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논술 ‘숨은 해법’
■ 정석
정확한 논제파악을 통한 치밀한 글의 구성, 오류 없는 제시문 분석과 이해는 학생답안의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필수요건이다. 이를 기반으로 답안을 무난하게 작성하는 것도 나름대로의 경쟁력은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만족하지 말고 마지막 ‘화룡점정’을 해야 한다. ‘화룡점정’은 벽에 그린 용에 눈동자를 그려 넣자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뜻이다. 이를 논술에 대비시켜 보자. 앞서 말한 논제와 제시문 분석을 통한 무난한 글이 용의 그림이라면, 확실한 경쟁력을 살릴 수 있는 ‘자신만의 차별화된 생각’이 용의 눈동자이다. 논술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용의 눈동자를 항상 생각하고, 그것을 그려 넣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논술에서 ‘용의 눈동자’는 깊이 있는 글이다. ‘깊이 있는 글’이란 보통의 글과는 달리 주제에 대해 한 차원 높은 고민이 드러나 있거나, 글에 나타난 생각의 깊이가 한 단계 더 발전한 글을 뜻한다. 논술 강사들은 그런 글을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요구하지만,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그리 간단히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구체적인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는 논술에서 ‘깊이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기로 한다.
첫째, 사례를 통한 깊이 있는 글인데, 이 부분은 ‘사례 들기’부분에서 따로 언급된 부분이기에 생략한다.
둘째, 논제를 통한 깊이 있는 글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2013학년도 동국대 논술에서, <[문제4]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불평등이 문제가 되는 이유를 제시문 [가], [나], [다]에서 찾아 각각 설명하고, 이를 기초로 제시문 [라]의 사회현상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시오.>라는 문제가 출제됐다. 제시문 (가), (나), (다)에서는 불평등과 관련한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다. 학생들은 제시문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급급할 것이다. 그러나 ‘용의 눈동자’를 기억해야 한다. 답안 작성에 쫓기지 말고, 논제에서 ‘용의 눈동자’의 실마리를 찾아내려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무엇인가? 바로 ‘오늘날’이다. 이 말은 과거에는 사회구조적으로 불평등이 정당화되었거나 사회구성원들이 이를 용인하면서 살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답안의 핵심은 (가), (나), (다)의 요약하기나 단순설명이 아닌, ‘변화’이다. 과거와 현재의 변화에 초점을 두고 제시문을 파악하고 설명한다면 ‘용의 눈동자’를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논술은 ‘현재의 대한민국의 문제’이다. 논제에서 구체적인 ‘오늘날’, ‘한국’이라는 표현이 없다 하더라도 논술문제의 기반은 2013년 대한민국이다. 그렇다면 논술 답안을 한국사회와 접목시켜 서술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배경지식이 필요한 것이다. 논술 준비에는 별도의 배경지식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배경지식을 쌓으면 쌓을수록 글의 깊이는 깊어진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찾아서 준비할 수는 없는 일이다. 뒤늦게나마 논술을 준비하는 학생이 있다면, 각 대학의 기출문제를 통해 이 주제가 한국사회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나의 삶에는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깊게 생각해보고 서로 이야기해 보아야 한다. 대학의 논술문제는 빙산의 일각이고 그 밑에는 2013년 대한민국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 실전 2013수시기출문제(성균관대학교) 무엇이 과연 공평한 경쟁인가?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제시문 1> 다른 사람과 견주고 싶은 욕망은 인간의 타고난 본성인 듯하다. 고대 이래로 철학자와 사상가들은 경쟁이 경제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해 왔으며, ‘좋은 다툼’과 ‘나쁜 다툼’을 구별했다. 이러한 구별의 근거는 그리스의 시인 헤시오도스의 시에서 찾을 수 있다. ‘좋은 다툼’을 그리스어로 ‘아가토스 에리스(agathos eris)’라고 하는데, 이에 대해 헤시오도스는 다음과 같이 읊었다. 남이 잘사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 일하고 싶은 의욕이 솟구치므로 / 부지런히 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집을 짓는다. / 이웃과 이웃이 부를 향해 함께 달린다. / 이러한 에리스는 인간에게 이롭다. / 대장장이는 대장장이 끼리, 미장이는 미장이 끼리 겨루고 / 거지는 다른 거지를, 가수는 다른 가수를 시샘한다. 이 시에는 인간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분명히 나타나 있다. (중략)…그리하여 전체적인 효율성은 증가한다. <제시문 2> 가난의 악순환을 탈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금 가난한 지역에 모여 사는 사람들이 수세대 전 가난한 지역에 모여 살았던 사람들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지리와 역사는 운명이며 탈출할 수 없는 ‘덫’이다. 성적 불평등과 인종적 불평등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흑인들은 가난한 흑인 부모들 사이에서 태어나서 흑인 거주 지역에서 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여성들은 여성 가족에서 태어나 여성들만 모인 지역에서 성장하지 않는다. 흑인들은 여성들과는 달리 부모로부터 가난과 거주지 등에 따른 불이익을 물려받을 가능성이 높다. (중략)…결국 이러한 사회이동의 어려움은 그 사회의 낮은 형평성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제시문 3> 시장에서 재화나 용역의 가격이 형성되면 그 가격은 생산자나 소비자들에 대한 신호의 역할을 한다. 가령 어떤 재화에 대한 수요가 증가해서 그 재화의 가격이 올라가면, 이것은 첫째 소비자에 대하여 이 재화를 덜 사용하고 그 대체물을 더 많이 사용하라는 신호가 되며, 둘째 생산자들에 대해서는 이 재화의 생산을 늘리라는 신호가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경쟁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의하여 결정되는 재화의 가격은 각 경제 주체가 그들이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지표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각 경제 주체는 이 가격의 움직임에 의하여 그 행동을 조정한다. 소비자가 이 신호에 따라 행동하면 효용이 늘 것이며, 생산자가 이 신호에 따라 움직이면 이윤이 늘어서 결국 국민의 복지와 소득이 극대화될 것이다. 그런데 지표의 역할을 수행하는 가격은 그것이 경쟁에 의하여 결정된 것이건, 혹은 정부 관리에 의하여 결정된 것이건 간에 언제나 자원 배분의 기능을 수행한다. 다만 가격이 경쟁에 의하여 결정되는 경우에는 가격이 기회비용을 반영하므로 그 가격이 발하는 신호가 합리적이고 따라서 자원의 배분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는 데 비하여, 자의적으로 결정되는 가격의 경우에는 기회비용을 반영하기 매우 어려우므로 이와 같은 가격이 발하는 신호는 비합리적이다. 그리하여 이런 상황에서 소비나 생산이 이루어질 경우 자원의 배분이 비효율적이 된다. <제시문 4>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경기장이 평평해야 한다”는 개념을 계속 들먹인다. (중략)…모든 사람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경쟁을 하게 하라. 이러니저러니 해도 근본적으로는 경쟁이 공정할 때에만 시장이 주는 혜택을 수확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경기장이 평평해야 한다”는 누가 들어도 지당한 개념을 들먹인다면 감히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나는 이의를 제기한다. 이는 수준이 비슷하지 않은 선수들이 벌이는 경쟁이기 때문이다. 선수들의 수준이 비슷하지 않은데 경기장이 평평하다면 결국 그 게임은 불공정한 것이 된다. 축구경기를 하는 한 편이 브라질 국가 대표팀이고, 상대편은 열한 살 먹은 내 딸의 친구들로 짜여진 팀이라고 생각해 보라. 그렇다면 여자아이들이 아래쪽을 향하여 내리달리며 공격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할 것이다. <제시문 5> 기후변화협약의 핵심 쟁점은 온실가스 방출량을 삭감하기 위한 구속력 있는 목표의 설정 여부이다. 이미 연간 수십억달러 규모의 탄소 배출권거래 시장이 형성된 유럽연합은 강력한 규제를 원한다. 반면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의 ‘역사적 책임’과 개발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여기에 반대한다. (중략)…인구를 고려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개발도상국가는 세계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지만 탄소 방출량은 7%에 그친다. 선진국이 일찍이 개발을 하면서 내뿜은 온실가스는 고스란히 공기 속에 누적돼 있다. 이것이 바로 개발도상국가들이 ‘역사적 책임’을 묻는 이유이다. 남아시아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등 전세계 16억명이 전기를 공급받지 못하는 동안, 미국 플로리다의 에어컨 1대는 1년 동안 캄보디아 사람이 평생 내보내는 양의 탄소를 뿜어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문제 2] 아래 <자료 1>을 해석하고, 그 해석을 활용하여 [문제 1]의 두 입장 중 하나를 옹호하시오.
■ 정석의 적용 형평성 vs 자유 경쟁
논제는 <①아래 <자료 1>을 해석 ②그 해석을 활용하여 [문제 1]의 두 입장 중 하나를 옹호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일단은 지면상 생략했지만 [문제1]의 두 입장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문제1]은 “아래 <제시문 1>~<제시문 5>는 서로 다른 사회적 가치를 지지하고 있다. 이 제시문들을 두 입장으로 나누고, 각 입장을 요약하시오”이다. 전형적인 성균관대학교의 문제형식이다. 주의할 것은 서로 다른 사회적 가치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학생들이 ‘외부의 개입에 대한 찬반’으로 나누어서 (1), (3), (5)와 (2), (4) 두 입장으로 분류했다고 한다. 이 분류는 두 개의 입장으로 나누는 데에만 초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논제의 조건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논제는 ‘서로 다른 사회적 가치를 지지’하고 있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외부의 개입이 사회적 가치가 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하나의 수단이지 가치라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문제1]의 두 입장은, 효율성을 지지하는 (1), (3)과 형평성을 지지하는 (2), (4), (5)로 분류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다시 [문제2]로 돌아오면 ①을 수행하고 ②그 해석을 통해 두 입장 중 하나를 옹호하면 된다.
<자료 1>
i) 각 기둥은 유사한 경제 발전단계에 있는 국가들의 경제성장률을 나타낸다고 가정할 것
ii) ‘경제성장률=f(소득균등, 사회이동)의 함수관계를 가정할 것
* 사회이동: 사회 안에서 사람들의 계층 간 이동을 뜻함
자료1은 경제성장률과 소득균등 사회이동의 상관성을 3차원 그래프로 표현했다. 그래프를 살펴보면, 유사한 경제발전 단계에 있는 국가 중 소득균등 수준과 사회이동 수준이 높을수록 경제성장률이 높아짐을 알 수 있고, 반대로 소득균등 수준과 사회이동 수준이 낮을수록 경제성장률이 낮아짐을 알 수 있다. 이 분석을 통해 두 입장을 옹호하는 글을 구성해보자.
먼저 자유경쟁을 옹호하는 입장의 글을 생각해보자. (1), (3)에 의하면 자유경쟁은 전체의 효율성을 증가시켜 배분도 효율적으로 이끈다는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자유경쟁→경제성장(효율성)→소득균등, 사회이동’의 관계가 성립된다. 반면에 (2), (4), (5)에 의하면 형평성이 지켜져야 경제성장을 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형평성→소득균등, 사회이동→경제성장(효율성)’의 관계로 서술하면 될 것이다.
답안의 가닥이 잡혔으면 ‘용의 눈동자’를 생각해야 한다. 위의 정석에 의하면 셋째에 해당하는 부분을 활용할 수 있다. 현재의 대한민국을 통해 답안은 두 가지 모두 가능하다. 이 글에서는 ‘형평성’을 옹호하는 입장을 취하여 예시답안을 전개하기로 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했는가는 예시답안을 참고하기 바란다.
■ 함께 하는 ‘예시답안’ (성균관대학교는 답안의 분량이 정해져 있지 않아 비교적 긴 답안을 작성하였음.) <자료1>은 소득균등과 사회이동의 정도가 경제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내고 있다. 소득균등과 사회이동 정도가 높을수록 경제성장률도 높아지는 점으로 보아 이들은 양의 상관관계에 있다. 이는 형평성이 효율성을 달성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임을 보여준다. 특히 사회이동의 정도보다 최소한의 소득균등이 경제성장률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사회이동정도가 ‘하’인 국가라 하더라도 소득균등의 정도가 ‘상’일 경우 경제성장률은 2에 가깝다. 하지만 소득균등의 정도가 ‘하’인 국가는 사회이동의 정도가 ‘상’이어도 경제성장률이 1.5에 미치지 못한다. 한편 소득균등의 정도가 ‘중’ 이상인 경우, 사회이동이 높아지면 경제성장률은 급격하게 높아진다. 즉, 최소한의 소득균등이 이루어질 때, 이는 사회이동의 정도와 시너지효과를 일으켜 효율성의 상승을 불러오는 것이다. ‘형평성’은 경제성장의 단계를 떠나 모든 사회의 최우선 가치가 되어야 한다. 다른 의견으로는 저급한 경제발전의 단계에서는 자유경쟁이, 일정 수준 이상에서는 형평성이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제발전과정을 살펴보면, 자유경쟁으로 인한 일부의 풍요가 형평성의 가치를 눈가림한 적은 있지만, 형평성에 대한 주장은 끊어진 적이 없었다. 자유경쟁은 효율성과 수치적 풍요를 일시적으로 드러낼 수 있지만 그 풍요는 약자들에 대한 희생과 잔혹함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자유경쟁은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의 동력이 될 수 없다. 그 어떤 사회든 지역·학력·성·인종 등의 차별을 해소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지향하는 ‘형평성’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야 한다. 오히려 그것이 경제성장을 위한 진정한 동력이다.(815자)
■ 주제의 심층이해 숫자의 가치중립성과 객관성이 정보의 신뢰도를 높여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통계 자체가 100 퍼센트 옳은 것은 아니다. 의도적으로 조작된 나쁜 통계, 가치 판단의 유용한 근거를 주는 정직한 통계, 기준 설정의 오류로 인한 멍청한 통계들이 분명히 존재하며 그렇기 때문에 정확하고 적절한 정보를 얻는 일이 매우 어렵다. 다음의 글을 읽고 ‘국민총생산’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자. 1년 동안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를 조사하고 평가하는 이면에 숨은 또 다른 장애물로서 소위 ‘선불금’이 도사리고 있다. 로빈슨 크루소가 자신의 섬에서 150킬로그램의 곡물을 수확하지만, 다음 해에 다시 농사를 지으려면 50킬로그램의 파종용 씨앗이 필요하다고 해보자. 이것으로 그의 국민 총생산은 150킬로그램이 아니라 100킬로그램인 것은 명확하다. 총생산에서 선불금은 차감되어야 한다. 문제는 다만 무엇이 선불금에 포함되는가이다. 이것은 국민 총생산의 분석과 계산 전반에 있어 가장 어려운 문제이다. 이것은 심지어 우리에게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왜냐하면 칼 마르크스의 순수한 학설에 의하면, 가령 임금 노동자의 의복과 식량은 전체 생산 과정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자원일 뿐이며, 따라서 순생산(잉여가치)에서 차감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칼 마르크스의 이러한 견해에 우리의 관료 통계학자들은 동조할 수 없다. 통계학자들은 한 기업의 총생산액에서 직접 구입하거나 다른 기업들에서 구매한, 최종 생산물에서 사라진 재화와 서비스만 차감한다. 노동과 자본이라는 생산 요소들의 공로는 통상적인 실무에선 계산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것은 무엇보다 국가 부문에 있어 다시금 왜곡된 결과를 불러온다. 가령 우리는 경찰, 사법기관, 소방서의 서비스를 그 자체로는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두가 천사처럼 착해서 경찰과 소방대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면 참으로 기뻐할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국가 생산의 이 부분은 우리의 행복에 독자적으로 기여하는 것이라기보다 사회공동체가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한 선불금으로 여겨질 수 있다. 경찰, 사법기관, 소방서와 군대의 서비스 그 자체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이것들은 원래 바라던 것, 즉 평화와 질서, 안전을 위해 필요한 자원일 뿐이며, 따라서 엄밀히 따지자면 선불금으로서 총생산액에서 차감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현재, 지구상 어느 나라에서도 이렇게 하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예를 들어 엄청난 환경파괴를 불러오는 유조선 참사, 지진, 토네이도, 국지전, 수해가 국민총생산을 높이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불러온다. 일단 발생한 손실은 아주 불충분하게 차감되는 반면, 각종 구호와 지원활동은 빠짐없이 총생산액에 가산되기 때문이다. <발터 크래머-벌거벗은 통계>
송남권 논술칼럼니스트
최규윤 강남비상에듀학원 인문논술강사
안덕훈 이원장 학습전략학원 논술강사
어수창 청솔교육연구정보원 인문논술강사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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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전 2013수시기출문제(성균관대학교) 무엇이 과연 공평한 경쟁인가?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제시문 1> 다른 사람과 견주고 싶은 욕망은 인간의 타고난 본성인 듯하다. 고대 이래로 철학자와 사상가들은 경쟁이 경제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해 왔으며, ‘좋은 다툼’과 ‘나쁜 다툼’을 구별했다. 이러한 구별의 근거는 그리스의 시인 헤시오도스의 시에서 찾을 수 있다. ‘좋은 다툼’을 그리스어로 ‘아가토스 에리스(agathos eris)’라고 하는데, 이에 대해 헤시오도스는 다음과 같이 읊었다. 남이 잘사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 일하고 싶은 의욕이 솟구치므로 / 부지런히 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집을 짓는다. / 이웃과 이웃이 부를 향해 함께 달린다. / 이러한 에리스는 인간에게 이롭다. / 대장장이는 대장장이 끼리, 미장이는 미장이 끼리 겨루고 / 거지는 다른 거지를, 가수는 다른 가수를 시샘한다. 이 시에는 인간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분명히 나타나 있다. (중략)…그리하여 전체적인 효율성은 증가한다. <제시문 2> 가난의 악순환을 탈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금 가난한 지역에 모여 사는 사람들이 수세대 전 가난한 지역에 모여 살았던 사람들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지리와 역사는 운명이며 탈출할 수 없는 ‘덫’이다. 성적 불평등과 인종적 불평등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흑인들은 가난한 흑인 부모들 사이에서 태어나서 흑인 거주 지역에서 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여성들은 여성 가족에서 태어나 여성들만 모인 지역에서 성장하지 않는다. 흑인들은 여성들과는 달리 부모로부터 가난과 거주지 등에 따른 불이익을 물려받을 가능성이 높다. (중략)…결국 이러한 사회이동의 어려움은 그 사회의 낮은 형평성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제시문 3> 시장에서 재화나 용역의 가격이 형성되면 그 가격은 생산자나 소비자들에 대한 신호의 역할을 한다. 가령 어떤 재화에 대한 수요가 증가해서 그 재화의 가격이 올라가면, 이것은 첫째 소비자에 대하여 이 재화를 덜 사용하고 그 대체물을 더 많이 사용하라는 신호가 되며, 둘째 생산자들에 대해서는 이 재화의 생산을 늘리라는 신호가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경쟁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의하여 결정되는 재화의 가격은 각 경제 주체가 그들이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지표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각 경제 주체는 이 가격의 움직임에 의하여 그 행동을 조정한다. 소비자가 이 신호에 따라 행동하면 효용이 늘 것이며, 생산자가 이 신호에 따라 움직이면 이윤이 늘어서 결국 국민의 복지와 소득이 극대화될 것이다. 그런데 지표의 역할을 수행하는 가격은 그것이 경쟁에 의하여 결정된 것이건, 혹은 정부 관리에 의하여 결정된 것이건 간에 언제나 자원 배분의 기능을 수행한다. 다만 가격이 경쟁에 의하여 결정되는 경우에는 가격이 기회비용을 반영하므로 그 가격이 발하는 신호가 합리적이고 따라서 자원의 배분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는 데 비하여, 자의적으로 결정되는 가격의 경우에는 기회비용을 반영하기 매우 어려우므로 이와 같은 가격이 발하는 신호는 비합리적이다. 그리하여 이런 상황에서 소비나 생산이 이루어질 경우 자원의 배분이 비효율적이 된다. <제시문 4>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경기장이 평평해야 한다”는 개념을 계속 들먹인다. (중략)…모든 사람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경쟁을 하게 하라. 이러니저러니 해도 근본적으로는 경쟁이 공정할 때에만 시장이 주는 혜택을 수확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경기장이 평평해야 한다”는 누가 들어도 지당한 개념을 들먹인다면 감히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나는 이의를 제기한다. 이는 수준이 비슷하지 않은 선수들이 벌이는 경쟁이기 때문이다. 선수들의 수준이 비슷하지 않은데 경기장이 평평하다면 결국 그 게임은 불공정한 것이 된다. 축구경기를 하는 한 편이 브라질 국가 대표팀이고, 상대편은 열한 살 먹은 내 딸의 친구들로 짜여진 팀이라고 생각해 보라. 그렇다면 여자아이들이 아래쪽을 향하여 내리달리며 공격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할 것이다. <제시문 5> 기후변화협약의 핵심 쟁점은 온실가스 방출량을 삭감하기 위한 구속력 있는 목표의 설정 여부이다. 이미 연간 수십억달러 규모의 탄소 배출권거래 시장이 형성된 유럽연합은 강력한 규제를 원한다. 반면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의 ‘역사적 책임’과 개발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여기에 반대한다. (중략)…인구를 고려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개발도상국가는 세계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지만 탄소 방출량은 7%에 그친다. 선진국이 일찍이 개발을 하면서 내뿜은 온실가스는 고스란히 공기 속에 누적돼 있다. 이것이 바로 개발도상국가들이 ‘역사적 책임’을 묻는 이유이다. 남아시아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등 전세계 16억명이 전기를 공급받지 못하는 동안, 미국 플로리다의 에어컨 1대는 1년 동안 캄보디아 사람이 평생 내보내는 양의 탄소를 뿜어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문제 2] 아래 <자료 1>을 해석하고, 그 해석을 활용하여 [문제 1]의 두 입장 중 하나를 옹호하시오.
■ 정석의 적용 형평성 vs 자유 경쟁
신자유주의 경제발전론의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까발려온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스테디셀러
<자료1>
■ 함께 하는 ‘예시답안’ (성균관대학교는 답안의 분량이 정해져 있지 않아 비교적 긴 답안을 작성하였음.) <자료1>은 소득균등과 사회이동의 정도가 경제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내고 있다. 소득균등과 사회이동 정도가 높을수록 경제성장률도 높아지는 점으로 보아 이들은 양의 상관관계에 있다. 이는 형평성이 효율성을 달성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임을 보여준다. 특히 사회이동의 정도보다 최소한의 소득균등이 경제성장률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사회이동정도가 ‘하’인 국가라 하더라도 소득균등의 정도가 ‘상’일 경우 경제성장률은 2에 가깝다. 하지만 소득균등의 정도가 ‘하’인 국가는 사회이동의 정도가 ‘상’이어도 경제성장률이 1.5에 미치지 못한다. 한편 소득균등의 정도가 ‘중’ 이상인 경우, 사회이동이 높아지면 경제성장률은 급격하게 높아진다. 즉, 최소한의 소득균등이 이루어질 때, 이는 사회이동의 정도와 시너지효과를 일으켜 효율성의 상승을 불러오는 것이다. ‘형평성’은 경제성장의 단계를 떠나 모든 사회의 최우선 가치가 되어야 한다. 다른 의견으로는 저급한 경제발전의 단계에서는 자유경쟁이, 일정 수준 이상에서는 형평성이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제발전과정을 살펴보면, 자유경쟁으로 인한 일부의 풍요가 형평성의 가치를 눈가림한 적은 있지만, 형평성에 대한 주장은 끊어진 적이 없었다. 자유경쟁은 효율성과 수치적 풍요를 일시적으로 드러낼 수 있지만 그 풍요는 약자들에 대한 희생과 잔혹함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자유경쟁은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의 동력이 될 수 없다. 그 어떤 사회든 지역·학력·성·인종 등의 차별을 해소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지향하는 ‘형평성’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야 한다. 오히려 그것이 경제성장을 위한 진정한 동력이다.(815자)
■ 주제의 심층이해 숫자의 가치중립성과 객관성이 정보의 신뢰도를 높여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통계 자체가 100 퍼센트 옳은 것은 아니다. 의도적으로 조작된 나쁜 통계, 가치 판단의 유용한 근거를 주는 정직한 통계, 기준 설정의 오류로 인한 멍청한 통계들이 분명히 존재하며 그렇기 때문에 정확하고 적절한 정보를 얻는 일이 매우 어렵다. 다음의 글을 읽고 ‘국민총생산’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자. 1년 동안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를 조사하고 평가하는 이면에 숨은 또 다른 장애물로서 소위 ‘선불금’이 도사리고 있다. 로빈슨 크루소가 자신의 섬에서 150킬로그램의 곡물을 수확하지만, 다음 해에 다시 농사를 지으려면 50킬로그램의 파종용 씨앗이 필요하다고 해보자. 이것으로 그의 국민 총생산은 150킬로그램이 아니라 100킬로그램인 것은 명확하다. 총생산에서 선불금은 차감되어야 한다. 문제는 다만 무엇이 선불금에 포함되는가이다. 이것은 국민 총생산의 분석과 계산 전반에 있어 가장 어려운 문제이다. 이것은 심지어 우리에게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왜냐하면 칼 마르크스의 순수한 학설에 의하면, 가령 임금 노동자의 의복과 식량은 전체 생산 과정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자원일 뿐이며, 따라서 순생산(잉여가치)에서 차감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칼 마르크스의 이러한 견해에 우리의 관료 통계학자들은 동조할 수 없다. 통계학자들은 한 기업의 총생산액에서 직접 구입하거나 다른 기업들에서 구매한, 최종 생산물에서 사라진 재화와 서비스만 차감한다. 노동과 자본이라는 생산 요소들의 공로는 통상적인 실무에선 계산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것은 무엇보다 국가 부문에 있어 다시금 왜곡된 결과를 불러온다. 가령 우리는 경찰, 사법기관, 소방서의 서비스를 그 자체로는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두가 천사처럼 착해서 경찰과 소방대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면 참으로 기뻐할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국가 생산의 이 부분은 우리의 행복에 독자적으로 기여하는 것이라기보다 사회공동체가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한 선불금으로 여겨질 수 있다. 경찰, 사법기관, 소방서와 군대의 서비스 그 자체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이것들은 원래 바라던 것, 즉 평화와 질서, 안전을 위해 필요한 자원일 뿐이며, 따라서 엄밀히 따지자면 선불금으로서 총생산액에서 차감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현재, 지구상 어느 나라에서도 이렇게 하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예를 들어 엄청난 환경파괴를 불러오는 유조선 참사, 지진, 토네이도, 국지전, 수해가 국민총생산을 높이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불러온다. 일단 발생한 손실은 아주 불충분하게 차감되는 반면, 각종 구호와 지원활동은 빠짐없이 총생산액에 가산되기 때문이다. <발터 크래머-벌거벗은 통계>
최규윤 강남비상에듀학원 인문논술강사
안덕훈 이원장 학습전략학원 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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