 이씨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수능 뒤에 격려를 하는 차원에서 ‘수고했다, 다음에도 열심히 하면 되지’라는 말만 반복했을 뿐 아이들의 노력 자체에 집중한 적이 없었다. 내가 했던 말이 격려가 아니라 부담이 됐던 것 같다. 엄마 말을 크게 거스르지 않고 묵묵히 열심히 해준 것이 고맙다는 생각에 무심코 ‘고맙다’고 한 건데 아들이 서러웠던 감정을 쏟아내듯 눈물을 보이니 미안했다.”

학습법 전문가 이지은씨는 “결과에 대한 건강한 태도를 부모님들이 먼저 보여주면 아이들도 위로를 받는다”며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좌절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자신의 문제에 몰입해 그 속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말했다.

수능이 끝난 뒤에는 큰 시험을 치른 것을 축하하며 가족끼리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도 좋다. 가족과 함께 보낼 연말 계획을 짜거나, 서로 말 못했던 서운한 감정을 털어놓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정유미 기자 ymi.j@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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