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사건 민간인 희생 기술하며
경찰·우익 피해 동등한듯 표현
친일 미화도 안바꾼 채 그대로
출판사가 수정한 7종 최종승인
교육부 ‘봐주기 심의’ 의혹 키워
교육부가 10일 수정명령에 따라 내용을 고친 고교 한국사 교과서 7종을 최종 승인했다. 하지만 교학사 교과서는 다른 6종과 달리 교육부의 수정명령조차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데다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내용이 여전히 포함돼 있어 교육부의 승인 조처에 정당성 시비가 인다.
교육부는 이날 수정명령에 따라 7종 출판사들이 제출한 수정·보완 대조표를 승인해 내년부터 학교에서 쓸 8종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수정·보완 작업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수정명령을 받지 않은 리베르스쿨 출판사는 지난달 이미 승인을 받았다.
교육부가 공개한 수정·보완 대조표를 보면, 교학사 교과서는 교육부가 내린 수정명령조차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경우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제주 4·3사건 관련 서술이 대표적이다. 교육부는 애초 사건이 경찰의 오인에 의해 발생한 듯이 기술한 부분과 “무고한 많은 양민의 희생”으로 표현된 부분을 “제주4·3특별법의 목적과 취지를 반영해” 더 명료하게 고치라고 수정명령했다. 하지만 교학사 교과서는 “경찰이 발포하여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중략) 당시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의 많은 희생이 있었고, 많은 경찰과 우익 인사가 살해당하였다”(305쪽)면서 마치 민간인의 희생과 경찰 등의 피해가 동등한 것처럼 보이는 문구를 추가했다.
김창후 제주4·3연구소 소장은 “민간인 희생이 3만명 정도이고, 경찰 등의 희생은 1000명 정도다. 4·3특별법의 정신에 따른다면 민간인들의 희생을 강조하는 쪽으로 서술해야 하는데, 기계적으로 균형을 맞추는 식으로 (교학사 저자들이) 장난쳤다. 이게 어떻게 (수정심의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육부가 일제 때 애국지사의 활동에 대한 서술(288쪽)과 관련해 “애국지사들의 민족운동을 축소하는 등 오해의 소지가 있어 수정이 필요하다”고 수정명령한 부분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수정된 뒤에도 일제 치하 어려운 상황에서 이뤄진 애국지사들의 활동은 전혀 소개되지 않았지만, 수정심의회는 심의를 통과시켰다.
교학사 교과서의 문제 있는 대목 중 교육부가 아예 수정명령을 하지 않은 곳도 수두룩하다. 친일 사학자 이병도를 식민사관에 맞서고 실증사학을 주창했던 인물로 서술하면서 미화했다는 지적을 받은 서술(266쪽)은 “(이병도가)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려고 하였다”는 언급만 뺀 채 그대로 실렸고, 일제의 쌀 수탈을 ‘수출’(372쪽)로 표현한 부분도 교학사 저자들이 ‘반출’로 자체 수정하는 선에서 그쳤다.
교육부와 수정심의회의 공정성에 의구심이 제기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교육부는 이런 결과를 내놓은 수정심의회의 위원 명단을 여전히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부위원장은 “교육부의 수정명령에 이르는 과정이 교학사 교과서 봐주기를 위해 눈 가리고 아웅 한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교학사 교과서는 표현 등이 조금 바뀌었지만,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독재 미화에 대한 서술 태도는 크게 바뀌지 않아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앞서 교육부는 10월21일 8종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 대해 총 829건을 수정·보완할 것을 권고했고, 각 출판사가 고친 내용에 대해 11월29일 788건을 승인하고 41건에 대해서는 수정을 명령했다. 음성원 기자 e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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