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소프트웨어 중심 사회를 천명하고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소프트웨어 교육을 강화하기로 해, 정규 교과목 지정과 관련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경기도 안산시 원곡고에서 학생들이 소프트웨어 수업을 받는 모습.
[사람&디지털] 소프트웨어 교육 현장 가보니
“‘어떻게 맨날 게임만 하던 아이가 새벽 4시까지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그러죠?’라는 얘기를 학부모로부터 들었을 때 뿌듯했어요. 아무 강요도 없었는데 푹 빠져서 작품을 준비한다는 거예요.”(노재춘 광주교대 부설초등학교 교사)
“솔직히 학부모님들 중엔 아직 소프트웨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분이 많으시죠. 이렇게 물어요. ‘선생님, 이거 하는 시간에 학원 가서 공부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허영도 부산 구남중학교 교사)
전국의 소프트웨어 교육 관련 교수·교사·기업인 등 40여명이 지난달 29일 대전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정보전자공학과 건물에 모였다. ‘소프트웨어 교육봉사단’이 교육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다. 소프트웨어 교육봉사단은 이 분야 종사자들이 초중고생에게 소프트웨어를 가르치고자 자발적으로 결성한 단체로, 지난해 1학기부터 지금까지 3학기째 활동중이다. 올 1학기에는 전국 11개 지역 24개 초중고생 530여명이 방과후 수업이나 동아리 활동의 형태로 수업을 받았다.
소프트웨어 중심 사회는 필연의 길
하지만 섣부른 프로그래밍 교육은
오히려 학생들 창의성 억누를 수도
기술보다 컴퓨터활용 사고가 중요 교육부와 미래창조과학부의 ‘소프트웨어 교육 의무화’ 발표와 박근혜 대통령의 강조 발언 뒤로 소프트웨어 교육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초등학교는 내년부터 희망학교를 시작으로 소프트웨어 교육을 의무화하고, 중고교는 2017년부터 정규 교과목에 포함시키겠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입시와 연계가 안 되면 잘 배우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며 대입 연계 시사 발언까지 내놨다. 하지만 성급한 정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소프트웨어란 무엇이며 아이들에게 어떤 것을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앞서지 않으면 오히려 창의성을 억누르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미래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의 김진형 소장(카이스트 교수)은 소프트웨어 교육의 필요성을 ‘소프트웨어 중심사회’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예전에 소프트웨어 하면 일부 전문가들의 영역처럼 여겨졌죠. 지금은 개인·정부·기업 등 사회 전반에서 컴퓨터 기술과 연관되지 않은 영역이 없습니다. 그리고 각 분야의 혁신은 소프트웨어와의 결합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현 정부의 정책 방향은 이 가운데에서도 ‘소프트웨어 인재가 부족하다’는 산업계 필요에 부응하는 쪽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럼 학교에서 당장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 게 답일까? 영화 등을 통해 알려진 것처럼 안경 쓴 전문가가 입력하는 복잡한 영어와 기호의 조합들을 이해하고 쓰는 기술 말이다. 전문가들은 프로그래밍을 소프트웨어 교육과 동일하게 보는 건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이민석 엔에이치엔 넥스트(NHN NEXT) 학장은 “교육 방법은 다양하다. 프로그래밍을 가르치거나, 컴퓨터적 사고(Computational Thinking)를 수업에 도입하거나, 로봇을 만들어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엔에이치엔 넥스트는 네이버에서 후원하는 비영리 소프트웨어 인재양성 기관이다. 이 학장은 “핵심은 학생들이 자신의 문제를 소프트웨어로 해결해보는 경험을 하고 그것을 재밌게 느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어떤 전문가들은 ‘컴퓨터적 사고’를 교육의 핵심으로 본다. 컴퓨터적 사고란 컴퓨터를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대표적으로 신장 이식의 사례가 있다. 미국에서만 매년 3만명이 치명적인 신장 질환을 앓는데 수많은 환자들과 그들에게 적합한 기증 신장을 제때에 연결하는 일은 쉽지 않은 문제였다. 카네기멜런대의 토머스 샌드홀름 교수는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해 최적의 연결법을 고안해냈다. 이는 수천명의 목숨을 살리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의료 영역의 문제지만 컴퓨터와 접목해 답을 구해낸 것이다. 김종우 정보교육학회장(제주대 교수)은 “소프트웨어 교육을 한 과목으로만 한정시켜 볼 필요는 없다. 아이들이 국어, 과학, 예술 등 다양한 영역과 컴퓨터 기술을 접목하는 방법을 익히도록 하는 교육이 더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런 내용을 교육받는 아이들의 현실과 접목하는 일이다. 이민석 학장은 “스티브 잡스나 마크 저커버그가 어릴 때 학교에서 소프트웨어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의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호기심을 자신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을 어릴 때 가졌다는 것이 중요하다. 소프트웨어는 그다음 문제”라고 말했다. 앞서 소프트교육 봉사단의 경험 사례처럼 지금 학부모와 교육 현장의 관심은 온통 대입에 쏠려 있다. 섣불리 도입된 정보교육은 또다른 입시 과목으로 사교육 시장만 늘려놓고 아이들에겐 스트레스 과목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는 셈이다. 또한 이명박 정부 시절 정부가 정보교육에 사실상 손을 놓으면서 떨어진 담당 교사의 수와 낙후된 시설 등 현실적인 문제들도 산적해 있다. 교육은 시대를 반영해서 구성된다. 지넷 윙 마이크로소프트연구소 부소장은 “인쇄기술이 읽고 쓰고 계산하는 (현재) 학교 교육의 기본을 퍼뜨렸듯이 컴퓨터 기술은 컴퓨터적 사고에 대한 교육을 확산시킬 것”이라고 예견했다. 꼭 정보기술 인재를 기르자는 목적 때문이 아니더라도 가속화하는 정보 네트워크 시대에 공교육은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피해갈 수 없는 문제다. 대덕/글·사진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7월29일 대전 카이스트에서 열린 소프트웨어 교육봉사단의 활동 소개 모습이다.
하지만 섣부른 프로그래밍 교육은
오히려 학생들 창의성 억누를 수도
기술보다 컴퓨터활용 사고가 중요 교육부와 미래창조과학부의 ‘소프트웨어 교육 의무화’ 발표와 박근혜 대통령의 강조 발언 뒤로 소프트웨어 교육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초등학교는 내년부터 희망학교를 시작으로 소프트웨어 교육을 의무화하고, 중고교는 2017년부터 정규 교과목에 포함시키겠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입시와 연계가 안 되면 잘 배우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며 대입 연계 시사 발언까지 내놨다. 하지만 성급한 정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소프트웨어란 무엇이며 아이들에게 어떤 것을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앞서지 않으면 오히려 창의성을 억누르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미래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의 김진형 소장(카이스트 교수)은 소프트웨어 교육의 필요성을 ‘소프트웨어 중심사회’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예전에 소프트웨어 하면 일부 전문가들의 영역처럼 여겨졌죠. 지금은 개인·정부·기업 등 사회 전반에서 컴퓨터 기술과 연관되지 않은 영역이 없습니다. 그리고 각 분야의 혁신은 소프트웨어와의 결합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현 정부의 정책 방향은 이 가운데에서도 ‘소프트웨어 인재가 부족하다’는 산업계 필요에 부응하는 쪽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럼 학교에서 당장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 게 답일까? 영화 등을 통해 알려진 것처럼 안경 쓴 전문가가 입력하는 복잡한 영어와 기호의 조합들을 이해하고 쓰는 기술 말이다. 전문가들은 프로그래밍을 소프트웨어 교육과 동일하게 보는 건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이민석 엔에이치엔 넥스트(NHN NEXT) 학장은 “교육 방법은 다양하다. 프로그래밍을 가르치거나, 컴퓨터적 사고(Computational Thinking)를 수업에 도입하거나, 로봇을 만들어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엔에이치엔 넥스트는 네이버에서 후원하는 비영리 소프트웨어 인재양성 기관이다. 이 학장은 “핵심은 학생들이 자신의 문제를 소프트웨어로 해결해보는 경험을 하고 그것을 재밌게 느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어떤 전문가들은 ‘컴퓨터적 사고’를 교육의 핵심으로 본다. 컴퓨터적 사고란 컴퓨터를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대표적으로 신장 이식의 사례가 있다. 미국에서만 매년 3만명이 치명적인 신장 질환을 앓는데 수많은 환자들과 그들에게 적합한 기증 신장을 제때에 연결하는 일은 쉽지 않은 문제였다. 카네기멜런대의 토머스 샌드홀름 교수는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해 최적의 연결법을 고안해냈다. 이는 수천명의 목숨을 살리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의료 영역의 문제지만 컴퓨터와 접목해 답을 구해낸 것이다. 김종우 정보교육학회장(제주대 교수)은 “소프트웨어 교육을 한 과목으로만 한정시켜 볼 필요는 없다. 아이들이 국어, 과학, 예술 등 다양한 영역과 컴퓨터 기술을 접목하는 방법을 익히도록 하는 교육이 더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런 내용을 교육받는 아이들의 현실과 접목하는 일이다. 이민석 학장은 “스티브 잡스나 마크 저커버그가 어릴 때 학교에서 소프트웨어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의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호기심을 자신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을 어릴 때 가졌다는 것이 중요하다. 소프트웨어는 그다음 문제”라고 말했다. 앞서 소프트교육 봉사단의 경험 사례처럼 지금 학부모와 교육 현장의 관심은 온통 대입에 쏠려 있다. 섣불리 도입된 정보교육은 또다른 입시 과목으로 사교육 시장만 늘려놓고 아이들에겐 스트레스 과목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는 셈이다. 또한 이명박 정부 시절 정부가 정보교육에 사실상 손을 놓으면서 떨어진 담당 교사의 수와 낙후된 시설 등 현실적인 문제들도 산적해 있다. 교육은 시대를 반영해서 구성된다. 지넷 윙 마이크로소프트연구소 부소장은 “인쇄기술이 읽고 쓰고 계산하는 (현재) 학교 교육의 기본을 퍼뜨렸듯이 컴퓨터 기술은 컴퓨터적 사고에 대한 교육을 확산시킬 것”이라고 예견했다. 꼭 정보기술 인재를 기르자는 목적 때문이 아니더라도 가속화하는 정보 네트워크 시대에 공교육은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피해갈 수 없는 문제다. 대덕/글·사진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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