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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보수가 10년 공들인 ‘역사 전쟁’…시민 상식 앞에 무릎 꿇다

등록 2014-01-07 19:59수정 2014-01-08 15:56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마이크 든 이)가 7일 오후 서울 공덕동 서부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교학사 교과서 폐기와 서남수 교육부 장관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이날 회견에는 교학사 교과서의 왜곡 서술로 피해를 입었다며 해당 교과서의 배포를 금지해달라고 서부지법에 가처분신청을 낸 독립운동가 유족과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제주 4·3사건 유족들도 참여했다. 이날 서부지법에서는 가처분 신청과 관련한 첫 공판이 열렸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마이크 든 이)가 7일 오후 서울 공덕동 서부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교학사 교과서 폐기와 서남수 교육부 장관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이날 회견에는 교학사 교과서의 왜곡 서술로 피해를 입었다며 해당 교과서의 배포를 금지해달라고 서부지법에 가처분신청을 낸 독립운동가 유족과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제주 4·3사건 유족들도 참여했다. 이날 서부지법에서는 가처분 신청과 관련한 첫 공판이 열렸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시민에 막힌 교학사 교과서]

금성교과서 ‘좌편향 딱지’로 시작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발간하기도

교학사 교과서까지 이르렀지만
숱한 오류에 친일·독재 미화
학생·학부모·교사·시민들 거부
학교 14곳, 교학사 채택 철회시켜
이른바 보수 학자들이 만든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의 채택률이 0%대에 머무는 것으로 결론이 나면서, 우파세력이 10년여에 걸쳐 벌인 ‘역사 교과서 투쟁’이 시민의 상식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03년 금성출판사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두고 ‘좌편향’ 딱지를 붙인 것으로 시작된 보수세력의 ‘역사 전쟁’이 참패한 모양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이 7일 시·도교육청 등을 통해 한국사 교과서 채택 현황을 집계한 결과, 전국 고교 2370곳 가운데 아직 최종 확인이 끝나지 않은 서울 지역을 제외하고 교학사 교과서를 선택한 것으로 파악된 학교는 경북 청송여고 단 한 곳인 것으로 나타났다. 친일과 군사독재를 미화하고 숱한 오류 논란에 시달린 교학사 교과서가 학교 현장에서 선택받지 못한 채 몰락한 셈이다.

교학사 교과서의 출현에 대해 역사학계에서는 일부 보수학자들이 10년 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온 역사 전쟁의 결실이라고 설명해왔다. 보수세력은 2003년 금성출판사 교과서를 두고 ‘좌편향’이라며 논란을 일으킨 데 이어, 2008년 뉴라이트 계열의 교과서포럼 인사들이 친일·독재미화 등으로 논란이 된 <대안교과서-한국 근현대사>를 발간하기도 했다.

이어 2011년 11월 이주호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교과서에 등장하는 ‘민주주의’란 문구를 ‘자유민주주의’로 교체하라는 장관 명령을 발동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정부는 교과서 집필 기준에서 ‘대한민국이 해방 뒤 친일파 청산에 대해 노력했다’는 부분을 빼기도 했다. 이 때문에 당시에도 <대안교과서> 같은 친일·독재 미화 성격의 ‘보수 교과서’가 등장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지수걸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지난해 계간 <역사비평> 겨울호(통권 105호)에서 “교과서포럼은 2008년 <대안교과서> 출판 시 ‘책을 내면서’에서 자신들의 역사관을 담은 교과서를 만들어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야심을 드러낸 바 있는데,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는 그 결실에 해당하는 작품”이라고 규정했다.

이렇게 등장한 교학사 교과서는 새누리당의 지지를 받았다.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9월 ‘근현대사 역사교실’ 모임을 열어 교학사 교과서 저자인 이명희 공주대 교수가 강연하도록 하는 등 교학사 교과서의 후원자 노릇을 했다. 아울러 일부 보수단체는 공문이나 광고문 형태로 지역 학교장 등에게 교학사 교과서를 선택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쏟아냈다.

하지만 보수세력의 노력에도 시민들은 교학사 교과서를 외면했다. 특히 일부 학교들이 이를 선택했다가도 학생·학부모 등 교육 주체의 항의에 밀려 다른 교과서로 변경했다. 이런 학교들은 7일 현재 파악된 결과 모두 14곳에 이른다.

변화가 시민들의 손에서 시작됐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경기도 수원 동우여고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 재학생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주제로 쓴 대자보는 학교에서 10분 만에 떼어냈지만 주변에 큰 울림을 주며 연쇄반응을 일으켰다. 교사가 교장 등에게 외압을 받았다며 양심선언을 하는가 하면, 동문들의 대자보 시위 등으로 이어졌다.

교학사 교과서 철회 여부를 두고 막판까지 진통을 겪던 전북 전주 상산고도 7일 채택 철회를 밝혔고, 같은 날 파주의 한민고는 전면 재검토 결정을 내렸다. 특히 교육부가 이들 학교에 대해 이례적인 특별조사를 벌이며 사실상 현상유지를 압박했음에도 먹혀들지 않았다.

하일식 연세대 교수(한국 고대사)는 “일본에서 역사왜곡 교과서인 ‘후소사 교과서’ 파동이 일었을 때 채택률이 0.039%였다. 자신들이 행한 식민통치를 미화하고 다른 나라를 침략한 행위를 찬양하는 교과서가 일본에서조차 1% 미만이었는데, 우리나라는 그 침략을 당하고 식민지배를 받은 나라인데도 친일 미화 교과서 채택률이 1%에 이를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오히려 놀랐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학생·학부모·교사·시민사회가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보지만, 반대로 학계에서 오류·부실 덩어리라고 지적했는데도 15곳이나 되는 학교의 관리자들이 이를 채택했다는 점은 걱정스러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음성원 기자 e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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