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캡슐을 묻기 전 삽을 들고 자세를 취한 대성고 학생들. 강원 대성고 제공
수능 뒤 학교 교실에는 수능을 잘 본 학생과 망친 학생, 재수를 결심한 학생 등 다양한 학생들이 섞여 있다. 교사들은 어떤 분위기로 남은 학기를 끌어가야 하는지 고민이 많아진다. 지난해 2월 경기도교육청은 <수능 이후 고3 교육과정 운영 길라잡이>를 발간해 수능 뒤 경기도 내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시행됐던 우수한 수업 사례를 소개했다. 또 지난 6일 교육부와 경북교육연구원은 전국 고등학교로부터 수능 이후 수업 운영계획을 받아 우수 사례를 모아 <수능 이후 고3 교육과정 운영 사례집>을 펴냈다.
강원 대성고등학교에는 ‘꿈의 동산’이라는 작은 언덕이 있다. 학교에서 매년 수능이 끝난 수험생들이 학창시절 추억을 모은 타임캡슐을 묻어둘 수 있게 한 공간이다. 2002년부터 시작한 타임캡슐 봉안이 벌써 14년째. 이곳에 타임캡슐을 묻은 학생들은 약 20년 뒤 ‘학교 방문의 날’에 모여 자신들이 묻어둔 추억을 열어 볼 수 있다.
대성고 3학년 학생들은 수능 뒤 반별로 회의를 통해 길이 1m, 폭 30㎝의 타임캡슐에 어떤 물건을 넣을지 결정하고 준비한다. 20년 뒤의 자신에게 쓰는 편지, 자신의 자녀에게 쓰는 편지와 교과서나 교복 등 약간의 소장품도 타임캡슐에 들어간다. 한 학년 약 400명의 학생들이 타임캡슐 하나를 채우며 학창시절의 추억을 정리하는 동시에 20년 뒤 자신의 미래를 상상한다.
대성고 안용일 교사는 “작년엔 교사들도 20년 뒤의 학생들에게 선물한다는 취지로 샴페인을 몇 병 넣었다”며 “타임캡슐 행사가 학생들이 자신의 미래를 진지하게 상상하며 진로를 탐색할 수 있는 계기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학급 구성원 모두가 참여해 시집을 만드는 학교도 있다. 경북 포항여고 학생들은 수능 뒤 학급회의를 열어 자신들이 공감할 수 있는 친숙한 주제를 하나 정한다. 주제가 정해지면 학생들은 먼저 산문 형식으로 주제를 표현한다. 완성한 산문은 교사의 지도를 바탕으로 운문으로 바꾸고, 더 좋은 글이 될 수 있도록 고쳐쓰기를 반복한다. 졸업할 때는 학급별로 반 친구들의 산문과 시가 한 편씩 실린 책을 한 권씩 들고 갈 수 있다.
경북교육연구원(www.gber.kr)과 경기교육청 누리집(www.ken.go.kr)에 올라와 있는 자료집에는 학생 스스로 졸업식을 기획하고 졸업앨범을 만들도록 하는 경기 마석고, 수능 뒤 낮아진 교과학습 의욕을 특기적성교육으로 전환한 경기 운암고 등 다양한 학교 사례가 소개돼 있다.
정유미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