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7일 오전 서울 성북구 월곡초등학교 6학년 3반. 아이들 책상에는 교과서도 공책도 보이지 않았다. 학생들은 ‘과제’가 떨어지는 즉시 교실을 박차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날은 ‘사진활용수업’(PIE)이 있는 날. 수업을 이끈 곽윤섭 <한겨레> 사진기자는 과제로 ‘단체기념사진’을 내주었다.
“누구나 찍어보고, 모델도 되는 겁니다. 한 줄로 쭉 서서 찍으면 재미없겠죠? 동그라미, 삼각형, 디귿자 형태 등 다양하게 찍어 보세요. 하늘도 쳐다보고, 누워도 보고.”
비가 내리는 바람에 촬영 장소는 운동장 대신 강당으로 바뀌었지만 책걸상에서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유쾌해 보였다.
5~6명으로 이뤄진 4개 모둠에 카메라가 1대씩이 주어졌다. 그러나 막상 카메라를 손에 잡으니 아이들 행동이 움츠러들었다. 이진호 담임교사는 “여행을 떠나면 대부분 부모님이 카메라를 든다. 사진활용수업은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진지하게 잡아보는 낯선 경험”이라고 설명했다.
남학생이 촬영을 맡자 여학생은 ‘이상한 거 시키지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다리 하나 들고! 두 개 다 들고!” 짓궂은 요구에 여학생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젓기도 했다. 아이들 몇몇은 강당 안 농구대로 몰려갔다. 높이 솟아올라 농구공을 내리꽂으며 ‘덩크슛’을 시도했다. 카메라를 잡은 우희승(13)군은 이 모습을 찍었다.
‘신문활용교육’은 신문 기사를 수업에 활용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진활용교육’은 자료사진을 보고 연상되는 생각을 글로 옮겨 보는 학습 방식이다. 곽 기자는 “그렇게 하면 글쓰기 능력에는 도움이 된다. 그러나 나는 카메라로 상상하고 사진으로 표현해보는, 사진 ‘창의’교육이 더 우선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강당 교단 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주황색 무대 장막에 5명의 아이가 눈만 빠끔하게 내민 채 몸을 숨기고 있었다. 카메라를 잡은 장원석(13)군은 이들을 뷰파인더에 담기 위해 줌인과 줌아웃을 반복하고 있었다. 원석이가 셔터를 누르자 커튼에 매달렸던 아이들이 한걸음에 달려와 사진을 확인했다.
“두 손을 턱에 괴고 귀여운 포즈로 사진을 찍으라고 할 때는 ‘망했다’ 싶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찍으니까 더 부담도 없고 쉬워요.”
곽 기자는 “아이들이 사진과 신나게 놀 수 있다면 족하다”며 “남들 보기에 예쁘게 셀카만 찍으려 하고, 외모에 자신 없다며 피하기 일쑤인 사춘기 아이들이 카메라 앞에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자존감 높이기’가 사진활용교육의 목표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이루리(13)양은 카메라 렌즈 앞에 안경을 덧대놓고 모둠 아이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도움 교사의 부러진 안경테를 보고 즉석에서 낸 촬영 아이디어였다. 사각의 사진프레임에 안경테가 겹치면서 ‘프레임 안의 프레임’이 만들어졌다. 아이들의 상이 안경에 굴절되면서 1개의 물체가 2개로 보이는 등 색다른 효과가 발생했다. 루리는 “별 고민 없이 셀카나 엽사(엽기적 사진)를 찍어본 적은 많지만 이렇게 계획적으로 촬영한 건 처음”이라며 환히 웃었다.
최연하 독립큐레이터는 “텔레비전과 컴퓨터, 아파트와 창문 등 사각 프레임 일색인 환경에서, 카메라는 동일한 사각 프레임이면서도 그 틀을 마음껏 말랑말랑하게 주물러 볼 수 있는 창의적 도구”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아직 사진활용수업은 정규교과목이 아니다.
중부대 문화예술교육원장 허현주 교수(사진영상학과)는 “창의적 체험활동·방과후교실 등에서 사진 교육을 한다고 하지만, 연극영화·만화애니메이션 등 총 10개의 문화예술교육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에 불과하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집에 카메라가 있다면 가정에서도 충분히 시도할 수 있다. 늘 오르락내리락하던 학교 계단에 아이들을 지그재그 세워놓고 촬영한 황정은(13)양은 “학교가 친근해졌다. 다시 카메라를 들면 훨씬 재밌게 찍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영우 기자
kyw@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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