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경희대 크라운관에서 열린 개꿈콘서트에 엠시를 맡은 주종범(왼쪽부터)군과 연사로 참여한 백승헌, 김철범, 국범근군.
‘개(開)꿈콘서트’ 현장
연사·청중 모두 청소년인 토크콘서트
현실의 담 넘어 꿈꾸고 도전나서
자신들 어려움과 극복과정 털어놔
성공한 멘토보다 또래친구들에 공감
연사·청중 모두 청소년인 토크콘서트
현실의 담 넘어 꿈꾸고 도전나서
자신들 어려움과 극복과정 털어놔
성공한 멘토보다 또래친구들에 공감
지난 11일 경희대 크라운관에서 열린 ‘개(開)꿈 콘서트’ 현장. 살짝 긴장한 얼굴의 한 학생이 이어마이크를 차고 무대에 올랐다. 키와 몸집을 봐도, 옷차림을 봐도 ‘평범한 청소년’으로 보였다. 곧 그의 모습 뒤 화면 속에 ‘내 멋대로 해라’라는 문구가 보였다. 이 청소년은 서울 둔촌고 3년 국범근군이었다.
국군은 유투브와 페이스북에 ‘쥐픽처스’라는 영상제작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다. “저는 고2였던 지난해 3월 쥐픽처스 활동을 시작해 현재 36편의 영상을 만들었어요. 여기 혹시 고3 있어요?”
객석 여기저기서 손을 들자 국군이 “어때요?”라고 물었다. 학생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힘들어요”라는 소리를 쏟아냈다. 국군 역시 ‘격하게’ 공감하며 ‘대한민국 고3’으로서 영상을 제작하며 느끼는 현실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올해 초 어머니랑 이틀에 한 번꼴로 싸웠다. 어머니는 입시공부에 매진해주길 바랐지만 난 내가 좋아하는 영상을 찍는데 집중했기 때문이다.” 교사도 어머니와 비슷한 입장이었고 친구들은 입시준비로 바빴다. 국군이 영상을 찍기 위해 빈 교실을 빌리러 가면 교사들은 “고3이 왜 공부는 안 하고 헛짓거리를 하냐”고 했다. 처음엔 출연이나 영상 촬영 등을 잘 도와주던 친구들도 대학 수시일자가 가까워지자 하나 둘 떠나갔다.
국군이 이런 상황을 극복하는 방식은 ‘내 멋대로 정면 돌파’였다.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했다. 그렇게 나온 영상이 ‘학생 놈의 새끼가’, ‘쾌변능력시험’, ‘에어컨 전쟁’ 등이다. 주로 학생 입장에서 교육 현실이나 학교의 열악한 시설 등을 풍자한 내용이었다. 그는 “‘꾸준한 노력의 결실’인 영상을 본 뒤 주변의 시선도 조금씩 바뀌는 중”이라며 웃었다.
“요즘은 부모님이 주변에 내 자랑을 하고 다니신다. 교장선생님은 얼마 전 ‘학생들의 자발적인 학교 문화 형성’을 주제로 영상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힘들어도 절대 포기하지 말라.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다 보면 주변 사람도 변하고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다.”
개꿈 콘서트는 말 그대로 ‘꿈을 열라’는 말이지만 ‘개꿈이라도 좋으니 뭐든 밖으로 나가 도전해보자’는 의미가 더 크다. 이른바 ‘잘나가는 멘토’와의 만남이 아니다. 그럼에도 또래 친구의 ‘꿈을 향한 도전 스토리’를 듣기 위해 300여명의 청소년이 모였다.
이번이 4회째인 개꿈콘서트를 기획하고 진행한 ‘담넘어’는 지난 2013년 평균 나이 20.1살의 대학생 6명이 만든 소셜벤처다. 이들은 ‘청소년의 꿈의 부재’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꿈을 가로막는 현실의 담을 넘어 함께 꿈꾸는 세상’을 만들자는 목표로 이런 행사를 시작했다.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시민교육’ 수업을 들은 정성원씨와 구효정씨가 처음 시작해 뜻이 맞는 친구들이 모였다.
“수업 때 ‘우리 눈으로 사회 문제를 짚어서 작은 변화를 꾀해보자’라는 과제가 주어졌었다. 대학생이 된 뒤 자유를 얻었지만 그걸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뚜렷한 목표도 없이 일상을 보냈던 날들이 떠올랐다. 청소년기에 꿈을 제대로 찾지 못해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평범하지만 자신만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청소년들을 찾아 행사를 꾸려보기로 했다.” 구효정 공동대표의 말이다.
서울 숭문고 2학년에 재학중인 백승헌군은 일명 ‘페북 스타’다. 친구들과의 추억을 쌓기 위해 페이스북에 ‘느낌적인 느낌’이라는 페이지를 만들어 동영상을 올렸다. 특히 지하철 ‘홍대입구역 안내멘트’와 ‘요염 고딩의 2NE1, Fire’ 등 아이돌 춤과 광고 따라하기 영상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며 45만 명이 ‘좋아요’를 누르기도 했다.
“가끔 웃기려고 일부러 미친 척 한다는 소리도 듣는다. 하지만 처음부터 미친 듯이 좋아해서 한 일이 아니다. 그냥 재밌을 거 같아서 시작한 일이다.”
백군은 초등학교 때는 UCC 제작반, 중학교 때는 연극부 등의 활동을 하며 연기와 영상을 만드는 노하우를 자연스레 익혔다. 모두 진로나 어떤 성과를 기대하며 한 건 아니었지만 지금 하고 있는 활동의 밑거름이 된 셈이다.
“유명해지면서 악플도 늘었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나의 끼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분명 용기가 필요하지만 결과는 내가 좋으면 그만이다.”
참가한 학생들 역시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었다. 관객석의 한 여학생은 손을 들고 이런 질문을 했다. “나는 아직 꿈이 없어 걱정이다. 승헌군의 꿈은 뭔지 궁금하다.”
백군은 “현재 꿈은 애니메이션 성우”라고 답했다. 목소리로만 연기한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껴서다. 하지만 그는 “재밌다고 느끼는 일이 생기면 직업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중요한 건 나를 통해 사람들이 웃고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연을 마치면서 백군은 청중에게 주문을 걸듯이 “나를 따라 외쳐라”라고 했다. “나를 사랑하라. 미친 듯이 좋아하지 않아도 되느니라. (흥미를 느낀다면) 그냥 한번 해봐라.”
<엠넷>의 힙합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에 출연했던 김철범군(17)도 연사로 나섰다. 세 학생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조금씩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일단 한번 부딪혀 보자’는 것이었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자신의 꿈이 더 단단해지는 것을 세 명 모두 느끼고 있었다.
용인 보정고 3학년 김신혁군은 “아는 형이 가보라고 해서 왔다. 패션 쪽 일을 하고 싶은데 부모님과의 갈등이 있었다. 그래서 국범근군의 이야기에 공감이 갔다”며 “현재 진행형인 또래들의 꿈 이야기를 들으며 뭔가 자극을 받았다. 동시에 ‘나도 해볼 수 있겠다’는 동기부여가 됐다”고 말했다.
이날 강연을 들으러 왔던 김조은양(송탄 제일고 2)은 개꿈콘서트와 인연이 깊다. 1회 때는 청중으로 참여했다가 2회 때는 연사로, 3회 때는 아예 기획을 맡았다.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이라 학교폭력을 당하기도 하고 남들 앞에 나서는 걸 꺼렸었다. 개꿈콘서트 연사들을 보니 나이는 나와 한두 살 차이인데 너무 대단해보였다. 그러다 문득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김양은 또 “보통 강연 때 만나는 멘토들은 어느 정도 사회적 위치에 올라 영향력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며 “그들도 힘든 길을 거쳐 왔겠지만 이미 성공했으니 저렇게 말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야기가 와 닿지 않았다”고 했다.
김양은 강연 때 친구들과 겪은 힘들었던 일과 그것을 극복한 과정을 털어놓았다. 그는 “내가 용기를 얻은 것처럼 다른 아이들도 나의 이야기를 듣고 변화하길 바랐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은 119구급대원이 되려고 노력 중이다. 위급한 상황에 처해 힘들어하는 사람들 곁에서 힘이 되고 싶어서다.
“사람들이 날 보며 전과는 표정이 확 달라졌다고 한다. 예전에는 침울해 보이고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였는데 연사로 나섰던 경험 덕에 지금은 얼굴도 밝아졌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편하게 말을 건다. 나도 지금의 내 모습이 좋다.”
담넘어는 상시로 연사를 모집하고 있다. 16~24살의 꿈을 향해 도전하는 청소년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구효정 공동대표는 청소년 연사만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걸어온 길을 안내하는 ‘위대한 멘토’보다 함께 손잡고 헤쳐나가는 ‘옆에 있는 평범한 친구’의 응원이 때론 더 값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담넘어 블로그(http://blog.naver.com/overdami)를 방문해보라.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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