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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남들이 쉽게 쓸 만한 내용·입장·방향은 피해라!

등록 2013-07-30 14:09수정 2013-07-30 14:11

실제는 영화 세트장이지만 이걸 현실로 알고 30년을 산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트루먼쇼>
실제는 영화 세트장이지만 이걸 현실로 알고 30년을 산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트루먼쇼>
수시논술 숨은 해법
■ 차별화의 정석

기가 막힌 문장을 썼다고 스스로 놀라워할 때가 있다. 하지만 곧 다른 작가나 철학자의 책에서 자신의 문장과 동일한 구절을 발견하고 허탈해한다.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인류의 장구한 지성사를 고려한다면 내 문장이나 거기에 담긴 생각은 다른 사람의 것과 비슷할 수 있다. 이처럼 남들과 다른 창의적인 글을 쓰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논술에서 수험생도 누군가가 이미 쓴 문장을 반복할 수밖에 없을까? 아닐 것이다. 논술에서 요구하는 창의성은 수험생이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 논술에서 말하는 창의력은 일반적인 생각에 의심을 품어보는 태도이고 주제를 구체적인 사례와 연결하여 생각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대에서 말하는 ‘독창적인 논의 전개’는 ‘①주장이나 논거의 새로움, ②문제를 통찰함에 있어 특이함, ③관점이나 논의 지평의 참신함’이다.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위의 요건들은 ‘남들이 일반적으로 전개할 만한 입장’을 고려해 보고 이와 다른 방향을 설정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다. 타인의 답안 전개 방향을 어떻게 짐작할 수 있는지 궁금해 하는 학생이 많다. 일반적인 주장이란 상식적이고 보편적이어서 우리에게 익숙한 주장을 말하는데,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으로 올바르다고 평가하는 입장인 경우가 많다. 예컨대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이기심보다는 이타심이 필요하다.’, ‘자본주의의 무한경쟁은 부작용을 양산하므로 지양해야 한다.’ 등 다수가 옳다고 생각할 법한 견해를 말한다. 수험생들은 이런 주장을 선택하면 더 쉽고 논리적으로 답안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글쓰기가 편하면 창의적인 답안이 될 가능성은 그만큼 적어진다. 따라서 익숙한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되풀이하는 것보다 이와 반대되는 주장을 선택해서 논증하는 편이 창의적인 답안을 쓰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물론 일반적인 주장을 굳이 회피할 필요는 없다. 그 방향으로 내용을 전개해서 설득력을 높일 수 있다면 이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논리적 정합성을 약화시키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색다른 견해를 고집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다만 일반적인 방향을 취했을 경우에는 그 ‘뻔한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독창적인 사례’를 제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례 들기의 방법은 7회, 15회에서 소개한 내용을 참고하고 이번 회에서는 ‘가장 먼저 떠오른 사례는 버려라’라는 논술계의 금언을 소개하는 것으로 그치고자 한다.

주제와 관련하여 가장 먼저 떠오른 사례는 대체로 잘 알려진 것일 가능성이 크다. 이를테면 사형제도의 부당함과 관련해서는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사례로 드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는 남들도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그렇다면 더 참신하고 적확한 사례는 없는지 고민한 후에 서술해야 한다. 이 경우에는 알베르 카뮈의 <단두대에 관한 성찰>이나 유신정권 시기의 ‘사법살인’을 예로 드는 것이 좋다. 즉 문학작품을 비롯한 고전, 역사, 시사, 영화 등에서 차별화된 사례를 찾아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차별화의 실전 2013정시기출문제 (서울대 인문계열 문항3-서울대는 정시에서 논술시험을 치르지만 ‘입시논술’ 해법 소개라는 차원에서 다룸)

‘자신만의 행복감’은 가능한가?

[논제1] (가)에서 박 이사는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당신은 박 이사가 행복했다고 생각하는가, 행복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가? 근거를 들어 논하시오.(600±100자)

[논제2] (나)의 ‘경험기계’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가정하자. 당신은 ‘경험기계’에 들어가겠는가, 들어가지 않겠는가? [논제1]에서 제시한 답과 연관 지어 논하시오(1,000±100자)

(가) 박 이사는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의 임원이다. 그는 스스로 동료와 부하 직원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고 여겼다. 뿐만 아니라 여유 있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는 자신을 행복한 사람의 전형으로 여기며 살다가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박 이사의 동료와 상사들은 그를 무능하다고 판단했고, 부하 직원들도 그를 무시했다. 회사에서는 그에게 조만간 사직을 권고할 예정이었다. 게다가 그의 가정은 부인의 도박 빚 때문에 경제적으로 파탄 지경이었고, 그의 자녀들은 각종 비행으로 학교에서 쫓겨날 형편이었다.

(나) 세계 최고 과학자 팀이 드디어 뇌 자극을 통해 쾌락 중추를 활성화시키는 단계를 넘어 완벽하고 현실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새로운 기계를 개발하는 데 성공하였다. 누구라도 이 기계에 들어가면 원하는 프로그램이 작동되어 실제와 똑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이 기계는 원하는 경험을 구현하는 데 기술적 제한이 없으며, 고장이 나거나 작동이 중단될 위험도 없다. 가령 당신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축구팀의 포워드로서 골을 넣는 경험을 원한다면, 이는 매우 쉽다. 당신은 수비수 여러 명을 제치고 통쾌하게 슛을 성공시키는 기분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물론 실제로 골을 넣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축구장의 그라운드를 밟고 있는 것도 아니고 주위에 환호하는 관중도 없다. 골을 넣는 경험은 가상의 경험이며 당신은 기계에 들어가 있을 뿐이다.

이 ‘경험기계’의 매력은 장기적이고 복잡한 경험 역시 가능하게 해 준다는 점이다. 이 기계에 들어간다면 누구든지 원하는 모든 것을 평생 동안 경험할 수 있다. 만약 프로축구 선수로 성공한 후 암을 퇴치하는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 당신의 꿈이라면, 입력된 프로그램에 의해 당신은 프로축구 선수로서의 명성을 얻고 난 후 신약 개발에 성공하는 기쁨도 누릴 수 있다. 개인적으로 역경을 이겨 내는 성취감을 보다 의미 있게 여긴다면 ‘경험기계’는 이 역시 안성맞춤으로 제공해 준다. 견딜 만한 정도의 실패 끝에 찬란한 성공을 거두는 경험을 프로그램에 입력해 두기만 하면 된다. 물론 암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하는 경험을 한다고 해서 실제로 그런 일이 기계 밖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암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 그러나 ‘경험기계’에 들어가 있는 당신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과학자 팀이 ‘경험기계’에 관해 제공한 추가적인 정보는 다음과 같다.

-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무료로 기계에 들어갈 수 있다.

- 기계에 들어가면 그 사실을 모르며, 일단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

- 기계에 들어간 사람은 아무런 고통 없이 자연 수명을 누릴 수 있다.


“언젠가 장주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된 채 노니면서도 자신이 장주라는 것은 깨닫지 못했다. 하나 문득 깨어나 보니 틀림없는 자신이 아닌가. 도대체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일까?” 그림은 나비의 꿈을 소재로 중국 명나라 화가 육치(1496~1576)가 그린 ‘호접몽’.  <한겨레> 자료사진
“언젠가 장주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된 채 노니면서도 자신이 장주라는 것은 깨닫지 못했다. 하나 문득 깨어나 보니 틀림없는 자신이 아닌가. 도대체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일까?” 그림은 나비의 꿈을 소재로 중국 명나라 화가 육치(1496~1576)가 그린 ‘호접몽’. <한겨레> 자료사진

■ 정석의 적용

객관적 현실 VS 주관적 인식

제시문은 어렵지 않지만 창의적인 답안을 쓰기는 어려운 문제이다. 서울대 논술의 특징이다. 이 문항은 두 개의 논제로 이루어져 있는데 둘을 연관 지어 서술하라고 했으므로 사실상 한 가지 주제 의식을 지닌 문제이다. 우선 [논제1]을 살펴보자. [논제1]은 객관적 현실과 주관적 인식이 행복을 결정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묻고 있다. 대학 측은 ‘주관적 경험과 행복의 관계’를 묻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학생들이 제시문에서 ‘주관적 경험’이라는 출제의도를 추출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박 이사의 행복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 즉 논란의 대립항을 학생들 나름대로 설정하면 된다.

[논제 2](이하2)는 경험의 성격과 무관하게 주관적 인식만으로 행복이 성립하는가를 묻고 있다. 주의할 점은 ‘[논제1](이하1)에서 제시한 답과 연관 지어 논하라’는 요구조건이다. 출제의도에 따르면 답안의 전개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①1에서 박 이사가 행복했다고 답할 경우 2에서는 경험기계에 들어가겠다고 답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자연스럽다. ②1에서 행복하지 않았다고 답할 경우 2에서는 경험기계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답하는 것이 정합적이다. ③물론 1에서 행복했다고 답한 후 2에서 들어가지 않겠다고 답할 수도 있지만 이때는 그 근거에 대해 보다 세밀한 논리를 제시해야 한다.

출제진은 첫 번째나 두 번째 경우를 선택하는 수험생이 많을 것이라고 예상한 듯하다. 하지만 상당수가 세 번째를 택했다. 1에서 박 이사가 행복했다는 주장이 많은 까닭은 반대 주장보다 선명하고 수월하게 논증을 펼칠 수 있어서일 것이다. 그런데 수험생 대부분이 2에서는 경험기계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서술했다. 1에서 박 이사가 행복했다고 주장했더라도 경험기계에 들어가는 선택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는 자칫 자유의지나 주체성을 포기한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세 번째 방식이 색다른 전개 방식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자체모순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 객관적 현실보다 경험을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데 행복의 기준이 있다면 경험기계로 들어가는 것이 타당해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 번째 방식을 선택했다면 이러한 모순의 위험성을 박 이사와 우리의 정보격차를 근거로 극복, 보완하면서 논지를 전개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문항은 첫 번째 경우를 선택하는 것이 논증의 정합성과 논지 전개의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다. 즉 1에서 박 이사가 행복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이를 2에서 경험 기계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주장과 유기적으로 이어가는 방식이 정공법일 수 있다.

다만 이런 정공법을 선택했다면 ‘개성적인 사례’를 제시해야 차별화된 답안을 쓸 수 있다. 인식 주체의 외부적 존재에 의해 경험이 제공되는 사례로는 영화 <매트릭스>와 <트루먼쇼>를 떠올릴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은 워낙 유명한 영화라서 그 내용을 알고 있는 학생도 꽤 많다. 이 사례들이 흔한 것으로 판단된다면 아르헨티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원형의 폐허들>이라는 소설이나 장자의 ‘호접몽’을 예로 들 수도 있다. 장자의 호접몽은 현실과 환상의 중층구조를 뛰어 넘어야 올바른 인식에 이를 수 있다는 입장을 강조한다. 현실의 ‘나’가 주체적인 존재가 아닐 수 있다는 장자의 주장은 경험기계 속 ‘나’의 한계를 지적하는 데 좋은 근거가 될 수 있다. 박 이사가 행복하지 않았다는 근거로는 루쉰의 <아큐정전>을 사례로 들 수 있다. 아큐는 외부 현실을 무시한 채 ‘정신 승리법’이라는 자기만족의 기제를 통해 자신의 처지를 합리화하는 인물이다.


■ 함께 하는 ‘예시답안’

[논제1] 박 이사는 행복하지 않았다. 행복은 개인 내부의 주관적 지향과 외부의 객관적 현실이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내는 ‘삶에 대한 성취감과 만족감’이다. 바꾸어 말하면 행복은 완결된 형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이라는 시공간 내에서 경험을 통해 자아가 변화하고 성장하면서 획득하는 ‘과정적’인 것이다. 물론 이때 행복을 느끼는 자아는 변화 속에서도 자기동일성을 지닌 주체여야 한다.

박 이사가 행복했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 근거로 행복은 주관적 판단기준에 따른 것이고 그가 스스로 그 기준을 충족시켰다고 생각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반박은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박 이사가 행복의 주관적 기준으로 삼은 ‘사회적 존경, 경제력, 화목한 가정’이라는 조건은 지극히 현실적이며 객관적이다. 따라서 객관적 상황과 박 이사의 주관 사이의 괴리는 그의 행복이 신뢰할 만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실 그는 자신이 기준으로 삼은 조건조차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다.

요컨대 외부의 현실과 차단된 주관만으로, 혹은 개인의 주관적 만족도를 소거한 객관적 지표만으로 행복이 결정되지는 않는다. 주관적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객관적 현실에서 도피한 채 몽상 속에서 자기만족에 머물러 있는 박 이사와 같은 사람도 있고, 물질적 풍요 속에서 온갖 쾌락에 탐닉하면서도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모두 행복하지 않다.(697자)

[논제2] 나는 경험기계에 들어가지 않겠다. 물론 (나)의 경험기계는 행복의 요건 중 주관적 지향을 완벽하게 실현해줄 수 있다. 하지만 자아와 상호작용하는 경험적 현실은 기계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듯 현실이 가상적이라면 이로부터 얻는 만족 또한 허구적일 수밖에 없다. 이는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마약 투약과 다를 바 없다.

이는 영화 ‘트루먼쇼’의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트루먼은 외부의 프로그램에 따라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 그의 주변 사람들은 모두 배우, 즉 허상에 불과했다. 자신이 주체적 삶을 살아가고 그로부터 행복을 느낀다고 생각했지만 그러한 심리적 반응 또한 예상된 시나리오를 넘어서지 못한다.

한편 경험기계는 [논제1]의 답안에서 밝힌 행복의 요건 중 ‘자기동일성’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이 주장은 경험기계에 들어가기로 결정한 ‘나’와 경험기계 속의 ‘나’가 동일인물이라는 점, 기계 속 ‘나’의 경험이 기계 밖 ‘나’가 선택한 것이라는 점에 근거를 둔다. 이때 ‘나’의 경험은 주체성을 충족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의 ‘나’와 기계 속 ‘나’는 다른 존재이다. 기계 속의 ‘나’는 들어가기 이전의 ‘나’에게 종속된, 다시 말해 ‘내’가 선택한 프로그램에 종속된 ‘나’이다. 이때 기계에 들어가기로 결정한 ‘나’는 신(神)과 유사한 지위에 있으며 경험기계는 신의 의지를 실현시키는 기제이다. 그리고 기계 속에 들어간 ‘나’는 피조물로서의 ‘나’일 것이다. 따라서 기계 속 ‘나’의 경험이 실제적이라 하더라도 이를 인식하는 ‘나’는 주체가 아니다. 경험으로부터 얻는 감각이 주체와 상호작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는 뇌사자가 외부의 자극에 신경생리학적으로 반응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는 ‘매트릭스’의 네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는 가상 현실 속에서 앤더슨이라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생체에너지를 기계유지에 필요한 동력으로 빼앗기고 있으면서도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뇌에 프로그래밍된 매트릭스 속에서 만족을 느낄 뿐이다. 물론 이는 주체적인 삶이 아니며 행복한 삶일 수도 없다.(1,068자)


■ 한 가지 더 : 주제의 심층이해

다음 제시문을 읽고 도인의 존재 의의와 한계를 모두 논하시오.

그 이방인(도인)은 신전의 기둥 아래에 몸을 뉘었다. 그가 추구하고 있는 목표는 물론 초자연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한 인간을 꿈꾸고 싶었다. 그는 세심한 완벽함을 가지고 그를 꿈꿔 현실 속에 내놓고 싶었다. 마침내 그는 하나의 완전한 인간, 한 소년을 꿈꿨다. 그러나 그는 몸을 일으킬 줄도, 말을 할 줄도, 눈을 뜰 줄도 몰랐다. 밤이면 밤마다 그는 잠들어 있는 것 같은 그 소년의 꿈을 꾸었다.(……)점진적으로 그는 소년을 현실에 적응시켜 나가기 시작했다.(……)그는 어떤 씁쓰레한 기분과 함께 자신의 아들이 태어날 때가 임박했음을 깨달았다.(……)그날 밤 그는 처음으로 아이에게 키스를 했고, 그에게 끝없이 펼쳐진 형언하기 힘든 밀림과 늪지를 거쳐 강 아래에 잔해들이 허옇게 흩어져 있는 다른 사원으로 가도록 명령했다.(……)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난 뒤 자정에 두 명의 뱃사공이 그의 잠을 깨웠다. 그들은 그에게 <북쪽 신전>에서 살고 있는 불 속을 걸어가도 타지 않는 한 도인의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존재들 중 단지 <불>만이 자신의 아들이 환영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그는 자신의 아들이 이러한 비정상적인 초능력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고 이러저러한 경로를 거쳐 자신이 단순한 환영의 형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의 꿈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라는. 얼마나 형용할 수 없는 굴욕감을 느낄 것인가, 얼마나 아찔한 현기증을 느낄 것인가!(……)그의 골똘한 불면의 밤은 아주 돌발적으로 끝이 났다.(……)폐허가 된 <불의 신>의 신전이 불에 의해 붕괴되어 가고 있었다. 새들이 없는 새벽에 도인은 벽들을 집어삼키며 활활 타오르고 있는 불길들을 보았다. 순간, 그는 강으로 뛰어들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곧 죽음이 자신의 노년을 영화롭게 만들어주기 위해, 자신을 힘든 삶의 노고로부터 해방시켜 주기 위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불길의 날개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불길은 그의 살갗 속을 파고들지 못했다. 불길은 그를 할퀴고, 그를 집어삼켰지만 그는 불의 열기를 느끼지도 못했고, 타지도 않았다. 안도감과 함께, 치욕감과 함께, 두려움과 함께 그는 자신 또한 자신의 아들처럼 다른 사람에 의해 꿈꾸어진 하나의 환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원형의 폐허들>

송남권 논술칼럼니스트
최규윤 강남비상에듀학원 인문논술강사
안덕훈 이원장 학습전략학원 논술강사
어수창 청솔교육 연구정보원 인문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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