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이 자기 책을 펴낸 출판사와 업무협약을 맺어 책을 판촉하는 내용의 걸개그림을 서울시내 유치원에 일제히 보낸 사실이 확인됐다. 교육 관련 시민단체들은 18일 문 교육감을 업무상 배임과 선거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문 교육감은 지난해 4월 서울 송파구의 한 연수원에서 자신의 저서 <문용린 교수님과 함께하는 정약용책배소 이야기>를 펴낸 출판사인 김영사의 박은주 대표와 만나 교육청의 사업인 정직·약속·용서·책임·배려·소유(정약용책배소)라는 6가지 덕목을 형상화한 걸개그림을 김영사가 제작해 서울 지역 유치원에 배포하는 내용의 업무협약을 맺었다. 실제로 김영사는 지난해 4~5월 두차례에 걸쳐 걸개그림 6개씩을 서울시내 유치원 827곳에 택배로 배송했고, 교육청은 이를 알리는 공문을 각 유치원에 내려보냈다.

당시 문 교육감은 “(김영사가) 관련 도서 구입에 대한 편의를 (유치원에) 제공한다”는 문구가 들어 있는 업무협약서에 서명했다. 김영사 담당자는 18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교육청과 업무협약을 맺어 김영사가 배포한 걸개그림은 <문용린 교수님과 함께하는 정약용책배소 이야기>의 판매 촉진용이었다. 우리가 1000만원 넘게 들여 교육청의 정책에 쓰일 걸개그림을 만들어 배포하는 대신 이와 관련된 책을 홍보해 수익을 내는 마케팅 방식”이라고 말했다.

교육감이 자기 책을 판촉하는 데 공적 지위를 이용했다는 비판이 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동안 산하 교육지원청과 기관들이 자기 책을 사들여 학부모 등한테 나눠준 사실이 드러나자 “모르는 일”이라던 문 교육감의 해명도 설득력이 떨어지게 됐다.

실제 지난해 일선 유치원에 배포된 걸개그림 1000여개에는 김영사 로고가 찍혀 있다. 이는 김영사와 교육청의 협의에 따른 것으로 교육청도 걸개그림이 책 홍보용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게 김영사 쪽의 설명이다. 김영사 담당자는 “순수한 재능기부가 아니라는 지적이 있어 2차로 배포한 4개 걸개그림에서는 로고를 뺐다. 하지만 ‘정약용책배소’란 말 자체가 우리 책을 떠올리게 하고, 우리도 교육청과 업무협약을 맺은 사실을 유치원 판촉에 활용해 지난해 하반기에 책 주문이 많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22개 교육시민단체가 참여한 서울교육단체협의회는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서적 홍보나 다름없는 업무협약을 출판사와 맺어 돈을 챙긴 문 교육감의 업무상 배임 혐의가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시교육청이 문 교육감의 책을 2425만원어치 구입하고 이 가운데 1300여권을 학부모들한테 무료로 나눠준 사실(<한겨레> 3월17일치 8면, 18일치 12면)과 관련해 단체들은 이날 문 교육감과 업무 담당자 3명을 업무상 배임과 선거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교육청은 “문 교육감의 책이 학부모한테 유용하다고 판단해 조례와 시행규칙에 근거를 두고 배부했다. 이는 통상적으로 수행하는 업무 중 하나”라고 해명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