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강창광 기자
[데이터 한겨레]
사립 국제고·외고·자사고 학비, 일반고의 약 8배
부모 직업도 대부분 전문직·대기업 종사자
사립 국제고·외고·자사고 학비, 일반고의 약 8배
부모 직업도 대부분 전문직·대기업 종사자
연간 학비 2000만원. 대학 등록금 얘기가 아니다. 특수목적고(특목고)인 사립 외국어고에 자녀 한 명을 보낼 때 기본으로 들여야 할 돈이다. 서울에 살며 맞벌이로 1달에 700만원 정도의 소득을 얻는 정명숙(가명·47·여)씨 가정도 사립 외고에 보낸 아들의 학비에 생활이 빠듯하다. 통계청 사교육비 통계에서 1달 700만원은 학부모들 가운데 상위 10.8%에 속하는 수준이다.
“아들 하나뿐이라 그나마 괜찮지, 둘이었으면….” 정씨는 9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헛헛한 웃음을 보태며 이렇게 말했다. 정씨는 이미 지난 한 달 동안 아들 학교에 300만원 가까운 돈을 냈다. 입학금과 수업료, 학교운영 지원비만 220만원이었고, 겨울 교복 두 종류(캐주얼+정장)와 기숙사 생활복, 체육복 등에 65만원을 썼다. 3월치 기숙사비 70만원과 최근 한 리조트에서 열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비 23만원도 이달 중 후불로 내야 한다.
이 학교는 1학년 여름방학 한 달 동안 아프리카 등 외국 봉사활동도 권장한다. 권장이라지만 실상 모두가 참여하는 이 활동에 들어가는 비용은 300만~500만원 정도다. 이런저런 돈을 다 합하면 연간 학교에 쓰는 돈만 최대 2000만원에 달한다. 그래서 그는 “씀씀이도 많이 줄였고, 웬만하면 사교육도 시키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학비가 워낙 비싸다보니 특목고에 다니는 학생의 학부모는 이른바 ‘잘 버는’ 직종에 종사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다. 같은 학교 학부모와 몇 차례 만나본 정씨는 “부모 직업 대부분이 의사 등 전문직이나 대기업 종사자였다. 우리처럼 중소기업 다니는 부모는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정씨네는 회사에서 학자금 지원도 해주지 않아 학비를 모두 직접 부담해야 한다.
이처럼 외고나 국제고, 자율형사립고(자사고) 등 이른바 ‘특권 학교’를 다니기 위해 부담해야 하는 돈은 일반고의 8배 수준이다. 정진후 정의당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2013년 학교별 연간 학비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가 이렇다. 국제고(7곳)는 평균 855만908원으로 일반고(서울 201곳) 평균 106만2275원의 8.0배였다. 사립 외고(17곳)와 자사고(45곳) 평균은 각각 837만3832원, 825만7028원으로 일반고의 7.9, 7.8배였다. 공립 외고(14곳)도 평균 538만7147원으로 일반고의 5.1배였다.
이들 ‘비싼 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의 경제력은 일반고와 비교해 큰 차이를 보인다. 지난해 한국교육개발원이 낸 ‘학교 교육 실태 및 수준 분석(Ⅳ): 고등학교 연구’ 보고서를 보면, 자사고 자녀를 둔 학부모가 쓰는 사교육비는 2012년 월 평균 38만9000원으로 일반고의 16만8000원보다 2배 많은 수준이었다. 빈곤 학생 비율을 봐도, 자사고(2.46%)가 일반고(4.45%)보다 낮았다.
서울 구로구의 한 중학교 교사는 “과거에는 좋은 학교에 진학하게 되면 ‘공부 잘해서 좋겠다’고 했는데, 요즘에는 ‘돈 많아서 좋겠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들었을 때 정말 문화적 충격이 컸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의 중학교 3학년 부장 교사는 “2012년에 한 교사가 성적이 좋은 학생에게 자사고를 가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가 학부모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자사고에 보낼 형편이 안 되는데 왜 아들 마음에 상처를 줬느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교육개발원의 ‘고교 다양화 정책의 성과 분석 및 개선 방안 연구’를 보면, 지난해 9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표본이 된 20개 일반고 학생 200명 가운데 36.4%(학부모의 41.0%)가 이 학교 진학을 원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자사고 학생은 8.8%(학부모 12.0%)가 원치 않았다고 답한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자사고 등 특권학교에 갔다가 학비 때문에 일반고로 되돌아가는 현상도 드물지 않다. 지난해 초 서울의 한 자사고에 아들을 보낸 심아무개(45·여)씨는 지난 겨울방학 동안 전학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결국 남기로 결정한 심씨는 “지난해 아이 학교에서 30명 정도의 학생이 일반고로 전학갔다. 고2 진학할 때가 전학의 마지막 기회여서 많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학교에 다니는 고교생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부의 통계를 보면, 일반고 학생은 2009년 143만2970명에서 지난해 135만6070명으로 5.4% 감소한 반면, 값 비싼 외고·국제고·자사고 학생은 2009년 2만7137명에서 지난해 7만4497명으로 174.5%나 늘었다. 일반고 학생 대비 외고·국제고·자사고 학생의 비중으로 따져보면, 2009년 1.9%, 2010년 1.9%, 2011년 3.1%, 2012년 4.1%, 2013년 5.5% 등으로 매년 증가했다. 2010년부터 국가 지원은 끊으면서 학비는 자유롭게 올릴 수 있게 한 자사고가 대거 신설되는 등 ‘교육 민영화’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박범이 참교육학부모회 회장은 “교육이라는 것이 과연 경제적 능력에 따라 상품처럼 선택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우려가 크다. 학교별 격차를 해소해 적어도 일반고와 다른 특권학교들간 균형을 맞추는 것이 국가의 기능이라고 생각하는데, 정부는 그 역할을 하지 못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음성원 김지훈 기자, 시각화 조승현 esw@hani.co.kr
※ 1인당 교육비는 입학금·수업료·학교운영지원비·급식비·기숙사비·교과서대금·통학버스비·방과후학교 교육비·수학여행비·수련활동비·기타 현장체험 학습비·졸업앨범비 등 학교에 내야 할 모든 수익자 부담 경비를 더한 것이다. 다만 일부 학교들은 이 항목 중 일부를 제출하지 않아 실제보다 저평가된 금액이다. 물론 외고·자사고 등의 학비에는 일반고와 달리 기숙사비까지 포함돼 있긴 하지만, 기숙사 비용이 선택 사항이 아니라는 점에서 일반고와의 비교에서 과대평가된다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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