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은 베스트셀러의 내용이나 작가를 보기보다는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는 이유로 책을 사는 경우가 많다. 이런 심리가 사재기를 부른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함께하는 교육] NIE 홈스쿨|출판계 ‘사재기’ 논란
사재기 문제는 비단 출판계 문제가 아니라 소비문화계 전반의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음원 시장의 사재기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이 문제의 범인을 단순히 ‘출판사’ 또는 ‘기획사’라고 볼 일은 아닙니다.
일단 책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르게 되면 하루에 5권 나가던
책이 500권 이상 나가게 되고,
엄청난 수익이 보장되기 때문에
이걸 아는 사람들은 사재기
유혹에 빠진다. 출판계가 ‘사재기’ 문제로 들썩입니다. 얼마 전 소설가 황석영씨의 <여울물 소리>가 사재기 의혹을 받았습니다. 황씨는 지난해 등단 50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이 소설을 절판시키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책과 함께 사재기 의혹을 받은 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의 작가인 김연수씨 역시 책의 회수와 절판을 요청했습니다. 파장이 커지자 두 책을 펴낸 출판사 ‘자음과모음’의 강병철 대표는 지난 8일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겠다. 대표로서의 모든 권한을 내려놓겠다. 사옥도 매각하고, 원점으로 돌아가 새로운 길을 모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사재기란, 많은 수량의 물건을 사서 보관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사재기에도 유형이 있습니다. 물건의 시세가 변동될 것을 대비해 오랜 기간 동안 사용할 물건을 미리 사 놓는 경우, 전쟁 등 비상사태에 대비해 물건을 많이 사들이는 경우, 매점매석을 하기 위해 물건을 모두 사들여 놓는 경우, 특정 상품의 판매나 인기 순위를 조작하기 위해 상품을 많이 사들이는 경우 등이 있습니다. 이번 출판계에 일어난 사재기 문제는 마지막 유형에 해당합니다. 출판계에서 사재기는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특정 상품의 판매, 인기 순위를 조작하기 위한 사재기는 문화계 전반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말 몇몇 아이돌 그룹의 소속사가 신곡 음원과 음반을 한꺼번에 대량 사들여 차트에서 순위를 올렸다는 의혹이 일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재기 문화의 1차 범인은 출판사나 기획사입니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숨어 있는 또다른 범인이 보입니다. 한 출판관계자의 말이 그 범인이 누구인지 짐작하게 해줍니다. “일단 책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르게 되면 하루에 5권 나가던 책이 500권 이상 나가게 되고, 엄청난 수익이 보장되기 때문에 이걸 아는 사람들은 사재기 유혹에 빠진다.” 베스트셀러라고 하면 무조건 사고 보는 사람들이 없다면 출판사에서는 굳이 사재기를 할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이런 심리를 바탕으로 상품을 구입하는 소비현상을 두고 ‘밴드왜건 효과’(Band Wagon Effect) 또는 ‘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 ‘편승효과’(便乘效果)라고 합니다. 이 이론의 기초를 세운 사람은 미국의 하비 라이벤스타인(Harvey Leibenstein, 1922~1994)입니다. 이론은 1950년 미국 서부개척 시대에 있던 역마차 밴드왜건에서 시작됩니다. 밴드왜건은 악대를 선두에 세우고 다니는 운송수단으로 요란한 곡을 연주하면서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악대의 음악 소리로 사람을 모은 뒤 “금광이 발견됐다”고 선전하면 무작정 역마차를 따라가던 사람들을 빗대면서 나온 말이 밴드왜건 효과입니다. 밴드왜건 효과와 관련한 사례는 학생들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우리나라 중고생들한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점퍼가 있습니다. 바로 ‘노스페이스 점퍼’입니다. 학생들한테 “이 점퍼를 왜 갖고 싶으냐?”고 물어보면 “남들이 다 입고 다니니까”라는 똑같은 대답이 돌아옵니다. 이런 식으로 “남들 다 갖고 있으니 나도 한 벌쯤 갖고 있어야 한다”는 심리가 바로 밴드왜건 효과입니다. 쉽게 말해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경우와 같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기업들은 밴드왜건 효과를 기대하며 갖가지 마케팅 방법들을 내놓습니다. 홈쇼핑에서 자주 나오는 ‘마감 임박’, ‘지금 ○○○명이 구매하고 계십니다. 빨리 전화하세요. 몇 개 안 남았습니다’ 등의 멘트 역시 이런 효과를 겨냥한 셈입니다. 밴드왜건 효과를 겨냥한 소비문화가 일상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이런 효과를 기대하고 사재기를 하는 쪽이 1차 범인이지만 또다른 범인인 소비자들한테도 필요한 태도가 있습니다. 소비문화의 무비판적 수용자로 남지 말고, 비판적인 안목과 자기 줏대가 있는 ‘깐깐한 소비자’가 돼야 한다는 겁니다. ⊙ 교과서 펼쳐보기 | 비판적 안목 기르기 “하루에도 수많은 책이 쏟아지는 요즘, 어떤 책을 골라 읽어야 할지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이때 하나의 선택 기준이 되는 것이 인기도서 목록이다. 인기도서는 많은 사람이 선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인기도서를 읽을 때에는 도서의 내용을 그대로 수용할 것이 아니라 비판적인 안목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인기도서는 사회적·문화적인 현상의 하나이다. 따라서 도서의 내용은 물론 출판계의 홍보 전략이 미친 영향, 수용자 대중의 집단 심리 및 문화적 기호 등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나면 그 작품이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인지를 스스로 판단하게 된다. 자신의 감상과 평가를 조금 더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글, 곧 비평문을 써보는 것이 좋다.”(고등학교 <국어>(창비) 읽기와 쓰기의 즐거움·46쪽) ⊙ 책으로 확장하기 | 정치권도 밴드왜건 효과 노린다
선거철 정치권은 여론조사를 이용해 밴드왜건 효과를 노립니다.
여론조사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일반 대중의 의견을 수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여론조사는 표본으로 모집단을 추정하기 때문에 통계적으로 오차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의도된 설문지를 돌려 정확하지 않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조작의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여론조사는 참고자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불확실성과 조작의 가능성이 있는 여론조사 결과를 정치권과 언론이 잘 이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여론과 군중>(가브리엘 타르드 지음, 이상률 옮김)의 옮긴이가 쓴 해설 부분을 보면 “개인들의 사적인 대화만으로는 여론이 형성되지 않는다. 여론을 주도하고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신문이다. 신문은 사람들의 일상적인 대화에 대부분의 주제를 제공한다”(257쪽)는 말이 나옵니다. 언론은 그만큼 여론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사람들의 선택에 중요한 영향을 끼칩니다.
밴드왜건 효과론자들은 특정 후보의 지지도가 높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언론을 통해 발표되면 그 후보자의 지지도가 더 올라가게 된다고 말합니다. <여론조사>(사진·선우동훈 지음) 가운데 ‘여론조사와 언론매체 사이의 문제점’이라는 항목을 보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두 번째 문제는, 편승효과 및 동정표 효과라는 것으로, 여론조사 결과의 보도에 따라 유권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자. 어떤 후보가 제일 높은 인기도로 선두 후보가 되었다는 보도기사를 읽었다 하자. 그 기사를 읽은 유권자는 원래 다른 후보를 지지해 왔지만 많은 사람이 선두 후보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자기도 그 선두 후보를 지지하게 된다. 이에 비하여 어떤 사람들은 낙오자 후보에게 동정심으로 지지표를 던지는 ‘동정표’ 효과가 있다.”(192~193쪽)
밴드왜건 효과의 반대 개념도 있습니다. 언더도그 효과(Underdog Effect)입니다. 언더도그란, 투기견 경기에서 밑에 깔려 질 것 같은 개를 뜻합니다. 언더도그 효과론자들은 사람들이 질 것 같은 쪽에 연민을 느껴 그쪽을 지지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질 것 같았던 쪽이 승리했을 때 큰 희열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 논제로 정리하기 | 군집행동과 사회
단국대(죽전) 2012 수시 2차(인문계)에서는 각각 ‘주식시장에서 나타나는 군집행동’, ‘선거에서 나타나는 밴드왜건 효과’, ‘특정 개인의 재화의 수요가 다른 개인의 수요에 영향을 주는 현상인 네트워크 외부효과’ 등을 설명한 제시문과 ‘소설코머스 업체들이 구매 후기와 판매수량 등을 조작했다’는 내용의 글을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이 지문들이 공통으로 설명하는 현상을 서술하고, 이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을 각각의 제시문에 근거해 설명하라”는 논제가 나왔습니다.
이 논제의 의미는 “대다수가 가니 나도 따라간다”는 군중심리가 경제학·정치학·심리학 등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 사람들이 군집행동을 유발할 수 있는 여론몰이 환경에 놓여 있고, 그 속에서 개인의 주체적인 판단과 선택이 중요하다는 점으로 요약됩니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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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수익이 보장되기 때문에
이걸 아는 사람들은 사재기
유혹에 빠진다. 출판계가 ‘사재기’ 문제로 들썩입니다. 얼마 전 소설가 황석영씨의 <여울물 소리>가 사재기 의혹을 받았습니다. 황씨는 지난해 등단 50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이 소설을 절판시키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책과 함께 사재기 의혹을 받은 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의 작가인 김연수씨 역시 책의 회수와 절판을 요청했습니다. 파장이 커지자 두 책을 펴낸 출판사 ‘자음과모음’의 강병철 대표는 지난 8일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겠다. 대표로서의 모든 권한을 내려놓겠다. 사옥도 매각하고, 원점으로 돌아가 새로운 길을 모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사재기란, 많은 수량의 물건을 사서 보관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사재기에도 유형이 있습니다. 물건의 시세가 변동될 것을 대비해 오랜 기간 동안 사용할 물건을 미리 사 놓는 경우, 전쟁 등 비상사태에 대비해 물건을 많이 사들이는 경우, 매점매석을 하기 위해 물건을 모두 사들여 놓는 경우, 특정 상품의 판매나 인기 순위를 조작하기 위해 상품을 많이 사들이는 경우 등이 있습니다. 이번 출판계에 일어난 사재기 문제는 마지막 유형에 해당합니다. 출판계에서 사재기는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특정 상품의 판매, 인기 순위를 조작하기 위한 사재기는 문화계 전반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말 몇몇 아이돌 그룹의 소속사가 신곡 음원과 음반을 한꺼번에 대량 사들여 차트에서 순위를 올렸다는 의혹이 일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재기 문화의 1차 범인은 출판사나 기획사입니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숨어 있는 또다른 범인이 보입니다. 한 출판관계자의 말이 그 범인이 누구인지 짐작하게 해줍니다. “일단 책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르게 되면 하루에 5권 나가던 책이 500권 이상 나가게 되고, 엄청난 수익이 보장되기 때문에 이걸 아는 사람들은 사재기 유혹에 빠진다.” 베스트셀러라고 하면 무조건 사고 보는 사람들이 없다면 출판사에서는 굳이 사재기를 할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이런 심리를 바탕으로 상품을 구입하는 소비현상을 두고 ‘밴드왜건 효과’(Band Wagon Effect) 또는 ‘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 ‘편승효과’(便乘效果)라고 합니다. 이 이론의 기초를 세운 사람은 미국의 하비 라이벤스타인(Harvey Leibenstein, 1922~1994)입니다. 이론은 1950년 미국 서부개척 시대에 있던 역마차 밴드왜건에서 시작됩니다. 밴드왜건은 악대를 선두에 세우고 다니는 운송수단으로 요란한 곡을 연주하면서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악대의 음악 소리로 사람을 모은 뒤 “금광이 발견됐다”고 선전하면 무작정 역마차를 따라가던 사람들을 빗대면서 나온 말이 밴드왜건 효과입니다. 밴드왜건 효과와 관련한 사례는 학생들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우리나라 중고생들한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점퍼가 있습니다. 바로 ‘노스페이스 점퍼’입니다. 학생들한테 “이 점퍼를 왜 갖고 싶으냐?”고 물어보면 “남들이 다 입고 다니니까”라는 똑같은 대답이 돌아옵니다. 이런 식으로 “남들 다 갖고 있으니 나도 한 벌쯤 갖고 있어야 한다”는 심리가 바로 밴드왜건 효과입니다. 쉽게 말해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경우와 같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기업들은 밴드왜건 효과를 기대하며 갖가지 마케팅 방법들을 내놓습니다. 홈쇼핑에서 자주 나오는 ‘마감 임박’, ‘지금 ○○○명이 구매하고 계십니다. 빨리 전화하세요. 몇 개 안 남았습니다’ 등의 멘트 역시 이런 효과를 겨냥한 셈입니다. 밴드왜건 효과를 겨냥한 소비문화가 일상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이런 효과를 기대하고 사재기를 하는 쪽이 1차 범인이지만 또다른 범인인 소비자들한테도 필요한 태도가 있습니다. 소비문화의 무비판적 수용자로 남지 말고, 비판적인 안목과 자기 줏대가 있는 ‘깐깐한 소비자’가 돼야 한다는 겁니다. ⊙ 교과서 펼쳐보기 | 비판적 안목 기르기 “하루에도 수많은 책이 쏟아지는 요즘, 어떤 책을 골라 읽어야 할지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이때 하나의 선택 기준이 되는 것이 인기도서 목록이다. 인기도서는 많은 사람이 선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인기도서를 읽을 때에는 도서의 내용을 그대로 수용할 것이 아니라 비판적인 안목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인기도서는 사회적·문화적인 현상의 하나이다. 따라서 도서의 내용은 물론 출판계의 홍보 전략이 미친 영향, 수용자 대중의 집단 심리 및 문화적 기호 등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나면 그 작품이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인지를 스스로 판단하게 된다. 자신의 감상과 평가를 조금 더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글, 곧 비평문을 써보는 것이 좋다.”(고등학교 <국어>(창비) 읽기와 쓰기의 즐거움·46쪽) ⊙ 책으로 확장하기 | 정치권도 밴드왜건 효과 노린다
선우동훈 지음(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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