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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나만 성공하면 돼? 기업의 사회적 역할도 배우자

등록 2014-10-27 20:02수정 2014-10-30 22:22

지난 20일 이천 양정여고 학생회의실에서 창업동아리 ‘양곱창’ 학생들이 학교앞 분식집에 대한 학생 만족도 조사결과를 두고 회의를 하고 있다.
지난 20일 이천 양정여고 학생회의실에서 창업동아리 ‘양곱창’ 학생들이 학교앞 분식집에 대한 학생 만족도 조사결과를 두고 회의를 하고 있다.
‘기업가정신’ 펼치는 학생들
경기도 이천 양정여고 정문 바로 옆에 위치한 분식집 ‘버거잉’. 간판에 ‘햄버거 1000원’이라고 쓰인 글씨와 햄버거 그림이 보인다. 하지만 이 가게에서 정작 햄버거는 팔지 않는다.

2년여 전 버거잉을 인수한 ㄱ씨. 햄버거 만드는 기술이 없어 여느 분식집처럼 김밥과 떡볶이 등을 팔았다. 학교와 가깝다보니 등하교 시간에 학생들이 자주 들락거렸다. 하지만 한달 전 근처에 분식집이 새로 생겼다. 그곳의 신메뉴가 입소문을 타면서 버거잉은 점점 한산해졌다. 학교로 들어가는 아이들 손에는 새 분식집에서 파는 간식거리가 들려 있었다. ㄱ씨는 자신도 뭔가 변화를 꾀하고 싶지만 여유도 없었고 아이들이 뭘 좋아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양곱창’(‘양정 곱하기 창업’의 줄임말) 친구들이 찾아왔다.

“설문조사 결과 나왔어?”

“응. 결과를 보면 일단, 사람들이 그 집에 가는 이유는 가깝기 때문이야. 버거잉의 불편한 점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위생환경 문제와 메뉴 부족 문제를 지적했어. 컵밥이나 닭강정을 팔았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어.”

“어쨌든 이런 문제가 해결된다면 가게에 방문하겠다는 응답이 전체의 90% 정도나 되네. 우리가 노력하면 충분히 좋은 결과가 나오겠다.(웃음)”

학교 앞 분식집 컨설팅·무료인쇄실 등
이천 양정여고 동아리 창업정신 보여줘
학교 안팎 문제들 발품팔며 해법찾기
기업가 정신, 사회봉사 의미 담겨야
가르침 전파한 교사, 관련 연수 강사로

지난 20일 양정여고 창업동아리 ‘양곱창’ 팀원들의 회의가 한창이다. 팀원들은 113명의 양정여고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버거잉 만족도 조사 결과를 가지고 개선점을 찾았다. 양곱창에서 진행하는 ‘소상공인 살리기 프로젝트’다. 보통 창업동아리가 창업경진대회 참여 준비를 하지만 양곱창은 학교 앞 분식집 상인을 도우면서 직접 창업 과정에 부딪혀보는 활동을 했다. 그 과정에서 팀원들은 창업이나 컨설팅 기법을 익히고 가게 주인은 리모델링을 통해 매출을 올려 서로 ‘윈윈’하자는 뜻이 담겨 있었다.

학생들은 우연히 <기독교방송>(CBS)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서 제품 디스플레이를 바꿔 가게 매출을 올리는 방식으로 재래시장 상인을 돕는 이의 강연을 봤다. ‘이거구나’ 싶었다. 학교 앞 가게를 물색하다 ‘버거잉’을 선택했다. 사장님은 참 착한 분이지만 장사가 잘 안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위생에 좀더 신경 쓰고 가게 내부를 잘 꾸미면 많은 이들이 찾아올 거라 생각했다.

그 뒤 양곱창 팀원들은 사장님과 미팅을 해 ‘컨설팅 자문계약서’를 썼다. 사례비로 분식집 만원 이용 쿠폰도 받았다. 적은 액수지만 형식을 제대로 갖추고 싶었다. 앞으로는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사장님과 가게 리모델링을 할 계획이다. 또 컨설팅 코칭을 해줄 전문가도 현재 섭외 중이다. 1학년 진여경양은 “이 프로젝트로 학생들이 많이 찾고 가게 매출도 팍팍 오르면 진짜 보람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이렇게 특별한 창업동아리 활동을 하게 된 것은 이 학교 이태경 교사를 통해 ‘기업가정신’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서부터다. 이 교사는 지난해 창업동아리를 맡으면서 아쉬움을 많이 느꼈다. 학생들이 창업경진대회나 사업계획서 대회에 종종 나가지만 여기서 나온 생각들이 현실화되지 않고 아이디어 수준으로 남는 경우가 많았다. 뭔가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학생들에게 창업에 대해 배운 것을 적용하고 스스로 창의성을 발휘할 기회를 줘야겠다고 생각하다 기업가정신을 알게 됐다. 이 교사는 “기업가정신은 ‘시도하다, 모험하다’를 뜻하는 프랑스어 ‘entrepr-endre’에서 유래됐다”며 “변화 속에서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을 발견하고 이를 해결해 사회에 새로운 변화와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가정신이라고 하면 으레 ‘사업가가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마인드’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 교사가 말하는 기업가정신은 이와는 다르다.

“학생들 주변에 다양한 문제가 있다. 스스로 그 문제를 찾아 해결해보려고 도전하고, 그 과정에서 이런 도전이 사회적으로 어떤 가치를 남길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태도가 바로 기업가정신이다. 학생들을 자신이 속한 곳을 더 좋은 곳으로 변화시키는, ‘체인지메이커’로 키우는 교육이다.”

1학년 김소민양은 “원래 성격이 내성적이었다. 뭔가 활동적인 동아리를 찾다 양곱창을 만났다”며 “양곱창 활동을 하며 창업컨설팅 활동을 해보니 기업가정신에는 ‘창조와 남을 위해 봉사하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활동이 우리와 사장님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교사는 학생들에게 기업가정신을 제대로 실천하는 기업가 사례도 소개했다. 벤치마킹 그리고 직접 제휴를 제안해볼 만한 곳이 있는지도 함께 알아봤다. 그렇게 시작된 프로젝트가 ‘애드투페이퍼’였다.

‘애드투페이퍼@양정’(이하 페이퍼)은 양정여고 방과후활동인 ‘기업가정신교육(앙트십)’ 프로그램을 듣는 학생들이 꾸린 팀이다. 현재 교내에 ‘학생인쇄실’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1학년 임현정양은 “수행평가 때 인쇄할 일이 많다. 집에 프린트기가 없는 경우 밤늦게 친구한테 전화로 부탁하거나 근처 피시방에 가야 해서 불편해하는 친구들이 많았다”고 얘기했다.

이들은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을 찾다 대학생들이 만든 애드투페이퍼라는 스타트업(신생벤처)을 알게 됐다. 이 기업은 종이 하단에 의뢰받은 기업의 광고를 작게 실어주는 대신 광고료를 받아 학생들이 무료로 인쇄를 할 수 있게 아이디어를 냈다. 스마트폰에서 애드투페이퍼 애플리케이션을 깔고 나서 다양한 업체의 광고를 클릭하면 ‘에딧’이라는 사이버머니를 주는데 이 돈으로도 인쇄를 할 수 있다. 회원제로 운영되는 애드투페이퍼에서 양정여고 학생들은 유일한 고등학교 회원이다.

페이퍼 팀원들은 교내에 컴퓨터와 프린터기를 마련해 아침·점심시간에 돌아가면서 당번을 선다. 학생들의 호응은 뜨겁다. 평소에는 월 800장 정도 뽑는데 수행평가 기간에는 1000장 정도 인쇄해 학생들이 줄서서 기다릴 정도다. 페이퍼팀은 환경을 생각해 재생용지를 가져다 놨다. 또 관공서 광고를 수주받아 애드투페이퍼에 소개할 계획을 세웠다. 여기서 생기는 수익금으로 컴퓨터 수를 늘리고 교내에 나무도 심을 생각이다.

2학년 정지수양은 “경제 수업시간에 기업은 ‘이윤추구·이윤창출’, 개인은 ‘소비자’라고만 공식처럼 배웠다”며 “하지만 다양한 프로젝트 활동을 하면서 기업이 무조건 이익을 따지기 보다는 사회적 가치를 함께 추구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다음달 1일과 8일 동그라미재단과 한겨레교육, 서울초중등대안교육연구회가 함께 진행하는 ‘행동으로 배우는 기업가정신’ 교사 직무연수에서 강사로 나선다. 그는 이날 학교 현장에서 기업가정신 교육을 쉽게 적용할 수 있는 노하우를 전수할 예정이다.

글·사진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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