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향 논란‘ 교학사 교과서를 한국사 교과서로 채택한 수원시 이목동 동우여자고등학교에 2일 오전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가 붙었다 철거됐다. 사진=동우여고학생 트위터
“엉터리 역사 배울 수 없다” 재학생·졸업생·학부모 반발 확산
대자보 붙이고, 게시판 글 올려…‘운정고’ 교학사 채택 방침 바꿔
대자보 붙이고, 게시판 글 올려…‘운정고’ 교학사 채택 방침 바꿔
친일과 독재 미화 등 ‘역사 왜곡’ 논란을 빚은 ‘교학서 교과서’를 채택한 한 고등학교의 재학생들이 “역사왜곡 교과서를 채택한 이유를 묻고 싶다”며 학교에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몇몇 고등학교들의 학부모들과 예비 학부모, 졸업생들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교과서 채택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2일 오전 수원 장안구 이목동 동우여고 2, 3, 4층 계단 복도 6곳에 ‘동우여자고등학교 재학생’ 명의로 ‘안녕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나붙었다. 대자보에는 “미래를 짊어지고 이끌어가야 할 학생들이 나라의 역사를 이런 교과서(교학사 교과서)로 배우게 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의문스럽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으나, 10여 분만에 학교 쪽에 의해 철거됐다.
대자보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이 문구를 기억하십니까? 한·일전에서 우리나라 관중들이 든 현수막의 문구입니다. 이 문구는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에게 보내는 우리 민족의 메시지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문구를 우리나라 교과서 집필진들에게 건네야 하는 상황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정말 한탄스럽습니다”라고 꼬집었다.
대자보에는 이와 함께 “경기도 내 450개 학교 중 조사된 436개 학교에서 단 5개 학교만이 이를 채택했는데 그 중 두 학교가 (같은 재단인)동원·동우여고라는 점이 참으로 개탄스럽습니다. 역사를 가장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가르쳐야 할 학교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의문을 감출 수 없다”는 내용도 섞여 있다.
이 대자보는 학교 쪽에 의해 10여분 만에 강제 철거됐으나, 이날 오전 트위터에 사진으로 공개됐다. 이 학교 학생회도 지난 1일 간부 회의에서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반대한다”는 의견을 모아 학교 쪽에 전달하기로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이런 교과서 채택이 알려지자 학부모들의 항의 전화도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학교 관계자는 “모든 게시물은 학교의 검인을 맡아야 하지만 그런 규정을 어기고 붙인 것이어서 철거가 불가피했다. 또한, 교학사 교과서 채택도 학교운영위원회 논의 등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이와 함게 교학사 교과서가 채택된 해당 학교 재학생 학부모와 예비 학부모, 졸업생들도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분당 영덕여고 누리집 자유게시판에는 지난 31일부터 “학교가 교학사 역사 교과서를 채택했다는 뉴스의 기사 내용에 대한 사실 관계를 확인 부탁드린다”는 요청에 이어, 교과서 채택 사실이 실제로 확인되자 이를 철회하라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학부모’라는 아이디의 누리꾼은 “우리 아이들에게 엉터리 역사를 배우게 할 수는 없다. 당장 철회하고 다른 교과서로 올바른 역사교육을 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체 학부모의 큰 저항에 부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자신을 ‘예비 학부모’라고 밝힌 누리꾼도 “우리 아이는 기사를 보고 괜히 영덕여고 지원했다고 울기까지 합니다”라며 교과서 채택 재검토를 요구했다. 영덕여고 졸업생이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어디가서 영덕여고 출신이라 말하기도 부끄럽네요. 저의 후배들이 어이없는 교과서로 한국역사를 배우게 되다니 정말 슬픕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기로 결정했던 파주 운정고는 파문이 확산되자 해당 교과서를 교체하기로 방침을 바꾸었다. 학부모들의 반발이 워낙 거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 학교가 방침을 변경하기 전까지, 학부모들은 “파주의 자존심을 지켜줘야 할 운정고가 한방에 꼴통학교로 전락될 수 있다”며 교과서 채택을 막기 위한 집단행동에도 나설 수 있다고 경고하는 등 강하게 대응했다. 인터넷 카페 ‘파주를 사랑하는 엄마들의 모임’에서는 “정말 말이 안나오는 상황입니다. 몇년 쌓아진 좋은 이미지 한방에 훅~”(누리꾼 아이디 ‘yyj***’) , “너무 기막힌 일입니다. 먹칠을 하네요”(누리꾼 아이디 ‘시***’) 등의 글이 올라왔다. 또 다른 누리꾼 ‘나의***’는 대놓고 친일 커밍아웃 아닌가요…우리 아이가 아직 고딩은 아니지만 전화로라도 항의하려구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를 위해서라도요”라며 항의의 뜻을 밝혔다.
한편 교학사 교과서는 대구 포산고, 경북 성주고, 울산 현대고, 전북 상산고, 경기 파주 운정고(공립), 수원 동원고(이하 사립), 수원 동우여고, 여주 제일고교, 성남 영덕여고를 비롯해 경남지역에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립고 2~3곳이 채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수원/김기성, 홍석재 기자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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