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의 ㅂ영어학원은 “축 영훈초등학교 합격. 국제영어유치부 졸업생 ○○○(△△△△△)”라고 쓴 펼침막을 지난 4월 내걸었다가 논란이 되자 떼어냈다. 엄지뉴스 제공
박재원의 공감학습
자녀 공부에 실패했다고 사교육 더 강하게 시키면 끝없는 악순환
‘부모의 불안과 욕망 자극’에 반응하지 말고 성찰하는 자세 필요
자녀 공부에 실패했다고 사교육 더 강하게 시키면 끝없는 악순환
‘부모의 불안과 욕망 자극’에 반응하지 말고 성찰하는 자세 필요
부모교육 수강생의 글을 옮긴다.
“고등학생 큰아이를 사교육에 전적으로 맡기고, 성적 갈등으로 아이와 사이가 좋지 않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원을 안 보내면 공부를 더 안 할 것 같은 불안함에 또 보냅니다. 작은아이마저 그렇게 키울 순 없을 거 같아 공부가 아니더라도 본인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도록 제 욕심을 내려놓는 데 선생님의 강의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만 아직 큰아이는 내려놓지 못하니 제가 넘어가야 할 산이 너무 높은 거겠지요? 큰아이에 대한 욕심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가 제 속에서 샘솟았으면 합니다.”
정말 다른 부모의 길
이 글을 읽으면서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우선 큰아이에 대한 반성이 반갑고 고맙다. 정말 다행이다. 보통 ‘큰아이 방식’이 의도한 결과를 낳지 못하면 아이를 원망하고 더 강력한 사교육을 동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보력을 더욱 강화하고 경제력을 총동원하여 새로운 작전에 돌입하기 십상인데 방향 전환을 고민하는 모습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큰아이에 대한 원망이 남아 있지만 부모로서의 반성이 더욱 강하게 느껴져 큰아이와의 관계에서도 파국은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으로 사회적 가치를 생각했다. 아이의 행복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부모들을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라고 면박 주는 세상. 아이의 성공을 위해서는 오늘의 행복은 참아야 한다고 믿는 부모들에게 이 글은 분명 의미가 있지 않을까. 성공을 향해 행복을 포기하고 달려갔지만 결국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실패이자 불행. 모두 달려가는 방향을 열심히 쫓았지만 결국 극소수만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이었기에 다수는 실패하게 되는 길. 다른 선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계속 그 길을 가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와는 달리 역시 실패할 수밖에 없는 길. 이제는 ‘큰아이 방식’밖에 없다는 강박과 집착에서 벗어나 ‘작은아이 방식’도 인정하고 수용하려는 태도가 정말 필요하지 않은가. 결국 사교육 효과에 대한 사회적 반성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가, 기대한다.
시대적 착각에서 벗어나기
행복하고 건강한 아이에게 사교육은 긍정적일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한다. 아이의 행복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부모에게 사교육은 부모의 의무가 아니라 아이의 선택이기 때문에 부작용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아이의 감정과 생각을 존중하고 지금의 행복을 포기할 수 없는 권리로 인정하는 부모의 가치관, 경제력과 정보력이 아니라 바로 가치관이 사교육 효과를 결정하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사교육 토네이도에 휩쓸려 들어간 어리석은 부모들은 자신의 가치관이 아니라 경제력과 정보력만 가지고 사교육 효과를 예측한다. 과감한 투자를 감행한다. 이어 투자에 대한 수익을 보장하라고 아이를 강하게 압박한다. 사교육을 자신에게 맞게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아이의 마음속에 작동하는 부모의 가치관을 보지 못하고 그 아이와 비슷한 사교육을 시키면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 착각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가정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너무 희생이 크고 가슴 아픈 일들을 계속 연출하는 시대적 착각이기에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멈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큰아이 방식’에 대한 반성은 희망이어야 한다. 촛불처럼 흔들리는 희망이 아니라 꺼질 줄 모르고 타오르는 희망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큰아이 방식’을 반성하지만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처럼 ‘작은아이 방식’에 대한 시도 역시 자칫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높지 않겠는가. 갑자기 사명감을 느낀다. 이 부모의 희망을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 작은 경험 속에 숨어 있는 연약한 싹이지만 무럭무럭 자라 누구나 볼 수 있는 거대한 나무가 되도록 더욱 번져 울창한 숲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은 분명 사명감이리라.
대한민국 학부모 문화
가장 무서운 적은 내부에 있다고 했던가. 바로 부모들의 마음속에 있었으니. 문화로까지 위장하여 마음속에 침투해 있었다.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발간한 ‘학부모 문화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에 나오는 대목이다. ‘학부모 문화’의 주제는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사교육 지향성’은 ‘학교교육보다는 사교육이 더 낫다’, ‘엄마 주도성’은 ‘아이들은 모른다’, ‘성적 지향성’은 ‘성적에 따라서 교육활동의 지원방식이 달라진다’, ‘정보 의존성’은 ‘정보의 질이 성적을 좌우한다’는 원리를 내포한다.
무덤덤하게 읽힐 수도 있지만 사실은 눈물을 흘려야 한다. 학교 안이 아니라 밖에서, 치열한 정보전에 뛰어든 일부 엄마들이 주도하는 무한 성적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팍팍한 살림에 과도한 경제적 부담은 에듀푸어를 양산한다. 엎친 데 덮친 격. 과도한 경쟁은 가족까지 집어삼켰다. 부모를 사교육 구매자로, 아이는 소비자로 재정의했다. 사랑하지만 사교육 구매력이 없으면 부모로서의 자격 미달, 사교육 소비의 효과를 입증해야 자식 노릇 제대로 하는 세상이 되었다.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려면 할아버지의 경제력,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 동생의 희생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결코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가정이 무너지는 소리가 청천벽력처럼 함께 들린다.
문제는 문화현상이라는 사실이다. 문화가 되는 순간 개인적 결단은 무기력하다. 개인적 지향은 분명 사교육이 아니라 공교육 지향이고 엄마 주도가 아니라 아이 주도라 하더라도 결국 무너지기 십상이다. 야구장 패러독스란 말이 있다. 경기 장면을 제대로 보려면 앞줄에 있는 사람이 일어나는 순간 모두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말한다. 문화현상으로서 사교육 지향성이 그렇다. 효과를 떠나서 모두가 하기 때문에 혼자만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참을 수 없는 심리적 압박감을 유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글을 쓴 부모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서로 가치관이 비슷한 친구 둘이 다른 부모교육 강좌를 듣고 공유하기로 했다. 그런데 강의를 듣고 한 친구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한숨까지 얹어 주었고, 다른 친구는 마음이 즐겁고 발걸음이 가벼워 그 이후의 일정이 술술 풀릴 것만 같다고 했다. 부모의 불안과 욕망을 자극하는 교육과 불안과 욕망을 성찰하는 교육의 차이라고나 할까.
온갖 교육이 흔한 상황에서 부모 공부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보다 교육의 가치를 고민하고 신중하게 선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전한다. 최악의 주거환경은 복도식 아파트라고 생각한다. 불안과 욕망의 바이러스 전파속도가 매우 빠르다. 그래서 ‘작은아이 방식’이 외롭게 느껴진다면 이사도 심각하게 고려하기 바란다. 맹모의 심정으로 아이가 아닌 부모 자신을 위해, 만나면 불안하고 서로의 욕망을 자극하는 이웃에서 벗어나 서로의 불안을 위로하고 욕망이 아니라 희망을 함께 얘기할 수 있는 이웃들을 찾아 나서기 바란다. 간절한 심정으로 말한다. 그리고 이미 당부한 것처럼 광란의 도가니인 경기장에서 자리에 혼자 앉을 수 없기 때문에 신호를 보내면 모두 함께 자리에 앉아 일단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할 것과, 선행교육금지법 입법운동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한다. 이타적인 사회활동이 아니라 이기적인 개인활동이기에 적극 나서지 않으면 결국 당신이 크게 손해를 보게 된다고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대치동 부모들의 심정을 중계한다. 아이를 명문대에 보내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라고 생각하고 대치동에 입성했다. 과도한 대출 등 정말 무리를 했지만 자식을 위한 숭고한 부모의 희생이라고 생각했다. 대치동 방식을 고수하기 위해 정보력에 경제력을 총동원했지만 갈수록 상황은 악화된다. 성적까지 포함하여 너무나 불행하다. 행복한 가정이 파괴된 것 같아 죽고 싶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희망이 보이지 않아 죽고 싶다. 내가 잘못해 이렇게 된 것 같아 죽고 싶다. 그런 나 자신을 인정할 수 없기에 죽고 싶다. 대치동 환상에서 우리는 언제 벗어나려나.
박재원 비상교육 공부연구소 소장, <박재원의 부모효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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