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중앙, ‘갑’ 훈계 vs 한겨레, 정부 책임 강조
<한겨레>와 <중앙일보>가 함께 구성한 지면으로 두 언론사의 사설을 통해 중3~고2 학생 독자들의 사고력 확장에 도움이 되도록 비교분석하였습니다. 다음주 6월4일에는 ‘한미동맹’에 대한 논제가 실립니다.
▷ ‘사설 속으로’ 기획연재 바로가기
[논리 대 논리]
‘갑’ 훈계하는 중앙, ‘을’ 못지킨 정부 다그치는 한겨레
단계 1 공통 주제의 의미
‘갑을 문화’가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갑’과 ‘을’이란 원래 계약을 맺는 두 당사자를 일컫는 말이다. 제대로 된 계약에서는 갑과 을의 지위가 같아야 한다. 그래야 서로에게 이익이 될 결과를 좇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갑은 강자고 을은 약자다. 갑은 을을 부리는 ‘고객’이고, 을은 갑에 생계를 매달 수밖에 없는 처지다. 때문에 갑들의 횡포가 숱하게 벌어지곤 한다. 라면 상무 사건, 경주빵 회장 호텔 종업원 폭행, 남양유업의 밀어내기, 청와대 대변인의 인턴 성추행에 이르기까지, 최근에 벌어졌던 ‘갑질’들만 꼽아 보아도 두 손의 손가락을 모두 써야 할 정도다.
자유와 평등은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두 기둥이다. 자유와 평등을 침해하는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 매우 민감한 이슈로 다가오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약탈적 갑을 문화’는 자유와 평등을 무너뜨리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따라서 한겨레와 중앙의 사설은 모두 갑을 문화의 개혁을 한목소리로 외친다. 그러나 둘의 논리는 전혀 다르다. 중앙은 갑들을 훈계하려 하고, 한겨레는 을들을 보호하지 못한 정부를 다그치려 한다. 각각의 사설을 꼼꼼히 따져보자.
단계 2 문제 접근의 시각차
보수주의(conservatism)는 ‘보호자’(conservator)에서 온 말이다. 보수주의자의 원조 격인 에드먼드 버크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강조했다. 지도층은 도덕적으로 흠결 없어야 하며, 사회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한다는 뜻이다.
중앙의 논리는 보수주의의 논조에 충실하다. 남양유업을 향해 ‘사과의 진정성을 입증하라며’, 가진 자의 책임과 의무를 일깨우는 식이다. ‘굳이 갑을관계나 경제민주화 같은 단어를 들먹이지 않더라도’라는 표현에서는 덕과 성품부터 먼저 점검하는 보수주의의 전형적인 태도가 엿보인다.
반면, 한겨레는 을들의 어려움을 알리고, 이를 제대로 보듬지 못한 정부를 비판하는 데 힘을 모은다. 평등을 실현하는 법과 ‘강한 정부’로 약자를 보호하려는 사회민주주의의 전통이 느껴진다.
이 둘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설득력이 있을까? 이런 물음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가진 자들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도덕과 의무가 뿌리내리지 못했다. 약자를 보호하는 법률 역시 충분치 못하며, 정부의 역할 또한 굼뜨기만 하다. 두 문제 가운데 하나만 해결되어서는 대한민국이 올곧게 서지 못한다. 윤리와 제도는 함께 나아져야 한다. 이 점에서 한겨레와 중앙의 사설은 모두 나름의 가치가 있다.
그러나 두 사설이 각각 놓치고 있는 사각지대는 아쉬움이 남는다. 중앙 사설은 ‘나쁜 갑’들을 비난하고 있지만, 정작 ‘훌륭한 갑’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좋은 교사는 학생을 무작정 야단치지 않는다. 닮아야 할 모델,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며 잘못을 지적한다. 언론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좋은 갑’의 사례를 통해 ‘나쁜 갑’의 문제를 지적해야, 갑을 문제에 대한 해법이 좀더 분명하게 다가올 듯싶다.
한겨레한테도 묻고 싶은 점이 있다. 갑의 횡포는 마땅히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을들 사이의 횡포’는 어쩔 것인가? 갑에 시달리는 을은 또 다른 을에게 더 악랄한 갑이 되기도 한다. 사회 곳곳에 널리 퍼진 하청 구조를 떠올려 보라. 을을 보호하려면 제대로 된 ‘갑의 문화’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갑을관계는 대등하고 평등한 관계여야 한다. 갑이 을을 누르는 것도, 을이 갑을 윽박지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단계 3 두 시각의 지향점
흥분한 여론은 대안보다 보복으로 흐르기 쉽다. ‘나쁜 갑’들은 당연히 마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목소리가 있을 리 없다. 중요한 것은 ‘나쁜 갑’들이 더 이상 발붙일 수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민주주의 사회는 자유롭고 평등하다. 갑은 상황에 따라서는 을이, 을도 때로는 갑이 될 수 있어야 자연스럽다. 누구는 영원히 갑의 위치에 있고, 누군가는 계속 을의 처지에 있는 사회는 위험하다. ‘갑질’들에 대한 공분의 밑에는, 우리 사회의 자유와 평등이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감이 있지 않을까?
건강한 언론은 냉철한 분석을 통해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북받친 대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과 이에 휘둘리는 것은 다르다. 중앙과 한겨레의 사설은 이 가운데 어느 쪽일까?
[키워드로 보는 사설]
갑을관계
갑과 을은 계약서상에 등장하는 용어다. 갑은 ‘비용을 치르고 재화와 용역을 제공받는 입장’을, 을은 ‘재화와 용역을 제공한 대가로 돈을 받는 입장’을 나타낸다. 갑과 을을 계약관계에서 합의한 내용을 이행하는 동등한 주체여야 한다. 갑을이라는 단어 자체도 원래 천간(天干)을 나타내는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에서 따온 말이다. 천간은 하늘의 시간 흐름을 가늠하는 단위일 뿐이다. 따라서 갑과 을 사이에 우열이 나뉠 까닭이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갑을 문화’는 불평등한 사회관계를 일컫는 말로 쓰인다. 현실에서 갑은 우월한 위치에 있고, 을은 갑을 떠받들어야 하는 처지인 탓이다. 최근 남양유업 밀어내기 영업 등, ‘갑의 횡포’라 불리는 사건들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곳곳에서 갑을이라는 명칭을 없애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표준근로계약서에서 갑과 을이라는 용어를 없애고, 대신 ‘사업주’와 ‘근로자’라고 쓰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표준근로계약서는 노동부가 만든 서식으로, 회사와 직원이 작성하는 고용계약서이다. 국방부도 5월16일부터 모든 계약서에 계약 대상자에서 ‘갑’과 ‘을’이라는 표현을 없앴다. ‘갑’과 ‘을’ 대신 ‘수요자’와 ‘공급자’, ‘매도인’과 ‘매수인’, ‘임대인’과 ‘임차인’으로 표기하기로 했다.
그러나 단순히 ‘갑을’이라는 용어가 없어졌다 해서 불공정한 관행이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평등하고 공정한 갑을관계야말로 경제민주화의 출발점이라 하겠다.
[추천도서]
선택의 자유…선택할 수 없는 을 우리 이웃 밥줄 이야기
이동권 지음, 알다 펴냄, 2009년 선택할 자유
밀턴 프리드먼 지음, 자유기업원 펴냄, 2011년 밀턴 프리드먼은 대표적인 자유주의 경제학자다. 그는 <선택할 자유>에서 규제 중심의 반자본주의 정책을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어떤 나라든 시장 원리를 거스르고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우리 이웃 밥줄 이야기>는 목욕탕 때밀이, 시각 장애인 안마
사, 트럭 노점상, 포장마차 주인 등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을’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담았다.
이 두 책을 견주어 읽다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과연 프리드먼의 말처럼 정부는 경제 문제에 뒷짐지고 지켜보고만 있어야 할까. 우리의 ‘갑을 문화’를 놓고 보면 머리는 더 복잡해진다. ‘을’이 아득바득 사는데도 삶이 힘들다면 문제는 어디에 있을까. 정부가 ‘을’을 위해 할 일이 없을까.
<한겨레 인기기사>
■ 식단표 무시 1주 내내 시래깃국…우유 2통으로 80명 먹여
■ 대형 낙서 감시하려고 ‘몰카’ 드론까지 도입?
■ ‘국정원 도청’ 사과 이끈 노무현 ‘정치개입 의혹’ 입다문 박근혜
■ “자동차 급발진 원인 부품 찾았다”
■ [화보] 칸 영화제 폐막…영광의 주인공은?
| |
| |
[논리 대 논리]
‘갑’ 훈계하는 중앙, ‘을’ 못지킨 정부 다그치는 한겨레
[키워드로 보는 사설]
갑을관계
남양유업 김웅 대표이사 등 임직원들이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강압적 영업행위에 대한 사과의 뜻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선택의 자유…선택할 수 없는 을 우리 이웃 밥줄 이야기
이동권 지음, 알다 펴냄, 2009년 선택할 자유
밀턴 프리드먼 지음, 자유기업원 펴냄, 2011년 밀턴 프리드먼은 대표적인 자유주의 경제학자다. 그는 <선택할 자유>에서 규제 중심의 반자본주의 정책을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어떤 나라든 시장 원리를 거스르고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우리 이웃 밥줄 이야기>는 목욕탕 때밀이, 시각 장애인 안마
<한겨레 인기기사>
■ 식단표 무시 1주 내내 시래깃국…우유 2통으로 80명 먹여
■ 대형 낙서 감시하려고 ‘몰카’ 드론까지 도입?
■ ‘국정원 도청’ 사과 이끈 노무현 ‘정치개입 의혹’ 입다문 박근혜
■ “자동차 급발진 원인 부품 찾았다”
■ [화보] 칸 영화제 폐막…영광의 주인공은?
연재사설 속으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