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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위로받으려 온라인 더 찾지만 곳곳에 위험한 유혹

등록 2014-10-20 20:21수정 2014-10-21 10:59

금천청소년쉼터에 입소한 청소년들이 휴식시간에 스마트폰을 하는 모습.
금천청소년쉼터에 입소한 청소년들이 휴식시간에 스마트폰을 하는 모습.
[사람&디지털] 집 나온 쉼터 청소년들의 디지털 삶

“핸드폰은 내게 신…너 없이 못 살아”
부모와 스마트폰 충돌이 가출 계기도
최근 청소년비행엔 인터넷이 매개체
스마트폰 중독은 문제 원인 아닌
사회가 청소년 보호하지 못한 결과
지난 8일 오후 서울 금천구 가산디지털단지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금천청소년쉼터에 들어서니 북소리가 요란했다. 지하에서 올라오는 “쿵딱, 쿵딱” 드럼 비트에 웃고 떠드는 소리가 섞여 들었다. 내려가 보니 강당에서 무대의 드럼 1대를 두고 강사 1명과 학생 6명의 수업이 한창이다. 다 큰 아이들이 초등학생처럼 쉬지 않고 재잘댔다. 강사가 “친구가 하는 걸 봐야지” 하면 “벌써 다 알아요”, “배고파요” 하는 식이다. 이들은 집을 나와 쉼터에 몸을 의지하고 있는 16~18살 가출 청소년들이다.

아이들이 개인 소지품을 놓아둔 자리마다 있는 스마트폰이 눈에 들어왔다. 청소년 자녀가 있는 여느 가정처럼 가출 청소년을 맡아 숙식을 제공하고 생활지도를 하는 청소년쉼터도 골치 아픈 과제를 만났다. 정정숙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 회장은 “요즘 쉼터를 처음 찾는 아이들의 상당수가 와서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곤 한다”고 말했다.

로봇공학자가 꿈인 지민(가명·17)이는 스마트폰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이날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3분이 멀다 하고 전화기를 들여다보았다. “나에게 폰은 신이에요. 없으면 살 수 없으니까요.” 그가 2년 전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가출을 하게 된 계기도 스마트폰이었다. “아버지가 엄하세요. 한번은 남자친구와 나눈 카카오톡을 보고 부모님이 눈앞에서 망치로 전화기를 부순 적도 있어요.” 갈등 끝에 어느 날 아버지가 스마트폰을 압수했다. “학교도 가기 싫고…. 그래서 집을 나와 친구 집으로 갔죠.” 지민이는 왜 그렇게 스마트폰을 떼어놓지 못할까? “친구들과 이야기 중이니까요. 말을 걸었는데 내가 안 보고 있으면 어떡해요?”

청소년들도 사이버 세계에 치중한 의사소통의 문제를 안다. 제빵사 공부에 한창인 은지(가명·18)도 새엄마와 갈등을 겪고 오빠와 멀어지면서 생긴 빈자리를 디지털 세계에서 만난 친구들로 채웠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이런 고민을 이야기했어요.” 하지만 그래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느꼈다고 한다. “위로라도 받긴 하는데, 서로 자기 이야기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은지는 1년 전 가출 뒤 그런 식으로 페이스북을 통해 만난 아이들과 두차례 오프라인 모임도 했는데, 모여서 스마트폰만 들여다볼 뿐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고 한다. “요즘은 어릴 적 친구들과 만나도 그래요. 예전과 달라졌는데… 기분이 좋진 않아요.” 은지는 요즘 온라인 친구와는 거리를 둔다.

여러 사정으로 집을 나선 아이들에게 인터넷은 거리와 마찬가지로 위험한 곳이다. 깊은 외로움을 느끼는 아이들에게 유혹은 더 달콤하게 다가오고, 네트워크는 접근을 더 빠르게 만든다. 5년째 소년재판을 전담하며 위기 청소년 지원에도 힘써온 부산지방법원의 천종호 부장판사는 갈수록 인터넷이 비행을 부추기는 데 쓰이는 점을 느낀다고 말한다.

천 판사는 “청소년 범죄에도 경향이 있는데, 10년 전 본드 흡입이 주류였다면 요즘은 인터넷을 통한 판매사기와 원조교제가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부산지역 조직폭력배들이 개입해, 아이들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쓰인 대포통장을 만든 범죄도 있었다”고 전했다.

원조교제는 ‘가출팸’, 온라인 채팅과 관련이 깊다. 이슬이(가명·18)는 여러 쉼터를 다닌 지난 1년 사이에 “성폭행을 당해 임신한 아이들만 서넛을 보았다”고 했다. 가출팸이란 가출과 가족을 뜻하는 패밀리(팸)를 합친 말인데, 리더 격의 아이들이 어린아이들을 모으며 결성된다. 청소년 커뮤니티에서는 가출팸 식구를 모집하는 글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들은 함께 벌어 집세나 식비 등을 충당하곤 하는데, 이 과정에서 어린아이들에게 성매매나 절도를 시키는 등의 일이 발생하기도 해 큰 문제가 되었다. 이슬이는 “인터넷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얽히는 건 참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채팅은 스마트폰 환경에서 위치정보 등을 이용해 즉석만남에 한결 편리하게 진화되었다. 호기심과 외로움에 이런 채팅에 빠진 아이들은 만남을 가졌다가 종종 성범죄의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은지는 “그런 친구가 있어 ‘나중에 후회할 짓 하지 말라’고 충고도 했죠. 근데 막무가내예요. 그저 ‘사람 만나는 게 좋다’고 해요”라고 말했다.

현재 여성가족부가 추산하는 전국의 가출 청소년은 22만명이다. 전국 109개에 불과한 쉼터의 수용 인원은 1500명으로, 이날 만난 아이들은 비교적 양호한 환경에 있는 소수일 뿐이다. 나머지 아이들은 지금도 거리와 사이버 공간에서 갖은 위험에 노출된 상황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이미자 금천청소년쉼터 소장은 “아이들에 대한 부정적 관념이 큰 문제”라고 말했다. “가출하면 다 이상한 애들로 취급하죠. 예산 지원이 필요하지만, 그런 아이들을 돕는다는 데 부정적 인식이 있어서 어려움이 따르죠.”

이런 점에서 청소년 가출과 스마트폰 중독은 서로 닮은꼴이다. 문제의 원인은 다른 곳에 있는데 그 자체가 문제로 취급된다는 점에서다. 장근영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청소년은 적절한 보호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고, 가출 청소년은 앞서 가정 등에서 그런 지원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인터넷·스마트폰을 활용하게 되는데 위험한 방향으로 흐르기 쉽다”고 말했다.

천 판사는 근본 책임은 어른들에 있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 청소년 정책의 핵심은 학교에 있는데, 현재의 줄 세우는 시스템에선 1등과 꼴찌가 생길 수밖에 없다. 우리는 낙오된 아이들에게 책임은 너희 자신에게 있다며 몰아부치고는 문제를 일으키면 처벌한다. 이게 정의로운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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