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몸이 아파도 휴직할 수 없는 내 처지”
학교 비정규직, 설움 견디다 못해…

등록 2013-08-21 20:25수정 2013-08-21 22:29

이태의 전국학교비정규직본부 본부장이 21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후문에서 충북지역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김아무개(53·여)씨의 죽음에 대한 교육부의 책임 있는 대책과 비정규직 철폐를 호소하며 울부짖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이태의 전국학교비정규직본부 본부장이 21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후문에서 충북지역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김아무개(53·여)씨의 죽음에 대한 교육부의 책임 있는 대책과 비정규직 철폐를 호소하며 울부짖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과학보조 14년 무기계약직 자살
병가 쓰려 했지만 유급 14일뿐
정규직 유급휴직 2년과 대조
퇴직 뒤 실업급여 신청도 퇴짜
“갑을의 세상, 비정규직의 비참한 세상이란 말이 절감하여 처절합니다.”

17일 새벽 충북 청주 ㅈ초등학교 운동장 등나무에 목을 맨 이 학교 비정규직 김아무개(53·여)씨의 품속에는 종이 한장이 들어 있었다. 이 종이는 유서가 아니었다. 지난 7일 국민권익위원회의 국민신문고에 김씨가 넣은 민원과 이에 대한 충북교육청의 답변이 적혀 있었다.

21일 충북교육청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회련학교비정규직본부(전회련)의 말을 종합하면, 김씨는 개교 초기인 2000년부터 이 학교에서 과학실 업무를 담당하는 무기계약직으로 14년간 일해왔다. 김씨는 올해 초 남편과 이혼한 뒤 5월께부터 당뇨가 심해져 지난 5월27에서 6월24까지 휴가(유급 질병휴가 14일, 연차휴가 12일)를 다녀온 뒤 사직서를 내 6월30일 퇴직했다.

김씨는 퇴직 뒤 지역 고용안정센터에 실업급여를 신청했지만 받을 수 없었다. 김씨가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병가를 모두 쓴 뒤, 학교장으로부터 더 이상 병가나 질병휴직을 줄 수 없다는 증명서를 받아 고용안정센터에 내야 했다. 하지만 김씨는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질병휴가 60일 중 14일만 사용한 상태여서, 고용안정센터에선 김씨가 실업급여를 받을 조건이 안 된다고 판단했다. ㅈ초등학교 교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실업급여 자격에 관해서는 학교도 잘 몰라 안내하지 못했지만, 김씨가 병가를 60일 쓸 수 있는 것은 행정실 직원이 알려줬다. 이혼 등으로 인해 평소 우울증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씨가 병가를 더 쓰지 않은 이유는 유급이 아닌 무급 병가만 남아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노동능력을 상실해 당장 생계가 막막했던 김씨로선 무급 휴가를 쓰기보다 퇴직 뒤 실업급여를 받는 게 현실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게 된 김씨는 학교에 퇴직을 취소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미 퇴직 절차가 끝난 뒤였다. 김씨는 국민신문고에 올린 글에 “13년 동안 과학실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했지만 나름 보람된 삶을 보냈건만 병으로 인하여 퇴직하는 과정에서의 비참함과 황당함, 패닉상태에 빠지게 되고, 그렇게 사정했지만 아무 소용없이 물러나야 하는 나의 삶이 고통의 날을 보냅니다. 행정실은 교무실로, 교무실은 행정실로 나의 억울한 사정을 떠넘기고 있습니다. 병도 감당하기 힘든데, 수면제 도움 없인 잠도 이룰 수가 없는 이 비참한 삶, 삶의 의욕마저 상실하게… 날마다 눈물로 지냅니다”라고 썼다.

김씨가 억울한 마음으로 국민신문고에 올린 글에 지난 9일 충북교육청은 “(자신의) 판단에 의해 퇴직원을 제출하였고 이에 따라 퇴직처리가 된 것이기 때문에 현시점에서 행정처리를 되돌릴 수 없다”고 답했다. 김씨는 교육청으로부터 답을 들은 지 일주일 뒤인 17일 새벽 자신이 다니던 학교 운동장에서 새벽 운동을 나온 주민에게 숨진 채 발견됐다.

전회련은 김씨의 죽음이 학교 내 비정규직과 정규직 차별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충북교육청 관할 학교에서 교사나 행정실 정규직은 병에 걸렸을 경우 연간 60일의 유급 휴가를 쓸 수 있고, 이와 별도로 2년까지 급여의 70%를 받으며 휴직할 수 있다. 그러나 학교 비정규직은 연간 60일 병가(이 중 14일만 유급)밖에 없다. 경기도교육청 관할 학교 비정규직은 지난 5월부터 1년 질병휴직이 가능하지만, 이는 예외적인 경우다.

전회련은 이날부터 31일까지를 추모기간으로 정하고 교육부가 있는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교육부 장관의 사과와 차별적 질병휴직제 철폐를 요구하며 철야 노숙농성에 들어갔다. 이시정 전회련 사무처장은 “학교 비정규직은 몸이 아파도 쉴 권리조차 차별받고 있다. 학교 비정규직도 정규직처럼 몸이 아플 경우 1년을 휴직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개점휴업’ 해놓고…월세 받듯 활동비만 타간 ‘민간인 사찰 국조 특위’
전세계인이 미국인처럼 살려면 ‘지구 4개’가 필요하다
아내 몰래 비상금 넣어두려는데…‘비밀 계좌’ 은근한 인기
“우린 홍길동 신세, 진짜 사장을 사장이라고 못불러요”
[화보] 두 손 모아…천주교 ‘국정원 규탄’ 첫 시국 미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