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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특성화고 형준이, 현장실습 뒤 ‘꿈’을 버렸다

등록 2013-05-06 08:10수정 2013-05-06 14:14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전국금속노동조합 등 5개 노동단체가 26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 특성화고 학생이 기아자동차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중 의식불명이 된 사고와 관련해 정부에 재발방지 대책 마련 등을 촉구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전국금속노동조합 등 5개 노동단체가 26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 특성화고 학생이 기아자동차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중 의식불명이 된 사고와 관련해 정부에 재발방지 대책 마련 등을 촉구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현장실습 대책 1년, 여전한 현실
하루 9시간 일하고 110만원
금지된 야간·휴일근무 예사
기술 대신 커피 심부름·청소…
“이 일 접고 군대나 가려구요”
장인의 꿈과 재능을 키운다는 목표는 헛된 꿈이었다. 올해 서울의 한 특성화고 자동차과를 졸업한 김형준(가명·19)군이 지난해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여섯달 현장실습을 한 뒤 내린 결론은 ‘이 일을 그만둬야겠다’는 단념뿐이었다.

서울의 한 택시회사에 있는 차량 정비소에서 매주 6일 동안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점심시간 1시간을 빼고 하루 9시간씩 일했다. 한달에 1주일가량은 밤 10시까지도 일했다. 표준협약서엔 현장실습생의 최대 근로시간이 하루 8시간씩 주 5일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급여는 최저임금 수준인 110만원. 야간근무를 더하면 최저임금보다 12만원 정도 덜 받은 금액이다.

수준 있는 정비 기술은 배우지도 못했다. 자기 일 하기도 바쁜 정비공들은 시간을 따로 내 김군에게 기술을 가르칠 겨를이 없었다. 정부에선 현장실습생을 가르치는 전담 지도자를 두고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라고 지도하지만, 현장에선 사치일 뿐이었다. 전구와 윤활유를 갈아주는 기초적인 정비 일만 하면서 커피 심부름과 청소로 6개월을 보냈다. 김군은 “어디가 고장났는지 진단하는 일처럼 약간 어려운 기술도 배우고 싶었지만 결국 못 배웠어요. 자기들 하는 거 보고 배우라는 식인데, 그래선 제가 알 수가 없잖아요”라고 말했다.

업무 환경도 열악했다. 택시 트렁크에서 엘피지(LPG) 통을 빼낼 때 뿜어나오는 가스 냄새와 윤활유 냄새로 머리가 어지러울 때가 많았다. 차 밑에 들어가 일하다 보면 먼지가 얼굴로 떨어지지만 작업장에선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김군은 “올해 안으로 군대 가려고요.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는 그 뒤에 생각해봐야죠”라며 한숨을 쉬었다.

정부는 지난해 4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특성화고 현장실습제도 개선 대책’을 발표했다. 2011년 12월 기아차 공장으로 현장실습을 나간 특성화고 학생 김아무개(당시 19살)군이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하자 현장실습 학생들의 근로시간을 제한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대책을 발표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울산의 건설 현장에서 초과·휴일근무를 하던 특성화고 3학년 홍아무개(당시 18살)군이 선박 전복으로 사망하는 사고가 또 일어났고, 대책을 발표한 지 1년이 지난 지금도 김군과 같은 특성화고 학생들은 여전히 보호받지도 못하고 배울 것도 없는 현장실습을 되풀이하고 있다.

정진후 진보정의당 의원실이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을 통해 지난해 현장실습을 했던 19개 특성화고와 2개 마이스터고 3학년 학생 108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런 현실이 극명히 드러난다. 2월1~15일 조사해 5일 공개한 자료를 보면, 설문 응답자 1081명의 절반 이상(50.4%, 545명)이 김군처럼 1주에 40시간을 초과해 근무했다. 야간에도 근무를 했다고 답한 학생이 23.0%(249명), 휴일근무 경험자는 48.3%(523명)에 이르렀다. 정부 대책으로 현장실습생과 업체가 표준협약서를 작성하도록 해 1주 40시간 초과근무와 휴일근무, 야간근무를 금지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업무 환경도 좋지 않았다. 일했던 곳이 위험해서 다칠 가능성이 컸다고 답한 학생이 19.3%(209명)에 이르렀다. 정기적으로 쉬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답한 학생도 13.6%(147명)였다. 용역업체 등 하도급 업체에 현장실습을 나간 학생도 9.6%(104명)였다.

여학생의 경우 매달 생리휴가를 썼다는 학생은 13.3%(49명)뿐이었고, 나머지는 한번도 쓴 적이 없거나(64.7%, 238명) 매달 쓰지 못했다(20.4% 75명). 학생이 요구했음에도 업체가 생리휴가를 쓰지 못하게 한 경우도 20명(6.4%) 있었다.

전공과 관련 없는 곳에 현장실습을 나가 아르바이트 형태의 실습을 받았다는 학생은 42.5%(459명)에 육박했다. 서울의 특성화고에서 자동차정비학과를 나온 김아무개(19)군은 지난해 11월부터 3개월간 경기도의 한 파이프 공장으로 현장실습을 나가 하루 12시간씩 일했다. 김군은 “기계에 파이프를 넣는 정도의 단순한 일이 대부분이어서 전문 기술을 배울 수는 없었다. 일단 돈이나 벌다가 군대에 가겠다는 생각으로 일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열악하고 비교육적인 현장실습 환경으로 인해 실습을 중간에 그만두고 싶었다고 답한 학생도 43.7%(472명)에 이르렀다. 지난해 9~12월 경기도의 한 금형업체로 현장실습을 나간 박아무개(19)군은 “위험한 작업 현장에서 하루 12시간씩 일하고도 월급을 70만~90만원밖에 못 받았다. 그런 곳인 줄 알았으면 애초부터 현장실습을 나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인호 전교조 실업위원회 부위원장(인천여상 교사)은 “업체에서는 단순노동자를 공급받는 통로 정도로 생각하고, 학교에선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일단 내보내려고만 하는 지금의 조기 취업형 현장실습은 폐지해야 한다. 대신 각종 협회에서 교육을 주로 하는 현장실습 프로그램을 만들어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정진후 의원은 “1일 8시간 초과노동을 시켰을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한다. 또한 정부가 공공기관·공기업에서 현장실습생을 더 많이 받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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