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페이스 오프>. 대립 양상을 변별적으로 설명하기 쉬운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수시논술 숨은 해법
■ 정석
이번에는 고난도 비교 유형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비교 유형 중 난이도가 높은 것은 다자 비교, 강제 비교, 연관관계 서술형이다. 이 중 다자 비교 유형이 가장 어려운데, 연세대 인문계 1번 문항과 홍익대 문제가 대표적이다. 비교 기준을 설정하고 둘 사이의 대립 양상을 설명하면 완결되는 양자 비교와 달리 다자 비교에서는 비교 기준을 설정해도 제시문 사이의 연관관계, 즉 공통점과 차이점이 복잡한 양상을 띠기 때문에 공략하기 어렵다.
이를테면 셋 이상의 제시문을 비교하라는 문제가 주어질 경우 이들의 대립 양상을 변별적으로 설명하기 까다롭다. 물론 ‘검은색-흰색-회색’ 혹은 ‘정-반-합’처럼 다자간의 변별점이 명확하게 설정된다면 더없이 좋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드물다. 사과·배·오렌지의 비교 사례를 통해 삼자 비교의 어려움을 확인해 보자.
이처럼 과일의 색을 기준으로 하면 배와 오렌지가 비슷하고 사과는 다르다. 하지만 맛을 기준으로 하면 사과와 오렌지가 유사하고, 배는 다르다. 한편 껍질을 기준으로 비교하면 사과와 배가 유사하고 오렌지가 다르다. 요컨대 다자 비교에서는 비교 기준에 따라 제시문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복잡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다자 비교의 경우 답안의 구성 방식에도 유의해야 한다. 특히 다자 비교가 견해 제시·논평·비판 등 다른 유형과 결합할 경우 결론을 염두에 두고 비교 기준을 배열해야 한다. 즉 통일된 체계 속에서 유기적으로 비교를 수행해야 답안 전체의 완결성이 높아진다.
강제 비교는 ‘특정’ 제시문의 관점을 바탕으로 다른 두 제시문을 비교하는 유형이다. 고려대 문제와 연세대 사회계 1번 문제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유형을 접했을 때는 우선 기준이 되는 ‘특정’ 제시문의 관점을 핵심어(키워드) 중심으로 독해해야 한다. 그 후 핵심어(들)를 비교 기준으로 설정하여 다른 두 제시문을 비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연관관계 서술형은 제시문들이 공통 주제 속에서 어떤 논리적 관계를 맺고 있는지 서술하는 유형이다. 분류 요약을 요구하는 성균관대 문제와 서강대 문제가 대표적이다. 가장 기본적인 연관관계는 (가)≒(나)↔(다)≒(라) 유형이다. 그 이외에도 제시문들은 ‘주장-근거’의 관계, ‘정-반-합’의 관계 등 다양한 논리적 연관관계를 이룰 수 있다. 이를 차분하게 독해할 수 있어야 한다.
■ 실전 2013수시기출문제(홍익대 인문) 변화 수용하기와 변화에 저항하기
1. 제시문 (가)~(라)에는 ‘변화’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다. 각 제시문에서 변화를 겪는 주체가 변화에 대하여 보이는 태도나 대응 방식을 논하시오. (700±100자)-원고 분량에 맞추어 제시문을 편집함
<제시문 (가)>
가장 중요한 건 조화라고 생각해요. 성형이란 자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얼굴에 조화를 찾는 과정이에요. ‘얼굴은 마음의 창이다’라는 말 아시죠? 그래서 이마가 좁으면 마음까지 좁은 사람으로, 눈이 자그마하면 시야마저 좁은 사람으로, 튀어나온 볼 때문에 욕심 많은 사람으로 오해를 사고는 하죠. 그런데 타인에게 받는 그런 오해들 때문에 수술을 한 후, 눈이 커졌으니 더욱 시야를 넓게, 이마가 넓어졌으니 마음 또한 넓게 가지려 노력하는 경우가 꽤 있거든요. 저는 이 경우를 ‘능동적인 성형’이라고 부르고 싶네요. 마음과 얼굴, 모두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니까요. 반대로 자신의 얼굴과 마음의 조화로움을 찾지 않고 오로지 얼굴만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에 갇혀 타인의 시선에 종속된 그녀들에게 나타나는 ‘수동적인 성형’은 결국 중독과 부작용이라는 결과를 낳아요. 그러니까 행복한 성형이란…… 부족한 어느 부분을 메움으로써 조화를 얻고, 그에 따라 능동적인 태도와 자신감을 얻게 도와주는 것. 그러니까 어찌 보면 성형은 21세기 과학이 여성들에게 선물한 일종의 무기라고 볼 수도 있어요. 무기의 남용이 끔찍한 결과를 부르듯 성형의 남용 또한 같고요. 남용과 중독은 행복과 반비례하죠. <제시문 (나)>
렘브란트 자화상 속의 인물들은, 적어도 말년의 자화상들은 으스대지 않고, 이들의 옷차림은 고귀하지도 않다. 눈빛은 도전적이지 않고 그 무엇을 욕구하는 것도 아니다. 얼굴의 무수한 주름과 성겨가는 머리숱, 죽음이 가까워오면 눈빛마저 공허해진다. 턱은 두세 겹으로 겹쳐지고 눈은 처지며, 뺨은 함몰되고 이는 차츰 내려앉는다. 이마와 눈썹, 눈동자와 코, 코의 잔등, 뺨과 턱의 윤곽은 희미해져간다. 마침내 머리와 어깨의 선마저 허물어져 그림 속 인물은 알 수 없는 형체가 된다. 그림자 같은 이 형체는 곧 하나의 선이나 점으로 사라져갈 것이다. 생애의 막바지 무렵 사물은 렘브란트에게 점차 희미하게 드러났고, 이 희미한 윤곽은 기억의 횟수가 줄어듦에 따라 더욱 바래져갔다. 그러나 형태도, 이 형태에 대한 기억도, 이런 기억의 소멸마저 그에겐 상관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그는 ‘그림을 살면서’ 자기의 세계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몰두는 그에게 어떤 응전의 방식.삶과 세계의 소멸에 대한 그 나름의 항의 방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렘브란트는 바스라지기 쉬운 인간 육체와, 이런 육체에도 인간성이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차원을 미화 없이 묘파해내는 데 성공하지 않았나 여겨진다. 나는 다시 그의 자화상을 떠올린다. 색채와 인물, 사람과 사물, 형상과 주변은 구분되지 않는다. 이 무경계적 저편으로 노인은, 훅 불면, 사라져버릴 것 같다. 언제라도 등을 돌리며 떠나버릴 것 같다. 지금 넌 뭘 하고 있느냐. 나는 죄다 잊었노라. 주변의 소음도, 색깔의 구분도, 이편의 삶과 저편의 죽음마저. <제시문 (다)>
조선 사람들에게 가장 소중하고 굳게 뿌리내린 보편적인 관습과 미신은 머리카락을 땋고 돌돌 말아서 동곳을 꽂아 상투를 트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머리칼로 된 주춧돌처럼 조선의 사회와 정치, 문화의 중심을 이룬다. 단발령은 이와 같은 오랜 전통을 무시하고 조선의 모든 남자들에게 머리를 깎도록 강요했다. 조선 사람들은 일찍이 성년이 될 때에 겪었던 우아한 의식의 기억들, 명예로운 집안의 전통, 조상님들의 분노와 불쾌감, 철석같이 지켜온 오랜 관습, 이 모든 것들 때문에 머리를 깎는 그 모욕적인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의 긍지와 자존심과 위엄은 모두 빼앗겨 발아래 짓밟혔다. 어디에서나 잔뜩 찌푸린 성난 얼굴들이 보였고 집집마다 통곡 소리와 탄식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성문에는 파수꾼이 지키고 서서 들어오는 사람들의 상투를 칼로 잘라냈기 때문에 농부들과 장작 배달꾼들은 물건을 시장에 내놓지 않았다. 큰 길거리마다 관리들과 군인들이 진을 치고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상투를 잘랐다. 비통하게 울부짖고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이 일은 이 나라의 바로 한복판에 뜨거운 분노를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조선 사람들이 외세에 대해 품고 있던 증오심을 더욱 거세게 했다. 지방에서는 동학당이 다시 일어섰고 여러 마을에서 봉기가 일어났다. 시골로 내려갔던 몇몇 상투 자른 관리들은 성난 백성들에게 쫓겨 왔다. 봉기한 백성들은 그들을 관리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실제로 몇몇을 죽이기도 했다. 관아는 부서졌고 군인들은 무력해서 혼란을 진압할 수가 없었다. 사태는 점점 더 악화되는 것 같았다. <제시문 (라)>
겨울이 가고 봄이 왔어요. 강아지똥 앞에 파란 민들레 싹이 돋아났어요. “너는 뭐니?” 강아지똥이 물었어요. “난 예쁜 꽃을 피우는 민들레야.”/“어떻게 그렇게 예쁜 꽃을 피우니?” “그건 하느님이 비를 내려주시고 따뜻한 햇볕을 쬐어주시기 때문이야.” “그래애……. 그렇구나…….” 강아지똥은 민들레가 부러워 한숨이 나왔어요. “그런데 한 가지 꼭 필요한 게 있어.” 민들레가 말하면서 강아지똥을 봤어요. “네가 거름이 돼줘야 한단다.” “내가 거름이 되다니?” “네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내 몸속에 들어와야 해. 그래야만 별처럼 고운 꽃이 핀단다.” “어머나! 그러니? 정말 그러니?” 강아지똥은 얼마나 기뻤던지 민들레 싹을 힘껏 껴안아버렸어요. 비는 사흘 동안 내렸어요. 강아지똥은 온몸이 비에 맞아 자디잘게 부서졌어요……. 부서진 채 땅속으로 스며들어가 민들레 뿌리로 모여들었어요. 줄기를 타고 올라가 꽃봉오리를 맺었어요. 봄이 한창인 어느 날, 민들레 싹은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을 피웠어요. 향긋한 꽃 냄새가 바람을 타고 퍼져나갔어요. 방긋방긋 웃는 꽃송이엔 귀여운 강아지똥의 눈물겨운 사랑이 가득 어려 있었어요.
■ 정석의 적용 상황·사건을 일반화해 개념 도출해야
공통주제와 비교 기준이 제시되었기 때문에 쉬워 보이는 문제다. 그러나 홍익대학교 문제의 특성상 제시문이 사례 위주로 구성되어 있어서 독해하기 쉽지 않다. 구체적인 상황이나 사건만으로 이루어진 소설·신문기사·일화 등이 제시문으로 주어질 경우 그 의미를 분석하기가 어렵다. 상황이나 사건들을 일반화하여 주장을 추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서 요구한 주체의 ‘태도’나 ‘대응 방식’도 제시문의 내용을 일반화해서 개념어의 형태로 추출해내야 한다.
논제에서는 ‘태도’와 ‘대응 방식’이 아니라 ‘태도’나 ‘대응 방식’이라고 서술했다. 즉 출제진은 ‘둘을 구분하기 어려우므로 굳이 구분하지 않아도 된다’는 힌트를 주고 있다. 그런데 둘을 구분하지 않을 경우 수험생은 제시문 사이의 차이를 유발한 요소나 다른 비교 기준을 찾아내야 한다. 둘을 구분할 경우에는 매우 정교하게 이들을 적용해 제시문 사이의 연관 관계를 밝혀야 한다. 또한 다자 비교의 방법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비교 기준에 따라 제시문 사이의 연관 관계가 달라질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제시문 사이의 차이점을 비교 기준에 근거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물론 이 내용을 모두 답안에 반영하지 않아도 되며 다른 비교 기준을 설정해도 된다. 다만 출제의도를 생각해 본다면 제시문들이 형성하는 연관 관계의 다양성은 논제 후반부의 ‘논하라’라는 요구 사항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즉 비교 후에 태도나 대응 방식이 지닌 의의, 혹은 한계까지 서술해야 한다. 이 내용은 예시답안을 참조하기로 하자.
■ 함께 하는 ‘예시답안’ (가), (나), (라)는 신체의 변화에 긍정적 태도를 취하며 이를 수용한다. 반면 (다)는 변화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며 이를 거부한다. 이 차이는 변화의 계기가 다른 데서 기인한다. (가)와 (다)의 변화는 외부에서 비롯된다. (가)에서 성형의 계기는 주체와 무관한 외부의 미적 기준이다. 즉 성형은 외적 기준에 소극적으로 적응하는 행위일 뿐이다. 따라서 (가)에서 구분하는 능동적 성형과 수동적 성형에는 변별점이 없다. (다)에서 변화의 계기는 ‘단발령’이라는 정치적 강압이다. 신체의 자기 결정권을 훼손하는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인들은 단발령에 적극적인 방식으로 저항한다. 이러한 저항은 타율적 변화에 대한 주체의 거부 ‘의지’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가)와 다르다. (나)와 (라)는 주체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변화와 대응을 보여준다. (나)에서 주체는 신체의 노화 현상을 수용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화폭에 담아낸다. 즉 (나)는 노화라는 현상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통해 ‘인간성’의 의미를 발견하고, 궁극적으로 형이상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라)에서 변화의 표면적 계기는 ‘민들레’의 권유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다)와 달리 강압적이지 않다. 그러므로 변화의 근본적 원인은 기꺼이 ‘거름’이 되겠다는 주체의 적극적 의지에 있다. 그 결과 강아지똥은 자신을 해체하고 소멸시켜 또 다른 아름다움을 창출한다. 이는 (나)의 철학적 성찰이 ‘내부의 변화’에 집중한 것과는 다르다. 즉 (라)는 주체의 변화가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세계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768자)
■ 한 가지 더 : 주제의 심층이해 정체성(자기동일성-Identity)은 변화하지 않는, 존재의 고유한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변화’는 정체성을 위협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음 제시문을 읽고 정체성과 신체변화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자. 오우삼이 할리우드에서 감독한 영화 <페이스 오프(Face Off)>는 테러리스트 케스터(니콜라스 케이지)와 FBI 요원 아처(존 트라볼타) 간의 대결을 다루고 있다. 임무 때문에 아처는 체포 도중 의식을 잃은 케스터의 얼굴과 자신의 얼굴을 바꾸는 수술을 감행한다. 얼굴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신체의 특징마저도 그대로 복사해 옮기는 과정을 거친 것이다. 이렇게 수술을 마친 아처, 즉 케스터가 된 아처는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란다. 자신이 그토록 경멸하는 얼굴이 거울 앞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자신의 모습이다. 즉, 육체는 케스터지만 의식은 아처인 것이다. 과연 그는 아처인가, 케스터인가? 혼수 상태에서 의식을 찾은 케스터도 의사를 납치해 아처의 얼굴 가죽을 이식받아 아처 행세를 한다. 이제 아처가 된 케스터는 아처의 집에 가서 가장 역할을 하고, 케스터가 된 아처는 케스터의 친구와 애인을 찾아가 그들과 함께 지낸다. 가족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은 약간 성격이 변한 것 같지만 오히려 좋아졌다며 반기기까지 한다. 주변 사람들의 이러한 반응을 보면 볼수록 ‘나는 누구인가’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다. 영화의 종반부에 케스터와 아처가 대결하는 장면이 있다. 양면 거울을 사이에 두고 설전을 나누던 아처와 케스터는 거울 너머에 있는 적에게 총을 겨눈다. 그러나 거울에 비친 얼굴은 당연히 자기 것이지만, 얼굴이 뒤바뀐 탓에 그것은 적의 모습이기도 하다. 거울 속 자기 모습에서 적을 발견하자 둘은 동시에 총을 쏜다. 얼굴은 적의 얼굴이지만, 사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향해 총을 쏜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자신에게 총을 쏜 것인가, 적에게 쏜 것인가? -광운대 2011 수시1차 인문 제시문
송남권 논술칼럼니스트
최규윤 강남비상에듀학원 인문논술강사
안덕훈 이원장 학습전략학원 논술강사
어수창 청솔교육 연구정보원 인문논술강사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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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 때 잃은 팔이 40년간 적군 군의관 손에…
■ 갈수록 짧아지는 ‘하의실종’ 교복치마 왜?
■ [화보] “대통령 물러나라” 이집트 사상 최대 반정부 시위
사과·배·오렌지의 비교 사례
■ 실전 2013수시기출문제(홍익대 인문) 변화 수용하기와 변화에 저항하기
1895년 단발령이 내려지자 “내 목은 자를 수 있어도 내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며 저항했던 면암 최익현. <한겨레> 자료사진
가장 중요한 건 조화라고 생각해요. 성형이란 자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얼굴에 조화를 찾는 과정이에요. ‘얼굴은 마음의 창이다’라는 말 아시죠? 그래서 이마가 좁으면 마음까지 좁은 사람으로, 눈이 자그마하면 시야마저 좁은 사람으로, 튀어나온 볼 때문에 욕심 많은 사람으로 오해를 사고는 하죠. 그런데 타인에게 받는 그런 오해들 때문에 수술을 한 후, 눈이 커졌으니 더욱 시야를 넓게, 이마가 넓어졌으니 마음 또한 넓게 가지려 노력하는 경우가 꽤 있거든요. 저는 이 경우를 ‘능동적인 성형’이라고 부르고 싶네요. 마음과 얼굴, 모두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니까요. 반대로 자신의 얼굴과 마음의 조화로움을 찾지 않고 오로지 얼굴만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에 갇혀 타인의 시선에 종속된 그녀들에게 나타나는 ‘수동적인 성형’은 결국 중독과 부작용이라는 결과를 낳아요. 그러니까 행복한 성형이란…… 부족한 어느 부분을 메움으로써 조화를 얻고, 그에 따라 능동적인 태도와 자신감을 얻게 도와주는 것. 그러니까 어찌 보면 성형은 21세기 과학이 여성들에게 선물한 일종의 무기라고 볼 수도 있어요. 무기의 남용이 끔찍한 결과를 부르듯 성형의 남용 또한 같고요. 남용과 중독은 행복과 반비례하죠. <제시문 (나)>
렘브란트 자화상 속의 인물들은, 적어도 말년의 자화상들은 으스대지 않고, 이들의 옷차림은 고귀하지도 않다. 눈빛은 도전적이지 않고 그 무엇을 욕구하는 것도 아니다. 얼굴의 무수한 주름과 성겨가는 머리숱, 죽음이 가까워오면 눈빛마저 공허해진다. 턱은 두세 겹으로 겹쳐지고 눈은 처지며, 뺨은 함몰되고 이는 차츰 내려앉는다. 이마와 눈썹, 눈동자와 코, 코의 잔등, 뺨과 턱의 윤곽은 희미해져간다. 마침내 머리와 어깨의 선마저 허물어져 그림 속 인물은 알 수 없는 형체가 된다. 그림자 같은 이 형체는 곧 하나의 선이나 점으로 사라져갈 것이다. 생애의 막바지 무렵 사물은 렘브란트에게 점차 희미하게 드러났고, 이 희미한 윤곽은 기억의 횟수가 줄어듦에 따라 더욱 바래져갔다. 그러나 형태도, 이 형태에 대한 기억도, 이런 기억의 소멸마저 그에겐 상관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그는 ‘그림을 살면서’ 자기의 세계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몰두는 그에게 어떤 응전의 방식.삶과 세계의 소멸에 대한 그 나름의 항의 방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렘브란트는 바스라지기 쉬운 인간 육체와, 이런 육체에도 인간성이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차원을 미화 없이 묘파해내는 데 성공하지 않았나 여겨진다. 나는 다시 그의 자화상을 떠올린다. 색채와 인물, 사람과 사물, 형상과 주변은 구분되지 않는다. 이 무경계적 저편으로 노인은, 훅 불면, 사라져버릴 것 같다. 언제라도 등을 돌리며 떠나버릴 것 같다. 지금 넌 뭘 하고 있느냐. 나는 죄다 잊었노라. 주변의 소음도, 색깔의 구분도, 이편의 삶과 저편의 죽음마저. <제시문 (다)>
조선 사람들에게 가장 소중하고 굳게 뿌리내린 보편적인 관습과 미신은 머리카락을 땋고 돌돌 말아서 동곳을 꽂아 상투를 트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머리칼로 된 주춧돌처럼 조선의 사회와 정치, 문화의 중심을 이룬다. 단발령은 이와 같은 오랜 전통을 무시하고 조선의 모든 남자들에게 머리를 깎도록 강요했다. 조선 사람들은 일찍이 성년이 될 때에 겪었던 우아한 의식의 기억들, 명예로운 집안의 전통, 조상님들의 분노와 불쾌감, 철석같이 지켜온 오랜 관습, 이 모든 것들 때문에 머리를 깎는 그 모욕적인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의 긍지와 자존심과 위엄은 모두 빼앗겨 발아래 짓밟혔다. 어디에서나 잔뜩 찌푸린 성난 얼굴들이 보였고 집집마다 통곡 소리와 탄식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성문에는 파수꾼이 지키고 서서 들어오는 사람들의 상투를 칼로 잘라냈기 때문에 농부들과 장작 배달꾼들은 물건을 시장에 내놓지 않았다. 큰 길거리마다 관리들과 군인들이 진을 치고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상투를 잘랐다. 비통하게 울부짖고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이 일은 이 나라의 바로 한복판에 뜨거운 분노를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조선 사람들이 외세에 대해 품고 있던 증오심을 더욱 거세게 했다. 지방에서는 동학당이 다시 일어섰고 여러 마을에서 봉기가 일어났다. 시골로 내려갔던 몇몇 상투 자른 관리들은 성난 백성들에게 쫓겨 왔다. 봉기한 백성들은 그들을 관리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실제로 몇몇을 죽이기도 했다. 관아는 부서졌고 군인들은 무력해서 혼란을 진압할 수가 없었다. 사태는 점점 더 악화되는 것 같았다. <제시문 (라)>
겨울이 가고 봄이 왔어요. 강아지똥 앞에 파란 민들레 싹이 돋아났어요. “너는 뭐니?” 강아지똥이 물었어요. “난 예쁜 꽃을 피우는 민들레야.”/“어떻게 그렇게 예쁜 꽃을 피우니?” “그건 하느님이 비를 내려주시고 따뜻한 햇볕을 쬐어주시기 때문이야.” “그래애……. 그렇구나…….” 강아지똥은 민들레가 부러워 한숨이 나왔어요. “그런데 한 가지 꼭 필요한 게 있어.” 민들레가 말하면서 강아지똥을 봤어요. “네가 거름이 돼줘야 한단다.” “내가 거름이 되다니?” “네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내 몸속에 들어와야 해. 그래야만 별처럼 고운 꽃이 핀단다.” “어머나! 그러니? 정말 그러니?” 강아지똥은 얼마나 기뻤던지 민들레 싹을 힘껏 껴안아버렸어요. 비는 사흘 동안 내렸어요. 강아지똥은 온몸이 비에 맞아 자디잘게 부서졌어요……. 부서진 채 땅속으로 스며들어가 민들레 뿌리로 모여들었어요. 줄기를 타고 올라가 꽃봉오리를 맺었어요. 봄이 한창인 어느 날, 민들레 싹은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을 피웠어요. 향긋한 꽃 냄새가 바람을 타고 퍼져나갔어요. 방긋방긋 웃는 꽃송이엔 귀여운 강아지똥의 눈물겨운 사랑이 가득 어려 있었어요.
■ 정석의 적용 상황·사건을 일반화해 개념 도출해야
하잘 것 없는 강아지똥이 민들레 꽃을 피우는 과정을 아름답게 그린 권정생 선생의 동화 <강아지똥>. <한겨레> 자료사진
제시문의 차이점
■ 함께 하는 ‘예시답안’ (가), (나), (라)는 신체의 변화에 긍정적 태도를 취하며 이를 수용한다. 반면 (다)는 변화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며 이를 거부한다. 이 차이는 변화의 계기가 다른 데서 기인한다. (가)와 (다)의 변화는 외부에서 비롯된다. (가)에서 성형의 계기는 주체와 무관한 외부의 미적 기준이다. 즉 성형은 외적 기준에 소극적으로 적응하는 행위일 뿐이다. 따라서 (가)에서 구분하는 능동적 성형과 수동적 성형에는 변별점이 없다. (다)에서 변화의 계기는 ‘단발령’이라는 정치적 강압이다. 신체의 자기 결정권을 훼손하는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인들은 단발령에 적극적인 방식으로 저항한다. 이러한 저항은 타율적 변화에 대한 주체의 거부 ‘의지’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가)와 다르다. (나)와 (라)는 주체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변화와 대응을 보여준다. (나)에서 주체는 신체의 노화 현상을 수용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화폭에 담아낸다. 즉 (나)는 노화라는 현상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통해 ‘인간성’의 의미를 발견하고, 궁극적으로 형이상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라)에서 변화의 표면적 계기는 ‘민들레’의 권유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다)와 달리 강압적이지 않다. 그러므로 변화의 근본적 원인은 기꺼이 ‘거름’이 되겠다는 주체의 적극적 의지에 있다. 그 결과 강아지똥은 자신을 해체하고 소멸시켜 또 다른 아름다움을 창출한다. 이는 (나)의 철학적 성찰이 ‘내부의 변화’에 집중한 것과는 다르다. 즉 (라)는 주체의 변화가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세계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768자)
■ 한 가지 더 : 주제의 심층이해 정체성(자기동일성-Identity)은 변화하지 않는, 존재의 고유한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변화’는 정체성을 위협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음 제시문을 읽고 정체성과 신체변화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자. 오우삼이 할리우드에서 감독한 영화 <페이스 오프(Face Off)>는 테러리스트 케스터(니콜라스 케이지)와 FBI 요원 아처(존 트라볼타) 간의 대결을 다루고 있다. 임무 때문에 아처는 체포 도중 의식을 잃은 케스터의 얼굴과 자신의 얼굴을 바꾸는 수술을 감행한다. 얼굴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신체의 특징마저도 그대로 복사해 옮기는 과정을 거친 것이다. 이렇게 수술을 마친 아처, 즉 케스터가 된 아처는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란다. 자신이 그토록 경멸하는 얼굴이 거울 앞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자신의 모습이다. 즉, 육체는 케스터지만 의식은 아처인 것이다. 과연 그는 아처인가, 케스터인가? 혼수 상태에서 의식을 찾은 케스터도 의사를 납치해 아처의 얼굴 가죽을 이식받아 아처 행세를 한다. 이제 아처가 된 케스터는 아처의 집에 가서 가장 역할을 하고, 케스터가 된 아처는 케스터의 친구와 애인을 찾아가 그들과 함께 지낸다. 가족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은 약간 성격이 변한 것 같지만 오히려 좋아졌다며 반기기까지 한다. 주변 사람들의 이러한 반응을 보면 볼수록 ‘나는 누구인가’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다. 영화의 종반부에 케스터와 아처가 대결하는 장면이 있다. 양면 거울을 사이에 두고 설전을 나누던 아처와 케스터는 거울 너머에 있는 적에게 총을 겨눈다. 그러나 거울에 비친 얼굴은 당연히 자기 것이지만, 얼굴이 뒤바뀐 탓에 그것은 적의 모습이기도 하다. 거울 속 자기 모습에서 적을 발견하자 둘은 동시에 총을 쏜다. 얼굴은 적의 얼굴이지만, 사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향해 총을 쏜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자신에게 총을 쏜 것인가, 적에게 쏜 것인가? -광운대 2011 수시1차 인문 제시문
최규윤 강남비상에듀학원 인문논술강사
안덕훈 이원장 학습전략학원 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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