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회피지역인 케이맨군도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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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율이 아주 낮거나 과세 아예 하지 않아
혜택 받는 자 안 밝히는 비밀주의에 철저
세율이 아주 낮거나 과세 아예 하지 않아
혜택 받는 자 안 밝히는 비밀주의에 철저
#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등 조세피난처를 통해 세금을 탈루한 세계 유명 인사들의 명단을 공개한 국제탐사언론인협회(ICIJ·탐사협회)가 한국인 명단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탐사협회는 한국인 명단에 대한 분석 작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이를 공표할 예정이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탐사협회 본부에서 <한겨레>기자와 만난 이 협회의 제라드 라일 대표는 “아직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 한국과 오스트리아, 폴란드, 터키 등도 조사할 계획이다. 명단에는 한국인 이름이 꽤 많았으며, 몇달에 걸쳐 자료를 분석한 끝에 출신 국가와 이름을 정리한 명단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앞서 탐사협회는 지난 4일 영국령 버진아일랜드를 비롯해 세계 주요 조세피난처를 통해 세금을 탈루해온 유명 인사들의 명단을 폭로했다. 탐사협회가 들었던 인물로는 필리핀의 독재자인 마르코스의 딸이자 현직 정치인인 마리아 이멜다 마르코스, 이고리 슈발로프 러시아 부총리의 아내인 올가 슈발로프 등이 포함돼 있었다.(“조세피난처 자료에 한국인 이름 많다”/<한겨레> 2013년 4월24일)
조세피난처는 다른 말로 조세회피지역이라고도 부릅니다. 영어로는 ‘tax haven’입니다. 세금을 피할 수 있는 지역이란 뜻이죠. 나라에 세금 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세금 내기 좋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특히 세금을 많이 내야 하는 고소득자일수록 세금 탈루의 의지가 강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나라에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요. 그래서 세금을 안 내거나 적게 낼 수만 있다면, 마다할 부자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될 겁니다.
조세피난처는 이런 부자들의 천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세피난처의 명확한 정의는 없지만 공통점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세율이 매우 낮거나 과세를 아예 하지 않고, 이런 혜택을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 절대로 밝히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세율로 치자면 아예 과세하지 않는 지역도 있는데, 이런 점에서 국가의 주요한 권한 중 하나인 조세권을 갖고 있지 않다는 차별성이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특징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영토의 일정 부분을 조세피난처로 지정하고 본국과 분리하는 것입니다. 기사에 등장하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도 영국의 영토이지만, 영국 본토에 견줘 세율이 매우 낮습니다.
비밀주의는 특히 중요합니다. 만일 비밀주의가 지켜지지 않는다면, 부자들은 조세피난처를 찾지 않을 것입니다. 조세피난처가 비밀주의를 지키는 명분은, 정보공개에 따른 공익보다 사생활을 중시한다는 것이지만 그보다는 비밀주의 없이 조세피난처의 효용이 유지되기 어렵다는 측면이 더 강할 겁니다. 그래서 재산과 소득의 주인을 밝히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나라와 고객 정보를 교환하지도 않습니다.
지금은 조세피난처가 비판을 받지만, 조세피난처는 세계화 여파로 여러 곳에 만들어졌습니다. 나라들 사이에 무역이 활발해지고 자본 이동도 잦아지면서 거래 형태가 다양하고 복잡해졌기 때문에 비밀주의가 중요해졌다고들 합니다. 이런 이유로 국가들 사이에 자본을 유치하려는 경쟁도 치열해지면서 조세피난처가 만들어졌던 겁니다. 결국 수익이 나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몰려다니는 자본의 특징이 조세피난처를 만들어낸 셈이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조세피난처를 지정하는데, 전세계에 50~60곳의 조세피난처가 있습니다. 소득에 대한 세금이 전혀 없는 곳으로는 버뮤다, 케이맨군도, 바하마 등이 있고, 세금을 아주 조금만 걷는 싱가포르, 바레인, 이스라엘, 버진아일랜드 같은 곳도 있습니다. 이밖에도 해외 발생 소득만 세금을 면제해주는 홍콩, 특정 부문에만 세제 혜택을 주는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같은 곳도 있습니다.
조세피난처가 불법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해당 국가가 세금을 걷거나 걷지 않을 권리를 모두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금을 피하기 위해 조세피난처를 찾는 부자들에 대한 비난은 줄곧 있어왔고, 특히 최근 들어서는 비난의 강도가 더 거세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최근의 세계 경제 상황 때문입니다. 금융위기가 반복되고 사람들의 수명이 늘어나면서 고령화가 가속화하는 반면 국가 부채와 재정 수요는 급증하고 있어서죠. 게다가 경제성장도 잘 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세금을 제대로 거둬 국가 재정을 채우기가 곤란한 건 너무 당연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른바 지하경제 양성화를 외치고 있습니다. 세금을 내지 않았던 감춰진 경제를 외부로 드러내 세금을 거두겠다는 겁니다. 조세피난처 역시 이런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탈세를 일삼은 부자가 조세피난처에 재산을 쌓아두고 있다면 비난을 피하기 어렵겠죠. 조만간 공개된다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서 세금을 피해온 인물들이 누구일지 정부도 주시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물론 그렇다 해도 각국의 조세 정책의 자율성이 보장되고 자본 사이의 경쟁이 지속되는 동안엔 조세피난처가 사라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김진철 기자
난이도 수준: 초등 고학년~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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