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 한국사 교과서’ 어떤 내용?
박정희·이승만
공은 크게 과는 작게
전·노 내란재판 누락
“노무현 안보 소홀
이명박 안보 확실”
박정희·이승만
공은 크게 과는 작게
전·노 내란재판 누락
“노무현 안보 소홀
이명박 안보 확실”
국사편찬위원회의 최종 검정을 통과한 교학사의 ‘한국사 고교 교과서’는 박정희·이승만 전 대통령 등 뉴라이트와 보수 진영이 옹호하는 인물들의 ‘공’은 부각해서 서술하고 ‘과’는 적게 쓰려 노력한 흔적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박홍근 민주당 의원이 30일 확보한 ‘교학사 고교 한국사 검정심사 최종본’을 보면, 보수 세력이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하는 이승만 전 대통령 정권 시절에 일어난 ‘제주 4·3 항쟁’을 축소해 서술했다. 교학사 교과서 저자들은 “4월3일 남로당 주도로 총선거에 반대하는 봉기를 일으켜 경찰서와 공공 기관을 습격하였다. 이때 많은 경찰들과 우익 인사들이 살해당하였다.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는 무고한 양민의 희생도 초래되었다(제주 4·3 사건)”고 썼다. 이런 서술만 읽어서는 1948~1953년 일어난 제주4·3항쟁 당시 경찰과 우익 성향의 서북청년단이 최대 3만명가량의 양민을 학살한 사실을 알기 어렵다.
이 전 대통령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탄압한 사실에 대해서도 지면을 아꼈다. 교학사 교과서 저자들은 “경찰은 치안 유지와 공산 세력의 저지의 공을 주장하며 반발하였다. 1949년 6월 경찰은 반민 특위의 사무실을 습격하여 특별 경찰을 무장 해제시키기도 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공산 세력의 소탕에 경찰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여 경찰의 행동을 묵인하였다. 결국, 반민 특위는 1949년 8월말 해산되었다”고 썼다. 이는 리베르스쿨 출판사의 한국사 교과서가 “민족정기를 바로잡기 위한 친일파 처벌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끝났다”고 하는 등 반민특위 탄압의 민족사적 의미를 평가한 것과 크게 차이가 난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서술에서도 전두환 전 대통령(당시 소장) 등 신군부가 시민을 향해 발포한 사실 등이 교과서에 언급되지 않았다. 사건 당시의 참혹함 등은 빼고 건조하고 짧게 다뤘다. 교과서는 “진압군이 투입되면서 대규모 시위로 번지게 되었다(5·18 민주화 운동). 충돌은 유혈화되었고 시위대의 일부가 무장을 하고 도청을 점거하였다. 5월27일 계엄사령부는 계엄군을 광주에 진입시켜 광주를 장악하였다. 이 과정에서 희생자가 많이 발생하였다. (중략) 5·18 민주화 운동은 당장은 민주화 목표를 이루지 못하였지만 세계적으로 군부 독재 정권에 대한 저항의 선례가 되었다”고 썼다.
다른 교과서들이 계엄군이 시민을 폭행하는 사진이나 숨진 아빠의 영정사진을 안은 아이 사진 등을 실은 것과는 달리 이 교과서에는 관련 사진이 등장하지 않는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5년 내란죄 등으로 재판에서 무기징역형을 받은 사실도 이 교과서에서는 누락됐다.
다른 교과서들이 노태우 전 대통령 이후 대통령들에 대해서는 국정 과제를 소개하는 정도에 그치는 반면, 교학사는 적극적으로 장단점을 평가했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노태우·김영삼·김대중 대통령에 비해서 매우 박했다. “노무현 정부는 참여 민주주의를 표방하며 권위주의를 청산하려는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법치의 규범을 약화시켰다는 비판도 받고, 국회에서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노무현 정부가 밀어붙인 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은 위헌 판결을 받았다. 대북 유화책이 두드러져서 안보에는 소홀하다는 비판도 받았다”고만 썼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이명박 정부는 안보를 보다 확실히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경제를 선진화시킨다는 목표를 가졌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의 경제 위기가 있었지만, 대한민국은 2012년 20-50 클럽에 세계 7번째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기술했다.
한편 일제 강점기 한국 경제의 발전을 서술한 부분에서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논리가 보인다. 교학사 저자들은 “1920년대 후반부터 일본 대기업들의 공업 분야 투자가 급증하였다. (중략) 그 결과 1910년~1940년 동안에 (중략) 광공업의 비중은 8%에서 29%로 증가하였다”고 썼다. 이는 리베르스쿨 출판사의 교과서에서 “1920년대에는 일본 자본의 한국 지배가 강화되어 한국인의 기업 활동이 점차 위축되었다”고 비판적으로 서술한 것과 대조된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의 집필자는 모두 6명으로, 뉴라이트 성향인 한국현대사학회 1·2대 회장인 권희영(한국학중앙연구원)·이명희(공주대 역사교육학과) 교수와 역시 이 학회 회원인 김도형 통일미래사회연구소 연구원, 공주대 역사교육학과 출신 교사 2명 등이 포함돼 있다.
이번에 검정을 통과한 역사교과서 8종은 새달 2일 공개되며, 일선 고교들은 9~10월께부터 내년에 쓸 교과서를 결정한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국사편찬위, 수정·보완내용 공개 초안엔 “한일협정으로 일 식민지배 배상 해결”
심의위 수정 권고에 “부분적 해결”로만 바꿔 국사편찬위원회는 30일 교학사의 ‘고교 한국사’를 포함한 8종의 교과서를 최종 심의 통과시키면서 심의 과정에서 이뤄진 수정·보완 내용을 공개했다.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는 애초 1965년 한일협정에 대해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은 해결되었다”고 썼다. 한일협정 체결로 일제의 36년 강점에 대한 민사배상이 모두 끝났다는 주장은 일본 우익의 태도와 동일한 것이다. 이에 검정심의위원회가 수정을 권고하자 집필자들은 “부분적으로 해결되었다”고 고쳤다. 유기홍 민주당 의원은 “이는 박정희 정권의 한일협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교학사 교과서는 또 38년 전 유신 시절 의문의 실족사를 당한 장준하 선생이 5·16 군사쿠데타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는 내용을 담았다가 심의위로부터 수정·보완 권고를 받았다. 심의위는 “장준하의 일생을 통한 정치적 입장에 비춰볼 때 예외적인 사례이고, 장준하의 생애와 활동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왜곡할 우려가 커 삭제할 것”을 요구해 결국 이 부분은 최종본에서 빠졌다. 아울러 집필진은 교과서 초안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5월18일 광주에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고 진압군이 투입되면서 시위대와 충돌이 일어났다”고 서술했다. 이에 대해 심의위는 “대규모 시위 발발과 진압군 투입의 선후 관계를 확인 후 재서술하라”고 권고했으나, 교과서는 “~시위가 일어났다. 진압군이~” 식으로 같은 문장을 두 문장으로 나누는 데 그쳤다. 또 “냉전에서 경제는 체제의 우월성을 가르는 지표가 되었다”는 교과서 내용에 대해 심의위는 “내용을 재검토하라”고 권고했으나, 집필자들은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 이들은 그 이유에 대해 “(당시에는) 무엇보다도 전쟁이 아닌 경제력을 통해 우위를 확보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하일식(연세대 교수)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은 “민주주의 등 다른 가치를 종합하지 않은 채 성장 지상주의의 역사의식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다른 교과서를 집필한 바 있는 한 대학교수는 “이 교과서의 내용에 대한 수정·보완 사항만 479개에 달한다. 다른 교과서는 207~302개라는 점에서 (이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했다는 것 자체가 특혜라고 볼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음성원 기자 esw@hani.co.kr [관련기사] 이승만 영웅시, 5·16 쿠데타 미화 뉴라이트 한국사 교과서 검정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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