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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회피처로 숨어 들어간 이들은 ‘합리적 인간’?

등록 2013-06-17 20:28수정 2013-06-17 21:39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5월3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언론회관 국제회의장에서 ‘조세피난처 프로젝트 공동취재 기자회견’을 열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씨가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서류상 기업)를 설립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뉴스타파> 누리집 관련 보도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5월3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언론회관 국제회의장에서 ‘조세피난처 프로젝트 공동취재 기자회견’을 열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씨가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서류상 기업)를 설립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뉴스타파> 누리집 관련 보도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NIE 홈스쿨] 조세회피처
전두환 전 대통령의 큰아들 전재국씨 등 한국인 245명이 해외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납세는 국민의 4대 의무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세금을 없애야 기업의 투자가 활발해지고, 고용이 늘어난다”고 강조합니다.

얼마 전, 독립 언론 <뉴스타파>가 한국인 245명이 해외 조세회피처(Tax haven)에 페이퍼컴퍼니(paper company)를 설립한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페이퍼컴퍼니는 말 그대로 서류상에만 있고, 실체는 없는 유령회사를 말합니다. 명단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큰아들 전재국씨를 비롯해 이수영 OCI 회장 부부, 최은영 한진해운 홀딩스 회장 등이 들어 있었습니다. 특히, 전재국씨의 경우, 아버지의 비자금 문제가 불거진 지난 2004년에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정부 규제나 세금이 없어지면
기업 경영이 좋아져 고용이 늘고
결국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게
신자유주의자들의 논리입니다
조세회피처에 숨어 들어간 이들은
이런 논리에 충실한 사람들이죠

조세회피처란 개인이나 법인의 실제 발생소득의 전부 또는 상당 부분에 대해 세금을 매기지 않는 곳을 말합니다. 세율이 매우 낮은 ‘Low tax havens’(바레인·모나코·싱가포르 등), 특정 형태의 회사나 사업 활동에 세제상의 우대 조치를 해주는 ‘Tax Resort’(아일랜드·스위스·룩셈부르크·네덜란드 등) 소득세, 법인세 등을 전혀 부과하지 않는 ‘Tax Paradise’(바하마·버뮤다 군도 등) 등 종류도 다양합니다. 조세회피처는 거래 내역 추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산가들이나 부패한 정치인, 대기업과 다국적 기업들이 비자금을 숨기거나 돈세탁하는 데 이용합니다. 이렇게 조세회피처를 이용해 탈세하는 걸 역외탈세(offshore tax evasion)라고 합니다.

납세는 국민의 4대 의무지만 세금 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돈이 많은 부자들은 더할 겁니다. 내야 할 세금이 많기 때문입니다.

주목할 부분은 역외탈세에 당당한 사람도 있다는 겁니다. 지난 2011년 역외 탈세로 4100억원을 추징당한 시도상선 권혁 회장이 대표적입니다. 권 회장은 당시 국세청을 상대로 과세 불복청구를 하면서 여러 언론과 인터뷰에서 “나는 오히려 한국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권 회장은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했고, 홍콩에서 영업을 하기 때문에 세금을 낸다면 이 나라들에 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습니다. 시도상선은 한국 조선소로부터 약 5년 동안 선박을 3조7000억원어치 발주해 구입했고, 한국에서 1년에 100억원 넘게 선박 보험료를 냈기 때문에 그만큼 한국 경제에 기여했다는 겁니다.

‘신자유주의’시각에서 볼 때 권 회장은 매우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인간’입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유시장이 최고며 정부의 각종 개입은 필요 없다고 주장합니다. 국가 권력이 시장에 개입하면 경제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그 대신 낙수효과(落水效果ㆍtrickle down effect)를 강조합니다. 정부 규제나 세금 등이 없어지면 기업 경영이 좋아져 고용이 늘고, 종업원들에게 임금을 줘 소득 재분배가 되는 등 경제가 알아서 돌아간다는 게 낙수효과의 핵심 논리입니다. 그래서 신자유주의자들은 법인세를 없애고 누진세도 필요 없다고 합니다.

국가가 요구하는 세금을 안 내기 위해 조세회피처에 숨어 들어간 이들은 신자유주의 논리에 충실한 사람들인 셈입니다.

신자유주의 원조는 미국의 경제학자로 1976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밀턴 프리드먼(1912~2006)입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197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주요 국가의 정권을 장악합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로널드 레이건 미국 전 대통령과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입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했던 ‘부자감세’ 역시 신자유주의 논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기업이 돈 많이 벌면 되는 거 아니냐. 기업이 국가의 개입 없이 경영활동을 하면 성장도 빠르다. 고용도 늘어 사회에 기여한다. 나는 당당하다.’ 권 회장 같은 사람들의 논리입니다.

한데 권 회장이 놓치고 있는 게 있습니다. 권 회장이 해운사업을 하기 위해 활용한 도로와 항만 등 사회 간접자본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국가입니다. 국가는 어떻게 사회간접 자본 건설비를 마련했을까요? 바로 국민들이 낸 세금이 있기 때문이다.

권 회장은 자신이 더 나은 환경과 기술, 제도 안에서 사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준 ‘사회 공동체’, 즉 ‘국가’를 빼놓고 이야기합니다. “기업은 의사 결정을 할 때 사회적 책임과 윤리를 고려해야 한다”(고등학교 경제 교과서(천재교육, 75쪽))고 교과서에 쓰여 있지만 현실에서는 신자유주의적 주장이 정답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습니다.

지난 4월8일 대처 총리가 사망했을 때 <빵과 장미> 등으로 유명한 영화감독 켄 로치는 대처가 생전에 효율을 내세워 밀어붙인 무분별한 민영화 정책을 겨냥해 “그의 장례식을 민영화하자”고 트위터에 썼습니다. 생전 대처 총리는 “사회 공동체라는 것은 없다. 오직 남자, 여자라는 개인, 그리고 가족 단위만 존재할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논리대로라면 대처의 장례식은 국장 아닌 개인장으로 치러야 합니다.

세계 3위의 부자인 미국의 투자가 워런 버핏은 “내가 번 돈의 많은 부분을 사회가 벌어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만일 나를 방글라데시나 페루 같은 곳에 갑자기 옮겨놓는다면 맞지 않는 토양에서 내 재능이 얼마나 꽃 피울지 의문”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론자들의 논리로 보면 워런 버핏은 극도로 ‘비합리적인 인간상’이 되겠습니다.

교과서 펼쳐보기 | 기업의 사회적 책임

“1970년대 들어 선진국을 중심으로 환경오염, 에너지 부족 등의 사회 문제가 나타나면서 사회적 문제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기업의 사회적 공헌, 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회 책임 투자, 윤리 경영, 환경 경영, 투명 경영, 신뢰 경영 등은 모두 기업에 대한 이러한 사회적 요구를 담은 용어들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주주, 소비자, 지역 사회 등과의 관계를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사회에 대한 책임도 함께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등학교 <경제>, 천재교육 75쪽)

책으로 확장하기 | 사익 추구가 합리적 사회 만든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자유주의 시장경제 옹호자인 밀턴 프리드먼의 <자본주의와 자유> (사진)를 보면 신자유주의 경제철학을 자세히 만나볼 수 있습니다. 프리드먼은 이 책에서 개인적 이기심을 추구하도록 내버려 두면 자유 시장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모든 게 자연스럽게 해결된다고 주장합니다.

경제에 대한 정부의 적극 개입을 주장한 케인즈 경제정책이 1970년대 중반부터 스태그플레이션(경제불황에 물가상승이 동시에 발생하는 상태)을 불러오자 사람들은 정부 지출을 줄이고, 통화량을 늘려야 한다는 프리드먼의 주장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작은 정부와 규제 완화의 허점이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드러나면서 프리드먼에 대한 평가는 절하됐습니다. 프리드먼은 <자본주의와 자유>에서 “정치체제와 경제체제는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경제적 자유는 정치적 자유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눈에 과세는 개인이 피땀 흘려 번 돈을 국가가 강탈해가는 나쁜 제도인 셈입니다.

논제로 정리하기 | 정부는 시장에 적극 개입해야 하나?

서울시립대 2010 모의고사에서는 “주어진 6개의 제시문을 읽고,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찬반 입장을 정하고, 자신이 정한 입장의 반대편 논거들을 제시문에서 모두 찾아 각각의 논거들을 비판하라”는 논제가 주어졌습니다.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하는 대표적인 제시문에서는 펜실베이니아 주 정부가 독립군을 돕기 위해 제정한 군수물자에 대한 ‘가격통제법’을 실시했는데, 이 법이 군수물자의 가격을 낮추려는 의도에서 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가격을 폭등시켜서 독립군의 군수물자 조달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반대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의 대표적인 글에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개입이 관료화, 부패, 세금증대, 인플레 등 이른바 ‘정부의 실패’를 초래할 수 있다는 논지의 글을 소개했습니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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