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육을 구할 골든타임이 끝나가기 직전이었는데 간신히 희망을 되살렸다. 시민들의 위대한 선택 덕이다. 저도 서울의 교사·학부모들에게 마음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게 됐다.”
곽노현(60) 전 서울시교육감은 소수자로 ‘좌충우돌’하던 때와 확연히 달라진 현실에 소회가 남다른 듯했다. 곽 전 교육감은 2010년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박명기 전 서울교대 교수에게 선거 뒤 2억원을 건넸다는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등)로 유죄를 선고받고 지난해 3월에야 자유의 몸이 됐다. 이후 그는 후임 교육감들에게 건네는 조언을 담은 책 <징검다리 교육감>을 펴냈고, 인터넷 방송을 통해 교육개혁의 메시지를 꾸준히 내고 있다. 6·4 교육감 선거 다음날과 2일 두차례에 걸쳐 그를 만났다.
곽 전 교육감은 17개 시·도교육감 협의회의 역할에 진보 교육감의 성패가 갈리리라고 내다봤다. 자신이 임기 중 겪은 16개 시·도교육감 협의회(당시 세종시교육감은 없었음)를 “교육부의 마름에 불과했다”고 잘라 말했다. “교육감협의회는 교육부 정책의 전달 통로였을 뿐이다. 집중이수제·일제고사 반대처럼 교육부와 갈등이 일 만한 의제는 아예 통과되지 않았다. 진보 교육감들이 제시한 의제가 처음으로 채택된 건 임기가 시작되고 2년이 지난 뒤였다. 진보 교육감(6명)이 보수 교육감(10명)보다 수는 적지만 서울·경기를 장악했기 때문에 학생·교사 수에선 확실한 과반수였는데도 보수 교육감들이 툭하면 다수결로 표결하자고 했다. 협의회 부의장 두 자리 중 한 자리마저 양보하지 않으려고 해 두 시간을 싸워 겨우 한 자리를 얻었을 정도였다.”
목소리를 높이던 그가 새 진보 교육감들이 주도할 교육감협의회는 지금까지와 다른 길을 갈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는 “교육감들이 이젠 교육부뿐만 아니라 대학에도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대학입시의 변화 없이 유초중고 교육을 바꿀 수 없다”며 “나아가 전국경제인연합회·한국경영자총협회 같은 경제계에도 채용 방식을 바꿔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과도한 입시 경쟁의 직접적 발단은 대학 서열화지만 그 배후엔 약탈적인 재벌 경제가 있다. 고용시장이 바뀌어야 교육이 정상화된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감협의회가 정부는 물론 기업·대학 등과 대등한 협상력을 가지려면 실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육감협의회를 활성화하려면 개별 교육청 사안에만 매몰되지 말고, 교육 분야 전반에 걸친 문제와 관련해 나름의 진단과 해법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는 교육부만이 이런 접근을 하고 성과물도 독점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17개 시·도교육감이 이에 필적하는 연구성과를 내놔야 한다. 지금까지처럼 전경련에 한 장짜리 권고문을 던져봐야 아무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교육감협의회를 법률적 권한을 갖는 상설기구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정부 때 교육감협의회를 법제화하는 법안을 제출했는데 진보 교육감이 대거 당선되니까 책상 속에 집어넣고 말았다. 상설 사무국 설치를 골자로 하는 교육감협의회법을 통과시켜야 한다.”
그는 ‘교육관료의 벽’을 넘으려면 교육감이 “민주주의의 전문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 교사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이들의 이해와 협력을 구해야 교육을 바꿀 수 있다는 조언이다. 그는 “관료주의는 인사권 등 교육감의 권위를 앞세우는 또다른 관료주의로는 결코 극복할 수 없다”고 자신의 경험을 전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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