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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나열식 비판이 아니라 핵심 초점을 공략하라.

등록 2013-07-09 13:44수정 2013-07-09 14:14

인간이 이미지에 얼마나 쉽게 구속될 수 있는지 잘 보여준 영화 <매트릭스>. <한겨레> 자료사진.
인간이 이미지에 얼마나 쉽게 구속될 수 있는지 잘 보여준 영화 <매트릭스>. <한겨레> 자료사진.
수시논술 숨은 해법
■ 정석

지난번 <비판하기I>에서 비판은 비난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난이 일방적으로 상대방의 단점만을 들춰내는 것이라면 비판은 긍정적 부정적 양 측면을 분석하고 객관적 근거를 통해 한계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수험생들이 비판하기 문제를 접하면 비판 대상의 부정적인 문제점을 열거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비판하는 과정에서 문제점을 제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대상에 대한 나쁜 점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비판하기 문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이 때 필요한 것이 비판의 초점을 정확히 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가) 제시문이 학생들의 학력저하를 우려하는 내용의 글이고, 제시문 (나)에서 외국어고·과학고·국제고 등 특목고를 확대하자는 주장을 담은 글이라고 가정해보자. 만일 ‘(가) 제시문의 관점에서 (나)를 비판하라’라는 문제가 출제되었을 때 비판의 초점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이 때 많은 학생들이 (나)를 비판하라고 했으므로 특목고 증가에 따른 문제점을 열거한다. 고교입시에 대한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 사교육의 과열, 고등학교의 서열화 등등. 물론 이러한 문제점들은 특목고 확대의 부작용이므로 (나)를 비판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문제에서는 (가)의 관점에서 비판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가)의 관점은 학생들의 학력저하라는 문제의식을 보여주고 있으므로 (나)의 문제점 중 한국 학생들의 학력저하와 관련된 사항에 대해서 비판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사교육 과열’의 내용은 아무리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학력저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기에 비판의 근거로 쓸 수 없는 것이다. 즉 비판의 핵심 초점은 특목고를 확대할 경우 학생들의 학력수준이 저하될 가능성에 맞추어져야 한다.

비판의 핵심 초점을 정확히 찾기 위해서는 비판의 전제를 먼저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의 문제에서 비판의 전제는 ‘(가)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비판의 전제가 명확하면 출제자가 요구하는 비판의 범위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비판 대상에 내포된 수많은 문제점 중에서 어떤 것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다. 만일 백화점식 나열 방식의 비판으로 답안을 작성한다면 출제자가 요구하는 방향과는 거리가 멀 가능성이 높다.

최근 주요대학의 출제 경향을 살펴보면 변별력이 큰 문제일수록 비판하기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 중에서도 특정한 조건과 전제를 바탕으로 하는 비판, 즉 비판의 전제조건을 파악해야 올바른 답안을 완성할 수 있는 정밀한 비판을 요구하는 문제가 늘고 있다. 문제의 특정한 조건과 전제에 답안의 핵심이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실전문제를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 실전 2013수시기출문제(단국대 인문 3번 문제)

영상은 우리의 상상력을 구속한다?

제시문 (가), (나), (다)의 논지 및 <자료>를 활용하여 (라)의 현상(견해)을 비판하시오.(600자 내외) (40점)

(가) 이상이나 문화나 다 같이 사람이 추구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요, 또 인생의 목적이 거기에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완전히 일치되는 것은 아니니, 그 차이점은 여기에 있다. 즉, 문화는 인간의 이상이 이미 현실화된 것이요, 이상은 현실 이전의 문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 두 가지를 추구하여 실현하는 데에는 지식이 필요하고, 이러한 지식의 공급원으로는 다시 서적이란 것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가 없다. 문화인이면 문화인일수록 서적 이용의 비율이 높아지고, 이상이 높으면 높을수록 서적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나) 지금 우리는 ‘말’의 시대를 지나 ‘글’의 시대를 거쳐 ‘이미지’의 시대를 살아간다. 글의 시대에 정보 저장과 전달의 효율성을 위하여 의도적으로 억압되었던 ‘형상성’은 이미지의 시대에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언어를 통해서만 세계를 개념화하고 사고를 논리적으로 전개할 수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다. 언어의 기술적 한계를 인간 사고의 특성으로 알았던 오해가 풀린 것이다.

(다) 제한된 경험 세계에서의 인간의 일회적 삶의 한계를 초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책을 통해서 인간의 다양한 삶과 그 진실들을 접하며 그 삶들과 그 진실들을 간접 체험하는 것이다. 책을 통한 이러한 다양한 삶의 간접 체험은 삶의 여러 가지 가능성을 우리에게 열어 보임으로써 우리 자신의 삶을, 나아가 더불어 사는 삶을 보다 풍요롭고 바람직한 것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다.

(라) 책을 읽는 일은 영화나 TV 시청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따분하고 성가시며 귀찮고 골치 아픈 노동이다. 하지만 독서는 영상 매체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효용성을 가지고 있다. 영상은 우리의 상상력을 구속하지만 독서는 무한정한 상상의 세계로 우리를 친절히 이끈다. 영상 매체를 나르시스의 앞에 놓인 거울로 비유할 수 있다면, 책은 가부좌를 틀고 앉은 달마 앞의 거대한 벽이라 할 수 있다.

<자료> 대학생들의 여가 활용 방식
<자료> 대학생들의 여가 활용 방식
<자료> 국민 도서 형태 선호도
<자료> 국민 도서 형태 선호도


■ 정석의 적용

제시문들의 시각차를 명확하게 인식해야

새학기 개학을 며칠 앞둔 주말인 지난 1월 27일 오후 서울 시청 구청사 서울도서관에 학생과 시민들이 책을 읽고 있다. 김태형 기자
새학기 개학을 며칠 앞둔 주말인 지난 1월 27일 오후 서울 시청 구청사 서울도서관에 학생과 시민들이 책을 읽고 있다. 김태형 기자

논제분석

이 문제는 (라)에 나타난 현상 또는 견해를 비판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라)의 견해가 가진 문제점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출제자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다. 출제자는 비판하기에 앞서 ‘(가)·(나)·(다)의 논지 및 <자료>를 활용하여’라는 전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는 (가)·(나)·(다) 그리고 <자료>에서 제기하고 있는 문제의식의 범주 안에서 (라)를 비판하라는 요구다. 그러므로 섣불리 (라)의 견해가 지닌 문제점을 찾으려하기 전에 문제의식의 범주를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다)의 논지와 <자료>에 나타는 현상을 명확히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 다음에 (라)의 현상 또는 주장을 파악해야 한다. (라)에 나타난 내용에서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따져보고 각각 (가)~(다)와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도 함께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제시문 분석

(가)는 이상과 문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서적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즉 수준 높은 문화일수록 그 문화는 책을 통해 만들어지고 발전한다는 논지를 담고 있다. 반면 (나)는 오늘날 말과 글의 시대를 지나 형상성과 이미지가 중시되고 있으며, 이들 요소로 개념화와 논리적 사고를 보완할 수 있음을 밝혔다. 이는 (가)와는 다른 관점을 취하고 있다. 문자가 지배하던 시대에는 문자를 통한 정보전달의 효율성을 과도하게 추구하는 바람에 자유로운 상상을 통한 형상성이 억압받았다는 것이다.

(다)에서는 책을 통해 삶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책을 통한 간접 경험이 자신의 삶은 물론 공동체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는 (가)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정리하면 (가)(다)는 수준 높은 문화의 창조와 풍요롭고 가치 있는 삶을 이루기 위해서 가장 필수적인 것이 책을 읽는 것임을 주장한다. 반면 (나)는 정보화 사회로 접어든 오늘날 문자로 이루어진 책보다는 문자의 한계를 넘어서는 형상성과 이미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자료>는 대학생들의 여가 활용 방식에서 독서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고 영화 관람이나 웹 서핑의 비중이 높은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한편 ‘국민 도서 형태 선호도’에서는 종이책뿐만 아니라 전자책 등 다양한 매체가 등장하면서 독서가 종이책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매체로 확대되는 현상을 보여준다. 특히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경우 휴대기기용 전자책과 컴퓨터 화면용 전자책에 대한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이 두 자료를 바탕으로 ‘독서 현상’도 매체 변화에 따라 그 의미가 변화함을 알 수 있다.

비판의 초점을 찾자

(라)의 현상 또는 주장중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 비판 할 것인가를 판단하기 위해 우선 (라)의 논지를 살펴보자. (라)의 필자는 ‘상상력’의 측면에서 “독서가 영상 매체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효용성이 있다고 말한다. 이는 문자로 이루어진 책이 영상 매체보다 우월하다는 것인데 그 우월함의 기준은 ‘상상력’이다. 즉 책이 다른 매체에 비해 우월한 것은 상상력의 영역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판의 초점은 편리성·효율성 등이 아니라 상상력이 되어야 한다. 거칠게 분석하지면 (라)의 주장은 ‘책이 영상매체보다 우월하다’이고 근거는 ‘독서는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기 때문.’으로 나누어 분석할 수 있다. 올바른 비판이 되기 위해서는 책과 영상매체 중 어느 것이 우월하냐는 주장중심의 논박이 아니라 그 근거로 쓰이고 있는 상상력에 대한 부분에 초점이 가야한다. 비판의 초점은 당연히 주장 자체가 아닌 근거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비판하기 II 참조)

비난이 아닌 올바른 비판이 되기 위하여

문제점을 열거하는 것은 비판이 아닌 비난이라고 했다. 올바른 비판이 되기 위해서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고루 살피고 그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책과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가)(다)의 관점은 책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라)의 긍정적인 측면과 맞닿아 있다. 반면 문자의 한계를 넘어서는 형상성과 이미지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나)는 (라)의 한계를 지적하는 논거가 된다. <자료> 또한 대학생들의 여가 활용이 독서보다 영상매체활용비중이 높아지는 현상을 (나)를 뒷받침 하는 비판의 근거로 삼을 수 있으며 ‘국민 도서 형태 선호도’를 통해 독서의 형태로 다양한 매체로 확산되고 있다는 근거를 통해 비판의 근거를 강화 시킬 수 있다.


■ 함께 하는 ‘예시답안’

(가)(다)는 수준 높은 문화의 창조와 풍요롭고 가치 있는 삶을 이루기 위해서 가장 필수적인 것이 책을 읽는 것임을 주장한다. 수준 높은 문화일수록 그 문화는 책을 통해 만들어지고 발전하며 책을 통해 삶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는 논지를 제시한다. 반면 (나)는 문자 문화가 형상성을 억압해온 역사를 제시하고 정보화 사회로 접어든 오늘날 문자로 이루어진 책보다는 문자의 한계를 넘어서는 형상성과 이미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라)는 문자로 이루어진 책이 상상력을 무한히 확장시킨다는 점에서 영상 매체보다 우월하다고 본다. 그러므로 상상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영상 매체에 의존하기보다 독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라)의 이러한 주장은 독서가 문화의 창조와 풍요로운 삶의 근원임을 강조하는 (가)(다)의 관점에서 볼 때는 타당하다. 그러나 (나)의 논지대로 형상성과 이미지는 상상력과 논리적 사고를 저해하는 요소가 아니다. 특히 정보화시대인 오늘날에는 다양한 영상 매체가 상상력을 확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자료>에 나타난 대학생들의 여가 활용 방식은 오늘날 많은 학생들이 영화 관람이나 웹 서핑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국민 도서 형태 선호도’에서 휴대 기기용이나 컴퓨터 화면용 전자책에 대한 중고등학생들의 선호도가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새로운 매체의 등장이 종이책의 한계를 넘어 정보의 습득과 간접체험의 기회를 넓히고 상상력을 확장하는 데 기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한가지 더 : 주제의 심층이해

‘말’-‘문자’-‘영상’은 언어의 발전 역사이자 현재 공존하는 의사소통의 수단이다. 아래 제시문의 논거를 정리하고, 사례를 통해 이를 비판하거나 옹호하시오.

대부분의 사람은 말이나 글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상당히 비효율적인 방법이다. 떠오른 아이디어를 언어로 바꾸는 과정에서 생각의 속도가 떨어지고, 인간의 생각과 감정이 모두 언어로 표현되는 것은 아니므로 더 큰 생각으로의 발전이 힘들다. 이미지로 생각하면 연상, 유추 등의 작용이 뛰어나기 때문에 생각이 빠를 수밖에 없으며, 문제를 폭넓고 색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되어 그 결과 신선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데도 능할 수밖에 없다.

아쉽게도 우리의 교육체계는 여전히 언어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을 보며 주로 암기식으로 공부한다. 지식을 머릿속에 구겨 넣는 것이다. 수학도 마찬가지다. 계산을 잘해 누가 더 빨리 정확한 답을 내놓느냐를 기준으로 실력을 평가하고 있다. 이는 언어, 논리 등의 분석적 사고를 담당하는 좌뇌에 편향된 교육방식으로, 그 결과 우리 사회는 논리정연하고 뛰어난 분석력을 자랑하는 사람들을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짙다. 그러나 이런 환경에서는 지식이 풍부한 사람은 나올 수 있지만 지식을 창조하는 사람은 나오기 힘들다. 우리는 분석적이고 논리력이 강한 사람을 두고 창조성이 뛰어나다고 이야기하진 않는다.

흥미로운 점은 글을 잘 읽지 못하고 계산을 못하는 사람이 고난도의 문장을 이해하고 고등수학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영국의 과학자 페러데이는 수학기호를 이해하지 못하고 계산도 서툴렀지만, 뒤이어 등장한 맥스웰은 그가 창출한 전자기장의 개념을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입증했으며, 어릴 적 언어장애가 있었던 예이츠는 오늘날 천재 시인이라 불리고 있다. 두말할 것 없이 그 중심에는 이미지로 생각하는 ‘시각적 사고’가 있었으며, 이것이 어릴 시절의 학습장애에도 불구하고 여러 위인들이 뛰어난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글자로만 생각하는 사람 이미지로 창조하는 사람』 -토머스 웨스트-

송남권 논술칼럼니스트
최규윤 강남비상에듀학원 인문논술강사
안덕훈 이원장 학습전략학원 논술강사
어수창 청솔교육 연구정보원 인문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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