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사설 속으로] 한겨레·중앙일보, 남양유업 사설 비교해보기

등록 2013-05-27 20:13수정 2013-05-28 10:39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중앙, ‘갑’ 훈계 vs 한겨레, 정부 책임 강조
<한겨레>와 <중앙일보>가 함께 구성한 지면으로 두 언론사의 사설을 통해 중3~고2 학생 독자들의 사고력 확장에 도움이 되도록 비교분석하였습니다. 다음주 6월4일에는 ‘한미동맹’에 대한 논제가 실립니다.

▷ ‘사설 속으로’ 기획연재 바로가기

[한겨레 사설] 약탈적 ‘갑을문화’ 경제민주화로 바로잡아야

남양유업이 물의를 일으킨 직원을 해고하고 대표 명의로 사과했지만 파장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분노한 대리점주들이 이 회사 제품 판매를 거부하는 집단행동에 나섰고,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불매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현장조사 결과 본사 차원의 밀어내기(제품 구입 강제)가 있었다고 하니 충분히 그럴 만하다.

남양유업 대리점주들은 전산 주문서를 본사 직원들이 조작해 발주하지도 않은 물량을 강제로 떠맡겼다고 주장한다. 시키는 대로 안 하면 대리점 재계약을 해주지 않겠다는 위협도 받았다고 한다. 명절 떡값이나 본사 직원 전별금 명목으로 돈을 뜯기고, 심지어 유통기한이 다 된 제품까지 떠안아야 했다고 한다. 공정위와 검찰은 피해 상황을 꼼꼼히 살펴 일벌백계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갑의 횡포에 대한 을의 분노가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엊그제 국회에서 열린 을들의 성토대회는 남양유업 사태가 식품업체뿐만 아니라 자동차 대리점, 제과 대리점, 백화점 입점업체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만연해 있음을 보여준다. 짐작은 했지만 약탈적 갑을문화가 이렇게 심할 줄은 몰랐다. 매출 목표를 정해주고 못 채우면 불이익을 주고, 유기간이 다 돼가는 제품을 떠안기는 경우가 허다했다. 모임을 주선한 민주당 이종걸 의원은 “상당수 중소자영업자들이 대기업 본사의 수익보장 허위광고로 일을 시작했다가 매일 죽지 못해 사는 삶을 살고 있다”고 요약했다. ‘을사조약’이란 말이 과장이 아니다.

자영업을 하려는 사람들이 넘치다 보니 가맹점 본사가 갑의 행세를 할 수 있는 여건이다. 그렇다고 상생은 안중에 없고 그저 털어먹을 궁리만 해서야 되겠는가. 이제 그런 수전노식 사고방식은 안 된다. 남양유업은 소유주가 책임을 지고 기업문화를 바꿔야 한다. 다른 기업들도 제2의 남양유업이 되지 않으려면 기업문화를 바로잡아야 한다.

남양유업은 2006년에도 밀어내기로 공정위에 제소됐지만 가벼운 시정명령을 받는 데 그쳤다고 한다. 다른 여러 업종의 피해자들 역시 공정위에 하소연해도 무시하거나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기 일쑤였다고 입을 모은다. 지금의 사태에는 공정위의 미온적인 대처도 한몫한 것이다. 공정위는 을의 최후의 의지처란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갑을문화는 불공정거래에서 비롯되는 만큼 강력한 법과 제도로 규제해야 한다. 경제민주화에 그 해답이 있다. 지난 임시국회에서 가맹사업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처리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다음달 임시국회에서 경제민주화 입법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 남양유업 사과, ‘밀어내기’ 근절 계기 돼야

부당 강매 의혹과 폭언으로 물의를 빚어온 남양유업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 특히 제품 밀어내기 의혹을 인정하고 영업 환경을 대대적으로 재정비하겠다고 약속했다. 기업들은 ‘을(乙)의 반격’으로 불리는 이번 파문을 계기로 후진적 유통 시스템의 맨얼굴을 직시하고 개선에 나서야 할 것이다.

남양유업 김웅 대표이사는 어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에게 사과한 뒤 “영업현장에서의 밀어내기 등 잘못된 관행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현재 진행 중인 검찰 수사와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밀어내기 등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시스템을 만들어 개선 조치하겠다”고 다짐했다. 구체적으로는 500억원 규모의 대리점 상생기금을 마련해 운영하고 대리점주와의 공동목표 수립과 함께 반송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설명이다.

남양유업의 대국민 사과는 지극히 당연하다고 본다. 비록 3년 전 일이라고는 하지만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게 “물건을 받으라”며 폭언과 욕설을 한 것은 우월한 지위에 있는 기업의 횡포로 볼 수밖에 없다. 남양유업은 지난주 후반 영업사원의 폭언을 담은 음성파일이 공개된 뒤 시민들의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사과문 게재와 해당 직원 사직서 수리 말고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 대국민 사과는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남양유업은 형식적 사과에 그치지 말고 구시대적인 밀어내기 관행을 근절함으로써 사과의 진정성을 입증해야 한다.

주문량보다 많은 물량을 대리점에 할당해 강매하는 밀어내기는 사실 남양유업이나 일부 업계만의 일이 아니다. 유통업계 전반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같은 행태는 대리점들에 심각한 피해와 정신적 고통을 줄 뿐 아니라 공정거래법에 위반되는 범법 행위다.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지속 가능한 경영을 저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굳이 ‘갑을(甲乙) 관계’나 ‘경제민주화’ 같은 단어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마땅히 사라져야 할 관행 아닌가. 남양유업의 사과가 기업과 대리점 간에 상생의 문화가 뿌리내리는 전환점이 되길 기대한다.


[논리 대 논리]
‘갑’ 훈계하는 중앙, ‘을’ 못지킨 정부 다그치는 한겨레

단계 1 공통 주제의 의미

‘갑을 문화’가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갑’과 ‘을’이란 원래 계약을 맺는 두 당사자를 일컫는 말이다. 제대로 된 계약에서는 갑과 을의 지위가 같아야 한다. 그래야 서로에게 이익이 될 결과를 좇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갑은 강자고 을은 약자다. 갑은 을을 부리는 ‘고객’이고, 을은 갑에 생계를 매달 수밖에 없는 처지다. 때문에 갑들의 횡포가 숱하게 벌어지곤 한다. 라면 상무 사건, 경주빵 회장 호텔 종업원 폭행, 남양유업의 밀어내기, 청와대 대변인의 인턴 성추행에 이르기까지, 최근에 벌어졌던 ‘갑질’들만 꼽아 보아도 두 손의 손가락을 모두 써야 할 정도다.

자유와 평등은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두 기둥이다. 자유와 평등을 침해하는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 매우 민감한 이슈로 다가오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약탈적 갑을 문화’는 자유와 평등을 무너뜨리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따라서 한겨레와 중앙의 사설은 모두 갑을 문화의 개혁을 한목소리로 외친다. 그러나 둘의 논리는 전혀 다르다. 중앙은 갑들을 훈계하려 하고, 한겨레는 을들을 보호하지 못한 정부를 다그치려 한다. 각각의 사설을 꼼꼼히 따져보자.

단계 2 문제 접근의 시각차

보수주의(conservatism)는 ‘보호자’(conservator)에서 온 말이다. 보수주의자의 원조 격인 에드먼드 버크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강조했다. 지도층은 도덕적으로 흠결 없어야 하며, 사회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한다는 뜻이다.

중앙의 논리는 보수주의의 논조에 충실하다. 남양유업을 향해 ‘사과의 진정성을 입증하라며’, 가진 자의 책임과 의무를 일깨우는 식이다. ‘굳이 갑을관계나 경제민주화 같은 단어를 들먹이지 않더라도’라는 표현에서는 덕과 성품부터 먼저 점검하는 보수주의의 전형적인 태도가 엿보인다.

반면, 한겨레는 을들의 어려움을 알리고, 이를 제대로 보듬지 못한 정부를 비판하는 데 힘을 모은다. 평등을 실현하는 법과 ‘강한 정부’로 약자를 보호하려는 사회민주주의의 전통이 느껴진다.

이 둘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설득력이 있을까? 이런 물음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가진 자들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도덕과 의무가 뿌리내리지 못했다. 약자를 보호하는 법률 역시 충분치 못하며, 정부의 역할 또한 굼뜨기만 하다. 두 문제 가운데 하나만 해결되어서는 대한민국이 올곧게 서지 못한다. 윤리와 제도는 함께 나아져야 한다. 이 점에서 한겨레와 중앙의 사설은 모두 나름의 가치가 있다.

그러나 두 사설이 각각 놓치고 있는 사각지대는 아쉬움이 남는다. 중앙 사설은 ‘나쁜 갑’들을 비난하고 있지만, 정작 ‘훌륭한 갑’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좋은 교사는 학생을 무작정 야단치지 않는다. 닮아야 할 모델,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며 잘못을 지적한다. 언론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좋은 갑’의 사례를 통해 ‘나쁜 갑’의 문제를 지적해야, 갑을 문제에 대한 해법이 좀더 분명하게 다가올 듯싶다.

한겨레한테도 묻고 싶은 점이 있다. 갑의 횡포는 마땅히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을들 사이의 횡포’는 어쩔 것인가? 갑에 시달리는 을은 또 다른 을에게 더 악랄한 갑이 되기도 한다. 사회 곳곳에 널리 퍼진 하청 구조를 떠올려 보라. 을을 보호하려면 제대로 된 ‘갑의 문화’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갑을관계는 대등하고 평등한 관계여야 한다. 갑이 을을 누르는 것도, 을이 갑을 윽박지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단계 3 두 시각의 지향점

흥분한 여론은 대안보다 보복으로 흐르기 쉽다. ‘나쁜 갑’들은 당연히 마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목소리가 있을 리 없다. 중요한 것은 ‘나쁜 갑’들이 더 이상 발붙일 수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민주주의 사회는 자유롭고 평등하다. 갑은 상황에 따라서는 을이, 을도 때로는 갑이 될 수 있어야 자연스럽다. 누구는 영원히 갑의 위치에 있고, 누군가는 계속 을의 처지에 있는 사회는 위험하다. ‘갑질’들에 대한 공분의 밑에는, 우리 사회의 자유와 평등이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감이 있지 않을까?

건강한 언론은 냉철한 분석을 통해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북받친 대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과 이에 휘둘리는 것은 다르다. 중앙과 한겨레의 사설은 이 가운데 어느 쪽일까?


[키워드로 보는 사설]
갑을관계

남양유업 김웅 대표이사 등 임직원들이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강압적 영업행위에 대한 사과의 뜻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남양유업 김웅 대표이사 등 임직원들이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강압적 영업행위에 대한 사과의 뜻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갑과 을은 계약서상에 등장하는 용어다. 갑은 ‘비용을 치르고 재화와 용역을 제공받는 입장’을, 을은 ‘재화와 용역을 제공한 대가로 돈을 받는 입장’을 나타낸다. 갑과 을을 계약관계에서 합의한 내용을 이행하는 동등한 주체여야 한다. 갑을이라는 단어 자체도 원래 천간(天干)을 나타내는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에서 따온 말이다. 천간은 하늘의 시간 흐름을 가늠하는 단위일 뿐이다. 따라서 갑과 을 사이에 우열이 나뉠 까닭이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갑을 문화’는 불평등한 사회관계를 일컫는 말로 쓰인다. 현실에서 갑은 우월한 위치에 있고, 을은 갑을 떠받들어야 하는 처지인 탓이다. 최근 남양유업 밀어내기 영업 등, ‘갑의 횡포’라 불리는 사건들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곳곳에서 갑을이라는 명칭을 없애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표준근로계약서에서 갑과 을이라는 용어를 없애고, 대신 ‘사업주’와 ‘근로자’라고 쓰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표준근로계약서는 노동부가 만든 서식으로, 회사와 직원이 작성하는 고용계약서이다. 국방부도 5월16일부터 모든 계약서에 계약 대상자에서 ‘갑’과 ‘을’이라는 표현을 없앴다. ‘갑’과 ‘을’ 대신 ‘수요자’와 ‘공급자’, ‘매도인’과 ‘매수인’, ‘임대인’과 ‘임차인’으로 표기하기로 했다.

그러나 단순히 ‘갑을’이라는 용어가 없어졌다 해서 불공정한 관행이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평등하고 공정한 갑을관계야말로 경제민주화의 출발점이라 하겠다.


[추천도서]
선택의 자유…선택할 수 없는 을

우리 이웃 밥줄 이야기
이동권 지음, 알다 펴냄, 2009년

선택할 자유
밀턴 프리드먼 지음, 자유기업원 펴냄, 2011년

밀턴 프리드먼은 대표적인 자유주의 경제학자다. 그는 <선택할 자유>에서 규제 중심의 반자본주의 정책을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어떤 나라든 시장 원리를 거스르고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우리 이웃 밥줄 이야기>는 목욕탕 때밀이, 시각 장애인 안마
사, 트럭 노점상, 포장마차 주인 등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을’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담았다.

이 두 책을 견주어 읽다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과연 프리드먼의 말처럼 정부는 경제 문제에 뒷짐지고 지켜보고만 있어야 할까. 우리의 ‘갑을 문화’를 놓고 보면 머리는 더 복잡해진다. ‘을’이 아득바득 사는데도 삶이 힘들다면 문제는 어디에 있을까. 정부가 ‘을’을 위해 할 일이 없을까.

<한겨레 인기기사>

식단표 무시 1주 내내 시래깃국…우유 2통으로 80명 먹여
대형 낙서 감시하려고 ‘몰카’ 드론까지 도입?
‘국정원 도청’ 사과 이끈 노무현 ‘정치개입 의혹’ 입다문 박근혜
“자동차 급발진 원인 부품 찾았다”
[화보] 칸 영화제 폐막…영광의 주인공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속보] ‘입시비리’ 조국, 징역 2년 확정…의원직 상실 1.

[속보] ‘입시비리’ 조국, 징역 2년 확정…의원직 상실

오늘 오전 11시45분, 입시비리·감찰무마 혐의 조국 대법원 선고 2.

오늘 오전 11시45분, 입시비리·감찰무마 혐의 조국 대법원 선고

[단독] 도이치 주범 “주가조작은 권오수·김건희 등 합작품인 듯” 3.

[단독] 도이치 주범 “주가조작은 권오수·김건희 등 합작품인 듯”

[단독] 경찰들 “윤석열 ‘가짜 출근’ 쇼…이미 다 아는 사실” 4.

[단독] 경찰들 “윤석열 ‘가짜 출근’ 쇼…이미 다 아는 사실”

[속보] 최강욱 “조국 아들 인턴했다” 허위 발언…벌금 80만원 확정 5.

[속보] 최강욱 “조국 아들 인턴했다” 허위 발언…벌금 80만원 확정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