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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나 먼저 달라지니 아이들이 웃음 찾았어요”

등록 2013-05-20 22:37수정 2013-05-21 14:06

지난 9일 서울 정덕초등학교 5학년 5반 아이들이 짝을 지어 역사인물과 유물 맞히기 활동을 하고 있다. 이날 사회과 협동학습 수업을 진행한 정선화 교사는 전체 내용을 동영상 촬영해 동료 교사들과 의견을 주고받을 예정이다.
지난 9일 서울 정덕초등학교 5학년 5반 아이들이 짝을 지어 역사인물과 유물 맞히기 활동을 하고 있다. 이날 사회과 협동학습 수업을 진행한 정선화 교사는 전체 내용을 동영상 촬영해 동료 교사들과 의견을 주고받을 예정이다.
[함께하는 교육] 교사들의 ‘행복교실’ 도전기
추락한 교권, 밀려드는 잡무, 팽창하는 사교육 등 ‘교실붕괴’로 통칭되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웃음 넘치는 교실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교사들이 있다. 그들의 다양한 도전 사례를 모아봤다.

“야!!! 이~씨~, 잘 봐!”(수업 중 떠드는 소리가 들리자)

“너~ 정신을 얻다 두고 다녀! 네 머릿속에 대체 과학이 들어 있냐 없냐?”(숙제 안 한 학생에게)

경기도 성남 불곡고 심유미 교사는 지금도 과거를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7년차 과학교사인 그는 학생들에게 막말을 해댔다. 선생님 말에 아이들이 복종하는 건 ‘학생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야단치는 걸 당연시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회의가 들었다. 결정적 계기는 2009년 학생부를 맡았을 때였다. 학생들과 갈등이 심각해졌다. 공부에 흥미 없는 아이들에게 학교가 지옥이었겠지만, 심 교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침마다 두발·복장 단속하면서 다퉜다. 치마 길이는 무릎 아래 3㎝ 이하는 안 되고, 여학생 머리는 묶었을 때 등 뒤 날개뼈를 넘으면 안 됐는데, 1~2㎝를 놓고 실랑이했다. 수업에 들어가면 그 애들은 딴짓하고 나는 화가 나서 한마디 해대고…. 악순환이었다.”

욕설 교사에서 칭찬 교사로

지난 2010년 자원해서 교육방송 <다큐프라임>의 교사코칭 프로그램인 ‘우리 선생님이 달라졌어요’에 출연했다. 심 교사는 먼저 마이크로 티칭을 했다. 마이크로 티칭은 수업을 촬영하고 이를 평가해 스스로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수업 개선의 기회를 제공하는 교수법이다.

그는 수업을 촬영한 영상을 보고 자신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당시 프로그램 피디가 이런 말까지 했다. ‘어떻게 수업할 때랑 나와 얘기할 때 말과 분위기가 그렇게 다를 수 있습니까?’ 방송으로 내 수업을 본 지인들도 평소 아이들에게 친절할 거 같은데 완전 딴판이라며 수업 때 표정·말투가 표독스럽다고 얘기해 창피했다.”

프로그램 전문가 집단이 심 교사에게 내린 임무는 ‘아이들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지 마라’였다. 부정적인 말을 한 번 하면 긍정적인 말을 다섯 번 해야 했다. 예를 들어 “야, 넌 그것밖에 못하냐?”라고 했다면 꾸지람 들었던 학생에게 다음에는 “너 글씨를 참 잘 쓴다”, “오늘 교복 너무 깨끗하다. 얘~” 등의 칭찬을 해야 했다.

처음에는 심 교사 스스로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듯한’ 가식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나자 변화가 찾아왔다. 그는 “말이 달라지니까 생각이 달라지고 마음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예전에는 선생님 말을 아이들이 따르는 걸 당연시했다. 학생의 당연한 의무로 간주했다. 그러나 프로그램 출연 뒤엔 내 말에 움직여주는 아이들이 마냥 고마웠다.”

지난 6일 서울 정릉초등학교 교사학습동아리인 ‘마중 물퐁퐁 행복팡팡’ 교사들이 협의회를 열어 수업이나 생활지도 등 자신의 학급운영 사례를 돌아가면서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6일 서울 정릉초등학교 교사학습동아리인 ‘마중 물퐁퐁 행복팡팡’ 교사들이 협의회를 열어 수업이나 생활지도 등 자신의 학급운영 사례를 돌아가면서 이야기하고 있다.
예전엔 아이들이 따르는 걸
당연시했다. 그러나 코칭 상담을
받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지금은 내 말에 움직이는
아이들이 마냥 고맙다.

오래 길들여진 언어습관을 6개월 만에 바꾸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실수로 아이들에게 심한 말을 할까 봐 처음에는 아예 입을 닫아버렸다. 고민하다 못해 아이들 대상으로 설문조사까지 했다. ‘변화된 선생님 모습의 장단점을 써 달라’고 했는데 “위축된 선생님 모습이 불편하고 어색하다. 차라리 예전으로 돌아가 달라”는 답이 돌아왔다.

“학생들에게 솔직하게 도와달라고 얘기했다. ‘내가 폭언하고 강압적으로 통제하는 걸 스스로 알지 못할 때가 있다. 여러분이 얘기를 해줬으면 좋겠다’라고 부탁했다.”

예전에 심 교사에게 가장 기분 좋은 말은 “우리 학원 쌤보다 잘 가르쳐요”라는 칭찬이었다. 지금은 “선생님은 끝까지 기다려줘요”, “선생님의 말과 행동에서 참 많은 걸 배웠습니다”라는 말이 그를 가장 들뜨게 한다.

연수에서 배운 것 실제로 실행하기

서울 정릉초등학교의 교사들은 지난해 ‘마중물퐁퐁 행복팡팡’이라는 학습 동아리를 만들었다. 연수와 워크숍에 다니면서 배운 내용을 동료와 함께 나누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경력 23년차인 이승미 교사를 포함해 5명이었으나 올해는 신규 교사와 3년 미만의 교사들까지 들어와 모두 16명으로 늘었다. 한 달에 한 번 정기협의회를 열어 교실수업 개선 아이디어를 내고 공유한다.

이 교사는 “학교마다 상황이 제각각이라 정답을 줄 수는 없지만 얘기하면서 마음속 응어리라도 풀리는 힐링효과는 있다”고 말했다.

이 모임에서는 같은 학년 교사들끼리 멘토-멘티 짝을 지어서 수시로 얘기한다. 수업 내용이나 아이들 생활지도 등 학급 운영에 관해 노하우가 부족한 신규 교사나 경력이 낮은 교사들이 선배 교사를 찾아 고민을 상담한다.

한 신규 교사는 최근 이 교사에게 찾아와 “통제가 힘든 아이가 있어서 학부모 상담을 하려는데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까?” “요즘 우리 반 애들 사이에 에스엔에스(SNS)를 이용한 왕따가 일어나고 있는데, 해결 방법이 없을까?”를 물었다.

박수영 교사는 자기 반에서 ‘마음자랑 글쓰기’를 한다. ‘버추(미덕) 프로젝트’라고도 불리는데,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조직심리 전문가 린다 캐벌린 포포프가 개발한 인성 프로그램으로 현재 90여개 나라에서 적용중이다. 학생들은 배려·인내·책임감·정의로움 등 52가지 미덕이 담긴 카드 중 한 장을 뽑아 자기만의 글을 쓴다. 하루 일기를 쓰거나 자신의 감정과 연관시켜 이야기하는 등 형식은 자유롭다.

또 학생들은 정해진 다섯 가지 전략에 따라 모두가 ‘미덕의 언어’로 말하는 노력을 한다. 가령, 전학 온 친구에게 앉을 자리를 알려준 아이에게 ‘친절’의 미덕을 인정해주고, 실수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 어떤 미덕을 잊고 있었는지, 다음에는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 얘기해주는 식이다.

박 교사는 “처음에는 힘들어했지만 지금은 욕설을 하거나 남을 때리는 아이들이 한 명도 없다. 부모들도 아이들의 변화에 만족스러워한다”고 전했다.

이승미 교사는 “초등학교는 1인 1실이라 다른 교사들과 교류가 없으면 우물 안 개구리처럼 내 것이 최고라는 생각을 한다. 나도 그런 오류에 빠지고 싶지 않아서 연수나 동아리 활동을 한다. 젊은 교사들이 똑똑한 분들이 많아 많이 배우고 자극도 받는다”고 말했다.

일방적 지시 대신 아이들끼리 협동 수업

“사람입니까?”

“가야 시대와 관련 있습니까?”

“무덤입니까?”

지난 9일 서울 정덕초등학교 5학년 5반(담임 정선화 교사) 교실은 왁자지껄했다. 26명의 아이는 저마다 이름표를 등 뒤에 걸고 서로에게 질문을 했다. 각각의 이름표에는 선덕여왕·장군총·가야 토기 등 역사와 관련된 인물과 유물이 적혀 있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등 뒤에 무슨 단어가 쓰여 있는지 맞히기 위해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했다.

이날 수업은 사회과 ‘협동학습 수업’이었다. 협동학습 수업은 교사가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끼리 3~4명씩 모둠을 지어 서로 토론하면서 학습한다. 토론 과정에서 지식을 체계화할 수 있고 상대방 의견에 귀기울이는 배려심도 갖출 수 있다.

정 교사는 이런 수업 방식을 일주일 전 연수에서 배웠다. 이론으로만 알고 그냥 지나칠 게 아니라 실제 수업에 적용해본 것이다. 이날 20여명의 역사인물이 적힌 사진을 빠르게 넘겨본 뒤 그 인물들을 안 보고 생각나는 대로 써보는 활동도 했다. 아이들은 3~4명씩 모둠을 지어 책상에 마주보고 앉은 다음 사진 속 인물을 서로 떠올려가며 정답을 완성해나갔다.

정 교사는 이날 수업 전체를 동영상 촬영했다. 나중에 동료와 영상을 보며 의견을 주고받고 상호 평가를 할 예정이다. 정 교사가 연수 내용을 수업에 끊임없이 실제 적용하는 건 ‘몸으로 배운 건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생각에서다. 실행하다가 막히는 곳이 있으면 다른 강의나 책을 찾아서 따로 공부한다. 그는 특히 협동학습에 관심이 많다.

그는 “협동학습에서 중요한 건 수업의 흐름을 안내하고 방법을 알려주는 것보다는 애들의 관계를 원만하게 만들고 협동심을 알려주는 것이다. 모둠 활동을 하면서도 개개인에게 역할을 줘서 책임감을 기르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교감할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정 교사가 참여한 프로그램은 성북교육지원청에서 기획한 ‘꿈과 끼를 키우는 행복수업 만들기’ 교사공부방 연수다. 그는 지난해 연수 ‘참가자’에서 올해는 ‘강사’로 입장이 바뀌었다. 토의토론 참여형 수업에 대한 강의를 준비하기 위해 방학 때 100만원어치 책을 사서 읽었다.

정 교사는 “수업에 적용하고 나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 보면 뿌듯하다”고 덧붙였다.

교사들 의지만으론 감당하기 벅차

‘주침야독’(晝寢夜讀·낮에는 교실에서 자고 밤에는 학원에서 공부하는 현상)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교실붕괴’ 상황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하는 교사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교사들의 의지만으로 모든 걸 감당하기는 벅차다. 수업 말고도 숱한 잡무에 시달려야 하는 교사들에게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수업만 강요하는 건 여성에게 집안일도 잘하고 사회에서 능력도 발휘하는 ‘슈퍼맘’을 요구하는 것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하루에 수업시간이 4시간이면 그 외는 전부 행정 업무를 본다. 가정통신문 수합하고 각종 공문을 발송하는 데 매일 2~3시간이 걸려 퇴근 뒤에까지 일하기도 한다. 공강 시간에 교재 연구해야 하는데 시간이 많이 부족하다.”(심유미 교사)

“행정업무가 몰릴 때는 수업 끝나자마자 아이들을 상대로 학교폭력이나 행복지수 등 각종 실태에 대한 조사를 하고 통계 내서 기안 올리고, 숙제 검사는 저녁때 집에 가져가서 할 때도 있다. 다음날 수업 준비하는 데만 2시간 정도 드는데 연수상황을 적거나 교육통계자료를 만드는 데도 매일 2시간가량 걸리니 힘들다.”(정선화 교사)

글·사진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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