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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강남 자퇴생은 ‘조기 유학’…강북 자퇴생은 ‘희망 없이 알바’

등록 2014-10-15 22:08수정 2014-10-16 09:47

강남·강북 두 고등학교 이야기
두 학교의 직선거리는 20㎞가 채 되지 않는다. 각각 서울의 북서쪽과 남동쪽 끝에 자리잡고 있지만, 지하철을 타면 환승 없이도 1시간이면 닿을 수 있다. 하지만 두 학교 사이에 가로놓인 사회적 거리는 물리적 거리를 압도한다.

강남의 노른자위 땅에 위치한 ㅅ고는 지난해 35명이 학교를 스스로 그만뒀다. 전교생이 1820명이니 2%에 조금 못 미친다. 눈에 띄는 부분은 학업중단(자퇴) 사유다. 30명이 ‘해외출국’을 이유로 자퇴했다. 조기유학인 셈이다. 이 학교의 해외출국 자퇴자 수는 서울 시내 318개 고교 가운데 가장 많다. 은평구 전체 고교(19개)의 해외출국 자퇴자 수(29명)보다도 많다.

주변에 초호화 아파트 있는
강남 ㅅ고교 작년 35명 학업중단
입시제도 불안 등으로 외국행

은평구에는 또다른 ㅅ고가 있다. 개교한 지 5년이 안 된 신생학교다. 전교생이 907명인 이 학교에선 지난해 41명(4.5%)이 학업을 중단했다. 이 중 32명이 ‘학교 부적응’으로 자퇴서를 냈다. 자퇴생 5명 중 4명꼴이다. 해외출국으로 인한 자퇴자도 1명 있었지만, ‘운동 유학’이었다. 이 학교의 ‘부적응 자퇴’ 비율은 서울 전체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한다.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은평 ㅅ고의 ‘부적응 자퇴’ 세부 사유를 보면 ‘학업관련’이 22명으로 가장 많다. 이 학교 관계자는 “학습 의욕을 잃고 장기간 결석을 하다가 자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개별 학교의 문제라기보다 배정 시스템과 입시 위주 교육제도의 산물 아니겠느냐”고 했다. 강남 ㅅ고의 해외출국 자퇴 역시 그 이면엔 ‘학교 부적응’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이 학교의 한 교사는 “해외출국 자퇴자 대부분이 학업 스트레스와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학교를 떠난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이 교사는 “매년 1학기를 마치고 나면 한 학년에서 15명 정도가 유학을 간다”며 “상사 주재원이나 공무원인 부모를 따라 단기 연수를 가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보호자와 함께 장기 유학을 가는 것”이라고 전했다.

다세대 등 서민주택 밀집한
강북 ㅅ고교 41명 공부 그만둬
학업관련 부적응이 주원인

똑같이 ‘한국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학교를 떠났지만, 다음 행선지는 정반대다. 경제력 차이 때문이다. 은평 ㅅ고가 위치한 곳은 빌라·다세대주택이 밀집한 강북의 전형적인 서민 주거지역이다. 왕복 10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뉴타운 아파트단지가 자리잡고 있지만, ‘뉴타운 아이들’은 자율형 사립고인 ㄷ고나 단지 복판에 있는 ㅈ고를 선호한다. ㅅ고 관계자는 “자율고가 생기고 고교선택제가 실시되면서 소득과 가정환경에 따른 학교 선택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 학교에서 학비지원금을 받는 학생은 215명으로 전교생의 23.7%에 이른다. 학비지원금은 기초생활수급자, 한부모 가정, 차상위계층 등 저소득 가구 학생에게 지급되는데, 서울시 일반계고 재학생 가운데 학비지원금을 받는 비율은 16.1%다.

강남 ㅅ고 역시 학비지원금을 받는 학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비율은 전교생의 2.4%(44명)에 불과하다. 이 학교는 도로 하나씩을 경계로 남쪽엔 타워팰리스, 서쪽엔 도곡 래미안 아파트를 마주 보고 있다. 강남에서도 비싸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아파트들이다. 이 학교 차아무개 교감은 “학교선택제 실시 초기엔 서초·송파, 심지어 노원·성북구에서도 학생들이 왔지만, 통학거리 때문에 지금은 95% 이상이 도곡동 등 강남 거주 아이들이 입학한다”고 했다. 이 학교 누리집을 열면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 1·2등급 학생 비율이 전국 평준화지역 일반고 가운데 가장 높았다는 홍보 창이 뜬다.

두 학교로 대표되는 일반고 양극화가 완화될 가능성이 현재로선 높아 보이지 않는다. 은평구의 한 고교 교사는 “가정 형편이 어렵고 미래 전망도 불투명하니 학습 의지가 생길 리 없고, 결국 장기결석을 하다 자퇴를 권유받고 떠밀리듯 학교를 떠나게 된다”며 “알바를 하며 아무런 희망 없이 산다는 제자들 소식을 접할 때마다 교직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온다”고 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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